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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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 3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31회 작성일 2022-05-24 22:00

⑶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신앙사상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8"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들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와 같이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확신하였다. 이는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사건에 기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17-21"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였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서 310-11"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말했다. 그는 갈라디아서 3장에 말을 바꾸어 그리스도와 합하여 받는 세례로 표현하였다.

바울은 이를 설명하여 로마서 63-5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으며,(하나님과 화목, 엡2:8-1013-18; 롬5:10-11; 고후5:18-20; 골1:19-15.) 또한 우리들의 믿음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그리스도 안에 연합, 롬6:5; 고전1:106:17; 엡2:20-22; 갈3:27; 고후5:17.)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고난을 받음으로 그와 연합하여 부활함을 확신하고 실천하였다.(부활을 본받아 연합, 롬6:5; 고후4:11; 갈2:20; 빌3:10-11.) 바울은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는 유일한 수단으로 오직 확고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 구원의 결국(성화)

바울의 구원 사상에 있어서의 핵심은 "주 안에"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죄가 사해지고 의롭게 되며 죄 많던 인간이 그의 은혜로 거룩하게 되고 성화(성화, 고전6:9-113:16-17; 살후2:13; 엡2:23 (참고 요17:17; 빋전1:14-16).)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4:2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였으며 골로새서 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한다. 또한 이를 지키는 자는 에베소서 2:23에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했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 6장 11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니라," 표현하였다. 이 성화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신자가 도덕적으로 정결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안에서 거룩해짐을 성화 또는 거듭난 성도라 표현하고 있다.(성화의 표현, 롬6:1122; 고전3:16-176:19-20; 엡4:23-24; 고후5:17; 골3:9-10. 성도 롬1:6-7; 고전1:2; 엡2:19; 골3:12.) 그러므로 단순히 하나님께 성별되어 택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믿어져 그 은혜가 우리 마음에 들어옴으로 이루어지며,(하나님의 은혜, 롬3:24; 엡2:7:8,10; 딛3:4-7; 살후2:16-17 (참고 요1:14-17).) 이로 인하여 신자들이 마음의 악한 생각과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다 하였다.(해방 롬1:1-2; 고후3:17; 갈5:1, 13 (참고 요 8:31-32, 36).)

바울은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였으며, 갈라다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죄의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였고, 또한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신 은혜와 진리 안에서 거듭난 자 되어 그 안에서 지혜를 얻어 의와 거룩함으로 날로 새로워지게 된다.(새로워짐 엡4:24; 고후5:17; 골3:10; 롬12:2.)

그러므로 성화는 하나의 은혜의 역사과정으로서 그 출발이 중생과 함께 시작되지만 죽음에 이르러서야 완성되는 것이다. 바울은 디도서 3장 4-5절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였다. 즉 중생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형성되지만 모든 부분에서의 완전성은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부족한 상태, 롬7:22-24; 빌3:10-12; 히5:12-14.)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12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 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하여 자기의 부족함을 말했다. 그러나 성화를 통해 모든 부분에서 거듭나 성장하며 활기와 적극성을 얻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인간 상태로 온전하여 지게 된다.(완전한 인간이 되기까지 엡5:15-17, 4:13-16; 골3:12-14; 살전 5:23.) 바울은 디도서 3장 6-8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희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하니라" 하였다.

또 에베소서 4장 1-3절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하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였고, 에베소서 4장 29-30절에는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성화는 믿는 자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 15-19절과 24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니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함이니이다," 이어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하여, 제자들에게 성화(거룩하게 됨)하도록 기도를 중재하셨다.

바울도 에베소서 3장 14-19절에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그는 기도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4-5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중 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하여, 이 성화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깨달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행하시는 하나님 빌2:12-14; 고전3:7 (참고 잠16:9).)

구체적으로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지혜와 계시의 영에 의해 점차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되며,(마음의 눈 밝아짐, 엡1:17-19; 행26:16-18; 히10:32 (참고 눅11:34-36).) 또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소망을 가지게 되며,(하나님의 뜻 분별, 롬12:2; 엡5:10-17, 1:8-10; 살전4:3 (참고 요일2:17).)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며 거룩하여지게 된다(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엡1:4-6, 2:4-5; 골3:12-14; 롬5:8, 8:38-39; 살후2:13; 살전4:9 (참고 요3:16; 요일4:9-10).) 하였으며, 또한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고 온전히 깨닫게 되며 생명력이 있는 믿음 안에서 장성하게 된다 하였다.(온전한 신앙으로 장성, 엡4:1315-16; 히5:13-14; 골1:27-29; 롬12:1; 고후13:5; 고전14:20; 딤후3:15-17/ 성령을 힘입어 성화됨, 고전3:16-17, 4:10-14, 6:9-10; 고후1:21-22; 롬8:27,살전5:19-23; 엡4:29-30.)

또한 그는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 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였고 로마서 12장 4-5절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니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거듭남의 역사(성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로 증언하고 있다.(성령의 역사 고전2:10-14, 6:10-11; 고후1:21-22; 롬8:26-27; 갈5:22-23; 엡4:30; 살후2:13-14; 딛3:4-7 (참고 요14:25-26).)

뿐만 아니라, 바울은 주안에서 우리의 몸도 거룩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요, 그리스도의 지체로 표현하고 있다.(몸이 성령의 전, 예수의 지체, 고전3:16-176:1912:12-13,27;롬12:4-5; 엡5:29-30.) 그러므로 성령의 전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고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였다.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연합되고 따라서 서로서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그리스도와 연합된 공동체 엡2:20-22; 고전6:1712:27; 롬6:5; 갈2:20.)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했고 고린도전서 2장 12-14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친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 하였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몸도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삶을 선포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썩을 몸을 자신의 신령한 몸, 영원한 영광의 몸에 동참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신령한 몸, 고전15:42-49; 빌3:21.) 하였으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라(만물을 복종케 함, 고전15:28; 빌2:6-8, 3:21; 엡1:20-22.) 하였으며 이것이 성화의 과정에서의 영광스런 결실이라 하였다. 또한 그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으며 로마서 8장 1-2절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면 새로운 피조물(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고전15:444953; 골3:10; 롬8:1-2.) 즉 죄로 말미암아 썩어질 몸이 해방되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완전한 새 것으로 성화된다고 한다.

8. 바울의 교회론

1) 교회의 개념

교회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베드로를 통하여, 완전한 교회 상을 예언하였으며 이 예언은 오순절에 모였던 제자들을 통하여 실현되었다.(교회에 대한 예언과 실현 마16:16-19; 행1:4-512-14,2:1-4.) 회심이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실제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 대하여 높은 차원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표현되었듯이 "이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가르침으로 교회를 소중한 것으로 존경하도록 하였다. 또한 바울의 서신들을 통하여 진정한 교회의 정의는 정립되었다.(교회의 정의, 엡1:21-23 2:20-22, 3:10-11; 딤전3:15.)

2) 교회의 정의

바울의 서신들은 우리들에게 교회에 관한 바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풍부한 재료들을 제공해준다.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에클레시아" 곧 교회라는 말이 60회 가량 기록 되어 있다. 바울은 이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예배와 신앙 교육을 위하여 어떠한 특정한 장소에 함께 모인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백성들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백성들을 묘사한다. 결국 바울은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교회 곧 모든 지역 모든 나라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전체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그는 교회를 통하여 보게 될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에 관해서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해서 말했으며(엡 3:10, 21)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였다.(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엡1:22-23; 골1:18.)

바울은 교회라는 말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고 삶을 바친 사람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 교회라는 말을 하나의 건물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란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리고 삶을 바칠 것을 서약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의 회합을 가리킨다.

3) 교인에 대한 호칭

바울은 교회형성의 기본이 되는 교회의 교인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말들 가운데 나오는 교회의 교인들을 가르키는 세 가지의 호칭들이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호칭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⑴ "성도들": 서신들 중 가장 잦은 호칭

바울 서신에서 교회의 교우들을 가리켜 성도들이라는 말로 40회 가량 불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 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였다. 이로 볼 때 교회의 교인들도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과는 구별되어 있음을 뜻한다. 비록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도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끊임없이 신중하게 듣고 그 명령들을 지키려고 애쓰며 사는 삶을 말한다. 그의 삶은 여전히 세상 안에서 사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의 전체 생활은 세상을 기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고 사는 삶이다. 성도들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리스도께 헌신한 사람이란 뜻이다. 교회의 등록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받친 사람들이다.

⑵ "형제"들: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호칭

바울은 서신들에 마지막에 형제들 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여기에는 교회는 형제들의 무리가 됨을 뜻하는 위대한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형제가 됨을 뜻한다. 만일 어떤 교회가 영적으로 내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그러한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가 중단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형제의 관계가 아니라면 그러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형제들의 무리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⑶ "신자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호칭

다시 말해서 교회의 회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자요, 또 그 말씀이 참되도다. 라는 확고한 전제 위에 삶을 영위하는 자이다.(신자 또는 믿는 자: 행10:45; 롬1:6, 3:22,26, 4:5,11,24, 9:33, 10:4; 고전1:21; 갈3:22; 살전2:1013; 살후1:10; 딤전4:10.)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혼의 구세주가 되심을 확신하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생의 주님으로 삼는 자이다. 이와 같이 호칭 받은 자는

① 세상과 관련해서; 교회 성도는 그가 그리스도의 기준들 앞에서, 그 기준들을 따라서 산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②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해서; 교회의 회원들은 형제애를 가지고 교제하며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

③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교회의 회원은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베푸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또 그의 생을 위해서 명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이 바울의 서신들에는 교회의 교인을 가르켜 "성도들, 형제들, 신자들, 또는 믿는 자들"이라 호칭하였다.

4) 교회의 근원

바울은 그의 서신들 중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모든 권위와 영적 역사의 근원이 된다 하였으며,(교회의 근원, 엡1:22-23; 골1:15-1824) 또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성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였다. 그는 로마서 12: 4-5 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또한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학적 사상으로 보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와 절실하게 연관되는 개인으로서 구성되며, 또한 교회에 속한 각 신자들은 서로를 한 연결체와도 같이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같은 몸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은 형제간에 서로 죄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형제간에 죄짓지 말 것, 고전8:13; 갈6:1-2, (참고 요일2:1-23:3-6,14-15,4:20)) 서로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생각하며 상부상조 유무상통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상부상조, 유무상통, 행2:44-474:32.) 또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사랑의 목적이 교회인 것이다.(희생적 사랑 엡5:1-2; 롭5:8; 고후5:14-14 (참고 요일3:16).)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신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하나님의 권속 엡2:19-22; 빌3:20.)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12절에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이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하였으며 에베소서 5장 26-27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봉사의 직분을 마련했으며,(교회의 봉사 엡4:11-12 (참고 벧전4:10-11).) 또한 교회를 흠 없게 하시어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고저 하신다 하였다. 또한 그는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이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 하고, 에베소서 3장 10절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심이니" 하였다. 교회는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 자신의 공동체이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며 교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지게 된다.(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교회 엡3:10-1220-22; 고전6:19-20.) 에베소서 2장 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움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였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교회란 외적으로는 구원받은 무리들의 모임이며,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인류 인종 차별 없이 주 안에서 연결되어 성령으로 한 몸 되어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교회이며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본체이다.( 하나님의 기본 체, 엡4:4-6; 고전3:16-176:19-20.)

5) 온전한 교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교회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의 재창조이며 바로 완전한 교회인 지상천국을 말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9-20절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였으며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또한 에베소서 1장 7-12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디모데전서 2장 4-5절에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였으며 갈라다아서 3장 20절에는 "중보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피조물인 저주받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코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인간들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시켜 하나님과 화목 시키려는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중보자로 오신 예수가 자신을 집자가 상의 제물로 받쳐 그의 흘린 피로 타락한 인간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였다.( 화목 제물 롬3:23-26; 엡2:13-18; 히10:1014.)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시 창조당시의 본 모습인 그 아름다운 조화로 회복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화목의 역사는 바로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완전한 교회상이다(하나 되는 완전한 교회 엡1:7-132:18-22,4:4-6; 고전12:12-13.).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5-29절에 "내가 교회의 일군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마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니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내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였다. 또 골로새서 1장 24절에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하였다.

바울의 이러한 확고한 교회관은 그로 하여금 더욱 선교에 대한 의식을 굳게 하고 주어진 사명에 더욱 충성하게 하였다. 바울은 이 복음의 사명을 땅 끝까지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기의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다.(몸 된 교회, 골1:1824; 엡1:22-23.)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관은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사명에 충성하였다.

9. 바울의 종말론(그리스도의 재림)

바울의 종말관 사상은 구약성서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 당시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이사야 선지자의 경고 사13:6-10; 살전5:3.) 바울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그가 배운 유대 학문과 유대교적인 교육을 통해서 얻은 언어를 종종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히 이사야 26장과 27장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그 구절들 간에 뚜렷한 병행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1. 주의 오심 : 사26:21; 살후2:1

2. 심판의 임함 : 사26:21; 살후1:92:8

3. 죽은자의 부활 : 사26:19; 살전4:16

4. 나팔소리 : 사27:13; 살전4:16

5.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고 회집할 것, 이는 마지막 날에 관한 유대사상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 사27:12; 살전4:17

또한 기본적으로 독특한 특징과 초점에서 전개시킨 바울의 기독론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기독론의 연장 갈4:4-5; 엡1:4-5, 2:1-5,10; 빌2:13-16 (참고 요1:10-12, 3:16, 35-36, 5:25-29))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인간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역사를 진행하셨다.(사람의 몸으로 오셔 빌2:6:10; 딤전2:4-5; 롬1:1-4 (참고 사8:1411:1-5; 마1:23) 죽으심과 부활 롬1:4; 고전15:3-412-21; 엡1:20-21 (참고 눅24:5-9).)

즉 예수의 탄생, 천국 복음 전파, 십자가에 죽음, 부활, 그리고 신도들(그리스도인들) 속에 있는 성령의 역사는 전체 구속 과정을 성화시켜주는 "첫 열매"이요 마지막 완성에 대한 확증이라 하였으며(처음 익은 열매 예수:고전15:22, 성도:롬8:23 마지막 완성 히12:1-210:9-10,14.)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과의 휴거는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예수가 말한 휴거 요14:1-35:25-29.) 그리스도의 재림 곧 휴거에 대한 바울의 사상은 오직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복음에 근거한 재림 고전15:51-54; 마24:30-31; 살전4:15-17; 마24:30-31; 살후1:5-10; 눅17:29-30; 살전5:23; 요17:17.)

바울의 종말론은 그가 목회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천을 보이고 있다고들 주장하고 있다. 미래의 휴거를 크게 강조하는 묵시주의로부터 현재속의 완전과 죽음에 임했을 때의 불멸성을 강조하며 보다 세련된 실존주의적 이해로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현재의 자신 확증 롬8:9-1138-39; 고후1:21-2213:5; 갈2:19-20; 빌1:20-21.) 그러나 바울에게서 발전의 증거로 인용되는 여러 요인들은 사실상 시종 그의 서신들 속에 함께 나오는 것이지 서로 대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바울의 종말관이 초기에 기록한 서신들과 말기에 기록한 서신들 간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 사상을 탈피하거나 혹은 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종말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상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었다. 바울의 서신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서신은 데살로니가전후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거리의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관한 문제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5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답변하면서 그들을 확신시켰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생애 동안에, 자기가 전한 서신의 내용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하였다. 이 서신가운데 주의하여 볼 것은 몸에 대한 언급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들이 몸을 갖고 있는 상태로 살아서 있을 것을 기대했던 점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도들과 자신의 생애 동안에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따라서 그의 초기의 서신들에 보면 그의 전도 설교가 개종자들에게 미래주의적 색채를 담고 있다.( 예수 재림 살전1:103:134:13-17,5:23; 살후1:8-10.)

그러나 바울의 중반기 서신들에서는 초기의 서신들에 기록되었던 그의 종말관은 보다 세련되어 실존주의적 이해로 성숙해 갔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신자들 마음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역설하고 있다.(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 롬6:6-98:9-10,14:8-9; 고전3:16-176:19-20,17; 고후13:5; 갈2:20; 빌1:20-213:10-14.) 고린도전서 및 고린도 후서와 로마서에 인간의 죽을 때 체험할 육체와의 분리, 그리고 주와의 공존을 말하면서도( 영적 구원 고후5:1-10; 고전15:4450 (참고 벧전1:9).)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완성, 온전을 강조하고 있으며, 주의 강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교회생활을 바라고 있다.( 재림 기대하는 생활 고전15:51-53; 고후4:16-185:1 (참고 살전5:22-24).) 하지만 로마 옥중에서 쓴 후기 서신들을 보면 끊임없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몸"을 주장하면서도 주님의 재림의 날을 고대하며 비천한 우리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만들어 주실 것을 믿고 있다.( 영광의 몸으로 고전15:43; 고후4:14-16; 빌3:20-21.)

목회서신에서도 현실에 관한 교회적 관심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으로 오실 복된 소망의 날을 기다리게 한다.(영광으로 오시는 날 딛2:12-13; 딤후4:6-8.) 그의 기독교 신앙 경험과 목회를 일괄해서 변함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바울의 신앙 사상의 중심점은 바로 재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앙사상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연합을 의미하며 성도의 몸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로서 성도의 죽을 몸이 "그의 영화로운 몸처럼 되도록" 변화(성화)를 받게 되며 이는 성도들이 부름받은 아들로 완성됨을 뜻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화로운 몸 롬8:28-30; 고전15:42-496:7; 빌3:21; 살후1:11-12; 엡2:20-22; 고전12:12-13.) 뿐만 아니라 휴거는 심판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구원에는 심판이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믿는 성도는 심판에 영향 안받음 롬8:1-2; 고전3:13-15; 롬8:38-39; 살전5:4-6 (참고 벧전4:5-6; 요일5:18; 계20:6).) 따라서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에게는 휴거가 심판으로 임한다.( 심판 대상자 롬3:29; 고전16:22; 살후1:8-92:12 (참고 벧후2:9; 계20:12; 요5:27-29).) 이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① 이방인의 완전한 수가 달성됨 ; 롬11:25, (참고 계6:11)

②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실현됨 ; 롬11:26-27

③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인해 받던 운명의 쇠사슬에서 해방됨 ; 롬8:19-21 (참고 계21:3-4)

④ 모든 권세가 예수께 굴복함 고전15:27; 엡1:21-22; 빌3:21

⑤ 죽음 곧 마지막 원수가 파멸된다. ; 고전15:24-25 (참고 계20:14)

⑥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 당하게 될 때 아들자신도 당신에게 모든 것을 굴복시켜주신 하나님께 굴복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됨. 고전15:28; 엡4:5-6

주께서 죄악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역사적 성취는 이미 완성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의 역사는 지금도 살아서 계속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도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견고케 하시며 믿음의 결실을 이루게 하신다. 그의 정점(클라이막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결짓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의 하나님의 참 아들로 완성되며 구원의 계획의 완전 성취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열망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렸다.( 바울의 심정 롬8:24:25; 빌3:10-1420-21; 딛2:11-13; 살전5:23-24; 히3:13-1412:1-2; 고후4:16-185:1.)

10. 결 론

철저한 율법주의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복음의 사도된 바울의 신앙사상 중심을 흐르고 있는 그의 독특한 윤리관을 끝으로 고찰하여 "바울신학"을 결론짓고자 한다.

바울의 신앙사상 중심을 흐르고 있는 그의 윤리관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그 안에서 "바울신학"이 정립되고 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철두철미한 신앙 사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새 피조물 롬8:1-2; 고후5:17.) 이 같은 기반을 떠나서는 바울의 신앙윤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바울의 신앙 기반 롬6:3-614:7-8; 고전6:1719-20; 고후5:14-17; 갈1:11-1215-17,2:19-20, 엡4:21-24; 빌3:7-910-14.)

2) "그리스도의 법"과 "그리스도의 정신"의 상관관계를 통하여 인도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는 "그리스도의 법"과 "그리스도의 정신" 양자의 관계 속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법 갈6:1-2; 히10:16 (참고 요13:34; 요일3:16).) "그리스도의 법"은 예수의 교훈이 "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데 참된 방법론이며( 하나님의 법 성취 방법 행13:37-38; 고전2:10-11; 롬6:138:9-14,12:1-2; 엡5:1-2; 살전5:14-18.) 또한 예수 자신이 친히 본이 되어 " 하나님의 법"을 실현하였다. 고로 "그리스도의 법"은 바로 " 하나님의 법"안에 성취됨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자 롬15:5-6; 고전11:1; 엡5:2; 갈3:27; 빌3:10-14; 골3:1-3; 살전1:6-7.)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도에게 있어 모세의 율법은 불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 필요없다. 롬7:5-610:4; 갈2:163:23; 히10:11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는 예수의 새 계명(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율법과의 연속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확실히 입증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원칙들의 외적 표현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의 완성 롬10:413:810; 히10:9-101412:2 (참고 마5:17).)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 대한 길과 방향을 지시해 주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인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게 하며,(고전 2:10-14) 각각 윤리적 판단을 갖추도록 한다 하였다.( 윤리적인 판단 롬12:214:7-8; 고후5:8-107:1; 엡4:29-325:15-17; 살전5:19-22.)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법"은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하였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법" 자체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 지어주며 이를 실천하도록 인도 하신다 하며,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자비하심과 참사랑을 알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다 하였다.( 참사랑 알게 하심 롬5:812:913:810; 엡2:3-5 (참고 요일3:164:9-10,20)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케 함 롬15:5-6; 엡1:3-61214; 빌1:11; 골3:16-17; 히13:15.)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윤리적 근거를 계시하고 있다 하였다.

4) "그리스도의 영"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에 소망과 용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의 영"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의 윤리적 삶의 근거와 맥락을 제시해 주듯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소망과 용기를 제공해 준다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또한 성령을 통해서 우리 죽을 몸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하였다.( 하나님의 영(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임 롬8:9-14, 26-27, 15:13; 고전2:10-12, 6:11, 12:12; 고후1:21-22; 엡1:13, 2:18, 22, 4:30 (참고 요4:246:6314:1626).)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을 힘입어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적 근본을 이룸을 강조하고 있다.

5)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성취를 통해 이미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아직 이루어져야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완성을 위한 긴장 속에 전개되고 있으며, 이 같은 긴장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살고 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 안에서" 죄인 되었던 우리들은 또한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 받음을 늘 자각하며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의 현재에 대한 승리와 전망과 그리고 궁극적 하나님 나라에 자녀 되는 대망을 품고 소망 가운데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감수하며(소망으로 환난 감수 롬5:1-48:24-25,15:4,5-6; 딤전6:11-12; 히10:34-36 (참고 약1:2-412; 벧전3:174:1-2).)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 간다 하였다.-

 

참고 문헌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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