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회사 - 【 3 】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조직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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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9-05 00:21
【 3 】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조직과 성장
(The Organization and Growth of the Presbyterian Church)
(The Organization and Growth of the Presbyterian Church)
1. 교회의 조직
교회 조직의 첫 출발은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으로도 볼 수 있다. - 유대교의 성전이나 회당도 교회 조직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교회의 조직을 명하신 때로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 설립을 위임하셨다고 한다.
교회의 첫 모임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날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가진 모임이다. 이 때 모인 수를 120명이라고 하며 여러 지역-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등-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사도행전에서는 주님의 부활 후 40일 동안 주님과 제자들이 대면했으며, 제자들은 오실 성령의 약속을 기다렸다.
이렇게 출발한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오순절에 설교의 결과로 신도수가 3천명이나 늘었다(행 2:41)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베드로의 설교로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5천 명이나 되었다(행 4;4).
사도들로 인하여 큰 은혜가 임하고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믿는 자가 더욱 많았다(행 4:31-33, 5:12-13).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쉬지 않고 증언하며 가르쳤으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일을 분담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다(행 5:42, 6:1-6).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효가 늘어가고 수많은 제사장들도 믿음을 받아들였다(행 6:7).
율법에 골몰하던 유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았다(행 21:20).
➠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성장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로 퍼져 나갔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교회의 조직을 명하신 때로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 설립을 위임하셨다고 한다.
교회의 첫 모임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날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가진 모임이다. 이 때 모인 수를 120명이라고 하며 여러 지역-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등-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사도행전에서는 주님의 부활 후 40일 동안 주님과 제자들이 대면했으며, 제자들은 오실 성령의 약속을 기다렸다.
이렇게 출발한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폭발적이었다.
오순절에 설교의 결과로 신도수가 3천명이나 늘었다(행 2:41)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베드로의 설교로 믿는 자가 남자의 수만 5천 명이나 되었다(행 4;4).
사도들로 인하여 큰 은혜가 임하고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믿는 자가 더욱 많았다(행 4:31-33, 5:12-13).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쉬지 않고 증언하며 가르쳤으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일을 분담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다(행 5:42, 6:1-6).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효가 늘어가고 수많은 제사장들도 믿음을 받아들였다(행 6:7).
율법에 골몰하던 유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많았다(행 21:20).
➠ 이렇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성장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로 퍼져 나갔다.
2. 성공적 단계
1) 맛디아를 선출
사도교회(Apostolic Church)의 첫 번째 직분 선출 ➠ 행 1:23-26
12명의 완전한 사도모임은 배반자 유다로 인하여 깨뜨려 졌고, 베드로가 동역자의 보선을 제안했다.
첫 번째 직분 선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지시(제비 뽑기)였다.
2) 7인의 임명과 교회의 직분
직분의 필요성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헬라어를 하는 유대인들과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생긴 불화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 ➠ 왜냐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기 때문.
사도들이 이 문제를 수습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이 구제의 일을 전담할 직분자를 선출할 필요성을 느낌. - 일곱 사람의 이름으로 보아 대부분이 헬라파 사람들임
직분자의 선출
12사도가 제자들을 모아서 직분자의 필요성을 피력함 -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을 제쳐놓고 구제를 일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설명.
제자들 중에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구제의 일을 맡기기로 함.
모든 제자들이 그 일을 옳게 여겨 일곱 사람을 선정함 -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 니가노르, 디모, 바메나, 니골라
뽑힌 일곱 사람을 저스틴(Justin Martyr) 때에는 집사로 부름- 그러나 집사로 부를 근거가 부족함
이레니우스(Irenaeus) 이후부터 집사직의 근원이 제대로 교정 됨 - 이레니우스는 폴리캅(Polycarp)의 제자이며,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임. 폴리캅은 7인이 임명될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에 한 사람이었음. 폴리캅이 빌립보 교회에서 쓴 편지(116년)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서 1:1에 언급한 ‘감도과 집사’의 직분이 이미 잘 알려진 교회의 직분 중의 하나였다.
3) 사도들(Apostles)과 장로들(Presbyters)과의 관계
장로교회의 정체(政體)는 사도들과 장로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로서 사도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렇게 가르치셨으며, 자신을 낮추라고 명령하셨다. ➠ 요 13:12-15, 마 23:8-12
사도들은 섬김의 직분으로서의 교회 직분을 함께 맡을 것을 밝혔다. 사도들이 보여준 자세는 ‘함께 종 된 자(fellow-servant, 골 1:7)’ ‘같은 장로로서(fellow-elder, 벧전 5:1)’ ‘동역자(fellow-worker, 빌2:25, 몬 24)’ ‘전우(fellow-soldier 빌 2:25)’ 등이며, 이것은 장로교회 체제의 근본이다.
사도들은 장로들에게 동등한 종으로서의 사명을 내세웠다. 비록 직책은 달랐고 모든 논의를 주도했지만 사도들이 자신을 고위직이라든지 특권을 내세운 적이 없었고 모든 일을 장로와 함께 논의했다.
때로는 장로들이 사도의 대리자로서 일을 수행했지만 영속적으로 사도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 이유는 이방지역에서 단순한 관리직을 맡은 장로들이 교리적인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많은 한계점을 느꼈고, 사도들이 하던 목회를 대리할 수가 없었다.
사도들은 스스로 사도적인 사람들을 육성했다. - 바울은 마가(Makr)와 디모데(Timothy), 디도(Titus) 등을, 요한은 폴리캅(Polycarp) 등을, 그 뒤를 이은 초대교부들 파피아스(Papias), 이레니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ian), 클레멘스(Clemens) 등.
사도들은 이들에게 상임적으로 사도의 직무를 이행하는 목자(牧者)로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고 성찬을 베풀고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훈계하고 권징하고 교회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일을 맡겼다.
이 일은 후에 목사라는 직분에게 넘겨졌다.
사도교회(Apostolic Church)의 첫 번째 직분 선출 ➠ 행 1:23-26
12명의 완전한 사도모임은 배반자 유다로 인하여 깨뜨려 졌고, 베드로가 동역자의 보선을 제안했다.
첫 번째 직분 선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지시(제비 뽑기)였다.
2) 7인의 임명과 교회의 직분
직분의 필요성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헬라어를 하는 유대인들과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생긴 불화 -매일의 구제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 ➠ 왜냐하면 예루살렘 교회의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기 때문.
사도들이 이 문제를 수습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이 구제의 일을 전담할 직분자를 선출할 필요성을 느낌. - 일곱 사람의 이름으로 보아 대부분이 헬라파 사람들임
직분자의 선출
12사도가 제자들을 모아서 직분자의 필요성을 피력함 -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을 제쳐놓고 구제를 일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설명.
제자들 중에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구제의 일을 맡기기로 함.
모든 제자들이 그 일을 옳게 여겨 일곱 사람을 선정함 -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 니가노르, 디모, 바메나, 니골라
뽑힌 일곱 사람을 저스틴(Justin Martyr) 때에는 집사로 부름- 그러나 집사로 부를 근거가 부족함
이레니우스(Irenaeus) 이후부터 집사직의 근원이 제대로 교정 됨 - 이레니우스는 폴리캅(Polycarp)의 제자이며,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임. 폴리캅은 7인이 임명될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에 한 사람이었음. 폴리캅이 빌립보 교회에서 쓴 편지(116년)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서 1:1에 언급한 ‘감도과 집사’의 직분이 이미 잘 알려진 교회의 직분 중의 하나였다.
3) 사도들(Apostles)과 장로들(Presbyters)과의 관계
장로교회의 정체(政體)는 사도들과 장로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로서 사도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그렇게 가르치셨으며, 자신을 낮추라고 명령하셨다. ➠ 요 13:12-15, 마 23:8-12
사도들은 섬김의 직분으로서의 교회 직분을 함께 맡을 것을 밝혔다. 사도들이 보여준 자세는 ‘함께 종 된 자(fellow-servant, 골 1:7)’ ‘같은 장로로서(fellow-elder, 벧전 5:1)’ ‘동역자(fellow-worker, 빌2:25, 몬 24)’ ‘전우(fellow-soldier 빌 2:25)’ 등이며, 이것은 장로교회 체제의 근본이다.
사도들은 장로들에게 동등한 종으로서의 사명을 내세웠다. 비록 직책은 달랐고 모든 논의를 주도했지만 사도들이 자신을 고위직이라든지 특권을 내세운 적이 없었고 모든 일을 장로와 함께 논의했다.
때로는 장로들이 사도의 대리자로서 일을 수행했지만 영속적으로 사도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 이유는 이방지역에서 단순한 관리직을 맡은 장로들이 교리적인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많은 한계점을 느꼈고, 사도들이 하던 목회를 대리할 수가 없었다.
사도들은 스스로 사도적인 사람들을 육성했다. - 바울은 마가(Makr)와 디모데(Timothy), 디도(Titus) 등을, 요한은 폴리캅(Polycarp) 등을, 그 뒤를 이은 초대교부들 파피아스(Papias), 이레니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ian), 클레멘스(Clemens) 등.
사도들은 이들에게 상임적으로 사도의 직무를 이행하는 목자(牧者)로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고 성찬을 베풀고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훈계하고 권징하고 교회성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일을 맡겼다.
이 일은 후에 목사라는 직분에게 넘겨졌다.
3. 장로교회의 성장
신약성경에 언급된 교회를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 혹은 사도교회(Apostolic Church)라고도 한다.
신약교회를 시기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제1기와 제2기로 부른다. - 전기교회는 12사도 중심의 교회이며 이를 원시교회(Primitive Church)라고 하며, 후기교회는 사도 바울이 교회조직의 상당한 주도권을 잡은 때이며 이를 초대교회(early Church)라고도 한다.
1)바울의 선교와 장로교회 조직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이미 교회가 산재해 있었다. - 이때까지를 12사도들의 활동이라고 본다.
바울전도단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와 리카오니아의 더베까지 가면서 교회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행 14:21-23
바울이 교회의 조직이 필요한 곳에서는 교회의 조직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베드로서 등에서도 장로들은 공직자로 나타났으며, 후에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시디아 등의교회에서 지도자로 나타났다.
2) 교회에서 장로가 처음으로 공직에 임하다
사도행전 11장까지는 공직에 장로가 등장하지 않다가 11장 마지막에 장로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구제금을 받는 일이 등장한다(행 11:30). 이때부터 장로들이 사도들의 이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3) 장로들의 임명방식
장로들이 임명되기 시작한 때는 제2기이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직분자로 임명된 7인을 장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집사로 보는 사람도 있다.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회중에서 선출되어 회중에 봉사하며 경험을 쌓은 후 공직에 임하였다.
이고니아와 비시디아 교회에서의 장로임명은 바울과 바나바의 두 번째 선교여행 때였다.
개 교회에서 선택된 장로는 온 교우들에게 신뢰를 받는 자였다.
장로들은 신령한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4)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과 자격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이 일반화 된 것은 사도행전 후반기 때이다.
(1) 장로직의 영적 공직성
목회서신에서 장로에 대한 공직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언급된 것이다. 디도서에는 장로들이 모두 이방지역에서 선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유대인 회당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장로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 이들에게 “양떼를 먹이라.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해서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 며 장로의 직능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디모데전서 3:1-7은 장로가 감독(Bishop)으로 변천되었을 때 임.)
디모데전서는 디도서와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지만 거짓교리에 대한 언급으로 교회생활이 한 단계 앞서 있음을 보여주며,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조직이 더욱 진보되었음을 보여준다. - 장로는 영적인 공직으로 강조가 됨 ➠ 딤전 3:1-7
(2) 이방 기독교회의 장로직에는 다스리는 기능과 감독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었다.
제2기 사도교회의 장로직의 본질은 유대인 회당체제와 같았다. - 회당의 의식과 훈련의 책임을 맡았으며 동시에 범법자를 벌하고 권고와 추방하는 일까지 겸하였다.➠ 요 9:22, 12:42, 16:2).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성경에 개한 지식과 훈련도 쌓고 말씀과 가르치는 일도 했다(딤전 5:17).
(3) 장로는 순수 교회적 직분으로서가 아니라 순수 교리적 직분인 사도들이 중심이 된 사도교회에 보조자요 봉사자였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백성들의 권위 있는 대언자이며 대표자였고 회당에서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주도했지만 유대 종교의 순수 종교직이 아니었다. - 성전 중심의 유대종교이 순전한 종교직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었다.
신약교회 시대가 되면서 사도들이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조직하고 성장시키는데 우선적인 일은 교회의 관리나 운영이 아니라 교리적인 면이었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도들이 가졌다. 이어서 사도적인 사람들-바나바, 누가, 실라, 디모데, 디도 등 - 에게 권위가 주어졌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들의 일손이 모자랐을 때 지역적으로 시간적으로 사도들의 불가능한 자리에 장로들을 세워 대행했다. -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수고하는 일(딤전 5:17)을 겸하다가 사도시대 말기에 교회직분에 목사직이 나타난다(엡 4:11).
(4) 사도교회는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장로들과 함께 교회를 먹이고 운영했다.
사도들은 개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 사도들이 직접 임명하거나 사도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사도교회의 장로들은 새로 개종한 모든 양떼들을 감독하였고 목자의 역할을 했으며 그들을 인도하고 돌보고 관리했다.➠벧전 4:10-11, 롬 2:6-8
사도교회 말기에 교회가 점점 확장됨에 따라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도전할 때에 장로들이 앞장서서 교회를 보호하며 장로들에게 적그리스도와 이단에 대하여 가르치도록 하였다(딛 1:9)
(5) 두 종류의 장로.
사도들과 사도적 사람들의 한정된 숫자로는 성장하는 교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장로들에게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 딤전 5:17
장로들이 사도들의 일을 분담하여 가르치며 목회를 하다가 목사라는 직분에 넘겨진 것이 장로교회이다. 디모데나 디도를 사도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을 사도 직분을 계승한 목사라고 부른다. - 감독으로 넘겨준 것을 가톨릭교회라고 한다.
신약교회를 시기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제1기와 제2기로 부른다. - 전기교회는 12사도 중심의 교회이며 이를 원시교회(Primitive Church)라고 하며, 후기교회는 사도 바울이 교회조직의 상당한 주도권을 잡은 때이며 이를 초대교회(early Church)라고도 한다.
1)바울의 선교와 장로교회 조직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이미 교회가 산재해 있었다. - 이때까지를 12사도들의 활동이라고 본다.
바울전도단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와 리카오니아의 더베까지 가면서 교회는 예루살렘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행 14:21-23
바울이 교회의 조직이 필요한 곳에서는 교회의 조직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베드로서 등에서도 장로들은 공직자로 나타났으며, 후에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시디아 등의교회에서 지도자로 나타났다.
2) 교회에서 장로가 처음으로 공직에 임하다
사도행전 11장까지는 공직에 장로가 등장하지 않다가 11장 마지막에 장로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구제금을 받는 일이 등장한다(행 11:30). 이때부터 장로들이 사도들의 이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3) 장로들의 임명방식
장로들이 임명되기 시작한 때는 제2기이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직분자로 임명된 7인을 장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집사로 보는 사람도 있다.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회중에서 선출되어 회중에 봉사하며 경험을 쌓은 후 공직에 임하였다.
이고니아와 비시디아 교회에서의 장로임명은 바울과 바나바의 두 번째 선교여행 때였다.
개 교회에서 선택된 장로는 온 교우들에게 신뢰를 받는 자였다.
장로들은 신령한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4)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과 자격
장로직의 본성과 기능이 일반화 된 것은 사도행전 후반기 때이다.
(1) 장로직의 영적 공직성
목회서신에서 장로에 대한 공직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죽기 직전에 언급된 것이다. 디도서에는 장로들이 모두 이방지역에서 선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유대인 회당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장로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 이들에게 “양떼를 먹이라.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해서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 며 장로의 직능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디모데전서 3:1-7은 장로가 감독(Bishop)으로 변천되었을 때 임.)
디모데전서는 디도서와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지만 거짓교리에 대한 언급으로 교회생활이 한 단계 앞서 있음을 보여주며,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조직이 더욱 진보되었음을 보여준다. - 장로는 영적인 공직으로 강조가 됨 ➠ 딤전 3:1-7
(2) 이방 기독교회의 장로직에는 다스리는 기능과 감독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었다.
제2기 사도교회의 장로직의 본질은 유대인 회당체제와 같았다. - 회당의 의식과 훈련의 책임을 맡았으며 동시에 범법자를 벌하고 권고와 추방하는 일까지 겸하였다.➠ 요 9:22, 12:42, 16:2).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성경에 개한 지식과 훈련도 쌓고 말씀과 가르치는 일도 했다(딤전 5:17).
(3) 장로는 순수 교회적 직분으로서가 아니라 순수 교리적 직분인 사도들이 중심이 된 사도교회에 보조자요 봉사자였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백성들의 권위 있는 대언자이며 대표자였고 회당에서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주도했지만 유대 종교의 순수 종교직이 아니었다. - 성전 중심의 유대종교이 순전한 종교직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었다.
신약교회 시대가 되면서 사도들이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조직하고 성장시키는데 우선적인 일은 교회의 관리나 운영이 아니라 교리적인 면이었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도들이 가졌다. 이어서 사도적인 사람들-바나바, 누가, 실라, 디모데, 디도 등 - 에게 권위가 주어졌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이들의 일손이 모자랐을 때 지역적으로 시간적으로 사도들의 불가능한 자리에 장로들을 세워 대행했다. -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수고하는 일(딤전 5:17)을 겸하다가 사도시대 말기에 교회직분에 목사직이 나타난다(엡 4:11).
(4) 사도교회는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장로들과 함께 교회를 먹이고 운영했다.
사도들은 개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했다. - 사도들이 직접 임명하거나 사도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사도교회의 장로들은 새로 개종한 모든 양떼들을 감독하였고 목자의 역할을 했으며 그들을 인도하고 돌보고 관리했다.➠벧전 4:10-11, 롬 2:6-8
사도교회 말기에 교회가 점점 확장됨에 따라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도전할 때에 장로들이 앞장서서 교회를 보호하며 장로들에게 적그리스도와 이단에 대하여 가르치도록 하였다(딛 1:9)
(5) 두 종류의 장로.
사도들과 사도적 사람들의 한정된 숫자로는 성장하는 교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장로들에게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 딤전 5:17
장로들이 사도들의 일을 분담하여 가르치며 목회를 하다가 목사라는 직분에 넘겨진 것이 장로교회이다. 디모데나 디도를 사도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을 사도 직분을 계승한 목사라고 부른다. - 감독으로 넘겨준 것을 가톨릭교회라고 한다.
4. 목사직(牧師職)과 장로교회(長老敎會)
장로교회란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에 입각한 교회를 말한다. - 교회 정치체제가 목사와 장로가 민주적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 / 개혁교회라는 것은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타락된 본질을 갱신하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또 다른 성전체제로 환원 되어 있다시피 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인간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구로서 교회를 운영해 나갈 것을 주장했다. -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여 스스로 군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장로교회는 사도의 직무의 계승을 교황에 두지 않고 목사에게 두었다. - 목사는 제사장이나 왕처럼 세습적이 아니며 누구든지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법적으로 과정을 이수한 후에 임직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1) 사도직과 목사직의 관계
사도라는 말은 ‘아포스톨로스(άπόστολοσ)’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이며 ‘내 보내심을 받은 자’ ‘사명을 받아 파송 받은 자’라는 뜻이다. - 이 말은 히브리어 ‘샤리아(Shaliah)’에서 파생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대표자 노릇을 한다.’는 의미이다. - 히브리서 3:1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언급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대권을 받아 파송을 받았다는 뜻이다.
사도 당시의 사도의 개념은 요한의 세례이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그로부터 사명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그리스도와 모든 문제를 우선적으로 관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 사도 바울의 사도관은 성령의 은사로 이적과 기사와 권능으로 교회 설립자(조직자)의 역할을 하며 구원의 산 증거로, 교회의 주된 목회자로, 복음의 전파자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였다.
(1)사도직에 대한 두 개념
바울 서신에서의 사도관은 다분히 하나님이 부여하신 은사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조건이나 형식이나 자격 등에서 어떤 제한도 없음을 강조한다. - 하나님은 사도를 선교사로서 설교를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라고 했다. ➠ 고전 12:28, 갈 1:1, 롬 1:5, 고전 4:18-21 고후 10:8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는 다른 개념이 나타나 있다. 사도직은 예수께서 계실 때에 부르신 12명의 제자들에게만 사도직을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 눅 6:13-16
사도 바울이 말하는 카리스마틱한 은사로서의 사도직은 12제자를 넘어서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바울은 사도라기보다는 선지자로 보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사도직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능의 은사, 또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제정하신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사도 바울은 사도를 그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지만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사도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 - 바울은 자기 이전의 사도들을 인정했다. 그들이 최초의 선교사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관리자이며 지도자임을 인정했고, 그들로부터 안디옥 교회와 바울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 이로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의 개념을 받아 들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여해 주신 권위로 인정했다.
(2)사도계승론
사도계승이란 사도 당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에 감독의 성직이 사도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도들이 죽자 다음 세대들을 위한 사도들의 계속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승천의 목격자로서 그의 구원사업의 해석을 맡은 자들이 죽어갔다. 사도들의 뒤를 이을 자가 필요했다.
-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 :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감독이 계승자라고 했다. 이러한 이론이 서방교회에서 3세기경에 터툴리안과 씨프리안에 의하여 설정되었다. 즉 사도들이 감독을 그들의 후계자로 임명했고 감독은 다른 감독을 안수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독직 안에 사도직이 존립한다는 것이며 여기서만 진리와 은총이 보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께서 교회를 베드로위에 세우시고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주셨다고 하면서 베드로만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모든 교회의 대권을 주신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의 첫 번째 계승자요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모든 계승이 계승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순종하는 것은 곧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교황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어떤 특정 인간이 아니다. 다만 베드로가 고백한 것과 같은 신앙이다.
- 장로교회의 입장 : 장로교회는 사도직의 계승이 어떤 고위 성직자로 연결된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일축한다. 사도들도 교회를 다스리는 자라기보다는 교회의 기초였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행 2:4, 4:31). 배드로도 그 이상의 독점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도직 본래에 불과하다. 장로교회에서는 장로회주의로서의 사도직의 영속적인 계승을 주장한다. 사도들이 물려준 위대한 업들은 무엇인가?
※사도들의 세 가지 전통적 기여
⁍사도들이 남겨준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전통적 기여를 ‘베스티기아 트리니타스(Vestigia Trinitas)’라 한다. 첫째 사도신경, 둘째 사도정경, 셋째 사도적 목사직이라 한다.
⁍사도신경(Apostles Creed) -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4세기 말에 사도들이 각각 공헌한 논술들이 공동으로 종합된 하나의 전통적 신앙의 상징이다. 사도 바울은 구전된 내용을 전다하고 있음을 고린도전서 15:3-4절에서 밝힌다. 이 구절은 사도들의 일치된 복음의 요약이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메시지였다. 이는 이그나시우스(Ignatis)가 트라얀(Trajan, 98-117) 시대에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 고백은 주로 세례 때에 개인적으로 고백했다. 이런 고백에 대한 남용과 방임 그리고 첨가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과 같은 사도신경으로 고정시킨 것이 650년 경이다. -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요약이었다.
⁍사도정경(The Apostolic cannon of Bible) -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正經)은 사도들의 절대적 영향으로 이뤄진 것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사도들이 썼거나 사도들에게 위탁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성경은 ‘사도성경(使徒聖經)’이라 할 수 있다.
⁍사도적 목사직(Apostolic Ministry) - 사도들은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이 사도들이 한 일을 목회(牧會)라고 한다. 그들의 직무를 요약하면 ➀주님의 왕의 직무를 수행 ➁주님의 예언자적 직무 수행 ➂주님의 제사장적 직무 수행 등 세 가지의 직무를 목사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직무는 사도들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즉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이 간접적으로 불러 보낸 자들이 목사(牧師)라는 이름으로 설정된 것이다.
2) 목사직의 정립
목사직을 정립하려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소명(召命, calling)과 교회의 공무원(office bearer)으로서의 소명도 이야기해야 한다. 즉 목사직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가장 근본적이지만 또한 반드시 교회 공무원으로서의 부르심이 합당하게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업무를 공적으로 수임하는 것이다. -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사도계승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도나 목사는 신(神)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즉 하나님의 대권(大權)을 위임받은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는 봉사자이다.
※ J. Calvin은 교회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진정한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안수 받는 자가 누구며, 어떤 절차로, 누구에 의하여, 어떤 의식으로 하는가? 이는 외적으로 교회 의식의 공적인 소명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며 양심적인 소명을 말한다.”
➠ 칼빈의 교회관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아래의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 목사에 대한 어의
목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그 어원은 다음과 같다.
➀διάκονος(남,명 시중드는 사람, minister) /διάκονία(여,명 시중, 도움, service) ➁δουλος(종, servant)/ δουλεία(종살이, bondage) ➂ύπηρέτης(하속, 일군, servant, helper) /ύπηρετία ➃λάτρις /λάτρεία(하나님의 사역, 신적봉사, divine service) ➄λειτουργός(공적인 일군, 경배하는 자, minister) /λειτουργία(공적인 일, 사역, 봉사, ministry) ➅θεράπων(시중, 종, servant) / θεράπεία(수행원, 하인들, healing)
이 중에서 후페레디아와 라트리스는 70인 역의 욥기에서 왔고, 나머지는 모두 신약에서 왔다. 디아코노스는 마태와 마가와 요한 그리고 바울서신에 나타나 있으며, 복음서에서는 주로 하인(servant)이라는 뜻으로, 서신에서는 목사(Minister)로 쓰였다(단, 빌 1:1, 딤전 3:8-12절에서는 집사로) 디아코니아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살후 제외)에서는 목사직(Ministry)으로(고린도후서 3:7,8,9, 9:13절에서는 목회의 뜻으로, 고후 8:9, 9:1절에서는 구호사업(Ministering)으로, 사도행전 11:29절에서는 도움(Relief)으로, 누가복음 10:40절에는 접대(Serving)로, 계시록 2:19절에서는 봉사(Service)등으로) 나타남.
목사(Pastor)는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ήν)인데 영어로 Shepherd로 번역한다. 이 말은 ‘목자(牧者)’로 번역되지만 목사와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주 인용되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선한 목자” 히브리서에서는 “위대한 목자”로, 베드로전서 2:25절에서는 “목자와 감독”으로, 베드로전서 5:4절에서는 “목자장”으로 나타나 있다.
(2) 목사는 제사장 직인가?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개신교사 그러하듯이 장로교회에서도 만인제사설에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것을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대속제물(代贖祭物)이 되셔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은 곧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사실을 선포하는 직이다. 목사직은 제사장으로서 어떤 개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신자들을 막을 권한이 없으며, 그 어떤 개인의 인격적인 특권도 제사장이라는 명목으로 가로챌 수 없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또 다른 성전체제로 환원 되어 있다시피 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인간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구로서 교회를 운영해 나갈 것을 주장했다. -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도용하여 스스로 군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장로교회는 사도의 직무의 계승을 교황에 두지 않고 목사에게 두었다. - 목사는 제사장이나 왕처럼 세습적이 아니며 누구든지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법적으로 과정을 이수한 후에 임직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1) 사도직과 목사직의 관계
사도라는 말은 ‘아포스톨로스(άπόστολοσ)’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이며 ‘내 보내심을 받은 자’ ‘사명을 받아 파송 받은 자’라는 뜻이다. - 이 말은 히브리어 ‘샤리아(Shaliah)’에서 파생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대표자 노릇을 한다.’는 의미이다. - 히브리서 3:1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언급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대권을 받아 파송을 받았다는 뜻이다.
사도 당시의 사도의 개념은 요한의 세례이후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그로부터 사명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그리스도와 모든 문제를 우선적으로 관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 사도 바울의 사도관은 성령의 은사로 이적과 기사와 권능으로 교회 설립자(조직자)의 역할을 하며 구원의 산 증거로, 교회의 주된 목회자로, 복음의 전파자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였다.
(1)사도직에 대한 두 개념
바울 서신에서의 사도관은 다분히 하나님이 부여하신 은사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조건이나 형식이나 자격 등에서 어떤 제한도 없음을 강조한다. - 하나님은 사도를 선교사로서 설교를 하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라고 했다. ➠ 고전 12:28, 갈 1:1, 롬 1:5, 고전 4:18-21 고후 10:8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는 다른 개념이 나타나 있다. 사도직은 예수께서 계실 때에 부르신 12명의 제자들에게만 사도직을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 눅 6:13-16
사도 바울이 말하는 카리스마틱한 은사로서의 사도직은 12제자를 넘어서 보다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바울은 사도라기보다는 선지자로 보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사도직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능의 은사, 또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제정하신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사도 바울은 사도를 그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지만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사도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 - 바울은 자기 이전의 사도들을 인정했다. 그들이 최초의 선교사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관리자이며 지도자임을 인정했고, 그들로부터 안디옥 교회와 바울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 이로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의 개념을 받아 들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여해 주신 권위로 인정했다.
(2)사도계승론
사도계승이란 사도 당시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에 감독의 성직이 사도를 이어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도들이 죽자 다음 세대들을 위한 사도들의 계속성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승천의 목격자로서 그의 구원사업의 해석을 맡은 자들이 죽어갔다. 사도들의 뒤를 이을 자가 필요했다.
- 로마가톨릭교회의 입장 :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감독이 계승자라고 했다. 이러한 이론이 서방교회에서 3세기경에 터툴리안과 씨프리안에 의하여 설정되었다. 즉 사도들이 감독을 그들의 후계자로 임명했고 감독은 다른 감독을 안수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독직 안에 사도직이 존립한다는 것이며 여기서만 진리와 은총이 보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께서 교회를 베드로위에 세우시고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주셨다고 하면서 베드로만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모든 교회의 대권을 주신 것이며 그가 그리스도의 첫 번째 계승자요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모든 계승이 계승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순종하는 것은 곧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교황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어떤 특정 인간이 아니다. 다만 베드로가 고백한 것과 같은 신앙이다.
- 장로교회의 입장 : 장로교회는 사도직의 계승이 어떤 고위 성직자로 연결된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일축한다. 사도들도 교회를 다스리는 자라기보다는 교회의 기초였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독점하려 하지 않았다(행 2:4, 4:31). 배드로도 그 이상의 독점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도직 본래에 불과하다. 장로교회에서는 장로회주의로서의 사도직의 영속적인 계승을 주장한다. 사도들이 물려준 위대한 업들은 무엇인가?
※사도들의 세 가지 전통적 기여
⁍사도들이 남겨준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전통적 기여를 ‘베스티기아 트리니타스(Vestigia Trinitas)’라 한다. 첫째 사도신경, 둘째 사도정경, 셋째 사도적 목사직이라 한다.
⁍사도신경(Apostles Creed) -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4세기 말에 사도들이 각각 공헌한 논술들이 공동으로 종합된 하나의 전통적 신앙의 상징이다. 사도 바울은 구전된 내용을 전다하고 있음을 고린도전서 15:3-4절에서 밝힌다. 이 구절은 사도들의 일치된 복음의 요약이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메시지였다. 이는 이그나시우스(Ignatis)가 트라얀(Trajan, 98-117) 시대에 자주 사용했었는데 이 고백은 주로 세례 때에 개인적으로 고백했다. 이런 고백에 대한 남용과 방임 그리고 첨가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과 같은 사도신경으로 고정시킨 것이 650년 경이다. -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요약이었다.
⁍사도정경(The Apostolic cannon of Bible) -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正經)은 사도들의 절대적 영향으로 이뤄진 것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사도들이 썼거나 사도들에게 위탁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성경은 ‘사도성경(使徒聖經)’이라 할 수 있다.
⁍사도적 목사직(Apostolic Ministry) - 사도들은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이 사도들이 한 일을 목회(牧會)라고 한다. 그들의 직무를 요약하면 ➀주님의 왕의 직무를 수행 ➁주님의 예언자적 직무 수행 ➂주님의 제사장적 직무 수행 등 세 가지의 직무를 목사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직무는 사도들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즉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이 간접적으로 불러 보낸 자들이 목사(牧師)라는 이름으로 설정된 것이다.
2) 목사직의 정립
목사직을 정립하려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소명(召命, calling)과 교회의 공무원(office bearer)으로서의 소명도 이야기해야 한다. 즉 목사직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 가장 근본적이지만 또한 반드시 교회 공무원으로서의 부르심이 합당하게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업무를 공적으로 수임하는 것이다. -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사도계승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도나 목사는 신(神)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즉 하나님의 대권(大權)을 위임받은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는 봉사자이다.
※ J. Calvin은 교회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진정한 목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안수 받는 자가 누구며, 어떤 절차로, 누구에 의하여, 어떤 의식으로 하는가? 이는 외적으로 교회 의식의 공적인 소명을 말하며 다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내적이며 양심적인 소명을 말한다.”
➠ 칼빈의 교회관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아래의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 목사에 대한 어의
목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그 어원은 다음과 같다.
➀διάκονος(남,명 시중드는 사람, minister) /διάκονία(여,명 시중, 도움, service) ➁δουλος(종, servant)/ δουλεία(종살이, bondage) ➂ύπηρέτης(하속, 일군, servant, helper) /ύπηρετία ➃λάτρις /λάτρεία(하나님의 사역, 신적봉사, divine service) ➄λειτουργός(공적인 일군, 경배하는 자, minister) /λειτουργία(공적인 일, 사역, 봉사, ministry) ➅θεράπων(시중, 종, servant) / θεράπεία(수행원, 하인들, healing)
이 중에서 후페레디아와 라트리스는 70인 역의 욥기에서 왔고, 나머지는 모두 신약에서 왔다. 디아코노스는 마태와 마가와 요한 그리고 바울서신에 나타나 있으며, 복음서에서는 주로 하인(servant)이라는 뜻으로, 서신에서는 목사(Minister)로 쓰였다(단, 빌 1:1, 딤전 3:8-12절에서는 집사로) 디아코니아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살후 제외)에서는 목사직(Ministry)으로(고린도후서 3:7,8,9, 9:13절에서는 목회의 뜻으로, 고후 8:9, 9:1절에서는 구호사업(Ministering)으로, 사도행전 11:29절에서는 도움(Relief)으로, 누가복음 10:40절에는 접대(Serving)로, 계시록 2:19절에서는 봉사(Service)등으로) 나타남.
목사(Pastor)는 헬라어로 포이멘(ποιμήν)인데 영어로 Shepherd로 번역한다. 이 말은 ‘목자(牧者)’로 번역되지만 목사와 같은 의미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주 인용되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선한 목자” 히브리서에서는 “위대한 목자”로, 베드로전서 2:25절에서는 “목자와 감독”으로, 베드로전서 5:4절에서는 “목자장”으로 나타나 있다.
(2) 목사는 제사장 직인가?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개신교사 그러하듯이 장로교회에서도 만인제사설에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것을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대속제물(代贖祭物)이 되셔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직은 곧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사실을 선포하는 직이다. 목사직은 제사장으로서 어떤 개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신자들을 막을 권한이 없으며, 그 어떤 개인의 인격적인 특권도 제사장이라는 명목으로 가로챌 수 없다.
5. 목사의 안수례(按手禮)
1) 신약에 나타난 안수례
안수에 대한 신약성경의 근거는 네 곳에 나타난다. 사도행전 6:6의 12사도가 7인을 세울 때, 사도행전 13:3의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특별 임무를 부여받을 때 인데 이 안수례는 사도직의 계승이 아니라 선교여행을 위하여 교회가 특별히 엄숙한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행 14;26). 디모데전서 4:14과 디모데후서 1:6인데 디모데에게 특별한 사명을 설정할 때 다른 직분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수할 것으로 여겨진다.
➠ 안수례는 목사들만의 성례가 아니었으며, 성직자들에게 주어진 특례였다.
2)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
사도시대에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은 사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에게 행했다. 선출은 자유로웠으며 사도들이 인정하였다. 디도는 여러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딤전 1:5). 사도행전 6장에 언급된 대로 당시나 그 후에도 안수 후보자들이 선출된 것으로 보이며 이런 방법이 통용된 상식으로 보인다.
3) 안수의 외적 표증
예수님께서 교회의 여러 직분을 직접 임명하거나 안수하여 세우지 않았다. 주께서 외적인 표증으로 세우신 것은 세례와 성찬례이다. 손을 머리에 얹고 안수를 하는 것은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축복의 행위, 임직, 하나님께 봉헌으로서 사용되었다(민 27:23, 신 34:9).레위인의 봉헌에도 사용되었다(민 8:10). 주님께서도 손을 얹으시고 병을 고치셨다(막 10:13, 5:23). 사도들도 세례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렇게 했다(행 8:17, 19:6).
안수에 대한 신약성경의 근거는 네 곳에 나타난다. 사도행전 6:6의 12사도가 7인을 세울 때, 사도행전 13:3의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대표로 특별 임무를 부여받을 때 인데 이 안수례는 사도직의 계승이 아니라 선교여행을 위하여 교회가 특별히 엄숙한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행 14;26). 디모데전서 4:14과 디모데후서 1:6인데 디모데에게 특별한 사명을 설정할 때 다른 직분과 구별하기 위하여 안수할 것으로 여겨진다.
➠ 안수례는 목사들만의 성례가 아니었으며, 성직자들에게 주어진 특례였다.
2)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
사도시대에 안수 후보자들의 선출은 사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에게 행했다. 선출은 자유로웠으며 사도들이 인정하였다. 디도는 여러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딤전 1:5). 사도행전 6장에 언급된 대로 당시나 그 후에도 안수 후보자들이 선출된 것으로 보이며 이런 방법이 통용된 상식으로 보인다.
3) 안수의 외적 표증
예수님께서 교회의 여러 직분을 직접 임명하거나 안수하여 세우지 않았다. 주께서 외적인 표증으로 세우신 것은 세례와 성찬례이다. 손을 머리에 얹고 안수를 하는 것은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축복의 행위, 임직, 하나님께 봉헌으로서 사용되었다(민 27:23, 신 34:9).레위인의 봉헌에도 사용되었다(민 8:10). 주님께서도 손을 얹으시고 병을 고치셨다(막 10:13, 5:23). 사도들도 세례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렇게 했다(행 8:17, 19:6).
6.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특색
(The Form of presbeterial Church-Government)
1) 서언
중세 로마교회는 교황, 주교, 교구, 감독 등으로 구성된 고위 성직체제로 운영되었지만 장로교회는 ‘장로회적 행정기구로서의 교회정치’를 주장한다.
개혁자들이 중심이 된 개혁교회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비성경적인 교리와 행정체계를 고수하는데 대하여 반기를 들고 성경적인 교리와 교회 행정체계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장로교회는 개체 교회가 자체로 모이는 당회(Kirk-Session)와 그 지역 내에 있는 개체교회가 함께 모이는 노회(Presbytery)와 보다 큰 지역 단위로 모이는 대회(Synod)와 국가적으로 모이는 총회(General Assembly)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간다.
이런 체제는 유대인의 회당에서부터였지만 민주적인 절정은 사도들 당시였다. 사도들 간에는 장(長)이라는 개념의 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사회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단순한 민주주의 그것만의 제도가 아니다. 항상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다스리시는 그 일을 위임받은 자들이 그의 도구로서의 제도이다.
2)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모체는 장로회(Presbytery)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각종 장로교회의 행정 기구들 -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공동의회, 제직회 - 은 구약성경에 분명한 명시가 없다. 이들은 모두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장로회에서 기인된 것이다.
노회(Presbytery)라는 말은 헬라어 프레스부테리온(πρεσβυτέριον)인데 이는 디모데전서 4:14절에 바울이 언급한 것에서 나타난다. 영어번역을 보면 “with the liying on of the hands of the Presbytery(장로회)”로 되어있다.
(1) 예루살렘의 노회
예루살렘 교회는 한 교회 이상의 회중들이 모인 교회로 본다. 이를 노회의 기원으로 본다.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에 의하여 흩어지기 전후 여러 곳에서는 다수의 신자들의 모임으로 언급되어 있다(행 8:1, 1:15, 2:41,46,47, 4:4, 5:14, 6:1,7, 9:31, 12:24, 21:20).
사도행전 2장, 6장의 교리적인 논쟁을 보면 하나 이상의 회중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런 회중은 모두가 한 노회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장로들의 언급으로 보아 회당의 장로들이 대표가 되어 산헤드린을 이룬 것과 같은 성격의 모임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노회적 모임을 인정한 것이다.
(2) 에베소 노회
에베소 교회 역시 한 회중 이상의 모임으로서 노회적 성격을 띤 교회였다. 바울이 3년간이나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 아래 있는 다른 회중에게 복음을 전파했다(행 20:31-32).
3) 장로회(Presbytery)의 소생(蘇生)
교황(Pope)과 감독(Bishop)에 대해 목사(Minister)와 장로(Elder)가 교황과 감독들로 된 고위 성직체제에 대하여 목하와 장로들로 구성 된 장로회 체제로 교회행정의 체제가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장로교회이다.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이 더 이상 사도교회 또는 신약교회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행정체제를 보다 성서적으로 언급했다. - 루터는 1518년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제로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은 협의회 제도라고 했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에큐메니칼 혐의회(Eccumenical Council)를 제안했으며, 부쳐(Bucer)는 총의회(General Council)를, 멜랑흐톤(Melanchthon)읕 기독인들의 연합(Christian Union)을 칼빈(Calvin)과 함께 주장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의회정치의 개념을 지닌 교회 행정을 주장했다.
장로회 또는 장로교회라는 말을 명백히 하기는 종교개혁 이후이다. - 장로회(Presbytery)라는 단어가 영어로 문자화되기는 1573년 런던의 산디스(Sandys) 감독이 쮜리히에 있는 불링거(Bullinger)에게 쓴 글에서 “모든 교구는 그들의 노회가 있고”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얼마 후 일리(Ely)의 리차드 콕스가 그의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목사와 그의 노회”라고 표현했으며, 그 후 1610년에는 린(Rhine) 대회에서 “회중과 노회”라는 말을 사용했다.
결국 장로회라는 말은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여서 교회 일을 외논해서 진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라는 말은 1644년 죠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가 쓴 리크리미네이션스(Recriminations, 맞고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그 후 장로교회를 논할 때마다 사상적인 것을 다룰 때면 반드시 장로회주의를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신학사상 그리고 행정방침을 통틀어 장로회주의라 말한다.
4)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특색
(1)당회(Kirk - Session)
당회라는 말은 유대인 회당의 당회나 회장의 장(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교회라는 성서적 용어는 헬라어 ‘에크레시아’인데 영어의 church는 이 에크레시아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church는 헬라어 큐리아케(κυριακη)에서 나온 것이다(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데 ‘주께 속하였다, 주께 연관 되었다.’는 말로 교부들이 ‘주님의 집’으로 사용함.).- 이 말이 독일에서는 킬케(Kirche), 스코틀랜드에서는 킬크(Kirk), 영국에서는 Church로 사용됨 - 현재도 스코틀랜드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당회는 장로교회에서의 가장 아래의 행정기구로서 개 교회에 국한한 교회의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관장한다. - 당회는 안수를 받고 취임을 한 목사와 치리권을 가진 장로들로 구성되며, 당회의 의장은 반드시 목사가 된다.
당회가 행하는 세 가지 일은 ①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 ②훈련시키는 일, ③봉헌하는 일이다. 이것을 ‘첫 번째 훈련교서’(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규범)에서 교리는 목사가. 훈련은 장로가, 봉헌은 집사가 하는 것으로 밝혔다.
(2) 노회(Presbytery)
장로교회의 모든 행정체계의 원천은 노회로부터 출발한다. 아래로는 당회가 있고 위로는 총회가 있다.
장로회는 해당지역 내에 있는 모든 목사들과 개 교회에서 치리권을 가진 총대 한 사람의 장로로 구성된다(우리나라에서는 개 교회에서 한 사람이 아닌 교인숫자에 비례하여 총대 수가 결정 됨).
노회는 목사들 중에서 한 사람을 의장으로 선출하며, 목사는 노회에 당연직으로 회원이 되며 장로는 개 교회가 총대로 선출하여 파송한 사람만 총대가 된다.
(3) 대회(Synod)
대회는 노회의 상회기관이다. 이 대회는 프랑스 장로교회에서 처음 유래된 것이며, 노회와 총회 사이의 모임으로서 노회보다는 크고 총회보다는 작으며, 총회까지 가기 전에 모이는 모임이며 노회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는 교회 대법원을 총회에 두지 않고 대회에 둔다.
통상적으로 노회는 5개 교회 이상으로, 대회는 3개 노회 이상으로 하며, 대회는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
(4) 총회(The General Assembly)
총회는 당회나 노회 그리고 대회의 최 상회 기관으로서 전 교회의 재판소를 대표한다. - 노회나 대회에서 소집된 자료들에 의하여 거기에서 상정되는 청원들을 다루는 최고의 기관으로 최종 결정을 한다.
총회는 모든 교회와 목사들의 견책권과 탄핵권도 가지고 있으며 총회 신학교를 관리하며 교회의 신앙문제에 대한 최고의 해결권을 가지고 있다. - 재판, 중재, 해석, 지시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총회의 총대는 “목사들과 그밖에 적합한 사람들”로 구성되며 그들과 함께 종교적인 문제들을 상의하고 충고한다고 했으며, 목사가 직권으로 총회의 의장이 되나 그가 교회의 적(適)일 때는 총대인 다른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총대선거 -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목사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4명당 1명, 장로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6명당 1명을. 미국 장로교회는 목사 12-24명에서 목사 장로를 동수로 1인씩
총회는 1년에 한 번 모이며, 총회의 임원과 총대의 임기는 1년이다.
중세 로마교회는 교황, 주교, 교구, 감독 등으로 구성된 고위 성직체제로 운영되었지만 장로교회는 ‘장로회적 행정기구로서의 교회정치’를 주장한다.
개혁자들이 중심이 된 개혁교회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비성경적인 교리와 행정체계를 고수하는데 대하여 반기를 들고 성경적인 교리와 교회 행정체계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장로교회는 개체 교회가 자체로 모이는 당회(Kirk-Session)와 그 지역 내에 있는 개체교회가 함께 모이는 노회(Presbytery)와 보다 큰 지역 단위로 모이는 대회(Synod)와 국가적으로 모이는 총회(General Assembly)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간다.
이런 체제는 유대인의 회당에서부터였지만 민주적인 절정은 사도들 당시였다. 사도들 간에는 장(長)이라는 개념의 체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사회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단순한 민주주의 그것만의 제도가 아니다. 항상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다스리시는 그 일을 위임받은 자들이 그의 도구로서의 제도이다.
2)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모체는 장로회(Presbytery)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각종 장로교회의 행정 기구들 -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공동의회, 제직회 - 은 구약성경에 분명한 명시가 없다. 이들은 모두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장로회에서 기인된 것이다.
노회(Presbytery)라는 말은 헬라어 프레스부테리온(πρεσβυτέριον)인데 이는 디모데전서 4:14절에 바울이 언급한 것에서 나타난다. 영어번역을 보면 “with the liying on of the hands of the Presbytery(장로회)”로 되어있다.
(1) 예루살렘의 노회
예루살렘 교회는 한 교회 이상의 회중들이 모인 교회로 본다. 이를 노회의 기원으로 본다.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에 의하여 흩어지기 전후 여러 곳에서는 다수의 신자들의 모임으로 언급되어 있다(행 8:1, 1:15, 2:41,46,47, 4:4, 5:14, 6:1,7, 9:31, 12:24, 21:20).
사도행전 2장, 6장의 교리적인 논쟁을 보면 하나 이상의 회중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런 회중은 모두가 한 노회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장로들의 언급으로 보아 회당의 장로들이 대표가 되어 산헤드린을 이룬 것과 같은 성격의 모임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노회적 모임을 인정한 것이다.
(2) 에베소 노회
에베소 교회 역시 한 회중 이상의 모임으로서 노회적 성격을 띤 교회였다. 바울이 3년간이나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 아래 있는 다른 회중에게 복음을 전파했다(행 20:31-32).
3) 장로회(Presbytery)의 소생(蘇生)
교황(Pope)과 감독(Bishop)에 대해 목사(Minister)와 장로(Elder)가 교황과 감독들로 된 고위 성직체제에 대하여 목하와 장로들로 구성 된 장로회 체제로 교회행정의 체제가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장로교회이다.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이 더 이상 사도교회 또는 신약교회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교회의 행정체제를 보다 성서적으로 언급했다. - 루터는 1518년 그리스도 안에서의 실제로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은 협의회 제도라고 했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에큐메니칼 혐의회(Eccumenical Council)를 제안했으며, 부쳐(Bucer)는 총의회(General Council)를, 멜랑흐톤(Melanchthon)읕 기독인들의 연합(Christian Union)을 칼빈(Calvin)과 함께 주장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의회정치의 개념을 지닌 교회 행정을 주장했다.
장로회 또는 장로교회라는 말을 명백히 하기는 종교개혁 이후이다. - 장로회(Presbytery)라는 단어가 영어로 문자화되기는 1573년 런던의 산디스(Sandys) 감독이 쮜리히에 있는 불링거(Bullinger)에게 쓴 글에서 “모든 교구는 그들의 노회가 있고”라는 표현에서 나타난다. 얼마 후 일리(Ely)의 리차드 콕스가 그의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목사와 그의 노회”라고 표현했으며, 그 후 1610년에는 린(Rhine) 대회에서 “회중과 노회”라는 말을 사용했다.
결국 장로회라는 말은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여서 교회 일을 외논해서 진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라는 말은 1644년 죠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가 쓴 리크리미네이션스(Recriminations, 맞고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그 후 장로교회를 논할 때마다 사상적인 것을 다룰 때면 반드시 장로회주의를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신학사상 그리고 행정방침을 통틀어 장로회주의라 말한다.
4) 장로교회 행정기구의 특색
(1)당회(Kirk - Session)
당회라는 말은 유대인 회당의 당회나 회장의 장(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교회라는 성서적 용어는 헬라어 ‘에크레시아’인데 영어의 church는 이 에크레시아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church는 헬라어 큐리아케(κυριακη)에서 나온 것이다(신약에서 두 번 나오는데 ‘주께 속하였다, 주께 연관 되었다.’는 말로 교부들이 ‘주님의 집’으로 사용함.).- 이 말이 독일에서는 킬케(Kirche), 스코틀랜드에서는 킬크(Kirk), 영국에서는 Church로 사용됨 - 현재도 스코틀랜드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당회는 장로교회에서의 가장 아래의 행정기구로서 개 교회에 국한한 교회의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관장한다. - 당회는 안수를 받고 취임을 한 목사와 치리권을 가진 장로들로 구성되며, 당회의 의장은 반드시 목사가 된다.
당회가 행하는 세 가지 일은 ①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 ②훈련시키는 일, ③봉헌하는 일이다. 이것을 ‘첫 번째 훈련교서’(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규범)에서 교리는 목사가. 훈련은 장로가, 봉헌은 집사가 하는 것으로 밝혔다.
(2) 노회(Presbytery)
장로교회의 모든 행정체계의 원천은 노회로부터 출발한다. 아래로는 당회가 있고 위로는 총회가 있다.
장로회는 해당지역 내에 있는 모든 목사들과 개 교회에서 치리권을 가진 총대 한 사람의 장로로 구성된다(우리나라에서는 개 교회에서 한 사람이 아닌 교인숫자에 비례하여 총대 수가 결정 됨).
노회는 목사들 중에서 한 사람을 의장으로 선출하며, 목사는 노회에 당연직으로 회원이 되며 장로는 개 교회가 총대로 선출하여 파송한 사람만 총대가 된다.
(3) 대회(Synod)
대회는 노회의 상회기관이다. 이 대회는 프랑스 장로교회에서 처음 유래된 것이며, 노회와 총회 사이의 모임으로서 노회보다는 크고 총회보다는 작으며, 총회까지 가기 전에 모이는 모임이며 노회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는 교회 대법원을 총회에 두지 않고 대회에 둔다.
통상적으로 노회는 5개 교회 이상으로, 대회는 3개 노회 이상으로 하며, 대회는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
(4) 총회(The General Assembly)
총회는 당회나 노회 그리고 대회의 최 상회 기관으로서 전 교회의 재판소를 대표한다. - 노회나 대회에서 소집된 자료들에 의하여 거기에서 상정되는 청원들을 다루는 최고의 기관으로 최종 결정을 한다.
총회는 모든 교회와 목사들의 견책권과 탄핵권도 가지고 있으며 총회 신학교를 관리하며 교회의 신앙문제에 대한 최고의 해결권을 가지고 있다. - 재판, 중재, 해석, 지시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총회의 총대는 “목사들과 그밖에 적합한 사람들”로 구성되며 그들과 함께 종교적인 문제들을 상의하고 충고한다고 했으며, 목사가 직권으로 총회의 의장이 되나 그가 교회의 적(適)일 때는 총대인 다른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총대선거 -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목사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4명당 1명, 장로 총대는 각 노회에서 목사 6명당 1명을. 미국 장로교회는 목사 12-24명에서 목사 장로를 동수로 1인씩
총회는 1년에 한 번 모이며, 총회의 임원과 총대의 임기는 1년이다.
7. 장로교회와 관계 깊은 신앙고백과 신조
장로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신조와 신앙고백 그리고 요리문답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사도신경(使徒信經)은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영감 아래서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 아마도 사도신경의 권위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사도신경은 100년경을 전후하여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형성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 사도신경의 족보는 정확하지 않다. 215년경 ‘히폴리투스의 사도적 전통의 질문의 신조’에 내용이 보존되어 있다. 그후 340년경 안씨라(Ancyra)의 감독 말세루스(Marcellus)가 그의 교구로부터 추방당하여 로마에서 2년 여를 보내면서 로마 감독 줄리우스에게 수교한 그의 신조에 언급됨. 그리고 404년에 아퀼레아의 신부 루피누스가 자신의 주석에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신앙의 척도로 만들어 준 로마 신조와 비교하여 사도신경을 로마교회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형태가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6-7세기 중 프랑스 남서 지방에서 확정된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일명 ‘6세기의 프랑스인의 고백’이라고도 한다.
2) 니케아 신조(Nicea Creed)
니케아 신조는 니케아에서 있었던 325년 교회 협의회에서 아리안(Arian) 이단에 대항한 정통성과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포한 신조이다. - 아리우스는 말씀과 아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 했다.
니케아 신조는 주(主)를 ‘아버지의 본질로서’, ‘진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가 낳은 창조물이 아닌 아버지와 한 실재’ 등의 문구가 사용되었는데, ‘아버지와 한 실재’라는 말이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이 신조를 ‘318명의 교부들의 신조’라고도 한다. - 니케아 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의 숫자임.
3)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Scots Confession)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는 1560년 8월 중에 4일간 준비된 것으로서 그들의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고백서이다. - 존 낙스(John Knox)가 중심이 되어 6명의 존(John)이 고백서에 기여했다. 당시의 여러 고백서를 참조했지만 1559년 파리 교회에서 결정된 프랑스 고백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의회가 결정했지만 여왕(Mary)이 승인하지 않아 1567년까지 공적인 고백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왕이 폐위된 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결정되기 1647년까지 스코틀랜드 고백서의 비중이 컸다가 후에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로 대체되었다.
바른 성례전의 집행 - 바른 성례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합법적인 목사가 이를 집례 한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이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하여 임명된 자들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할 권능을 주신 자들로서 합법적으로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둘째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요소와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다른 요소나 방법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을 그르치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의 성례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목사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본질을 저버리고 그들 나름대로 첨가시킨 성례이기 때문이다.
4) 제2 스위스(Helvetic -스위스 신교도) 신앙고백서
스위스 교회는 두 개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스위스인 신앙고백서는 1536년 루터파와 쯔빙글리 파가 칼빈주의가 전파되기 전에 화해를 시도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졌다.
제2의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칼빈 사상이 스위스는 물론 독일 일부, 프랑스, 스코틀랜드, 헝가리, 폴란드, 네델란드, 일글랜드 등지에서 각광을 받자 이에 부응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후 채용되었다.
이 신앙고백서는 개력신학이 무르익을 때 나온 것으로서 매우 정중하며 1560년의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와 유사점을 가졌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정밀성을 가지고 있다. 예배, 교회 법규 특히 목사직에 대해서는 어느 신앙고백서보다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개혁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이 신앙고백서는 1643년 7월 1일에 열려 1649년 2월 22일에 폐막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3년간(1643-46) 작성된 칼빈 사상의 대표적 신조로서 모든 장로교회의 표준 신조가 되었다. - 이 총회의 특성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대학 부속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것으로 순수 교회적 모임의 성격은 없이 국회에 의하여 소집된 협의회의 성격을 띠었다. 이때 스코틀랜드 교회가 위원을 보낼 것을 요청하여 목사 4인과 장로 2인을 임명했다. 이 총회가 모였던 당시 잉글랜드의 배경은 찰스 1세와 그의 신하들 간의 정치적 긴장 하에 청교도(Puritans)들이 영국 국교회의 신앙고백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며 보다 순순한 종교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장로교회가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의 신앙고백이 재조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북잉글랜드로 침략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찰스 왕에게 국회가 소집되기를 강요했으나 찰스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1642년 시민전쟁이 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교회를 위하여 가장 적당한 신조를 만들기 위해 웨스터민스터 총회를 소집했다. 이때 모인 대의원들은 잉글랜드 목사 121인, 평신도 30인, 스코틀랜드 목사 4인과 평신도 2인이었는데 시민전쟁으로 인하여 35명의 대의원이 불참했다.
이 총회에서 작성된 신조들의 중요 내용
(1)신앙고백서 - 전장 33장은 한 마디로 칼빈주의나 다름없다.
사도신경(使徒信經)은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는 날 성령의 영감 아래서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 아마도 사도신경의 권위를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사도신경은 100년경을 전후하여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형성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 사도신경의 족보는 정확하지 않다. 215년경 ‘히폴리투스의 사도적 전통의 질문의 신조’에 내용이 보존되어 있다. 그후 340년경 안씨라(Ancyra)의 감독 말세루스(Marcellus)가 그의 교구로부터 추방당하여 로마에서 2년 여를 보내면서 로마 감독 줄리우스에게 수교한 그의 신조에 언급됨. 그리고 404년에 아퀼레아의 신부 루피누스가 자신의 주석에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신앙의 척도로 만들어 준 로마 신조와 비교하여 사도신경을 로마교회에서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형태가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6-7세기 중 프랑스 남서 지방에서 확정된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일명 ‘6세기의 프랑스인의 고백’이라고도 한다.
2) 니케아 신조(Nicea Creed)
니케아 신조는 니케아에서 있었던 325년 교회 협의회에서 아리안(Arian) 이단에 대항한 정통성과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포한 신조이다. - 아리우스는 말씀과 아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 했다.
니케아 신조는 주(主)를 ‘아버지의 본질로서’, ‘진정한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가 낳은 창조물이 아닌 아버지와 한 실재’ 등의 문구가 사용되었는데, ‘아버지와 한 실재’라는 말이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이 신조를 ‘318명의 교부들의 신조’라고도 한다. - 니케아 회의에 참석한 교부들의 숫자임.
3)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Scots Confession)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는 1560년 8월 중에 4일간 준비된 것으로서 그들의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고백서이다. - 존 낙스(John Knox)가 중심이 되어 6명의 존(John)이 고백서에 기여했다. 당시의 여러 고백서를 참조했지만 1559년 파리 교회에서 결정된 프랑스 고백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의회가 결정했지만 여왕(Mary)이 승인하지 않아 1567년까지 공적인 고백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왕이 폐위된 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결정되기 1647년까지 스코틀랜드 고백서의 비중이 컸다가 후에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로 대체되었다.
바른 성례전의 집행 - 바른 성례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합법적인 목사가 이를 집례 한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이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위하여 임명된 자들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할 권능을 주신 자들로서 합법적으로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둘째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요소와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다른 요소나 방법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을 그르치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의 성례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의 목사들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본질을 저버리고 그들 나름대로 첨가시킨 성례이기 때문이다.
4) 제2 스위스(Helvetic -스위스 신교도) 신앙고백서
스위스 교회는 두 개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스위스인 신앙고백서는 1536년 루터파와 쯔빙글리 파가 칼빈주의가 전파되기 전에 화해를 시도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졌다.
제2의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칼빈 사상이 스위스는 물론 독일 일부, 프랑스, 스코틀랜드, 헝가리, 폴란드, 네델란드, 일글랜드 등지에서 각광을 받자 이에 부응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후 채용되었다.
이 신앙고백서는 개력신학이 무르익을 때 나온 것으로서 매우 정중하며 1560년의 스코틀랜드인 신앙고백서와 유사점을 가졌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정밀성을 가지고 있다. 예배, 교회 법규 특히 목사직에 대해서는 어느 신앙고백서보다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개혁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이 신앙고백서는 1643년 7월 1일에 열려 1649년 2월 22일에 폐막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3년간(1643-46) 작성된 칼빈 사상의 대표적 신조로서 모든 장로교회의 표준 신조가 되었다. - 이 총회의 특성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대학 부속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것으로 순수 교회적 모임의 성격은 없이 국회에 의하여 소집된 협의회의 성격을 띠었다. 이때 스코틀랜드 교회가 위원을 보낼 것을 요청하여 목사 4인과 장로 2인을 임명했다. 이 총회가 모였던 당시 잉글랜드의 배경은 찰스 1세와 그의 신하들 간의 정치적 긴장 하에 청교도(Puritans)들이 영국 국교회의 신앙고백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며 보다 순순한 종교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데 있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장로교회가 장악하고 있어서 그들의 신앙고백이 재조정되는 것을 거부했다. 북잉글랜드로 침략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찰스 왕에게 국회가 소집되기를 강요했으나 찰스 왕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1642년 시민전쟁이 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교회를 위하여 가장 적당한 신조를 만들기 위해 웨스터민스터 총회를 소집했다. 이때 모인 대의원들은 잉글랜드 목사 121인, 평신도 30인, 스코틀랜드 목사 4인과 평신도 2인이었는데 시민전쟁으로 인하여 35명의 대의원이 불참했다.
이 총회에서 작성된 신조들의 중요 내용
(1)신앙고백서 - 전장 33장은 한 마디로 칼빈주의나 다름없다.
1.성서 2.하나님과 삼위일체 3.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의 4. 창조 5. 섭리 6.인간의 타락 7.하나님과 인간의 약속 8.중보자 그리스도 9.자유의지 10.효과적 소명 11.정의 12.양자 13.성화 14.구원에 이르는 믿음 15.회개의 삶 16.선행 17.성도의 궁극구제 18.구원과 은혜 보증 19 하나님의 법 20.기독교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21.예배 22.안식일 합법적 서약 23.시정. 24.결혼과 이혼 25.교회 26.성도의 교정 27.성례 28.세례 29.성찬 30.권징 31.대회와 협의회 32.죽은 후의 인간과 죽음에서의 부활 33.최후 심판
※이 신앙고백서가 언급하지 않은 두 가지가 성령론과 선교론인데 이는 미국 신앙고백에서 첨가 됨
(2)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과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예부터 교육을 목적으로 편찬된 교리를 문답으로 사용하여왔는데 칼빈은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여 교리를 문답식으로 정립하였다. 이를 스코틀랜드교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했는데 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회부했다. - 대요리문답은 196개의 물음과 답. 소요리문답은 107개의 물음과 답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문답서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므로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1958년에 이어 1967년 그들의 신앙고백서와 함께 소요리문답서를 채용했다.
(3)예배지침서
이 지침서 안에는 회중집회와 공중예배의 모범, 성서봉독, 설교 전 기도, 설교, 설교 후 기도, 성례전 집례, 세례성찬, 주일성화, 결혼의 중대성, 병자방문, 장례, 금식, 감사, 시편찬양 등으로 구성됨.
(4)장로회적 행정기구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결정한 교회행정 체제는 제목 그대로 장로교회적 체제이다. 이때 결정한 장로회 행정기구의 형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교회 2)교회직원 3)목사 4)교사와 박사 5)다른 치리자 6)집사 7)특수한 회중 8)특수회중의 직원 9)특수한 회중 인도순서 10)각종 모임의 행정기구 11)각종 모임의 일반적 권위 12) 특별 회중의 운영 13)노회 14)대회 및 총회 15)목사 안수 16)안수의 교리 17)안수의 권위 18)목사 안수의 교리적 근거 19)목사 안수를 위한 지침 20)각종 고시를 위한 법규
이 총회에는 도르트(Dort) 대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신앙고백과 신조가 함께 반영되어 그야말로 세계적인 신앙고백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마다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 신조는 모든 장로교회에서는 물론 장로교적인 개신 교회에서 받아들였고 그들의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다. 1677년의 침례교 신조, 1688년의 런던 신앙고백서, 1742년의 필라델피아 신앙고백서, 1967년 미국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의 근본이 되었다.
※1967년 신앙고백서 - 이 신앙고백은 미국 사회가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두이(Edward A. Doway) 교수가 의장이 되어 미연합 장로교회의 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고백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와 교회의 사명과 화해의 성취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2)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과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예부터 교육을 목적으로 편찬된 교리를 문답으로 사용하여왔는데 칼빈은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여 교리를 문답식으로 정립하였다. 이를 스코틀랜드교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했는데 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회부했다. - 대요리문답은 196개의 물음과 답. 소요리문답은 107개의 물음과 답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문답서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므로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1958년에 이어 1967년 그들의 신앙고백서와 함께 소요리문답서를 채용했다.
(3)예배지침서
이 지침서 안에는 회중집회와 공중예배의 모범, 성서봉독, 설교 전 기도, 설교, 설교 후 기도, 성례전 집례, 세례성찬, 주일성화, 결혼의 중대성, 병자방문, 장례, 금식, 감사, 시편찬양 등으로 구성됨.
(4)장로회적 행정기구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결정한 교회행정 체제는 제목 그대로 장로교회적 체제이다. 이때 결정한 장로회 행정기구의 형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교회 2)교회직원 3)목사 4)교사와 박사 5)다른 치리자 6)집사 7)특수한 회중 8)특수회중의 직원 9)특수한 회중 인도순서 10)각종 모임의 행정기구 11)각종 모임의 일반적 권위 12) 특별 회중의 운영 13)노회 14)대회 및 총회 15)목사 안수 16)안수의 교리 17)안수의 권위 18)목사 안수의 교리적 근거 19)목사 안수를 위한 지침 20)각종 고시를 위한 법규
이 총회에는 도르트(Dort) 대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신앙고백과 신조가 함께 반영되어 그야말로 세계적인 신앙고백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마다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 신조는 모든 장로교회에서는 물론 장로교적인 개신 교회에서 받아들였고 그들의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다. 1677년의 침례교 신조, 1688년의 런던 신앙고백서, 1742년의 필라델피아 신앙고백서, 1967년 미국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의 근본이 되었다.
※1967년 신앙고백서 - 이 신앙고백은 미국 사회가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두이(Edward A. Doway) 교수가 의장이 되어 미연합 장로교회의 위원회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고백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와 교회의 사명과 화해의 성취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