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해하는 믿음
*** 사람이 이해하는 믿음 ***
*** 마가복음 9:21-24 ***
우리 그리스도인이 분명히 정립해야 하는 것은 ‘내가 이해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만일, 큰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나는 반드시 나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한다면 그 병이 낫겠습니까?” 물론 “나는 나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낫게 해 주실 것이다.”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만 가지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기도만 하고 있다면, 과연 그 병이 낫게 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이 일을 이루신다.’라고 확신한다면, 그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주실 때,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나병 환자를 판정하거나, 나은 것을 판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여전히 나병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대로 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떠났으며, 가던 도중에 자신들의 몸이 나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시던 때,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복음 8:43-46입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류 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류 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베드로의 말처럼, 무리가 밀고 당기고 하면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고, 그 어떤 능력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당시의 무리처럼, 예수님 곁을 맴돌고 있지만 예수님의 관심도, 능력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지만, 예수님의 관심을 받도록 예수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왔던 아이 아버지는 예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즉 제자들에게 실망하여 예수께 집중하지 못했고, 온전한 신뢰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 ‘하실 수 있으시면, 해 주세요.’라는 투로, 예수님께 진정으로 집중하거나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믿음에 관한 진정한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 100% 집중하지 못하고 제삿밥에만 마음을 두는 사람이 이행하는 믿음입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