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물음2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897회
작성일
2000-11-06 21:25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물음 2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마태9:28)
※ 말씀의 뿌리 : 마태복음 9:27-31절
※ 말씀의 줄기 : 두 소경의 신앙
※ 말씀을 헤아림
1. 길가는 주님과 그럼에도 계속 그분을 부르며 뒤쫓아가는 두 소경의 상황을 묵상해 보십시오(26-28절)?
2. "내가 능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는 주님의 물음에 소경들은 뭐라 대답하나요(28-30절)?
3. 이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이 고침 받은 두 소경에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무엇 인가요(30절)?
※ 말씀 앞에 섬
1. "예수께서 지나가시는데" 구약에 보면. '야웨의 지나가심'은 두 가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과 〈심판〉입니다(출12:12-13). 그 지나가시는 길을 소경 두 사람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면서 따라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디매오의 경우와는 달리(거기서는 예수께서 멈추어 서셨다) 그들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은 체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십니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지 않으시고 그냥 지나가심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분은 모두를 동일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 내치는 걸음은 '저들의 신앙에 대한 시험'이라고도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군중들의 오해를 막고자', 또는 '사람의 눈을 피해 저들을 고치고자'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30).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경들의 태도입니다. 저들은 예수를 볼 수도 없고, 그 가는 방향을 볼 수도 없어, 그저 그분의 발자국 소리만을 따라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을 따라갑니다! 저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의 외침을 들으시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보이시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시는데도 결코 당황하지 아니합니다. 저들은 쉬지 않고 외쳐 댈 뿐입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 고백은 곧 메시야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고 권세 없는 사람들이 그분의 비밀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이 소경들은 저들 내부에 빛을 지니고 있어 그 빛 가운데서 예수께서 다름 아닌 '오실 그 분'임을 깨닫습니다. "눈 먼 사람은 보나 눈 뜬 사람은 보지 못하는"(요20:29)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그분에 대한 두 소경의 믿음의 자세와 나의 믿음의 자세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분이 침묵하시고 내게로가 아니라 나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가고 계시는 것 같은 때에도 나의 간구를 되풀이하며 그분을 따라갑니까?
2.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지닌 고통으로 말미암아, 시작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고통은 도리어 신앙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물음은 시작 단계의 저들의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음으로써, 그분의 치유의 능력이 저들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부로부터 나와 두 귀로들을 수 있는 고백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 것입니다(롬10:10). 그럴 때 주님의 선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은 대로 여러분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또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안고, 이 물음 앞에 서 보십시오. 정말, 삶을 위협하는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까?!
3.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십니다. 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 경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의 계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신들의 그런 인간적인 방식으로 알리지 마시오! 나의 비밀을 당신들이 제멋대로 세운 메시아 계획안에 집어넣지 마시오. 당신들의 메시아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방법과 시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이요."
소경의 치유는 구약 성경에서 대단히 큰 메시아적 표징입니다(사35:5). 바로 이 시간이 지금 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메시아 사역의 전부는 아닙니다. 때문에 이 치유의 사건이 메시아 사역의 전부인 양 오해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참 메시아 사역이 무엇인지, 그것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어디인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고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님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소문은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되는 분이십니다. 오늘 나의 체험 바깥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얼마나 인정하고 있습니까?
※ 새김질을 위한 도움글
陽 地
(최 재 명)
양지 짝에 앉으면
인생이 한결 따뜻해 온다.
어렸을 땐 헐벗고 배고파도
항상 즐겁던 양지
나는 혼자
오랫동안 그늘로 쫓기어 왔다.
여수는 절로
녹아 나리고
차라리 울 수도 없는
이 막다른 골목에서
눈부신 햇빛만이
옛날의 인정이었다.
외로운 이여 오라
------------
와서 잠깐 해바라기하며
쉬어서 가자.
이렇게 양지 짝에 앉으면
세상이 행결 정다워 진다.
※ 말씀을 몸으로 살기 위한 삶과의 엮음(부별 나눔의 자리)
※ 다음 자리 마련: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바를 알겠습니까?(요13:12)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마태9:28)
※ 말씀의 뿌리 : 마태복음 9:27-31절
※ 말씀의 줄기 : 두 소경의 신앙
※ 말씀을 헤아림
1. 길가는 주님과 그럼에도 계속 그분을 부르며 뒤쫓아가는 두 소경의 상황을 묵상해 보십시오(26-28절)?
2. "내가 능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는 주님의 물음에 소경들은 뭐라 대답하나요(28-30절)?
3. 이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이 고침 받은 두 소경에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무엇 인가요(30절)?
※ 말씀 앞에 섬
1. "예수께서 지나가시는데" 구약에 보면. '야웨의 지나가심'은 두 가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과 〈심판〉입니다(출12:12-13). 그 지나가시는 길을 소경 두 사람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면서 따라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디매오의 경우와는 달리(거기서는 예수께서 멈추어 서셨다) 그들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은 체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십니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지 않으시고 그냥 지나가심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분은 모두를 동일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 내치는 걸음은 '저들의 신앙에 대한 시험'이라고도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군중들의 오해를 막고자', 또는 '사람의 눈을 피해 저들을 고치고자' 집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30).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경들의 태도입니다. 저들은 예수를 볼 수도 없고, 그 가는 방향을 볼 수도 없어, 그저 그분의 발자국 소리만을 따라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을 따라갑니다! 저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의 외침을 들으시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보이시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시는데도 결코 당황하지 아니합니다. 저들은 쉬지 않고 외쳐 댈 뿐입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 고백은 곧 메시야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고 권세 없는 사람들이 그분의 비밀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이 소경들은 저들 내부에 빛을 지니고 있어 그 빛 가운데서 예수께서 다름 아닌 '오실 그 분'임을 깨닫습니다. "눈 먼 사람은 보나 눈 뜬 사람은 보지 못하는"(요20:29)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그분에 대한 두 소경의 믿음의 자세와 나의 믿음의 자세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분이 침묵하시고 내게로가 아니라 나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가고 계시는 것 같은 때에도 나의 간구를 되풀이하며 그분을 따라갑니까?
2.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지닌 고통으로 말미암아, 시작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었습니다(고통은 도리어 신앙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물음은 시작 단계의 저들의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음으로써, 그분의 치유의 능력이 저들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부로부터 나와 두 귀로들을 수 있는 고백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 것입니다(롬10:10). 그럴 때 주님의 선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은 대로 여러분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또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안고, 이 물음 앞에 서 보십시오. 정말, 삶을 위협하는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까?!
3.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십니다. 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 경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의 계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당신들의 그런 인간적인 방식으로 알리지 마시오! 나의 비밀을 당신들이 제멋대로 세운 메시아 계획안에 집어넣지 마시오. 당신들의 메시아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방법과 시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이요."
소경의 치유는 구약 성경에서 대단히 큰 메시아적 표징입니다(사35:5). 바로 이 시간이 지금 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메시아 사역의 전부는 아닙니다. 때문에 이 치유의 사건이 메시아 사역의 전부인 양 오해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참 메시아 사역이 무엇인지, 그것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어디인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고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님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소문은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되는 분이십니다. 오늘 나의 체험 바깥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나는 얼마나 인정하고 있습니까?
※ 새김질을 위한 도움글
陽 地
(최 재 명)
양지 짝에 앉으면
인생이 한결 따뜻해 온다.
어렸을 땐 헐벗고 배고파도
항상 즐겁던 양지
나는 혼자
오랫동안 그늘로 쫓기어 왔다.
여수는 절로
녹아 나리고
차라리 울 수도 없는
이 막다른 골목에서
눈부신 햇빛만이
옛날의 인정이었다.
외로운 이여 오라
------------
와서 잠깐 해바라기하며
쉬어서 가자.
이렇게 양지 짝에 앉으면
세상이 행결 정다워 진다.
※ 말씀을 몸으로 살기 위한 삶과의 엮음(부별 나눔의 자리)
※ 다음 자리 마련: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바를 알겠습니까?(요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