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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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사 - Full Text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162회 작성일 2018-09-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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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사(長老敎會史)
 
【 1 】 장로회주의의 기원
1. 성서에 나타난 장로의 어의(語意)
1) 구약에 나타난 어의
장로라는 말이 구약에서 1백회 이상 기록(특히 오경에서 46회)
종합적인 어의는 다음과 같다.
  가돌 : 손위, 형(elder)
  자켄 : 나이든 장로(長老), 장자(長子), 수염 있는(old aged) - 가장 많이 사용됨.
2) 신약에 나타난 어의
신약에서는 장로(πρεσβύτερος)라는 말이 60회 이상 기록.
종합적인 어의는 다음과 같다.
 연령 : 손위, 조상(눅 15:25, 행 2:17, 마 15:2, 막 7:3, 5, 히 11:2)
 공직에 있는 자들(마 16:21, 26:47,57,27:3,12, 막 8:31, 11:27, 행 4:5,8,23, 딤전 5:17)
 영광 받을 자들(계 4:4, 10, 5:5,6,8,,11,14, 7:11,13, 11:16, 14:3, 19:4)
2. 장로직의 기원
1) 모세시대부터 왕국시대까지
백성의 대표로서의 장로 : 이스라엘의 장로들(the elders of Israel)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그들 중의 권위를 가진 무리들로 알려졌다./이를 알렉산드리아 번역자들은 히브리어의 ‘에트 지케네 이스라엘’을 헬라어로는 ‘헤 게루시아 이스라엘(ἡ γερουσία Ἰσραὴλ / Presbytery of Israel)'로 번역했고, 거듭 사용했다.(출 3:16-18, 4:29, 12:21)
장로들의 직무 : 그들의 경험과 은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스리거나 감독하는 것이었다.
장로제도의 존속 : 모세시대로부터 이스라엘에는 언제나 장로가 존재했다. 모든 마을은 그 지역의 장로들로 구성된 자그마한 단체를 갖고 있었다. 이것이 회당(Synagogue)의 모체였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왕국이 둘로 나누어졌을 때 다른 모든 기구는 해체가 되었지만 장로직의 단체는 존속하였다. 그리고 포로생활 시대에도 소멸되지 않았다(겔 14:1-6, 20:1-5,27).
대의제도로서의 장로 :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장로들을 통하여 발언했다. 장로들을 통하여 발언된 것은 국민들에 의하여 발언된 것으로 기술(記術)되었다. 이들의 의사(議事)의 장소를 ‘회중’ (Congregation)이라 불렀다(민 35:12,24, 출 4:29, 12:3, 수 24:1, 삼상 8:4). - 특히 민수기11장에서 이미 “백성의 장로”가 된 자들 중에서 70인의 장로를 따로 임명함으로서 그들 사회에서 대의제도의 조직성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구별된 장로들은 일반적인 장로직에서 구별되어 보다 상임적인 행정력을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산헤드린의 근거가 됨). 
장로들의 첫 총회(General Assembly)는 모세에 의하여 애굽에서 소집되었다(출 4:29).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이 총회에서 고별 연설을 한다.
장로의 직능은 성막에서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 성전에서의 봉사는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맡겨져 있었다.
장로는 언제나 대의적(代議的)인 멤버로서 민족과 국가에 봉사했다.
2) 유대인 회당과 장로제도
(1) 회당의 기원과 특성
사도시대에 회당은 이미 예부터 내려오는 구습의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회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그 글을 읽었다.”(행 15:21)는 말을 했다. “예로부터”는 어느 시대를 말하는 것일까?
포로 이전시대에는 회당에 대한 흔적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느헤미야 8:1에서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라는 말에서 회당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절에서 공중예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열광적으로 예배에 이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스라에 의하여 성경이 봉독되고 또 해석됨으로 모든 백성이 “아멘”으로 응답하며 오늘의 예배형식을 띤 것을 볼 수 있다(느 8:1-12,18, 9:2-5). ⇨ 이때부터 회당이 시작된 것으로 봄
에스라와 느헤미야 치하에서 예루살렘에서 드디어 종교 집회로 시작되었다. 이는 회당보급이 빠르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모임은 예배와 교훈을 위한 것이며 장로들과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포로 때는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었다(겔 8:1, 14:1, 20:1-4,27-31).
이런 운동은 팔레스타인보다 다른 외지로 더 적합하게 번져나갔다. 그리스도인들이 생기기 오래 전부터 팔레스타인 마을에는 회당이 있었다.(전설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만 480여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유대인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중집회”였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시고 신뢰하신” 언약의 무리들의 에클레시아(ecclesia/ 신약에서의 교회)이며, 또는 카할(Kahal/ 구약에서의 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2) 회당의 예배와 장로직
회당에서의 예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아래 있었던 대중종교의 회합이었다. 거기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도 하고 찬양을 했다.
회당에서의 장로직과 장로회의 일
회당의 모든 권위는 장로들로 구성된 작은 조직체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바벨론 포로 때에는 직접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고, 그 외의 지역에서는 도성 가까이에 있는 산헤드린과 예루살렘의 대(大)산헤드린에 의하여 임명되기도 했다.
장로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요청되었을 때 그들은 공적으로 안수를 받았지만 기름부음 받지는 않았다. “한 현자가 율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졌을 때 회중에 의하여 그들의 우두머리로 또는 목사(pastor)로 부름을 받았다. 그가 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안수를 받았다. 이 때 세 장로가 집례에 요청되었다.”
예외로 숫자가 적은 회당에서는 세 장로를 세우지 않았고 단독으로 회당에서 가르치는 일과 회의를 사회했다. 이들은 단독으로는 권위 있는 일을 결정할 수 없었으며 교의적인 문제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웃에 있는 동료 장로와 함께 협의하였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성막에서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성전에서의 봉사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다.
(3) 장로직의 우두머리(the president of the eldership)
각 회당에 있는 장로들의 의회는 한 사람의 우두머리나 의장을 임명하였다. 이를 ‘회당장’ 또는 ‘의장’이라고 불렀다.
회당의 우두머리의 지위와 직능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 회당장은 항상 의회원과 같이 그러나 그들과 구별된 사람으로서 예전과 직무를 수행했다. 회당장은 의회의 일종의 심복이었다. 즉 의회는 그들 마음대로 그의 공직을 좌우했다.
회당장에게는 위엄과 명예를 가졌고 사면권도 주어졌다.
회당장은 오늘의 교회의 당회장과 같았다. 그는 당회장으로서 당회를 사회했다.
(4) 회당의 장로들의 기능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장로들의 의무는 의장 밑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이었다. / 이들은 모두 율법에 대한 지식과 전통과 해석에 대하여 특별히 훈련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마태복음 23:2-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으로 유대인 회당의 장로직을 가진 자들을 지적하신 것이다.
장로들은 시정(市政)과 영적문제를 다루었으며, 논쟁의 조정자 역할도 했다.
(5) 회당과 회당과의 관계
한 도시 내에 여러 개의 회당이 있을 때에는 다른 회당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어떤 회당에서는 다른 회당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두었다고 한다. 어떤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모든 회당에 있는 장로들을 함께 모아 장로회(presbytery)를 이루어 권위 있는 해결이나 해답을 내리며 모든 회중을 돌보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있었던 유대인들은 한 사람의 지도자 밑에서 일사분란한 모임을 가졌다.
어떤 규모의 노회이든 한 회중 또는 대 여섯 회중을 감독하는데 보다 효과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실행위원회를 두었다. 
이는 모세 때부터 70인 장로로 실행위원회가 구성되어 중앙위원회를 이루었으며 이들이 모세와 함께 무거운 짐을 졌다. 이들 중앙위원회는 회중들에 의해 선출되기도 했고 장로들의 총회에서 선출되기도 했다.
(6) 산헤드린(Sanhedrin)
산헤드린의 역사적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이 말은 헬라어의 수네드리온(συνέδριον)에서 왔는데 원래는 아람어가 기원이다.
이 말이 의회(議會) 또는 ‘재판법정’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고등법원, 대법원을 지칭하게 되었고 이를 ‘대 산헤드린’이라고도 했다. ➠ 지방에 있는 소 산헤드린의 정족수는 23명,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71명.
이 이름이 예전에는 게루시아(γερουσία)로 통항 ‘장로들’ 또는 ‘장로들의 모임’, ‘백성들의 장로들’로도 통용되었다. 이 산헤드린의 성서적 기원은 신명기 17:8-11, 민수기 11:16에 둔다. 탈무드는 이 기원을 모세에 두며 백성을 재판하는 일을 한 것으로 명시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구성원을 보면 제사장, 서기관, 백성들의 장로들로서 이들은 대제사장 하에 있었다. 이를 ‘노회’((the Presbytery)라 부르기도 했으며, ‘백성들 또는 이스라엘의 의회’라고도 했고, ‘산헤드린’이라고도 했다.
산헤드린에는 세 가지의 요소가 섞여 있었는데, 첫째는 전직 대제사장과 현직 대제사장 둘째는 서기관 또는 율법학자들, 셋째는 장로들이었는데 장로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회당에서 나온 대표가 포함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총 회원수는 모세가 70인의 장로를 회집하였듯이 71인으로 했다.
대 산헤드린 아래 23인으로 구성된 보조적 법정이 예루살렘에 둘 있었는데 유대인 가구수가 120 이상이면 어느 마을에서도 산헤드린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 지방 산헤드린의 정족수는 7인이었다.
산헤드린의 주 업무는 백성들의 재판이었다. 각 성의 23인으로 구성된 소  산헤드린에서 선고한 것을 예루살렘 대 산헤드린에서 대법원의 역할을 했다.
(7) 회당(會堂)과 성전(聖殿)과의 관계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는 분명한 구별이 없다. 그들은 종교가 국가이며 국가가 곧 종교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다른 종파가 없다. 즉 그들에게는 불신자(不信者)가 없다. 유대민족은 종교적으로 묶어진 민족이며 국가이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백성이다.
이들은 애굽을 떠날 때부터 모세에게 계시된 성막(聖幕) 또는 회막에 하나님을 모시다가 다윗이 성전으로 모시려 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의 지상적 임재의 상징이 되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대 명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켰고, 매일 아침과 저녁, 안식일과 월삭, 기타 소 명절 때마다 제사장들에 의하여 희생 제물로 예배했다.
회당에서도 예배는 있었으나 이는 성전 예배의 대용이었고, 무엇보다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 장소였다. 그래서 회당을 ‘책의 집’ 혹은 ‘공부의 집’으로 불렀다.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에만 세워져 있지만 회당은 마을마다 있었다.
【 2 】 장로교회(長老敎會)의 본질
          (The Original Nature of the Presbyterian Church)
1. 서론
교회란 무엇인가? 장로교회란 무슨 교회를 말하는가?
앞장의 기원에서 보았듯이 교회는 성전이 아니며 회당도 아니다. 성전과 회당 시대는 지나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과 회당의 갱신이나 연장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성취는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는 진리이지 유대교의 연장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유대교화 되어가는 로마가톨릭에서 개혁한지 500여년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개혁교회, 장로교회는 스스로 율법화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성전화가 되었고 교인들은 회당화가 되어 있다.
2.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란?
교회의 어원이 에클레시아이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의 뜻은 ‘만남’(meeting), ‘회합’(an assembly), ‘회중’(congregation) 등으로 헬라 사회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말이었다.
성경적인 의미는 독자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기독교인들의 사회’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 사용하셨다. ➠ 마태복음 16:18(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8: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예수님께서 뜻하신 교회
교회는 성전(temple)도 회당(Synagogue)도 아니지만 교회의 근본개념은 이들에 뿌리를 둔다.
유대주의(Judaism)와 기독교는 서로 다르지만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 교회는 새 이스라엘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은 곧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시며 그들 역사에 나타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국 ‘남은 자’만이 구원될 것이다.
이 남은 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제자들로 형성되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왕국은 다윗 왕국의 재현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교회적인 의미였다.
교회는 남은 자를 통하여 새 이스라엘의 핵심을 이룬다. 
(2)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윤리적인 가르침은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요청하신 것이다.
➀메시아적 왕국을 받아들이기 위해 회개의 운동을 강조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미래적인 것이므로 위기 앞에 살아야 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를 왕국의 시대로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둘을 모두 종합하는 뜻을 담고 있다.
➁예수님의 가르침은 사실상 이해되기가 어렵다. 어떻게 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가르침은 절대적인 선과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왕국의 선언이다. 이런 거의 불가능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는 것이다(막 10:27).
이 약속을 보증하신 것이 복음서이다.
(3) 교회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메시아로 오신 것이다. 메시아는 마지막 날에 한 공동체를 모은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복음ㅇ서에 나타난 매시아의 개념은 종말적인 왕국의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➀이 왕국은 구속(救贖)의 메시지로 선포되었다. 
➁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 자신이 왕으로 다스리신다.
➂성경에 나타난 종말론은 교회학적(ecclesiology)이다. ➠ 예수님은 그의 백섣들을 새 이스라엘의 핵심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시는 것이다.
(4) 공동체 구성의 기본 메시지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선언하셨다.
➀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 구약성경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들.
➁복음(The Gospel) ➠ 하나님의 왕국의 절정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이며 예언의 성취를 말한다.
➂하늘의 비밀(The Mystery) ➠복음의 다른 의미는 ‘하늘의 비밀’이다(막 4:11-12). 
(5) 새 공동체의 사명(The Mission of the New Community)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셔서 내 보내셨다. 이들을 사도(άπόστολος)라고 부른다.
새 공동체의 사명의 개념은 예수께서 보이신 공동체 성격적 표상이다.
❈예수께서 열 두 사람을 불러 둘씩 내보내기(to send out) 시작했다. ➠ 막 6:7 -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막 3:14-15 -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셨다.
(6)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어떤 이상국(Utopia)이거나 인간의 노력에 의한 지상에서의 어떤 설립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첫째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며, 둘째 하나님의 다스림에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며, 셋째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어떤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집합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마음속에 그리고 계셨다고 본다. 그러면서 작은 무리들을 형성하셨고 그들을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영역에서 살게 하셨다. 
그의 추종자들은 새로운 삶을 살기를 위탁받았고 이를 위하여 능력을 받기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옛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을 거절하고 오직 남은 자들만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거절된 메시지는 이방에게 넘어가서 거기에 머물렀다. 제자들의 사명은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자들이 새로운 세대에 나타났으며 이렇게 모인 공동체가 에클레시아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교회에 주시는 권한
로마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인간들의 권세가 그리스도의 권세를 대행(代行)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잔혹하게 핍박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것도 아니며 없어진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세는 어느 누구에게 양도하거나 대리자로 삼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계시며 친히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의 왕권이나 속죄권이나 심판권은 결코 이양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이다.
(1) 교회는 가르치는 권리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께서 그의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진리란 한 번 죽으심으로 만민이 구원에 이른 사실이다. 교회는 이런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2)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권세를 받았다.
교회의 예배는 어떤 희생제나 제물을 드리는 예배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 제물로 또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서 인류가 받은 은혜의 사실을 선포하는 것과 이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예배이다.
(3) 교회는 성도들을 훈련하는 권리를 가졌다.
무지하거나 무시하며 범법에 이른 자들을 교회하고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부당한 선고를 받지 않게 하는 일과 운영, 교육, 선교의 일을 훈련받는 일을 위임 받았다.
(4) 교회는 양심의 자유를 부여받았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루시고 사신 사람들은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전 7:22-23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언제나 그의 백성을 자유롭게 인도하신다.
(5) 교회는 영적 선물을 함께 나누는 독자성을 지닌 곳이다.
오순절 후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했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주가 구세주이심과 장차 오실 것을 확신했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가져오게 했으며 보다 깊고 높은 차원의 인격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은 곧 성령의 능력이었다.
성령은 결코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언제나 나누어 함께 속하는 공동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들은 교제(κοινωνία)를 가졌다.
교제는 곧 헌신적인 봉사였고, 공동생활이었고, 성령의 선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 사도의 형제애와 교훈을 나누는 것이며, 서로 떡을 함께 떼는 것이었다.
교회는 성령은 받은, 성령을 공동적으로 나누는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권세와는 타협할 수 없는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3) 교회의 사명
교회의 주된 사명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중보(中保)기도에서 나타내신 그대로이다.➠ 요 17:18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 교회는 교회의 본성을 증언한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 본성을 위하여 세워진 교회는 그 사명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교회의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설교, 예배, 기도, 세례와 성찬을 행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수행하기 위한 기둥이요 터전으로서 존재한다. 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됨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이런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다.
(2) 교회는 교인들의 상호 덕성을 함양한다.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공동체를 이루어 새로운 의미에서의 교제를 하는 곳이 교회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는 다른 지체들을 돌보며 서로 사랑하고 착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 히 10:24
교회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덕성을 함양하는 공동체로서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제2의 목적이다. ➠고전 12:21-27, 엡 4:7-16
(3)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신자들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적 제사이다. ➠ 롬 12;1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할 것이다. ➠ 요 4:24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지혜, 거룩함과 사랑, 용서와 자비를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를 말하며, 함께 그의 영광의 분배를 얻는데 동참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하는 심정으로 임해야 하며 예배하는 자들로서 봉사해야 한다.
(4) 교회는 온 민족과 인류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야 한다.
이를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고 한다. ➠ 마 28:19, 행 1:8
교회는 어떤 지역위주가 아니라 온 민족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 서도록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과감하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 롬 10:14
【 3 】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조직과 성장
          (The Organization and Growth of the Presbyterian Church)
1. 교회의 조직
교회 조직의 첫 출발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으로도 볼 수 있다. - 유대교의 성전이나 회당도 교회 조직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교회의 조직을 명하신 때로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 설립을 위임하셨다고 한다.
교회의 첫 모임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날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가진 모임이다. 이 때 모인 수를 120명이라고 하며 여러 지역-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등-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사도행전에서는 주님의 부활 후 40일 동안 주님과 제자들이 대면했으며, 제자들은 오실 성령의 약속을 기다렸다.
이렇게 출발한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오순절에 설교의 결과로 신도수가 3천명이나 늘었다(행 2:41)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베드로의 설교로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5천 명이나 되었다(행 4;4).
  사도들로 인하여 큰 은혜가 임하고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믿는 자가 더욱 많았다(행 4:31-33, 5:12-13).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쉬지 않고 증언하며 가르쳤으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일을 분담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다(행 5:42, 6:1-6).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효가 늘어가고 수많은 제사장들도 믿음을 받아들였다(행 6:7).
  율법에 골몰하던 유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았다(행 21:20).
➠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성장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로 퍼져 나갔다.
2. 성공적 단계
1) 맛디아를 선출
사도교회(Apostolic Church)의 첫 번째 직분 선출 ➠ 행 1:23-26
 12명의 완전한 사도모임은 배반자 유다로 인하여 깨뜨려 졌고, 베드로가 동역자의 보선을 제안했다.
 첫 번째 직분 선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지시(제비 뽑기)였다.
2) 7인의 임명과 교회의 직분
직분의 필요성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헬라어를 하는 유대인들과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생긴 불화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 ➠ 왜냐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기 때문.
 사도들이 이 문제를 수습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이 구제의 일을 전담할 직분자를 선출할 필요성을 느낌. - 일곱 사람의 이름으로 보아 대부분이 헬라파 사람들임
직분자의 선출
 12사도가 제자들을 모아서 직분자의 필요성을 피력함 -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을 제쳐놓고 구제를 일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설명.
 제자들 중에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구제의 일을 맡기기로 함.
 모든 제자들이 그 일을 옳게 여겨 일곱 사람을 선정함 -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 니가노르, 디모, 바메나, 니골라
뽑힌 일곱 사람을 저스틴(Justin Martyr) 때에는 집사로 부름- 그러나 집사로 부를 근거가 부족함
이레니우스(Irenaeus) 이후부터 집사직의 근원이 제대로 교정 됨 - 이레니우스는 폴리캅(Polycarp)의 제자이며,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임. 폴리캅은 7인이 임명될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에 한 사람이었음. 폴리캅이 빌립보 교회에서 쓴 편지(116년)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서 1:1에 언급한 ‘감도과 집사’의 직분이 이미 잘 알려진 교회의 직분 중의 하나였다.
3) 사도들(Apostles)과 장로들(Presbyters)과의 관계
장로교회의 정체(政體)는 사도들과 장로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로서 사도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렇게 가르치셨으며, 자신을 낮추라고 명령하셨다. ➠ 요 13:12-15, 마 23:8-12
사도들은 섬김의 직분으로서의 교회 직분을 함께 맡을 것을 밝혔다. 사도들이 보여준 자세는 ‘함께 종 된 자(fellow-servant, 골 1:7)’ ‘같은 장로로서(fellow-elder, 벧전 5:1)’ ‘동역자(fellow-worker, 빌2:25, 몬 24)’ ‘전우(fellow-soldier 빌 2:25)’ 등이며, 이것은 장로교회 체제의 근본이다.
사도들은 장로들에게 동등한 종으로서의 사명을 내세웠다. 비록 직책은 달랐고 모든 논의를 주도했지만 사도들이 자신을 고위직이라든지 특권을 내세운 적이 없었고 모든 일을 장로와 함께 논의했다.
때로는 장로들이 사도의 대리자로서 일을 수행했지만 영속적으로 사도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 이유는 이방지역에서 단순한 관리직을 맡은 장로들이 교리적인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많은 한계점을 느꼈고, 사도들이 하던 목회를 대리할 수가 없었다.
 사도들은 스스로 사도적인 사람들을 육성했다. - 바울은 마가(Makr)와 디모데(Timothy), 디도(Titus) 등을, 요한은 폴리캅(Polycarp) 등을, 그 뒤를 이은 초대교부들 파피아스(Papias), 이레니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ian), 클레멘스(Clemens) 등.
 사도들은 이들에게 상임적으로 사도의 직무를 이행하는 목자(牧者)로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고 성찬을 베풀고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훈계하고 권징하고 교회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일을 맡겼다.
 이 일은 후에 목사라는 직분에게 넘겨졌다.
3. 장로교회의 성장
신약성경에 언급된 교회를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 혹은 사도교회(Apostolic Church)라고도 한다.
 신약교회를 시기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제1기와 제2기로 부른다. - 전기교회는 12사도 중심의 교회이며 이를 원시교회(Primitive Church)라고 하며, 후기교회는 사도 바울이 교회조직의 상당한 주도권을 잡은 때이며 이를 초대교회(early Church)라고도 한다.
1)바울의 선교와 장로교회 조직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이미 교회가 산재해 있었다. - 이때까지를 12사도들의 활동이라고 본다.
바울전도단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와 리카오니아의 더베까지 가면서 교회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행 14:21-23
바울이 교회의 조직이 필요한 곳에서는 교회의 조직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베드로서 등에서도 장로들은 공직자로 나타났으며, 후에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시디아 등의교회에서 지도자로 나타났다.
2) 교회에서 장로가 처음으로 공직에 임하다
사도행전 11장까지는 공직에 장로가 등장하지 않다가 11장 마지막에 장로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구제금을 받는 일이 등장한다(행 11:30). 이때부터 장로들이 사도들의 이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3) 장로들의 임명방식
장로들이 임명되기 시작한 때는 제2기이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직분자로 임명된 7인을 장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집사로 보는 사람도 있다.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회중에서 선출되어 회중에 봉사하며 경험을 쌓은 후 공직에 임하였다.
 이고니아와 비시디아 교회에서의 장로임명은 바울과 바나바의 두 번째 선교여행 때였다.
 개 교회에서 선택된 장로는 온 교우들에게 신뢰를 받는 자였다.
 장로들은 신령한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4)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과 자격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이 일반화 된 것은 사도행전 후반기 때이다.
 (1) 장로직의 영적 공직성
 목회서신에서 장로에 대한 공직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언급된 것이다. 디도서에는 장로들이 모두 이방지역에서 선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유대인 회당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장로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 이들에게 “양떼를 먹이라.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해서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 며 장로의 직능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디모데전서 3:1-7은 장로가 감독(Bishop)으로 변천되었을 때 임.)
 디모데전서는 디도서와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지만 거짓교리에 대한 언급으로 교회생활이 한 단계 앞서 있음을 보여주며,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조직이 더욱 진보되었음을 보여준다. - 장로는 영적인 공직으로 강조가 됨 ➠ 딤전 3:1-7
(2) 이방 기독교회의 장로직에는 다스리는 기능과 감독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었다.
 제2기 사도교회의 장로직의 본질은 유대인 회당체제와 같았다. - 회당의 의식과 훈련의 책임을 맡았으며 동시에 범법자를 벌하고 권고와 추방하는 일까지 겸하였다.➠ 요 9:22, 12:42, 16:2).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성경에 개한 지식과 훈련도 쌓고 말씀과 가르치는 일도 했다(딤전 5:17).
(3) 장로는 순수 교회적 직분으로서가 아니라 순수 교리적 직분인 사도들이 중심이 된 사도교회에 보조자요 봉사자였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백성들의 권위 있는 대언자이며 대표자였고 회당에서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주도했지만 유대 종교의 순수 종교직이 아니었다. - 성전 중심의 유대종교이 순전한 종교직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었다.
 신약교회 시대가 되면서 사도들이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조직하고 성장시키는데 우선적인 일은 교회의 관리나 운영이 아니라 교리적인 면이었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도들이 가졌다. 이어서 사도적인 사람들-바나바, 누가, 실라, 디모데, 디도 등 - 에게 권위가 주어졌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들의 일손이 모자랐을 때 지역적으로 시간적으로 사도들의 불가능한 자리에 장로들을 세워 대행했다. -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수고하는 일(딤전 5:17)을 겸하다가 사도시대 말기에 교회직분에 목사직이 나타난다(엡 4:11).
(4) 사도교회는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장로들과 함께 교회를 먹이고 운영했다.
 사도들은 개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 사도들이 직접 임명하거나 사도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사도교회의 장로들은 새로 개종한 모든 양떼들을 감독하였고 목자의 역할을 했으며 그들을 인도하고 돌보고 관리했다.➠벧전 4:10-11, 롬 2:6-8
 사도교회 말기에 교회가 점점 확장됨에 따라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도전할 때에 장로들이 앞장서서 교회를 보호하며 장로들에게 적그리스도와 이단에 대하여 가르치도록 하였다(딛 1:9)
(5) 두 종류의 장로.
 사도들과 사도적 사람들의 한정된 숫자로는 성장하는 교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장로들에게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 딤전 5:17
 장로들이 사도들의 일을 분담하여 가르치며 목회를 하다가 목사라는 직분에 넘겨진 것이 장로교회이다. 디모데나 디도를 사도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을 사도 직분을 계승한 목사라고 부른다. - 감독으로 넘겨준 것을 가톨릭교회라고 한다.
4. 목사직(牧師職)과 장로교회(長老敎會)
장로교회란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에 입각한 교회를 말한다. - 교회 정치체제가 목사와 장로가 민주적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 / 개혁교회라는 것은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타락된 본질을 갱신하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또 다른 성전체제로 환원 되어 있다시피 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인간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구로서 교회를 운영해 나갈 것을 주장했다. -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여 스스로 군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장로교회는 사도의 직무의 계승을 교황에 두지 않고 목사에게 두었다. - 목사는 제사장이나 왕처럼 세습적이 아니며 누구든지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법적으로 과정을 이수한 후에 임직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1) 사도직과 목사직의 관계
사도라는 말은 ‘아포스톨로스(άπόστολοσ)’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이며 ‘내 보내심을 받은 자’ ‘사명을 받아 파송 받은 자’라는 뜻이다. - 이 말은 히브리어 ‘샤리아(Shaliah)’에서 파생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대표자 노릇을 한다.’는 의미이다. - 히브리서 3:1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언급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대권을 받아 파송을 받았다는 뜻이다.
사도 당시의 사도의 개념은 요한의 세례이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그로부터 사명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그리스도와 모든 문제를 우선적으로 관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 사도 바울의 사도관은 성령의 은사로 이적과 기사와 권능으로 교회 설립자(조직자)의 역할을 하며 구원의 산 증거로, 교회의 주된 목회자로, 복음의 전파자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였다.
 (1)사도직에 대한 두 개념
 바울 서신에서의 사도관은 다분히 하나님이 부여하신 은사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조건이나 형식이나 자격 등에서 어떤 제한도 없음을 강조한다. - 하나님은 사도를 선교사로서 설교를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라고 했다. ➠ 고전 12:28, 갈 1:1, 롬 1:5, 고전 4:18-21 고후 10:8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는 다른 개념이 나타나 있다. 사도직은 예수께서 계실 때에 부르신 12명의 제자들에게만 사도직을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 눅 6:13-16
 사도 바울이 말하는 카리스마틱한 은사로서의 사도직은 12제자를 넘어서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바울은 사도라기보다는 선지자로 보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사도직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능의 은사, 또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제정하신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사도 바울은 사도를 그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지만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사도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 - 바울은 자기 이전의 사도들을 인정했다. 그들이 최초의 선교사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관리자이며 지도자임을 인정했고, 그들로부터 안디옥 교회와 바울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 이로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의 개념을 받아 들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여해 주신 권위로 인정했다.
(2)사도계승론
 사도계승이란 사도 당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에 감독의 성직이 사도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도들이 죽자 다음 세대들을 위한 사도들의 계속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승천의 목격자로서 그의 구원사업의 해석을 맡은 자들이 죽어갔다. 사도들의 뒤를 이을 자가 필요했다. 
  -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 :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감독이 계승자라고 했다. 이러한 이론이 서방교회에서 3세기경에 터툴리안과 씨프리안에 의하여 설정되었다. 즉 사도들이 감독을 그들의 후계자로 임명했고 감독은 다른 감독을 안수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독직 안에 사도직이 존립한다는 것이며 여기서만 진리와 은총이 보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께서 교회를 베드로위에 세우시고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주셨다고 하면서 베드로만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모든 교회의 대권을 주신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의 첫 번째 계승자요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모든 계승이 계승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순종하는 것은 곧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교황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어떤 특정 인간이 아니다. 다만 베드로가 고백한 것과 같은 신앙이다. 
  - 장로교회의 입장 : 장로교회는 사도직의 계승이 어떤 고위 성직자로 연결된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일축한다. 사도들도 교회를 다스리는 자라기보다는 교회의 기초였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행 2:4, 4:31). 배드로도 그 이상의 독점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도직 본래에 불과하다. 장로교회에서는 장로회주의로서의 사도직의 영속적인 계승을 주장한다. 사도들이 물려준 위대한 업들은 무엇인가?
  ※사도들의 세 가지 전통적 기여
    ⁍사도들이 남겨준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전통적 기여를 ‘베스티기아 트리니타스(Vestigia Trinitas)’라 한다. 첫째 사도신경, 둘째 사도정경, 셋째 사도적 목사직이라 한다.
    ⁍사도신경(Apostles Creed) -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4세기 말에 사도들이 각각 공헌한 논술들이 공동으로 종합된 하나의 전통적 신앙의 상징이다. 사도 바울은 구전된 내용을 전다하고 있음을 고린도전서 15:3-4절에서 밝힌다. 이 구절은 사도들의 일치된 복음의 요약이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메시지였다. 이는 이그나시우스(Ignatis)가 트라얀(Trajan, 98-117) 시대에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 고백은 주로 세례 때에 개인적으로 고백했다. 이런 고백에 대한 남용과 방임 그리고 첨가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과 같은 사도신경으로 고정시킨 것이 650년 경이다. -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요약이었다.
    ⁍사도정경(The Apostolic cannon of Bible) -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正經)은 사도들의 절대적 영향으로 이뤄진 것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사도들이 썼거나 사도들에게 위탁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성경은 ‘사도성경(使徒聖經)’이라 할 수 있다. 
    ⁍사도적 목사직(Apostolic Ministry) - 사도들은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이 사도들이 한 일을 목회(牧會)라고 한다. 그들의 직무를 요약하면 ➀주님의 왕의 직무를 수행 ➁주님의 예언자적 직무 수행 ➂주님의 제사장적 직무 수행 등 세 가지의 직무를 목사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직무는 사도들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즉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이 간접적으로 불러 보낸 자들이 목사(牧師)라는 이름으로 설정된 것이다.
2) 목사직의 정립
목사직을 정립하려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소명(召命, calling)과 교회의 공무원(office bearer)으로서의 소명도 이야기해야 한다. 즉 목사직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가장 근본적이지만 또한 반드시 교회 공무원으로서의 부르심이 합당하게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업무를 공적으로 수임하는 것이다. -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사도계승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도나 목사는 신(神)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즉 하나님의 대권(大權)을 위임받은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는 봉사자이다. 
※ J. Calvin은 교회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진정한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안수 받는 자가 누구며, 어떤 절차로, 누구에 의하여, 어떤 의식으로 하는가? 이는 외적으로 교회 의식의 공적인 소명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며 양심적인 소명을 말한다.”
  ➠ 칼빈의 교회관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아래의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 목사에 대한 어의
   목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그 어원은 다음과 같다.
   ➀διάκονος(남,명 시중드는 사람, minister) /διάκονία(여,명 시중, 도움, service) ➁δουλος(종, servant)/ δουλεία(종살이, bondage) ➂ύπηρέτης(하속, 일군, servant, helper) /ύπηρετία ➃λάτρις /λάτρεία(하나님의 사역, 신적봉사, divine service) ➄λειτουργός(공적인 일군, 경배하는 자, minister) /λειτουργία(공적인 일, 사역, 봉사, ministry) ➅θεράπων(시중, 종, servant) / θεράπεία(수행원, 하인들, healing)
   이 중에서 후페레디아와 라트리스는 70인 역의 욥기에서 왔고, 나머지는 모두 신약에서 왔다. 디아코노스는 마태와 마가와 요한 그리고 바울서신에 나타나 있으며, 복음서에서는 주로 하인(servant)이라는 뜻으로, 서신에서는 목사(Minister)로 쓰였다(단, 빌 1:1, 딤전 3:8-12절에서는 집사로) 디아코니아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살후 제외)에서는 목사직(Ministry)으로(고린도후서 3:7,8,9, 9:13절에서는 목회의 뜻으로, 고후 8:9, 9:1절에서는 구호사업(Ministering)으로, 사도행전 11:29절에서는 도움(Relief)으로, 누가복음 10:40절에는 접대(Serving)로, 계시록 2:19절에서는 봉사(Service)등으로) 나타남.
   목사(Pastor)는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ήν)인데 영어로 Shepherd로 번역한다. 이 말은 ‘목자(牧者)’로 번역되지만 목사와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주 인용되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선한 목자” 히브리서에서는 “위대한 목자”로, 베드로전서 2:25절에서는 “목자와 감독”으로, 베드로전서 5:4절에서는 “목자장”으로 나타나 있다.
  (2) 목사는 제사장 직인가?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개신교사 그러하듯이 장로교회에서도 만인제사설에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것을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대속제물(代贖祭物)이 되셔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은 곧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사실을 선포하는 직이다. 목사직은 제사장으로서 어떤 개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신자들을 막을 권한이 없으며, 그 어떤 개인의 인격적인 특권도 제사장이라는 명목으로 가로챌 수 없다.
5. 목사의 안수례(按手禮)
1) 신약에 나타난 안수례
안수에 대한 신약성경의 근거는 네 곳에 나타난다. 사도행전 6:6의 12사도가 7인을 세울 때, 사도행전 13:3의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특별 임무를 부여받을 때 인데 이 안수례는 사도직의 계승이 아니라 선교여행을 위하여 교회가 특별히 엄숙한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행 14;26). 디모데전서 4:14과 디모데후서 1:6인데 디모데에게 특별한 사명을 설정할 때 다른 직분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수할 것으로 여겨진다.
➠ 안수례는 목사들만의 성례가 아니었으며, 성직자들에게 주어진 특례였다.
2)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
사도시대에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은 사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에게 행했다. 선출은 자유로웠으며 사도들이 인정하였다. 디도는 여러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딤전 1:5). 사도행전 6장에 언급된 대로 당시나 그 후에도 안수 후보자들이 선출된 것으로 보이며 이런 방법이 통용된 상식으로 보인다.
3) 안수의 외적 표증
예수님께서 교회의 여러 직분을 직접 임명하거나 안수하여 세우지 않았다. 주께서 외적인 표증으로 세우신 것은 세례와 성찬례이다. 손을 머리에 얹고 안수를 하는 것은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축복의 행위, 임직, 하나님께 봉헌으로서 사용되었다(민 27:23, 신 34:9).레위인의 봉헌에도 사용되었다(민 8:10). 주님께서도 손을 얹으시고 병을 고치셨다(막 10:13, 5:23). 사도들도 세례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렇게 했다(행 8:17, 19:6).
6.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특색
(The Form of presbeterial Church-Government)
1) 서언 
중세 로마교회는 교황, 주교, 교구, 감독 등으로 구성된 고위 성직체제로 운영되었지만 장로교회는 ‘장로회적 행정기구로서의 교회정치’를 주장한다.
개혁자들이 중심이 된 개혁교회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비성경적인 교리와 행정체계를 고수하는데 대하여 반기를 들고 성경적인 교리와 교회 행정체계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장로교회는 개체 교회가 자체로 모이는 당회(Kirk-Session)와 그 지역 내에 있는 개체교회가 함께 모이는 노회(Presbytery)와 보다 큰 지역 단위로 모이는 대회(Synod)와 국가적으로 모이는 총회(General Assembly)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간다.
이런 체제는 유대인의 회당에서부터였지만 민주적인 절정은 사도들 당시였다. 사도들 간에는 장(長)이라는 개념의 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사회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단순한 민주주의 그것만의 제도가 아니다. 항상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다스리시는 그 일을 위임받은 자들이 그의 도구로서의 제도이다.
2)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모체는 장로회(Presbytery)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각종 장로교회의 행정 기구들 -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공동의회, 제직회 - 은 구약성경에 분명한 명시가 없다. 이들은 모두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장로회에서 기인된 것이다.
노회(Presbytery)라는 말은 헬라어 프레스부테리온(πρεσβυτέριον)인데 이는 디모데전서 4:14절에 바울이 언급한 것에서 나타난다. 영어번역을 보면 “with the liying on of the hands of the Presbytery(장로회)”로 되어있다.
(1) 예루살렘의 노회
예루살렘 교회는 한 교회 이상의 회중들이 모인 교회로 본다. 이를 노회의 기원으로 본다.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에 의하여 흩어지기 전후 여러 곳에서는 다수의 신자들의 모임으로 언급되어 있다(행 8:1, 1:15, 2:41,46,47, 4:4, 5:14, 6:1,7, 9:31, 12:24, 21:20).
사도행전 2장, 6장의 교리적인 논쟁을 보면 하나 이상의 회중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런 회중은 모두가 한 노회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장로들의 언급으로 보아 회당의 장로들이 대표가 되어 산헤드린을 이룬 것과 같은 성격의 모임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노회적 모임을 인정한 것이다.
(2) 에베소 노회
에베소 교회 역시 한 회중 이상의 모임으로서 노회적 성격을 띤 교회였다. 바울이 3년간이나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 아래 있는 다른 회중에게 복음을 전파했다(행 20:31-32). 
3) 장로회(Presbytery)의 소생(蘇生)
교황(Pope)과 감독(Bishop)에 대해 목사(Minister)와 장로(Elder)가 교황과 감독들로 된 고위 성직체제에 대하여 목하와 장로들로 구성 된 장로회 체제로 교회행정의 체제가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장로교회이다.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이 더 이상 사도교회 또는 신약교회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행정체제를 보다 성서적으로 언급했다. - 루터는 1518년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제로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은 협의회 제도라고 했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에큐메니칼 혐의회(Eccumenical Council)를 제안했으며, 부쳐(Bucer)는 총의회(General Council)를, 멜랑흐톤(Melanchthon)읕 기독인들의 연합(Christian Union)을 칼빈(Calvin)과 함께 주장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의회정치의 개념을 지닌 교회 행정을 주장했다.
장로회 또는 장로교회라는 말을 명백히 하기는 종교개혁 이후이다. - 장로회(Presbytery)라는 단어가 영어로 문자화되기는 1573년 런던의 산디스(Sandys) 감독이 쮜리히에 있는 불링거(Bullinger)에게 쓴 글에서 “모든 교구는 그들의 노회가 있고”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얼마 후 일리(Ely)의 리차드 콕스가 그의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목사와 그의 노회”라고 표현했으며, 그 후 1610년에는 린(Rhine) 대회에서 “회중과 노회”라는 말을 사용했다.
결국 장로회라는 말은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여서 교회 일을 외논해서 진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라는 말은 1644년 죠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가 쓴 리크리미네이션스(Recriminations, 맞고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그 후 장로교회를 논할 때마다 사상적인 것을 다룰 때면 반드시 장로회주의를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신학사상 그리고 행정방침을 통틀어 장로회주의라 말한다.
4)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특색
(1)당회(Kirk - Session)
당회라는 말은 유대인 회당의 당회나 회장의 장(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교회라는 성서적 용어는 헬라어 ‘에크레시아’인데 영어의 church는 이 에크레시아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church는 헬라어 큐리아케(κυριακη)에서 나온 것이다(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데 ‘주께 속하였다, 주께 연관 되었다.’는 말로 교부들이 ‘주님의 집’으로 사용함.).- 이 말이 독일에서는 킬케(Kirche), 스코틀랜드에서는 킬크(Kirk), 영국에서는 Church로 사용됨 - 현재도 스코틀랜드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당회는 장로교회에서의 가장 아래의 행정기구로서 개 교회에 국한한 교회의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관장한다. - 당회는 안수를 받고 취임을 한 목사와 치리권을 가진 장로들로 구성되며, 당회의 의장은 반드시 목사가 된다.
당회가 행하는 세 가지 일은 ①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 ②훈련시키는 일, ③봉헌하는 일이다. 이것을 ‘첫 번째 훈련교서’(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규범)에서 교리는 목사가. 훈련은 장로가, 봉헌은 집사가 하는 것으로 밝혔다.
(2) 노회(Presbytery)
장로교회의 모든 행정체계의 원천은 노회로부터 출발한다. 아래로는 당회가 있고 위로는 총회가 있다.
장로회는 해당지역 내에 있는 모든 목사들과 개 교회에서 치리권을 가진  총대 한 사람의 장로로 구성된다(우리나라에서는 개 교회에서 한 사람이 아닌 교인숫자에 비례하여 총대 수가 결정 됨).
노회는 목사들 중에서 한 사람을 의장으로 선출하며, 목사는 노회에 당연직으로 회원이 되며 장로는 개 교회가 총대로 선출하여 파송한 사람만 총대가 된다.
(3) 대회(Synod)
대회는 노회의 상회기관이다. 이 대회는 프랑스 장로교회에서 처음 유래된 것이며, 노회와 총회 사이의 모임으로서 노회보다는 크고 총회보다는 작으며, 총회까지 가기 전에 모이는 모임이며 노회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는 교회 대법원을 총회에 두지 않고 대회에 둔다.
통상적으로 노회는 5개 교회 이상으로, 대회는 3개 노회 이상으로 하며, 대회는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 
(4) 총회(The General Assembly)
총회는 당회나 노회 그리고 대회의 최 상회 기관으로서 전 교회의 재판소를 대표한다. - 노회나 대회에서 소집된 자료들에 의하여 거기에서 상정되는 청원들을 다루는 최고의 기관으로 최종 결정을 한다.
총회는 모든 교회와 목사들의 견책권과 탄핵권도 가지고 있으며 총회 신학교를 관리하며 교회의 신앙문제에 대한 최고의 해결권을 가지고 있다. - 재판, 중재, 해석, 지시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총회의 총대는 “목사들과 그밖에 적합한 사람들”로 구성되며 그들과 함께 종교적인 문제들을 상의하고 충고한다고 했으며, 목사가 직권으로 총회의 의장이 되나 그가 교회의 적(適)일 때는 총대인 다른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총대선거 -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목사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4명당 1명, 장로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6명당 1명을. 미국 장로교회는 목사 12-24명에서 목사 장로를 동수로 1인씩
총회는 1년에 한 번 모이며, 총회의 임원과 총대의 임기는 1년이다.
7. 장로교회와 관계 깊은 신앙고백과 신조
장로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신조와 신앙고백 그리고 요리문답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使徒信經)은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영감 아래서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 아마도 사도신경의 권위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사도신경은 100년경을 전후하여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형성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 사도신경의 족보는 정확하지 않다. 215년경 ‘히폴리투스의 사도적 전통의 질문의 신조’에 내용이 보존되어 있다. 그후 340년경 안씨라(Ancyra)의 감독 말세루스(Marcellus)가 그의 교구로부터 추방당하여 로마에서 2년 여를 보내면서 로마 감독 줄리우스에게 수교한 그의 신조에 언급됨. 그리고 404년에 아퀼레아의 신부 루피누스가 자신의 주석에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신앙의 척도로 만들어 준 로마 신조와 비교하여 사도신경을 로마교회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형태가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6-7세기 중 프랑스 남서 지방에서 확정된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일명 ‘6세기의 프랑스인의 고백’이라고도 한다.
2) 니케아 신조(Nicea Creed)
니케아 신조는 니케아에서 있었던 325년 교회 협의회에서 아리안(Arian) 이단에 대항한 정통성과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포한 신조이다. - 아리우스는 말씀과 아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 했다. 
니케아 신조는 주(主)를 ‘아버지의 본질로서’, ‘진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가 낳은 창조물이 아닌 아버지와 한 실재’ 등의 문구가 사용되었는데, ‘아버지와 한 실재’라는 말이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이 신조를 ‘318명의 교부들의 신조’라고도 한다. - 니케아 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의 숫자임.
3)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Scots Confession)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는 1560년 8월 중에 4일간 준비된 것으로서 그들의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고백서이다. - 존 낙스(John Knox)가 중심이 되어 6명의 존(John)이 고백서에 기여했다. 당시의 여러 고백서를 참조했지만 1559년  파리 교회에서 결정된 프랑스 고백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의회가 결정했지만 여왕(Mary)이 승인하지 않아 1567년까지 공적인 고백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왕이 폐위된 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결정되기 1647년까지 스코틀랜드 고백서의 비중이 컸다가 후에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로 대체되었다.
바른 성례전의 집행 - 바른 성례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합법적인 목사가 이를 집례 한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이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하여 임명된 자들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할 권능을 주신 자들로서 합법적으로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둘째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요소와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다른 요소나 방법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을 그르치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의 성례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목사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본질을 저버리고 그들 나름대로 첨가시킨 성례이기 때문이다.
4) 제2 스위스(Helvetic -스위스 신교도) 신앙고백서
스위스 교회는 두 개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스위스인 신앙고백서는 1536년 루터파와 쯔빙글리 파가 칼빈주의가 전파되기 전에 화해를 시도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졌다.
제2의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칼빈 사상이 스위스는 물론 독일 일부, 프랑스, 스코틀랜드, 헝가리, 폴란드, 네델란드, 일글랜드 등지에서 각광을 받자 이에 부응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후 채용되었다.
이 신앙고백서는 개력신학이 무르익을 때 나온 것으로서 매우 정중하며 1560년의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와 유사점을 가졌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정밀성을 가지고 있다. 예배, 교회 법규 특히 목사직에 대해서는 어느 신앙고백서보다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개혁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이 신앙고백서는 1643년 7월 1일에 열려 1649년 2월 22일에 폐막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3년간(1643-46) 작성된 칼빈 사상의 대표적 신조로서 모든 장로교회의 표준 신조가 되었다. - 이 총회의 특성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대학 부속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것으로 순수 교회적 모임의 성격은 없이 국회에 의하여 소집된 협의회의 성격을 띠었다. 이때 스코틀랜드 교회가 위원을 보낼 것을 요청하여 목사 4인과 장로 2인을 임명했다. 이 총회가 모였던 당시 잉글랜드의 배경은 찰스 1세와 그의 신하들 간의 정치적 긴장 하에 청교도(Puritans)들이 영국 국교회의 신앙고백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며 보다 순순한 종교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장로교회가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의 신앙고백이 재조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북잉글랜드로 침략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찰스 왕에게 국회가 소집되기를 강요했으나 찰스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1642년 시민전쟁이 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교회를 위하여 가장 적당한 신조를 만들기 위해 웨스터민스터 총회를 소집했다. 이때 모인 대의원들은 잉글랜드 목사 121인, 평신도 30인, 스코틀랜드 목사 4인과 평신도 2인이었는데 시민전쟁으로 인하여 35명의 대의원이 불참했다.
이 총회에서 작성된 신조들의 중요 내용
 (1)신앙고백서 - 전장 33장은 한 마디로 칼빈주의나 다름없다.
1.성서 2.하나님과 삼위일체 3.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의 4. 창조 5. 섭리 6.인간의 타락 7.하나님과 인간의 약속 8.중보자 그리스도 9.자유의지 10.효과적 소명 11.정의 12.양자 13.성화 14.구원에 이르는 믿음 15.회개의 삶 16.선행 17.성도의 궁극구제 18.구원과 은혜 보증 19 하나님의 법 20.기독교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21.예배 22.안식일 합법적 서약 23.시정. 24.결혼과 이혼 25.교회 26.성도의 교정 27.성례 28.세례 29.성찬 30.권징 31.대회와 협의회 32.죽은 후의 인간과 죽음에서의 부활 33.최후 심판
  ※이 신앙고백서가 언급하지 않은 두 가지가 성령론과 선교론인데 이는 미국 신앙고백에서 첨가 됨
 (2)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과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예부터 교육을 목적으로 편찬된 교리를 문답으로 사용하여왔는데 칼빈은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여 교리를 문답식으로 정립하였다. 이를 스코틀랜드교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했는데 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회부했다. - 대요리문답은 196개의 물음과 답. 소요리문답은 107개의 물음과 답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문답서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므로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1958년에 이어 1967년 그들의 신앙고백서와 함께 소요리문답서를 채용했다.
 (3)예배지침서
   이 지침서 안에는 회중집회와 공중예배의 모범, 성서봉독, 설교 전 기도, 설교, 설교 후 기도, 성례전 집례, 세례성찬, 주일성화, 결혼의 중대성, 병자방문, 장례, 금식, 감사, 시편찬양 등으로 구성됨.
(4)장로회적 행정기구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결정한 교회행정 체제는 제목 그대로 장로교회적 체제이다. 이때 결정한 장로회 행정기구의 형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교회 2)교회직원 3)목사 4)교사와 박사 5)다른 치리자 6)집사 7)특수한 회중 8)특수회중의 직원 9)특수한 회중 인도순서 10)각종 모임의 행정기구 11)각종 모임의 일반적 권위 12) 특별 회중의 운영 13)노회 14)대회 및 총회 15)목사 안수 16)안수의 교리 17)안수의 권위 18)목사 안수의 교리적 근거 19)목사 안수를 위한 지침 20)각종 고시를 위한 법규
이 총회에는 도르트(Dort) 대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신앙고백과 신조가 함께 반영되어 그야말로 세계적인 신앙고백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마다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 신조는 모든 장로교회에서는 물론 장로교적인 개신 교회에서 받아들였고 그들의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다. 1677년의 침례교 신조, 1688년의 런던 신앙고백서, 1742년의 필라델피아 신앙고백서, 1967년 미국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의 근본이 되었다.
※1967년 신앙고백서 - 이 신앙고백은 미국 사회가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두이(Edward A. Doway) 교수가 의장이 되어 미연합 장로교회의 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고백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와 교회의 사명과 화해의 성취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 4 】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중심 신학사상
이미 여러 번 언급 했지만 장로회주의와 칼빈주의는 동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로교 신학이라고 별도로 신학이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장로회주의와 장로교 신학은 그 영역이 다르다. 장로회주의는 다분히 정체적이라며, 장로교 신학은 문자 그대로 신학을 말한다. - 장로교 신학이란 대부분의 개혁신학이 이에 속한다(루터나 웨슬레의 신학은 포함하지 않으며 칼빈 사상에 입각한 신학이다.). 
1. 장로교회의 중심 신학사상
장로교회의 중심 신학이 따로 성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장로교회는 교회정치 체제에 의한 것이므로 교리적인 면에서는 개혁교회의 신학 사상을 따른다. - 개혁교회의 모든 신학사상이 장로교회의 중심신학은 아니다. 
장로교회의 중심 신학 사상은 칼빈을 중심한 개혁자들이 신약성서에 나타난 교리들을 분석하고 종합한 신학을 말한다.
개혁 당시 개혁자들이 주장한 다섯 가지 슬로건
 ① Sola Fide(오직 믿음)
 ② Sola Gratia(오직 은혜)
 ③ Sola Scriptura(오직 말씀, 성경)
 ④ Solo Christo(오직 그리스도)
 ⑤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 슬로건에는 칼빈 사상이 지배적이지만 루터 신학사상, 쯔빙글리 신학사상, 어거스틴 신학사상도 들어 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주(Kurios christos)
교회의 본질 -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설립자요 통치자요 대속자이며 주님이시다. - 그러나 로마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진 바나 다름없이 그 밖의 잡다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성(Lord ship)을 대신하고 있었다.
교회의 본질을 되찾자는 말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머리로 계시는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 초대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 선언을 두 마디로 표현했다. Kurios christos(Christ is Lord) 이것은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사상이다. ➠ 빌 2:9-11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하셨다. 하나님의 최대의 계시이며 최대의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2) 은혜와 믿음
개혁교회는 은혜 중심의 교회라 한다. 은혜라는 말은 개혁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 사도교회 이후 중세교회에서는 이런 말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Salvatio Sola Gratia (Salvation by Grace alone)을 강력하게 부르짖었다.
 ➠ 은혜의 뜻
은혜는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요한복음 1:17절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했다. 모든 개혁자들은 사도 바울에게서 은혜를 되찾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이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곧 주님의 은혜이다. 로마서 5:8절에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했다. 
 ①은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이다.
  은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적인 관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인간 쪽에서 필요한데 대하여 채워주시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하고 선량한 나라여서 택하시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다(신 7:7-8).
  이에 대하여 K.J.V에서는 ‘loving-kindness'라고 번역했지만 R.S.V에서는 ’steadfast love'(단호한 사랑)이라고 했다. 칼빈은 ‘이러한 은총은 언제나 우리가 받아들일 것 뿐 거절할 수 없다.’고 했다.
 ②은혜는 자비와 용서이다.
  자비와 용서는 곧 권능이다. -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방문하시고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다. 인간의 상처가 고침 받을 길은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은 자비와 용서뿐, 그 이외의 우리의 행함으로 우리의 상처나 죄를 고침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새로운 삶을 위한 선물이다.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권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후 12:9)고 했다. 인간의 약함이 강할 수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가 되어 수고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고전 15:10)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갈 2:20)이라고 했다.
➠ 믿음의 뜻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곧 ‘믿음’이다. 개혁자들이 주장한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신’이었다. 루터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읽었을 때 믿음으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루터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놀라운 회의를 느낀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충분한가?’ ‘더 하면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으로 정말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그는 자신이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터는 바울의 경지에 이르러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총에 의한 구원’을 부르짖었다. 이것이 바울이 에베소서 2:8절에서 고백한 말씀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①믿음은 은총의 선물이므로 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주의할 점은 내가 아무것도 않거나 또는 내가 한 일은 모두가 주님의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한 다음의 자세이다. - 은총의 결과인 구원은 내가 아무리 확신하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확신이다.
  바울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언제나 순종해오던 그대로 내가 같이 있을 때만 아니라 떠나 있는 지금도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시오. 여러분 속에서 활동하셔서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여러분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우리는 무익한 종이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할 뿐인 것(눅 17:10)이 구원에 이르는 우리의 자세이다. 이것이 개혁사상이다.
 ②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악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것이 구원의 도리이다. - 그 어떤 인간이 좌우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다. 그렇다고 악인으로서 은혜를 충만하게 한답시고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것도 아니다.
  본훼퍼(Bonhoeffer)의 은혜 - 본훼퍼는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로 나누었다. 값싼 은혜는 아무것도 치루지 않는 은혜를 말하며, 값비싼 은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리신 것과 같은 책임 있는, 그리고 훈련에 임한 은혜를 말한다.
  개혁자들은 선행을 전적으로 부인한 것이 아니다. 다만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선행은 전적으로 불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 선행이 선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선인은 선행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총은 우리를 자유하는 길로 이끄신다. 은총은 자유를 보장하게 한다. - 즉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운명을 발견하게 한다(갈 5:1).
 3) 성서의 권위
개혁자들은 ‘오직 성서만’을 부르짖었다. 개혁자들이 근거를 둔 성서는 주로 B.C 750년부터 A.D150년 사이에 이뤄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성서가 보여 주신 것은 어떤 것인가?’에 모든 결론을 두었다.
 (1)‘하나님의 말씀’과 ‘성서의 말’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 종종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 설교’라고도 한다. 그리고 성례전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구현’이라고 한다. 어거스틴도 ‘말씀의 가시(可視)’라고 했다. 이런 말은 성서의 권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설교도 성례전도 말씀의 가시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운송하는 수단이었다.
 (2) 성서비판학은 파괴적인데서 창조적이어야 한다.
 성육신하신 ‘말씀’에 대한 기록의 말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더 잘 알자는데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서의 말의 특성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비판학은 무서운 것이다. 성서가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개혁자들은 ‘성서는 성서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해하고 애매하고 복잡한 부분은 또 다른 부분으로서 그 내용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성서는 언제나 성서를 통하여 말씀을 계속하는 것이다.
 (3)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동참하는 것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다는 것은 시간적 혹은 공간적인 것까지도 영감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말씀하고자 하시는 그 내용이 문제이기 때문에 성서를 읽는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로만 피상적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드라마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읽는 자에게 성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대할 때 삶의 어떤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마당으로서 임해야 한다. - 성서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 돌아서기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자로 경험하라는 것이다. 
4) 하나님의 통치권
이 말은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 모든 것에 지고(至高), 모든 것에 독자성(獨者性)을 가진 자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자유하시는 분으로 어떤 인간에게 종속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머리에 속하는 한계점을 지닌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의 교회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 교회였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로마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의 것이었다.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확신할 틈이 없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종(Servant)의 다스림이나 다름없었는데 종은 여전히 종으로 있을 뿐이었다. 본디오 빌라도가 여전히 재판하고 있는 마당의 교회일 뿐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이나 사랑이나 그의 정의가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통치는 종의 형태를 입으시고 그의 사랑을 강력하게 보여주심인 것이다. 로마교회는 교회라기보다 지상의 나라들이나 다름없었다.
(1) 택함의 교리(The Biblical doctrine of Election)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그의 주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유대 민족을 택하였다. 그들은 큰 민족이어서가 아니며 좋은 나라여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이며 권한이었다. 그리하여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불신실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불신실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자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며 새로운 관계를 원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만찬에서 “이 잔은 새 언약”이라 하셨다. 기독교인들은 “새 이스라엘”로서 새롭게 택함을 받은 것이다. 이 선택이야 말로 바로 은총에 의한 선택이다(롬 9:-11:). 그러므로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택함은 특권이라기보다 의무로서 “가서 온 민족을 제자로 삼는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교회는 부르심(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무리로서 존재하며 그 의무와 책임을 감당해야한다.
(2) 예정론(Predestination)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개인의 운명을 미리 결정해 놓으셨다는 설이다. 이런 설은 인간의 자유의지론(自由意志論)과 논쟁을 일으켰다. 
예정론은 기독교에서만 아니라 회교(回敎)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중세 스콜라 시대에 정통교에서는 강력히 이 예정론을 지지했다. 그러나 1세기에서는 예정론이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예정론은 주로 그리스도의 본성과 삼위일체 신학에서 유출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펠라기우스(Pelagius)에서 일어났는데 그는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든 받아들이든 그것은 자유’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에게서 정립되었다. 그는 “사람의 의지는 죄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에 대한 해방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은총만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주장이 529년 오렌지(Orange) 회의에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때는 야만족이 휩쓸던 때였다. 이에 대한 논쟁을 계속할 여유가 없었다. 그 이후 849년 퀴엘시(Quiercy) 대회에서 거부당했다.
중세에 들어와서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고 불리게 되자 신학의 거장들이 고전식 신학을 부흥시켰다. 롬바르드(Peter Lombard), 보나벤투라(Bonaventura), 알버투스(Albertus), 마그누스(Magnus), 아퀴나스(Thomas Aquinas) 등으로 1200년대 전후에는 전승기였다.
1300년대에 와서 스코투스(Duns Scotus), 옥함(William Ockham) 등이 다시 도전했다. 그들은 “그럼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냐?”라고 했다.
개혁자들(Luther, Zwingli, Calvin)은 모두가 예정론을 주장했다. “진정한 교회는 택함으로서이며 의지의 해방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가스틴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500년대에는 루터와 멜랑크톤이 논쟁을 벌였으며
1618-1619년의 돋트 회의에서는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들의 논쟁이 있었다.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온건파 칼빈주의자(Sublapsarian / “예정 없이 아담이 타락했다.”)와 과격파 칼빈주의자(Supralapsarian / “창조 전에 이미 모든 것이 다 예정되었다.”)들의 논쟁이 일어났다.
1700년대에는 경건주의(Pietism)가 일어났다. 웨슬레(John Wesley)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쪽으로,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칼빈적 메소디즘(Methodism)으로 번졌다.
1800년대에는 과학이 발전하여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만일 하나님이 우주를 과학적인 법으로 예정해 놓으셨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유 할 수 있느냐?” “도대체 정치 경제 문화는 어쩌라는 것인가? 또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인가?”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발트(Barth)의 스콜라적인 칼빈주의의 부흥은 예정론 신학에 대하여 일어났다. 발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 선택을 강조함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논쟁을 끝내기를 시도했다.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데 구원받을 자도 다 택하셨다.’는 것에서 일어났다. 이 예정론은  ‘택함 받은 다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언제나 소수의 주장이었다. 
 ※ 예정에 관한 단어는 구약에는 전혀 없으며, 신약에는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에만 나타난다. 여기서는 “미리 정함”, “미리 아심”이라는 뜻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죽었었는데 하나님은 이들 중에 얼마를 골라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구원할 자와 심판할 자를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이중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한다. 이를 에밀 브룬너(Emil Brunner)는 비 성서적이라고 거부했다.
 ※에밀 브룬너는 “성서에 영원히 거절된 자는 없다.”고 했으며 우주적 구원관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무책임적인 존재란 말이냐? 윤리성을 버리고 살아도 좋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있으며 그 영원한 선택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서 오는 자유이다”고 했다. 브룬너는 ‘예정은 한쪽 오직 선택분이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예정론이 칼빈의 독점물이라는 것이다. 칼빈의 주된 사상은 예정론이 아니다. 그의 예정론은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머지는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5) 만인사제(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1)사제(Priest)란?
사제(司祭)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에 사라졌다. 이 말은 제사장이라는 말과 같으며 감독 아래 있는 신부(神父)라고도 하는데 개혁자들은 신약성서에 이런 말이 없다는 점을 들어 배척했다. 이는 예로부터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대표자”로서 주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집례한 자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는 구약적인 사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구약적인 제사의 일은 끝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계시기 때문에 또 다른 중보자를 세운 가톨릭교회의 미사(Mass)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역행이요 모독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대표는 말씀(Word)으로서 계시기 때문에 제사자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이 제사의 직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희생제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함께 참여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베드로전서 2:9-10절을 인용하여 주장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 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이의 덕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함을 받지 못한 자였으나 지금은 자비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산제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가톨릭교회의 성직체제(聖職體制)를 강력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신부가 있어서 신도들이 그에게 죄를 고백하면 신부가 이를 속죄하여 주는 중보자가 되고 성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누구나 중보자가 될 수 있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누구나 자신이 자신의 사제가 된다는 것이 아니며 아무나 함부로 타인의 사제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 제사자(祭司者)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뜻이다(벧전 2:9). 
사제의 특권이 아론의 후손들에게나 레위인들에게 세습 되었던 구약의 개념은 무위로 된 것이다. 사도들이 가진 특권으로서 물려준 감독의 직이나 사제의 직은 복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부르심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사제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장로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합법적인 절차를 반드시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2)목사(牧使)는 개혁된 사제(司祭)이다
“모든 신자들”이라는 말은 즉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함께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교회가 있는 것이다. 이 교회는 주님의 몸이지 인간의 모임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교회는 그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들의 법칙이 선포되는가?’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그의 말씀을 선포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나 설교할 수도 없고 아무나 무질서하게 예식을 집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도를 중심한 사도교회의 목회자들의 시대는 지나고 남은 것은 가톨릭교회의 신부나 감독 또는 교황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도교회의 목회를 계승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의 뒤를 이은 목회자로 정립된 것이 목사였다.
목사는 지배자가 아니며, 명령자도 아니며, 죄를 사하여 주는 자도 아니며, 다만 도와주는 자, 봉사하는 자(minister)라는 뜻으로서 교회의 공직(公職)에 임하는 것이다. 
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자비가 언제나 임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거룩하며 가시적(可視的)으로 성장해야 하는 기관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비록 교파는 여러 가지로 나뉠지라도 다른 교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옷을 입은 것에 불과하다. 교회를 운영하는 행정 스타일은 떄로 다를 수 있다. 성서가 한 미디로 어떤 정체를 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장로체제, 감독체제, 회중체제처럼 서로 섞여서 각자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장로교회에서는 사도들이 아무런 특권 계급 없이 전혀 관료적이지도 않고 오직 섬기는 일에만 힘썼듯이 오늘의 목사들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목사가 존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사장이 아니며 교황도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 이외에는 일반 교인들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장로교회의 직분자로서의 목사이다.
(3)성직자 평신도(Clergy a Laity)
구약에서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 가톨릭교회에서도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가 지상에 대리자(vicar)를 두어 그에게 충성을 허락하셨으므로 주님이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Ubi Christus ibi ecclesia)고 한다. 즉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Ubi Petrus bi ecclesia)고 한다.
원래 크레로스(Κλῆρος)라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별도로 세워진 성직자(聖職者)를 말하고 라오스(Λαός)는 일반 백성을 말하지만 신약에서는 둘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른 구별을 언급하지 않는다. 복음 시대에는 만인평등의 시대로 목사도 다른 의미로서가 아니라 봉사자(διακονια)로서 이다.
교인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먹이는 자로서 전적으로 그 일에 봉사하라는 것을 개혁교회에서는 구별된 직분, 거룩한 직분으로 옹립하고 성직자라고 부르지만 구약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칼빈, 스코틀랜드 교회, 스위스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례하기 위한 자”에게 안수로서 성직자로 세우도록 했다.
1947년에는 감리교회, 회중교회, 감독교회와 함께 장로교회에서는 목사의 재 안수를 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모든 교회가 존중하기로 했다.
6) 예배(Worship of God)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충분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도 충분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알려질 때 하나님이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었을 때 그들은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고백하는 것이다. 이 찬양과 기도와 들음과 숭배와 고백을 예배(Worship)라 한다. - Worth(가치)+Ship(배)
하나님의 아시는 바란? “우리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우리를 아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단순한 우리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에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도 없었고 이에 대한 응답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찬양도 기도도 그리고 감사도 하나님의 아시는 바에 의하지 않는 것으로서 모든 것이 인간들의 의식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의 예배는 거의가 우상적이고 미신적이었다.
(1)예배의 특성
한마디로 개신교의 예배는 가지각색이다. 성공회(聖公會)에는 “기도교서”(The Book of Common Prayer)가 있었고, 연합장로교회에는 “예배지침”(The Book of Common Worship) 혹은 “예식서”(The Book of Common Order)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본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들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인간들의 응답이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사업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다. - 개혁자들이 주장하는 예배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하여 인간들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 이런 메시지가 없는 예배는 무의미하다.
정리 /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림이며 생활의 개선을 인도하심이다. 예배란 이미 앞서 본대로 “하나님의 가치”(worth of God)의 인식을 말한다. 즉 “위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만이 높임과 찬양을 받으심이다.”(Soli Deo Gloria) 그러므로 위대한 백성들은 일찍이 하나님에게 이렇게 노래했다. - 시편 105:1-2,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 시편 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노래하며 그에게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인간들의 삶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은 곧 그의 뜻을 찾는 것이며 그의 뜻을 찾음은 그의 뜻대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것(기도)이다.
①기도(祈禱)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최초의 응답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는 아무런 형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공중예배(公衆禮拜)에서는 설교가 정선(精選)되듯이 기도도 정선 되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에 대한 숭배(adoration)를 한다. / 다음으로 고백(confession)한다. 이는 일반적인 용어로서의 죄가 아니라 자기의 구체적인 죄까지 포함한다. / 그리고 고백에 대한 용서를 간구하며 감사(thanks-giving)한다. 이는 죄의 용서와 은총의 선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intercession)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속적인 돌보심에 대한 간청(supplication)이다. ⇨ 이를 줄여 acts라고 한다.
②회중찬양(Congregational singing)
개혁 이전에는 회중들의 예배 참여가 전혀 없었다. 미사(mass)는 사제에 의하여 드려졌다. 음악은 정규적이지 않았고 훈련된 성가대에 의한 것이었다. 개혁 교회는 회중들에게 예배의 참여를 허용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하게 되었다. 이를 일컬어 “믿는 자는 모두가 사제”(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라는 것이며 모두가 예배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칼빈이나 루터는 이 회중음악을 직접 작곡하거나 합창을 인도하기도 했다. 이들 시편 찬가는 지금도 구미교회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③성경봉독과 설교
가톨릭교회에서는 성경의 일반적인 봉독을 금지했다. 사제만 읽을 수 있었다. 개혁교회에서는 성경 보급을 서둘러서 누구나 읽게 했으며 공중예배에서는 큰 소리로 봉독하게 했다.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었으며(복음서와 서신서를 따로 했음)이것으로 목사가 설교를 했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예배였다. 개혁주의 설교는 언제나 성경적인 설교여야 했다.
④봉헌(The Offering of Gift)
속된 말로는 ‘돈의 수집’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코 헌금은 ‘돈의 수집’이 아니다. 헌금은 결코 세속적인 수집이 아니며 종교적인 신성한 드림도 아니다. 이는 예배의 일부분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즉 세상에서 귀하게 사용하는 것을 드림이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데 대한 감격이며, 교회가 운영되도록 하는 협조와 다른 사람을 돕는 참여와 경건한 신앙의 실천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돈으로 면죄부(indulgence)를 샀고 죽은 자의 죄를 위하여 그리고 각종 세금처럼 헌금을 바쳤다. - 그러나 개혁교회는 구약의 십일조도 면죄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예배 때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다. 이것은 그들의 헌금(offering)이었다. 그들은 희생이 없이는 예배할 수 없다는 관념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드릴까?”라는 개념이었다. 그들의 떡과 포도주는 드림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헌신에 대한 분담이었다.
⑤개인예배와 예배의 무질서
개혁교회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연합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예배도 인정한다. 언제 어디서는 하나님은 함께 계시므로 사실상 혼자가 아니며 언제나 기도로 교통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물론 식탁 앞에서도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개혁교회의 예배는 무질서 할 때가 많다. 예배 하는 자가 분명한 생각도 없이 또는 제사(祭祀)를 드리듯이 예배에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로 합당하지 않다. 이는 기독교가 미신성을 타파하기 위하여 존재하면서도 미신적인 예배를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유대교나 가톨릭의 예배를 책망한 후에 그들을 닮은 혼잡(Chaotic)이다.
교회는 없애야 할 기물이나 불필요한 성소(聖所) 또는 지성소(至聖所)의 현존은 물론이며 교회를 폐쇄적으로 밀봉하는 상태 등은 아직도 율법시대를 표방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 예배당의 강단이 마치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것으로 생각하여 신성시 하는 것은 미신적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사설제단(私設祭壇)’ ‘불의 집회’라고 하여 무당이 흥청대는 것처럼 예배를 혼잡하게 하는 것이나 안수, 안찰 등으로 예배를 혼잡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성한 예배와는 거리가 멀다. 예배는 흥분과 도취가 아니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2)성례전(The Sacrament)
①성례(聖禮)란 무엇인가?
성례라는 말은 성경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대등한 의미의 단어도 없다. 이 말은 교회사의 초기에 등장한 Mysterion이라는 말을 라틴어에서 Sacrament로 번역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사성을 에베소서 1:9, 3:3-9, 골로새서 1:27, 디모데전서 3:16로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나타내려고 할 때 인용되었다. 
라틴어 Sacramentum은 군인이 그의 상광에게 서약을 할 때 사용했으며 칼빈은 이것을 인용하여 ‘마치 사령관이 부하들을 그의 지휘 아래에 두기를 허락하는 행위’와 같은 의미로 변형시켰다. 
4, 5세기 때에 여러 가지 의식, 세례와 성찬 그리고 목사가 안수하는데 사용하면서 성례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중세에 와서 가톨릭교회는 영세, 견진, 성체, 고해 종부, 신품 혼배를 모두 성례라고 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성례를 세례와 성찬으로 제한하였다. 칼빈은 안수에 대하여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성례에는 안수를 넣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안수는 정규적인 예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장로교회는 안수를 성례라고 보는 전통이 있다.
스코틀랜드교회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밝히신 성례전은 두 가지인데 세례(Baptism)와 성만찬(Lord’s Supper)이며 이는 아무나 집례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안수를 받은 목사만 집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성례전은 ①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외적으로 볼 수 있는 표시이며 ②내적이며 영적인 은총 자체로서 한 번 집행함으로서 “표시와 은총”을 동시에 가져오는 것이다. 사람은 영육이 동시에 존재한다. 생과 삶이란 영과 육의 동시 구성을 의미하며 영은 육에 의하여 작용하고 육은 영을 따라 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만남도 성례전으로 영육의 관계를 외적으로 보게 하고 내적으로는 은총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들이 만든 각종 의식을 전부 성례로 간주한다.
이 성례전은 세 가지 의미로 집례 한다.
A. 표시(It signifies) - 세례는 청결을 의미하고 성찬은 자양을 의미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 가지는 표식이며 표시이다.
B. 인치심(It also seals) - 하나님의 은총에 동반함이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C. 적응(It applies) - 이는 영적으로 변화를 입음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친히 자신을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우리의 음식이 되신 것을 목사가 집행하는 것이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②성육신(The Incarnation)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몸으로, 하나님과 같은 신성으로 우리를 영육 모두의 재생을 위한 희생물이 되셨다. 그리고 그가 죽음에서 다시 사셔서 다시는 죽음이 지배할 수 없게 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히 재창조하시는 것 모두 그의 성육신에서 기인된 것이다.
③세례(Baptism)
세례는 외적으로 볼 수 있는 표이지만 내적으로는 영적인 고통이다. 왜냐하면 죄의 용서와 새로워짐과 영원한 삶과 은총의 약속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는 의식만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이다. 세례는 하나님의 행위이며 사람은 받는 행위에 국한된다.
바울은 세례를 죽음에 비유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영생하는 도리라고 했다. 그것은 오직 “예”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접붙이시고 재생시키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부르시며 약속하시는 것이다. 
세례는 인간들의 행함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응답하게 하실 때 주어지는 것이다. 
A. 유아세례(The Baptism of Infants) -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시며 어른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셨다(막 10:13-16). 베드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행 2:38-39)라며 세례의 초대에 사용했다. 부모가 모두 성도일 때에는 두말 할 것도 없고 한쪽만 일 때도 가하다.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 마 18:3,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
- 막 10:14, 어린아이들을 막는 것을 책망하심
- 막 10:16, 어린아이들에게 손을 얹으시고 축복하심
- 마 28:19-20, 모든 민족(all the nations)에게서 어린아이도 포함되어야 한다.
- 행 2:38-39, 베드로가 세례를 강조할 때 “여러분과 어린아이들”이라고 했다.
- 행 16:15, “그 여인과 그 집안이 다”에서 어린아이를 뺄 수 없다.
- 행 16:33, “그와 온 가족”
- 고전 1:16, 가족들에게는 어린아이가 포함된다.
- 엡 6:1, “주 안에서”라는 말은 세례를 받은 자를 뜻한다.
- 하나님의 은총의 약속이 어린아이를 제외한다면 모순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가 입교(入敎)를 하면서 그들은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의무와 특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세례를 받은 자로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길을 열어주고 교회를 봉사하게 하여야한다.
B. 손을 머리에 얹는 예식(form of Confirmation) - 여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사도행전 8:14-25절과 19:1-6절에서 납득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도들이 손을 머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축복할 때와 같이 “교회의 선교사적 사명”과 “사도성의 연합”이었던 것 같다고 칼빈은 히브리서 6:2절 주석에서 언급했다. 역사적으로는 3세기경에 이런 정황이 있었으며 씨프리안(Cyprian)때에는 더욱 일반적이었고 종부성사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 후 축도와 구분하기 위하여 후보자들을 꿇어앉게 했다. 그리고 세례는 침례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초대교회는 물로 들어가는 것, 발목만 잠그는 것, 때로는 무릎까지였지만 원어에는 ‘물을 뿌린다.’는 의미도 있다. 세례는 물로 깨끗하게 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씻는 것의 표징이다.
④ 성만찬(The Lord's Supper)
이는 주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자기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직접 집례 하셨다.
마 26:26-30, 막 14:22-26, 눅 22:15-20, 고전 11:23-26
위의 본문에서 성찬은 첫째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일과 둘째, 십자가상의 그의 몸과 피를 감격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임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봉헌과 교제(consecration and communion)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연합하시고 속죄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에서 중보자로 오늘도 우리를 성화시키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예식에 참여함이다. 그러므로 이 예식은 지극한 은혜이며 지극히 거룩한 예배이다.
고전 11:23-29절에는 성만찬의 정당한 절차를 밝혀준다. 첫째는 물질적인 요소, 둘째는 행하신 말씀, 셋째는 행하신 행동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자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보여주는 것이다.
【 5 】 한국 장로교회(長老敎會)
1. 가톨릭시대(여명기)
1) 기독교의 전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들어오기는 1593년 임진왜란 때 스페인 신부(神父) 세스페데스(gregoriade Cespedes)라고 본다. 그는 선교를 위하여 온 사람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군 군목으로 따라 온 사람이었다.
30여년 후인 1627년에 화란인 웰터브레(Jan Janse Weltevree)가 한국 해안에 버려진 적이 있었고, 1653년 8월 16일에 화란인 하멜(Hendrick Hamel)이 제주도 해안에 표류한 적이 있었다. 이 하멜에 의하여 경주 근처에서 체포되어 40여년간 한국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웰터브레가 알려졌다. 이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인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 후 조정에서 중국으로 보낸 사절들이 주자학(朱子學)에서 실학(實學)으로 눈을 돌리면서 가톨릭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독교가 우리 민족에게 보다 깊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특히 이수광(李晬光)은 1614년 지붕유설(芝峰類說.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천문ㆍ지리ㆍ병정ㆍ관직 따위의 25부문 3,435항목을 고서(古書)에서 뽑아 풀이한 20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을 통하여 마태오 리치(Matteo Ricci)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거론하며 유럽의 형편과 가톨릭에 대하여 말했다. 그의 지식은 1603년 마태오 리치가 출판한 ‘천주실의(天主實義)’애서 얻은 것이다.
이처럼 가톨릭을 통한 실학과 기독교 사상이 전래되고, 학자들이 중국에서 가톨릭 선교사와 그들의 저서들을 접하여 기독교 사상을 수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였다.
1783년 이승훈(李承薰, 강원도 평창 사람으로 25세에 진사 급제함)이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되었는데 1784년에 세례를 받고 각종 자료를 가지고 귀국하여 신앙생활과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이승훈과 사돈 간인 이벽(李蘗)은 종교적으로도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1785년에는 김범우(金範禹)의 집을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이 당시 유하원(柳河源)의 상소로 박해가 시작되었다.(상소문, 천(天)이 있는 줄만 알고 임금과 어버이가 있음을 모르며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설로서 백성을 속이고 세상을 미혹케 함이 큰물이나 무서운 짐승의 해보다 더하다.)
박해를 피하려고 이승훈은 척사문(斥邪文, 일종의 반성문)을 쓰며 교리를 불살랐고 이벽도 배교를 선언했다. 그 후 세정이 안정되었을 때 1787년 이승훈은 복교하여 박해를 대비하면서 성직제도(권일신을 주교로, 이승훈, 이단원, 유항검, 최창현 등을 신부로 세움)를 세웠다. - 북경에서는 이들의 성직설정을 인정하지 않음. 이들이 사도계승론(Apostolic Succession)에 위배된다고 함.
1794년 주문모(周文謨)가 중국이 파송한 신부로서 국경을 넘어 숨어 들어왔다. 이미 그 당시 한국 땅에는 4천여 명의 신도가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한국에서 조상숭배가 문제가 되어 1791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을 당했다. 이조는 4대조까지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1801년 5월 31일에 신유박해사건이 일어났고 주문모를 비롯한 300여 명의 신도들이 서소문 밖에서 참형을 당했다.
1832년 화란 선교사 구쯔라프(Gutzlaff)가 만주에서 한인에게 선교.
1839년 기해년 7월에 사교를 박멸하겠다는 척사편음(斥邪編音)의 포고령을 내려 수천 명의 신도를 투옥하고 130여 명의 순교자를 내었다. 
1846년 병오년에는 2년 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신부가 된 김대건 신부가 26세로 그 해 7월 26일 새남터에서 11명의 신도와 함께 순교 당하였다.
1865년 토머스(Robert J.Thomas)선교사 대동강변에서 첫 순교.
1866년 병인년에 어린 고종의 섭정 대원군이 13명의 신부를 학살하는 등 박해를 계속. 8년간 8천여 명을 학살했다.
1872년 존 로스(John Ross)와 맥킨타이어(John McIntyre)가 만주에서 한인에게 전도.
1876년 외국에서 한국인 첫 세례 받음 / 백홍준, 이응찬, 이성하, 김진기
1882년 우리말 성경이 반포됨 / 로스역 성경(누가복음, 요한복음) - 서상륜의 공로
1882년 12월  신사 유람단으로 이수정이 일본에 가서 입신, 성경 번역.
1883년 5월 16일에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소래)에 소래교회(서상륜 설립)가 설립됨. - 1883년 10월 20일에 안악군 서하면 상촌리에서 장석훈, 장석규, 장석구 3형제와 그의 4촌 형제 장석두, 장석영, 장석우 등이 합심하여 두 번째 교회인 대동교회를 설립, 1884년에는 장연군 낙도면 산천리에 낙도교회와 재령읍 동부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안악군에는 1884년 3월 1일에 안악군 용문면 상무리에 무동교회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3월 5일에는 안악군 은홍면 덕산리 덕산교회, 같은 해 10월 5일에는 안악군 대원면 당전리에 당곡교회가 각각 설립되었고, 같은 해 12월 24일에는 은율군 은율읍교회가 남천리에 설립되었다.
1884년 알렌(Allen) 의사 부부가 입국하여 의료 선교 실시.
1885년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정식 선교사로 입국하여 선교사업 시작.
1890년 네비우스가 입국하여 네비우스 전도방법이 실시됨(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선교를 위한 총체적인 선교전략(the overall strategy)으로 1890년 채택한 것이 네비우스 선교 정책(Nevius Methods)이다.)
1901년 제주도에서 7백여 명이 학살당했다.
2) 장로교회의 조직
언더우드가 입국한 이후 호주 장로회(1889년), 미국 남장로회(1892년), 캐나다 장로회(1893년) 등이 뒤를 이어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 밖에 침례회와 성공회, 남 감리회에서도 선교사를 파송했다. 아직 조정에서는 기독교의 선교를 승낙하지는 않았지만 언더우드 이전처럼 박해하지는 않았다. 특히 알렌은 “국법이 허락할 때까지 선교를 보류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언더우드는 한국말을 익히자 길거리로 나가서 전도를 했으며 서울 가까이까지 전도했다.
(1) 소래(松川) 장로교회
언더우드는 일본에서 가지고 온 우리 말 성경이 한국말로서는 처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말 성경은 널리 퍼져서 읽히고 있었다. 이 일은 봉천지역에서 존 로스와 함께 번역 판매를 했던 서상륜의 공이었다. 그는 1884년 고향인 황해도 장연의 소래로 돌아가서 정착하여 복음을 전했고 최초의 한국 장로교회를 한국인 손으로 설립했다. - 이 교회는 그 지방 사람들의 재정적인 뒷받침으로 설립, 운영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그 마을의 58세대 중 50세대를 전도했다. 
(2) 새문안 장로교회의 조직
한국 장로교회의 시작은 언더우드 목사가 시작되었으며 교회를 세우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문호는 개방되었지만 법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들끼리 모이는 종교집회는 허락되었다. 
1885년 6월 28일 오후 8시 알렌 의사 집에서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하였다. 
1885년 7월 13일에는 미국 북장로교회 한국선교회가 첫 모임을 가졌다.
1886년 7월 11일에 언더우드 목사가 한국에 온 후 처음으로 노도사(魯道士)에게 비밀히 세례를 베풀었다. 그 후 언더우드 목사는 소래에서 일곱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선찬예식을 거행했다. 이 때 이미 서울에는 70여 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교회는 조직되지 않았다.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 목사 사랑채에서 14명의 교인과 처음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조직되었는데 이교회가 새문안 장로교회였다. - 14명 중 13명은 이미 서상륜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 밖에 다른 많은 신자들이 언더우드를 중심으로 교회조직에 가담했다.
(3) 최초의 장로 안수와 당회 조직
로스 목사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선교본부로 보낸 보고서와 언더우드 목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본부로 보낸 보고서 중에는 1887년 9월 27일 창립한 다음 주일에 뽑힌 두 사람의 장로를 백홍준, 서상륜으로 기록했다. -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을 장로로 인정하지 않았다. 
1900년 서경조가 소래교회에서 장로로 장립했다. - “堂會를 組織하니 시내(是乃) 我國敎會의 最先 長老더라.”
1904년 10월 2일. 서울에서는 새문안교회의 송순명(宋淳明) 장로가 첫 장로였다. - “京城 西大門內 敎會서는 助師 宋淳明을 長老로 將立하야 京城 最先의 堂會가 組織되니라.”
(4) 장로회 협의회 구성(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rom of Government)
1893년 1월 28일 장로교파 선교사 전원이 참석한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이 협의회는 한국 안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조직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그해 3월에 미국 남북 장로회 선교부가 연석회의를 열어 한국에 있어서 단일 장로교회 설립 목표를 지향하도록 그들 총회에 승인을 요청하기로 했다. - 1895-1896년 이 협의회는 게일(J.S.Gale)이 편찬한 한영사전의 풀판비용 등을 책임지기도 했으며 비공식적으로 상호 친목 중심이었다. 1901년에는 한국인도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었다.
(5) 한국 장로교회 조직
한국 장로교회를 ‘대한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라고 불렀다.
1901년 주한 4개 장로회 선교부로 구성된 최고 치리기관인 협의회(Presbyterian Council)가 한국인 목사 양성을 위하여 연합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 1907년 제1호 졸업생 7명이 나왔다. 그러나 장로교 교회정치규정에는 노회(Presbytery)가 아니면 목사를 안수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선교 협의회에서는 한국 장로회의 조직을 주선하여 한국인 목사가 한국인 장로회 아래서 안수를 받게 하였으며 선교사들은 본국 노회 소속 회원권을 보유하면서 또한 한국 장로회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때가 1907년 9월 17일. 33명의 외국 선교사들과 36명의 한국 장로들이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첫 번째 노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협의회의 의장이었던 마삼열(Samuel A. Moffett)목사가 의장에 취임했다. 7명의 목사를 안수 했으며 53명의 장로, 989개의 교회외 1900명의 교인과 70,000여 명의 신도들을 두게 되었다.
이때 채택된 신앙고백은 인도교회의 12신조였다. 이 신조는 칼빈주의의 경향이 짙었다.
2. 부흥시대(발전기)
장로교회가 조직된 후 잠깐의 잠재기를 지난 1895년부터 세례교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 청일전쟁의 영향
1894년 한국 땅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보수적인 한국 사람은 중국이 승리하기를 바랐지만 일본 쪽으로 전세가 기울었다. 일본은 서구 문명을 빨리 받아들인 아시아의 유일한 강국으로 부상했다. 서양문명과 함께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이 일본이 아닌 새로운 지도자들로써 불안한 정세 속에서 한국인들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2)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의 영향
청일전쟁(청나라와 일본 제국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러일전쟁(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 전쟁)을 일으켜서 승리했으며 한국을 자신들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910년에 합병이라는 조약을 만들어 한국의 정치적인 독립을 종식시켰다. 
한국은 절망적인 국정에서 나라와 민족의 소망을 교회에서 찾으려 했다. 이런 환경에서 교회는 가장 강하고 영향력 있는 큰 조직체로 성장했다. - 일부 선교사들은 한국 국민들이 교회로 오는 것이 영적 동기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른 교육을 위한 대비책도 세웠다.
3) 민족적 각성운동
정치적인 혼란과 왜곡된 신앙에서 오랫동안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각성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 이 부흥운동은 사경회(査經會)였는데 1899년 언더우드 목사가 서울에서 7명으로 시작하여 1901년에는 선교사마다 성경공부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선교부 세칙까지 삽입했다. 1904년에는 60%가 가담했고, 1909년에는 북장로교 선교구역에서는 5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가진 800개의 사경회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존 칼빈으로 되돌아갔고, 어떤 사람은 존 웨슬레로 돌아갔으나 우리는 1907년 밖에 더 돌아갈 곳이 없다.”
4)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조직
1912년 9월 1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평양 여자 성경학원에서 7개 노회 산하 목사 52명, 장로 125명, 선교사 44명, 총대 221명으로 조직되었다. - 회장에는 언더우드 목사, 부회장에는 길선주 목사, 서기 한석진 목사, 부서기 김필수 목사였다.
1919년까지 장로교회는 교회 성장을 거듭했다. 1911년에 46,934명이던 세례교인이 1919년에는 69,047명이 되었다.
3. 박해와 분열시대(수난기)
1910년 한일합방은 곧 민족과 국가가 망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로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신앙운동과 전도운동을 벌이는 마당에 “이대로 좋은 것인가?”라는 역사적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복과 그들의 탄압이 교회와 무관한 것일 수가 없었다.
서우학회(西友學會), 안창호, 신민회(캘리포니아) 등이 배일적이었다. 물론 선교사들 중에는 친일적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 -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로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등문을 피격했다. 1908년 사립학교 교령을 공포하여 기독교계의 사학들을 통솔 감독했다. 천황 사진에 대한 경례 강요에 교회는 우상숭배라 하여 거절했으며 이로 인하여 일본은 반일에 대한 사찰을 시작했다.
105인 사건 중 장로교인이 97명이었다. 윤산은(G.S.McCune)과 나부열(S.L.Robert) 선교사가 이 음모에 가담되었다고 고발했다. - 105인 사건은 1911년에 일어난 일본이 한국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사건들 중 하나이다. 단순한 모금활동에 불과한 안명근의 체포사건을 1910년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미수 사건으로 조작하여 그 빌미로 양기탁, 이동녕, 이동휘, 윤치호, 전덕기 등 신민회 간부 및 기독교 지도자와 교육자들을 대거 투옥시켰다. 
1915년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할 것과 기독교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없애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교사들은 여전히 중립이라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품게 된다.
1)독립운동
1919년 3월 1일의 독립운동은 교회가 민족들의 의구심에서 벗어나게 했다. 물론 선교사들은 중립이었다. 일부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이 교회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 33인은 모두 종교인이었다. 16인은 기독교, 14인은 천도교, 3인은 불교였으며 기독교 중에는 몇 사람의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교회는 독립운동의 유일한 조직체였다. 이로 인하여 많은 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투옥과 고문과 죽임을 당했다. 
2)재 조직
교회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때에 장로교회에서는 ‘전진운동'이라고 부르며 ’한국교회의 활동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복음 전도의 노력을 증진시키며 주일학교 활동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일을 모색했다.‘ 4천 개에 달하는 한국 장로교회는 이 운동을 위한 특별 부흥회를 열었으며 교회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3)신사참배
일본이 우리나라에 신사를 들여온 것은 1918년부터였다. 1930년대 초반 만주 침략을 계기로 일본은 국민정신 통일로 중국을 침략하려는 시도였다. 이들은 신사참배를 “일본인 신하로서의 의무에서 천황의 선조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종교로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한 의식이다. 그것은 선조들에 대한 감사의 의식이다.”라고 했다.
당연히 기독교계 학교는 거부와 더불어 폐교의 길을 택하였다. 선교사들이 단호하여 자진 폐교가 많았다. 
신사참배의 강요가 교회로 들어왔다. 1938년 9월 10일 총회 총대는 개별적으로 지지안을 강요 받았다. 반대자는 투옥되었고 고문을 받았다. 가장 완강한 반대의 교파는 장로교였다. 이 후부터 많은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를 당한 대표자로 주기철 목사가 있다.
4)분열
장로교회의 분열의 징조는 1930년대부터 있었다. 1911년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가 세워져 보조하는 문제가 있을 때 평양의 교회들은 이 학교가 서울에 소재했다는 이유로 그 계획을 반대했다. 그리고 북쪽에 편중되어 있는 교회들이 남쪽 교회의 의사들을 반영하지 않는 불평이 일어났다. 1934년부터 이런 지역적인 감정이 표면화 되었다.
다음으로는 신학적인 문제였는데 미국 쪽보다 일본 쪽에서 신학을 하고 온 사람들에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독일물을 먹었다는 것이다. 가장 치열한 대결은 박형용과 김재준의 논쟁이었다. 1934년과 1935년에는 보수파와 신신학파로 장로회 총회는 분열을 노출했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언제나 신학교와의 분열이었다.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무기 휴학에 들어가자 선교사들 주관으 신학교에서 보다 한국인 손으로 운영되는 신학교으 설립과 교역자 양성의 중단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1939년 3월, 채필근 목사의 제안과 더불어 서울에서 기성회를 조직했고, 1940년 4월 19일에 서울 승동교회 아래층에서 조선신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 김대현 장로가 학원장. 김영조 함태영, 이정로, 윤인구, 김재준 목사가 중심이 되었다.
1954년 6월 10일 제 39회 총회에서 한국신학교가 분리되어 나가서 캐나다와 연합 장로교회와 우호관계를 가지며 기독교 장로회로 진보적인 노선을 취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한국교회에는 자유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출옥과 더불어 또 다시 신사참배 여부 문제가 죄악시 되는 논란이 있었다. 
1946년 6월부터 개강되던 신학교가 9월 20일 박윤선 목사를 교장으로 주남선, 한상동 목사가 중심이 된 고려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1951년 총회를 이탈했다.
해방 된지 5년 만에 민족과 국가는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교회는 또 다시 수난을 당해야 했다. 납북, 총살형, 방화, 실종 등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파손된 장로교회가 152, 순교 및 납치된 중요 장로교인이 177명이나 되었다. 
1959년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갈 때 장로교회는 또 한 번의 분열을 맞이한다. 신학교 부지 매입자금 3천만환 사건과 에큐메니칼 운동은 용공(容共)이라는 것으로, 경기노회 총대 선정문제를 둘러싸고 그 해 9월 24일 제 44회 총회가 대전중앙교회에서 아수라장으로 깨졌다. 여기서 소위 합동측 장로교회는 이탈하고 나머지가 통합으로 하는 분열이 일어났다. - 박형용 교장의 거액 공금유용사건, WCC 등의 싸움이 일어났다.
1972년. 1950년대의 분리 이후 처음으로 4파 장로교회(고려, 기장, 합동, 통합)의 총회장들과 총무들이 9월에 한 자리에 모였다. 연합보다는 협동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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