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성경공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물음3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109회 작성일 2000-11-06 21:26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물음 3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바를 알겠습니까?(요13:12)

※ 말씀의 뿌리 : 요한복음 13:1-17절
※ 말씀의 줄기 : 섬김의 주와 그의 제자들과의 관계
※ 말씀을 헤아림

1.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이 장면이 공관 복음에서는 수난과 성찬식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2. 주님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1,3)?
3. 주님은 그러한 '자기 생 이해'와 더불어 무엇으로 자신의 생을 채워가셨습니까(4-5)?
4.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기이한 행동 앞에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6)?

※ 말씀 앞에 섬

1. 요한은 유월절 전날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권고이자 마지막 행동을 오늘 본문을 통해 전해 주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요한은 공관 복음서의 성만찬 때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을 설명해 주는 말들을 생략하고, 대신 발을 씻기시는 사건을 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난과 성찬에서 일어날 일을 설명하시고 또 미리 실행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섬김과 나눔인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도, 주님의 십자가도, 모두 이 세상에 섬김과 나눔을 실현하시려는 목적 아래 수행되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을 바라봅시다. 섬김이라는 그 신비로운 역사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합니까?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움직임은 어떠합니까?!

2.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자기의 때가 온 것을 아시고"(1,3):주님은 자신의 삶을, 즉 자신의 행위와 수난의 근원과 목표를 세상 사건과 연관지어 생각지 않고,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소화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이 관계에서 주님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남은 일을 생각하십니다(1,4).
이러한 삶은 마지막 시대에서 오늘을 사는 자세입니다. 즉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조명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생을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3. 주님은 그렇게 자기의 삶을 이해하시고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 요한은 주님의 사랑에서 우러나온 겸손과 섬김의 행동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 주고 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죽음이 코끝에 다가와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분은 사랑을 '하신다!' 사람이 약해지면, 받을 생각을 하지 줄 생각을 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쇠약해지면, 다 남을 의지하려 하지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베풂의 자리'에 서십니다. 1절 하반부에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완벽하게, 그 生命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사랑했다' 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그 사랑의 표현을 발씻음으로 나타내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완전히 알면서도 제자들을 상대로 노예가 하는 수치스런 행위를 스스로 하십니다. 저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으신 것입니다. 발씻음으로 묘사된 주님의 봉사, 섬김, 사랑--- 그것은 저들을 '깨끗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5:3).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깨끗케 함은 당신의 희생의 피로서 저들을 죄에서 정결케 함을 의미합니다(1:29, 19:34). 주님의 이 행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하는 신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그분의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의 모범입니다. 이 세상의 사랑의 종류도 많지만, 그분의 사랑은 죄많은 인생들을 죄악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행위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입니다. 저들을 '깨끗케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죄악 가운데 뒹굴던 인생들이 그 삶을 청산하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변화될 때, 우리의 사랑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행동은 좌표와 방향이 파악된 후의 움직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기 이해'가 자신을 어떠한 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까?
나의 섬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추상적인 이름씨'로 받는가, 아니면 '구체적인 움직씨'로 받습니까?

4. 이 기이한 주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은 베드로는 당황 중에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 그에게 그러한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삶과 人格을 인간적으로 판단할 때, 우리에게 그분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한 겉모양을 보고 판단할 때(8:15, 7:24) 그분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자신을 낮추어 자신의 사람들을 시중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그것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듭 항의합니다.
--"아닙니다. 제 발은 절대로 못 씻기십니다."(8) 베드로는 구원의 행위를 비천함 속에서, 하나님을 종의 모습 속에서 보기를 거부합니다. 는 육에 의해서(8:35), 외모에 의해서(7:24)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비천에서, 하나님을 종의 모습에서 보지 않으려는 자연인 본연의 경향성을 베드로는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거부하며 항의하는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행하는 일을 지금은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리라". 이 사역의 의미를 지금이 아닌 후에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후에'라는 말은 '막연한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닌, '확정된 미래'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이해할 때에만 이 예수의 행위의 뜻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말이며, 주님의 부활 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저들은 이 사역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게 된다"(8). 이 말씀은 예수의 죽음의 헌신이 자기에게서 일어나도록 허락하는 사람은 그분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씻김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고, 오로지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결합될 수 있고, 영광에 이르는 그 길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계시는 그곳에 이를 수 있는 제자 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 주님의 봉사를 즐겨 받아야 함에 있다는 말씀입니다(요12:26).
이에 베드로는 이것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주님, 그러시다면---"(9절). 그러나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이제 반대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그는 이미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물은 유일한 것이고 현재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보다 많고 적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발씻김을 받음으로서 나와 하나 된 자는 그 이상 다른 정결이 필요 없느니라"(10).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온전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행동 자체가 인간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15:3). 물로 씻는 것 자체가 마치 종교적인 은혜를 입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깨끗함을 받는 것은 발을 씻김에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여러분은 복됩니다"(17). 주님은 앎이 행동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앎(Gnosis)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분(말씀)이 몸이 되셨듯이 우리 또한 말씀을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는 바와 행하는 바의 상관관계'를 헤아려 봅시다. 모르고 행할 때의 문제와 알면서 행치 않을 때의 문제는 각각 무엇입니까? (눅12:47-48)

※ 새김질을 위한 도움글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무심히 번진다
(곽 노 순)

꽃향기가 바람에 무심히 번진다.
또 동물들이 내쉰 가스를 들이마시고
대신 신선한 산소를 토해 낸다.
이것이 전도요 봉사다.
나무의 됨됨이 그저 그렇게 할뿐이다.

밤이 되어 머리 위의 별들과 속삭이고
또 끊임없이 땅 속의 물과 하늘의 태양을 마시고 있다.
이것이 기도요 말씀을 먹는 것이다.
기운이 날로 왕성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나뭇잎들은 아픈 듯이 물들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되며
환희의 열매는 소리 없이 가지를 떠나 대지의 품에 안긴다.
이것이 창조주가 설계한 인생의 결실이다.


※ 말씀을 몸으로 살기 위한 삶과의 엮음(부별 나눔의 자리)

※ 다음 자리 마련: 여러분은 왜 겁냅니까? 아직도 믿음을 갖지 못합니까(막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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