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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 부록(95개 조항전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2,664회 작성일 2019-03-21 17:22
 
종교개혁사부록
[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전문 ]
 
 ※ 서론
 비텐베르크 성벽교회 출입문에 내건 95개 조항을 보면,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할 만큼 과격한 내용이란 별로 없다. 로마가톨릭 교단 내부에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었고, 서로 다른 주장들을 놓고서 논쟁을 하곤 했었다. 탁발수도회나 프란시스코 종단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종말관을 갖고 있었다. 도미니크파와 어거스틴 수도회는 매우 대립되는 입장이었다. 반체제적인 수도사들은 일반 사제들에 비교해 보면, 훨씬 과격하고 위험한 선언을 하였다. 어거스틴파 수도사 루터가 95개 조항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그리 엄청나게 새로운 신학사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중세시대 말기에 유럽에서 면죄부 판매는 상당히 오래된 관행이었고, 그것을 반대한 사람도 루터가 처음은 아니었다. 교황 클레멘트 6세가 1343년에 면죄부 제도를 공포하였다. 경건한 기독교인이 일종의 감사헌금 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합당한 조건들에 부합하면 무료로 면죄부를 배포할 수도 있었다. 1476년 페라우디(Raimund Peraudi)가 면죄부의 활용을 확대 해석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래 아마도 연옥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혼들에게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면죄부 판매에 반론을 제기한 신학자들이 많았다. 독일에서 경건운동을 주도한 베젤의 요한, 갠스포르트가 면죄부의 오용을 논박했고, 매우 존경을 받았다. 츠빙글리의 스승이자 바젤대학교의 교수이던 토마스 비텐바흐 역시 면죄부를 거부했다. 1515년 이후로는 많은 신학자들이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독일 삭소니에는 새로운 군주가 들어섰고, 루터에게는 평신도 후원자들이 호응하고 동조하게 되면서 그 이전과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담대하고 힘차게 설교하는 루터는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즉각적인 논박과 대응을 주저하지 않았고, 출판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95개 조항은 일부나마 기독교의 가르침을 회복시켰고,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루터는 진정한 회개를 호소하면서, 면죄부의 허상을 고발하고 비판했다. 양심의 호소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로마가톨릭교회가 자랑하던 교황의 권세가 무너지는 단초가 되었다.
 
1. 루터의 95개 조항 전문
 
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 석사인 마틴 루터에 의하여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그는 직접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1.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들이 집행하므로 시행되는 죄의 자복과 사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 같은 심적 회개가 육체의 여러 가지 정욕을 외적으로 죽이지 못한다면 그런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따라서 참된 심적 참회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5. 교황은 그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한 형벌 이외에는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권한도 없고, 의지도 없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 외에는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만을 사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죄책은 확실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7. 하나님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모든 일에서 겸손하게 만들고 복종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대표인 사제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8. 죄를 용서하는 교회법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사망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든지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9. 그러므로 교황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조항을 항상 예외적으로 만드시는 바, 그의 작정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행하신다.
10. 사제가 사망한 자에게 있어서 연옥에서의 교회법적인 회개를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11. 교회법 상의 벌들을 연옥의 형벌로 변경시키는 가라지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 심어진 것이라고 보인다. (마 13:25)
12. 이전에는 교회법 상에서 내려지는 선고들이 이전에 부과되어서, 나중에 하지 않고, 진실한 통회를 하게 한 것이다.
13.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법령의 벌칙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된다.
14. 죽는 사람의 불완전한 건강과 자애심은 큰 공포를 반드시 초래하게 하는 바, 그 부정함이 심할수록,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진다.
15. 이 불안과 공포만으로도,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옥의 고통을 충분하게 구성한다. 그런데 그 고통은 절망의 공포에 매우 가까운 것이다.
16 지옥, 연옥, 천국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바와 같이, 절망으로, 혹은 절망에 가까이 이르는 상태로, 그리고 마음의 평화도 각각 다르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는 자선이 증가되어질 때에 공포가 감소될 것은 사실이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이 공로의 영역 밖에 있다거나, 자선 행위를 증진시키는 권역 밖에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성으로나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19. 연옥에 있는 영들은, 우리가 그것을 다 확신한다 하더라도, 자기네들이 누릴 복락을 확신 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20. 그런고로 교황이  모든 죄의 완전하게 사면을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모든 죄의 용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자신에 의해서 부과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 뿐이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23. 만일 어떤 사람의 모든 죄를 사유할 수 있다면 그런 죄 사함을 받을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거의 극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24.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차별적이고 허울 좋은 약속에 의하여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는 교구 내 모든 주교들도 가질 수 있고, 특별히 자기 구역 내에서 모든 사제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6. 교황이 영들의 죄를 사유함에 있어서 자기 권세로 하지 않고 공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이다. (연옥에서는 교황 직권이라는 것도 소용이 없다)
27.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나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에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성직자의 대행적 기도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29.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곳으로부터 구속 받기를 원하는지 그 누가 알 것인가. 성 세베린과 파스칼리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30. 그 누구라도 각자 자기 자신의 참회에 대한 진실성을 알 수 없거든, 어찌 자기가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랴
3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드물 듯이, 또 참으로 회개를 하고 면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32. 누구든지 사면증을 받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저들의 선생들과 다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들을 가리켜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34. 왜냐하면 이런 사면들에 의해서 전달되는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규정된 성례적 만족의 형벌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구출하는 속량을 구매하거나 혹은 고백의 증서를 구매하는 사람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는 자는 비기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36.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의 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다운 크리스천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증이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면죄와 그의 관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 (제6조 참조), 그것은 하나님의 사면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박식한 신학자에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참된 통회는 형벌을 달게 받으며 찾는다. 그러나  사면을 관대하게 하는 것은 형벌을 등한시 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41. 사도적 계승의 사면권은, 사람들이 결코 그것을 사람의 다른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같이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42. 면죄부의 구입을 어떤 식으로든 자선사업과 비교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교황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크리스천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자선 행위에 의해서는 사랑을 베푸는 일이 증가하고, 그 선을 행하는 사람은 보다 나은 자가 되어가지만, 면죄부로라는 수단에 의해서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그리스도인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은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쳐버리고 (요 3:17 참조), 면죄부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다.
46.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만 할 것은 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 (딤전5:8) 결코 면죄부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7.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은 면죄부를 사느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자유로운 일이며,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8.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교황이 죄를 사면하여 줄 때에 더욱 더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들이 만일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는 일이 있다면 매우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사제들의 면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대성당이 불에 타 버릴지언정 자신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51.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면죄부의 설교자들이 받은 돈에 대해서 파악한다면, 성 베드로 대성전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사재로서 기꺼이 면죄부 산 사람들의 돈을 반환할 것이다.
52. 면죄의 증서를 통해서 구원에의 희망을 갖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 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으로 보증한다 하더라도 헛된 것이다.
53. 면죄부의 설교가 선포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주하여 교회 안에서 아주 잠잠하여 지도록 만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대적 자들이다.
54.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데 있어서 면죄부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하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서 더 긴 시간을 쓰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생각에 면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면 면죄 축하에는 종 하나만 울리고 행렬도 한 번만 하고, 성례도 한차례만 시행 할 것이다. 그 반면에 있어서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면 복음은 종 백 개를 울려서 전하고 행렬을 백 번 인도하고 성례도 백 번 집전해서 전할 것이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그리스도의 백성들 가운데서 충분히 표시되어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57. 그 금고에는 세상 재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써 버릴 것이다. 많은 사제들은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고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다.
58. 면죄부 금고에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황도 모르게 면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한다.
59. 성 로렌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는 그가 살던 시대의 사용된 어법에 따라 말한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주어진 교회의 열쇠들이 곧 교회의 보화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미결된 사건들을 위해서는 교황의 권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의 거룩한 복음이다.
63. 하지만, 이 보화가 먼저 된 것을 나중 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장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 19:30; 20:16; 눅 13:30 참조)
64.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나중 된 것을 먼저 될 것으로 만드는 원인이기 때문에, 가장 애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5. 그러므로 복음의 보화들은 그들이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오래 된 그물이었다.
66. 면죄부의 보화들은 오늘날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67. 사제들이 면죄부가 가장 큰 은혜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순전한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행위이다.
68.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들은 실재에 있어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69. 주교들과 교구 사제들은 사도적 계승을 가진 사면의 대리자들로서 모든 경의를 가지고 존중을 받아야만 한다.
70. 그러나 그들은 한층 더 눈을 활짝 뜨고 귀를 바짝 기울여서 교황의 위임에 대신해서 자기들 자신들의 꿈을 설교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71. 사도적 계승의 사면권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받을 지어다.
7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죄를 설교자들이 하는 해롭고 뻔뻔스런 말에 관해서 심각하게 염려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을지어다.
73. 면죄부 매매에 기만적 수단을 써서 그 면죄를 방해하는 것을 교황이 엄금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74. 누구든지 면죄의 미명하에 거룩한 자선과 진리를 기만수단을 씀으로 인하여 중생하면 이는 교황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서,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신이 나간 생각이다.
76. 이와 반대로,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교황의 면죄부는 죄 중에서도 제일 가벼워서 그 죄의 책임을 묻지 않을 만치 작은 죄까지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오늘날의 교황이었다 할지라도, 면죄 이상의 큰 은총들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나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현 교황이나 혹은 다른 어느 교황이든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 능력, 병을 고치는 은사이다. (고전 12:9-)
79. 교황의 팔에 다른 휘장들과 같이 장착되어 있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80. 이와 같은 가르침이 사람들 가운데 선포되는 것을 묵인하는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면죄권의 설교에서 이런 평신도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제기되어지는데, 교황에 대한 존경을 수호하기란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를 들어보자: 어찌하여 교황은 가장 거룩한 자선과 영혼들에게 최고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위하여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이것이 모든 이유들 중에서 가장 합당한 것인데, 그는 대성당의 회랑 건설에 소비될 것들과 썩어질 금전들을 거둬들임으로서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83. 또한 이미 구속함을 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추도미사를 계속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으며 혹은 그 기부금의 취소를 허락하지 않는가?
84. 다시 한 번 질문 한다: 돈을 받아내려는 목적으로 불량한 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구원을 베푸는 것과 같은 일을 허용하도록 허락하면서,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는 이 경건한 영혼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자유로운 선행의 마음으로 그를 구해내지 않는 것은 도대체 하나님과 교황의 어떤 새로운 종류의 거룩함이 있다는 말인가?
85. 또한 참회에 관한 교회의 법규는 사실상 오랫동안 사용치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고 사문화되었는데, 왜 아직도 돈으로 인한 면죄부를 수여함으로서 구속해 내는 것은 여전히 시행해야 하는가?
86. 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또한 교황은 완전한 통회를 통해서 충분한 사면과 속죄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어서 무엇을 사하려고 하는가?
88. 또한 교황이 각 신자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 번 주는 것을 만일 하루에 백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얻게 되겠는가?
89. 교황이 면죄부를 수여하는 것은 그 목적이 돈이 아니라 영혼의 구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래 전에 주었던 증서나 면죄증을 왜 무효가 되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이 면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90. 평신도들이 이러한 질문과 반론을 제기 하는데 이론적으로 증명치 못하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들의 비방거리가 되게 할 것이고, 그리스도인들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만일 면죄부에 대하여 교황의 본의와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예 그런 문제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 가라. (겔13:10,16; 렘6:14; 8:11;살전5:3)
93.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그리고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4.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죽음, 지옥을 통하여서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5. 그리고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평안의 보장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 (행 14:22)
 
2.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중심주제 8가지 분석
 
95개 조항의 원제목은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이다. 전체 내용들은 8가지 핵심 사항들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중심적인 주제 여덟 가지를 각각 다시 나누어서 반복하면서도, 예리한 분석과 탁월한 비판을 가한 것들이다.
 
1) 속죄 규정들의 문제점들(1-4조)
첫째 항목에서 루터는 진정한 회개와 고해성사의 차이를 밝혔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고(마 4:17), 그분은 신자들의 전 생애에서 회개가 지속되기를 원하셨다"라고 시작한다. 2항목에서 "이 말씀은 고해성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니, 성직자들에 의해서 집행되어지는 고백과 속죄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고해성사가 무엇이기에,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회개하라는 가르침을 왜곡하였나? 13세기 중엽부터 로마가톨릭교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립한 7성례를 강조하였다. 일곱 가지 생활의 영역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선행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7성례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성만찬과 고해성사는 거듭 반복되는 성례들이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미사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성만찬에 참여해야만 되는 것으로 연계시켰다. 종교개혁 직후에 루터는 한동안 고해성사를 완전히 폐지시키지 않고 죄를 고백하는 제3의 성례라고 시행을 했을 만큼 강조한 바 있었다.
루터의 기본적인 인식은 아주 단순했다. 성도들이 진정한 회개를 하고 그 표시로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구매하여,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였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전혀 진심어린 회개를 하지 않은 자가 돈으로 면죄부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돈으로 사거나 팔수도 없는 것이다. 먼저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2) 교황의 사죄권과 한계점(5-7조)
사면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이다. 교황이나 교회의 성직자들은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규정 내에서만 용서를 선포할 뿐이다. 사면권이란 어떻게 죄를 사면 받는가에 대한 것인데, 돈을 받고 면죄부 (혹은 사면부) 를 발행하는 교황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루터는 로마 교황권의 본질에 대해서 강력한 불신을 제기한다.
 
3) 속죄의 권한과 연옥에 있는 영혼의 구원 문제들(8-29조)
면죄부를 정당화하고자 로마가톨릭에서는 연옥(purgatory)을 각인시켰다. 로마 가톨릭의 연옥설은 사망 직전에 신부의 종부성사를 받지 못한 자들이 거처하는 임시처소다.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
이 조항을 쓸 때까지는 루터가 연옥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았다. 단지, 연옥에서는 구출을 보장하는 면죄부에 대한 비판을 했을 뿐이다. 1530년에 이르러서야 성경에 나오지 않는 허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어서, 연옥설에 대한 반론을 펴게 된다. 그 후로는 루터가 자신의 모든 저술에서 연옥설에 대한 과거 입장을 전부 다 수정하였다. 22조에서 루터는 교황이 죽은 자들이 연옥에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속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기하였다: "교황이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루터 당시에 매우 심각한 왜곡은 연옥에 머무는 귀족들을 위해서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면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순례여정에서 말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다쳤거나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돈으로 면죄부를 구입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이런 왜곡에 대해서 루터는 목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루터는 어느 경우에든지 간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구매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연옥설은 면죄부 판매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이므로,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문서로는 1274년에 가톨릭교회에서 정식 문서로 채택했지만,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 100 여 년 전부다. 어린아이들의 죽음, 전염병의 유행,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 등 실재적 이유로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교리이다. 로마의 주교 힐데브란드가 목회적 목적으로 사용했었다. 루터를 정죄하는 트렌트선언문 (1563)은 연옥설을 옹호하였다. 동방 헬라 정교회에서는 연옥설을 거부했다. 칼빈은 재세례파의 영혼 수면설에 대해서도 반대했고, 로마가톨릭의 연옥설도 거부했다.
결국 염려와 걱정으로 휩싸인 후손들을 상대로 하여, 로마가톨릭은 이미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죽은 자들을 연옥에서 구해주는 면죄부,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홍보하였다. 연옥설이 확산되는 근거는 단지 마카비 2서 12:42~44,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의 헌금을 하면 그들이 구원 받는다"는 구절뿐이다. 또한 연옥설 주장자들은 고전3:12~15을 주로 참고하여,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것이요, 공적에 따라서 상급이나 형벌을 받는다"고 하는 구절을 강조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고전 3장에서는 연옥이란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공로주의와 선행을 강조하려는 로마가톨릭이 확대하고 부풀린 것이다. 1992년에 나온 로마가톨릭 교리문답서에 연옥에 대해서 여전히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연옥에 대해서 강조하지는 않는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미사만 강조할 뿐이다.
95개 조항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지적들은 거의 대부분 루터와 테젤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미니크 종단 신부 테젤 (Johann Tetzel)은 루터의 교구에 인접한 곳에서 가장 뛰어난 면죄부 판매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장면을 설명하면서 면죄부를 구매하게 하였다: "땡그랑 하고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천국으로 뛰어오른다." 이런 테젤이 도미니크 종단에 속해 있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당시 로마가톨릭은 여러 종단으로 분리되어서 서로 다른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기로 했던 도미니크 종단에 속한 테젤은 충격적인 설명을 서슴지 않았다. "한 사람이 성모 마리아와 간음을 했다 하더라도, 나의 면죄부들 중에 하나가 속량해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테젤은 비록 예민함이나 영특함은 없었다 하더라도 당시의 성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어버렸다. 요즈음 인기 연예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루터의 후견인 프리드리히 3세도 역시 테젤을 불러들여서 자신의 지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게 허용하였다. 루터는 강 건너 쪽에서부터 활약하던 테젤이 비텐베르크에서 남다른 선전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가 주장하는 설명에 대해서 루터는 거듭 생각해 보았으나, 누구든지 약간의 돈을 내기만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오랫동안 루터는 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졌었다. 중세 교회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에 약간의 상처를 입은 것뿐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약간의 장애와 손상을 갖게 된 것 뿐이라고 가르쳤다. 완전히 거룩한 삶을 사는데 손상을 입었을 뿐이라고 가르쳤다. 루터에게 있어서 죄는 사망이었다. 죽은 사람은 달릴 수도 없고, 걸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테젤은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테젤이 설교하던 구절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 표현이 27조에 나온다:"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조의 설명은 지금도 교회가 받아들이는 모든 헌금이나 기부금이나 교회 소속 재산들을 취급할 때에 들어야 할 경구이다.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행기도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4) 면죄부와 사죄권의 문제점들(30-40조)
면죄부 판매에 반대 이론을 펴내게 된 것은 루터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죄의 문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칭의론에 해결책을 터득하게 되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론이 루터의 핵심 사상이다.
비텐베르크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루터는 집중적으로 시편과 로마서를 강의했었다. 그가 하박국 2장 4절과 그것을 인용한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조항들은 이런 깊은 성경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가톨릭의 구원론 교리를 아예 전체적으로 그 구조자체를 부정하는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루터가 이미 1509년에 강의한 자료를 살펴보면, 중세 시대에 정통으로 퍼져있던 피터 롬바르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중심으로 가르쳤다. 이것은 그가 에르푸르트 어거스틴파 수도원에서 만난 요한 슈타우핏츠의 영향으로 보인다.
루터는 집중적으로 기독교인의 거룩한 생활을 위해서 과연 면죄부라는 것들이 유효한가를 거론한다. 30조부터 40조까지는 면죄부에 대한 상세한 분석들이 돋보인다. 죄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께서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일이다. 31조에서 루터는 진정한 회개만을 강조한다: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 같이 면죄부를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조에서 강력하게 면죄부를 신뢰하는 미신적 행동을 질타한다.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루터는 면죄부를 구매하고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확실하게 지적한다.
 
5) 면죄부의 구입과 사면권의 남용(41-52조)
로마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동안 덮어두었던 면죄부를 발행하여 돈을 모았다. 건물보수와 군사력 확충, 각동 정치자금에 돈이 필요한 사람은 단지 교황 레오 10세만이 아니었다. 루터가 살고 있던 삭소니 지방을 다스리던 마인쯔의 알브레흐트도 더 많은 주교좌를 장악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으로 법이 금지하는 일이었다. 교황은 마인쯔의 알브레흐트에게 교구 내에서 면죄부 판매를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서 알브레흐트는 교황에게도 일부 자금을 상납할 수 있었고,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받고 자금을 빌려주는 일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자금의 흐름을 따라서 상납을 받아 혜택을 누리는 자들은 행복했다. 몇 사람들에게 면죄부 판매의 책임을 부여했다.
루터는 테젤 일행이 교회 앞마당에서 극적으로 심리전을 펼치면서 연옥에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의 효력이 있음을 설득하는 호객행위를 잘 알고 있었다. 52조에서 증서남용의 비극을 질타한다. "면죄부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이다."
 
6) 면죄설교의 문제점과 복음 설교의 비교(53-80조)
루터는 기독교 신자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죄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은총과 만족이라고 이해하였다.
1513년에서 15년까지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편을 강의했다. 루터는 계속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아퀴나스의 스콜라주의와 오캄의 유명론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1516년부터 그 다음해 까지는 갈라디아서를 강의했었고, 10월경에 루터는 면죄부에 반대한다는 설교를 한 바 있었다.
루터는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고의 설교를 했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어떤 성도가 술 취한 죄를 회개한다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면죄부를 구입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이런 방식은 십자군 원정대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고해성사를 통해서 해결을 받는 가장 흔한 죄 사함의 사례로 나타났었다.
사면권을 옹호하는 자들은 성경을 선포하지 않고 있으며, 더 많은 시간을 면죄부 판매의 정당성에 부여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이들의 설교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요, 가장 소중한 보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7) 면죄부 남용에 따른 질문들과 시행에 대한 논박들(81-91조)
중세 말기에 가장 왜곡된 일은 돈으로 면죄부를 구매하여, 하나님께 선행이 부족하거나, 죄를 회개하지 못하였거나 고해성사를 다하지 못하여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돕도록 하였다. 면죄부 판매자들은 죄를 회개하라고 자극을 하거나, 어찌하든지 면죄부를 많이 사도록 죄책감을 자극했다. 그러면 죄 값을 치르는 면죄부를 많이 판매하게 되었다. 면죄부는 명복을 빌기 위한 연보를 드리는 것에 해당한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서 혹은 살아있는 자의 미사를 위해서 돈을 내는 것은 우울한 문제였다.
루터는 어찌하여 교황은 돈을 받아야만 사면권을 행하느냐고 반박한다. 82조는 루터의 파문에 빌미를 제공한 논제이다. 직접적으로 교황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전혀 공경하지도 않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무죄건 면죄부만 구입하면 죄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교황권의 행사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84조).
 
8) 십자가의 신학과 그리스도교인의 생활에 관한 교훈들(92-95조)
끝부분에 나오는 조항들은 루터의 초기 개혁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학이 반영되어있다. 루터는 영광의 신학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따라가는 길이다.
92조부터는 마치 설교와 같고, 절규와 같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평안하라 평안하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평안이 없는 선지자들은 다 떠나라고 말씀하였다"(겔 13:10, 16; 렘 6:14, 8, 11; 살전5: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93조).
마지막 두 조항은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훈련과 고난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4조) 이같이 하여 역시 면죄부를 구입한 자들에게 평안의 위안으로 만족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95조)"(행 14:22).
소속 종단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루터는 95개 조항을 브란덴부르크의 대주교 알베르트에게 발송했다. 면죄부를 판매하는 일은 해악을 끼치는 일이므로 중단하도록 청원을 하였다. 알베르트 대주교는 답변을 보내지 않았고, 마인츠 대학교 신학교수들에게 검토하도록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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