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223회
작성일
2001-12-23 22:15
♡♥♡♥♡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 ♡♥♡♥♡
☆★☆★☆ 이사야 62:1-5 ☆★☆★☆
사람 사는 세상에 즐거움이 없다면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를 생기 있게 만드는 명약입니다.
프랑스의 보건전문지인 ‘상떼'에 따르면 프랑스의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품‘가운데 하나가 바로 ’웃음‘이라고. 합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웃음은 우선 폐와 기도를 확장시켜 공기의 유입과 배출을 촉진시켜주고, 상부 호흡기를 청소해 호흡을 정상화시켜 주는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느혜미야8:10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불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좋은 표현입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려 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동물들은 일제히 “대찬성입니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인이 거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어”
거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주인님, 저는 큰 알을 낳아 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암탉이 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아침을 알려줍니다.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습니다.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한답니다. 말고기는 어떤가요?”
말이 소를 가리켰습니다.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아무도 잔치의 제물이 될 동물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잔치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사람들도 자신의 즐거움이나 기쁨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찬성을 표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일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요즈음 ‘개인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대묘사나 행동 따라하기, 춤, 자신만의 특이한 이야기 등으로 남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시대적 행동양식이겠지요. 이런 것도 아무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개그맨들의 눈물나는 노력도 남을 웃겨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순종함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꼭 한 가지, 우리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 이사야 62:1-5 ☆★☆★☆
사람 사는 세상에 즐거움이 없다면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를 생기 있게 만드는 명약입니다.
프랑스의 보건전문지인 ‘상떼'에 따르면 프랑스의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품‘가운데 하나가 바로 ’웃음‘이라고. 합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웃음은 우선 폐와 기도를 확장시켜 공기의 유입과 배출을 촉진시켜주고, 상부 호흡기를 청소해 호흡을 정상화시켜 주는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느혜미야8:10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불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좋은 표현입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려 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동물들은 일제히 “대찬성입니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인이 거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어”
거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주인님, 저는 큰 알을 낳아 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암탉이 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아침을 알려줍니다.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습니다.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한답니다. 말고기는 어떤가요?”
말이 소를 가리켰습니다.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아무도 잔치의 제물이 될 동물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잔치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사람들도 자신의 즐거움이나 기쁨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찬성을 표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 일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요즈음 ‘개인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대묘사나 행동 따라하기, 춤, 자신만의 특이한 이야기 등으로 남을 즐겁게 하려고 하는 시대적 행동양식이겠지요. 이런 것도 아무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개그맨들의 눈물나는 노력도 남을 웃겨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순종함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꼭 한 가지, 우리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