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위로와 기쁨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4,143회
작성일
2001-11-01 22:09
♡♥♡♥♡ 참된 위로와 기쁨 ♡♥♡♥♡
★☆★☆★ 고린도후서 1:3-11 ★☆★☆★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하여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잘되고 행복하고 위로를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의 고통을 잊게 하거나 행복감을 가지게 하는 마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위안을 주거나 힘을 내라고 북돋아 주는 값싼 메시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이나 난제를 잊도록 도와줌으로써 힘을 내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참된 형통과 행복과 위로는 진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까지는 진정한 위로나 행복을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과 믿음이 참된 위로와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시장에서 어린 아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갑니다. 도중에 길가에서 파는 솜사탕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그것을 사달라고 졸라 댑니다. 엄마는,
“얘야, 그것은 몸에 해로우니 엄마가 나중에 더 맛있는 것 사줄게.”
라고 약속하며 아들을 달랩니다. 그래도 아들은 막무가내로 엄마를 졸라댑니다. 발을 동동 굴러보기도 하고, 안 간다고 때를 쓰며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보기도 하면서 엄마에게 때를 씁니다. 화가 난 엄마는 아들의 손을 홱 뿌리치고는,
“엄마 말 안 들으려면 여기서 살어 엄마는 갈 거야.”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아들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이 아들은 어린 마음에 설마 했는데 엄마에게서 자신이 점점 멀어짐을 느끼고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악을 쓰며 엄마를 부르며 쫓아가 보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더 빨리 앞서 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낯선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이로서는 최고의 위기입니다. 엄마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 이 어린 아들의 심정은 그 나름대로 엄마의 뜻을 거스른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르짖습니다.
“엄마 안 그럴게 같이 가!”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엄마를 놓치면 자신은 끝장이라는 절박한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이 엄마에게서 점점 멀어져 감을 느끼는 이 어린 아들의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애통과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한편, 아들의 부르짖는 소리, 절박한 울음소리가 멀어질 때, 엄마는 걸을 멈추고 멀리 있는 아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내가 가지 않고 기다려 줄 테니 빨리 엄마에게 오라’는 신호입니다.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달려가겠습니까?
‘휴, 이젠 안심이다.’
이런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또 다시 엄마를 놓칠까봐 힘을 다해 뛰어 옵니다.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 주면서 살짝 안아준 뒤 아이의 손을 꼬옥 쥐고 아이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걸어갑니다. 그리고는 가게에 들어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손에 들려줍니다.
아이는 슬픔과 놀람과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에게서 최고의 위로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는 집에 갈 때까지 다시는 다른 어떤 것도 사 달라고 때 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물에 젖은 아들의 얼굴을 보고서 측은히 여기고 근처 가게에서 맛있는 것을 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꼭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기쁨과 위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없는 세상은 그저 불안과 어두움일 뿐입니다. 아이에게 부모처럼,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보호자이며 미래입니다.
★☆★☆★ 고린도후서 1:3-11 ★☆★☆★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하여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잘되고 행복하고 위로를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의 고통을 잊게 하거나 행복감을 가지게 하는 마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위안을 주거나 힘을 내라고 북돋아 주는 값싼 메시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이나 난제를 잊도록 도와줌으로써 힘을 내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참된 형통과 행복과 위로는 진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까지는 진정한 위로나 행복을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위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과 믿음이 참된 위로와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행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시장에서 어린 아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갑니다. 도중에 길가에서 파는 솜사탕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그것을 사달라고 졸라 댑니다. 엄마는,
“얘야, 그것은 몸에 해로우니 엄마가 나중에 더 맛있는 것 사줄게.”
라고 약속하며 아들을 달랩니다. 그래도 아들은 막무가내로 엄마를 졸라댑니다. 발을 동동 굴러보기도 하고, 안 간다고 때를 쓰며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보기도 하면서 엄마에게 때를 씁니다. 화가 난 엄마는 아들의 손을 홱 뿌리치고는,
“엄마 말 안 들으려면 여기서 살어 엄마는 갈 거야.”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아들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이 아들은 어린 마음에 설마 했는데 엄마에게서 자신이 점점 멀어짐을 느끼고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악을 쓰며 엄마를 부르며 쫓아가 보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더 빨리 앞서 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낯선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이로서는 최고의 위기입니다. 엄마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 이 어린 아들의 심정은 그 나름대로 엄마의 뜻을 거스른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아이는 부르짖습니다.
“엄마 안 그럴게 같이 가!”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엄마를 놓치면 자신은 끝장이라는 절박한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이 엄마에게서 점점 멀어져 감을 느끼는 이 어린 아들의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애통과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한편, 아들의 부르짖는 소리, 절박한 울음소리가 멀어질 때, 엄마는 걸을 멈추고 멀리 있는 아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내가 가지 않고 기다려 줄 테니 빨리 엄마에게 오라’는 신호입니다.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달려가겠습니까?
‘휴, 이젠 안심이다.’
이런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또 다시 엄마를 놓칠까봐 힘을 다해 뛰어 옵니다. 엄마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 주면서 살짝 안아준 뒤 아이의 손을 꼬옥 쥐고 아이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걸어갑니다. 그리고는 가게에 들어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손에 들려줍니다.
아이는 슬픔과 놀람과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에게서 최고의 위로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는 집에 갈 때까지 다시는 다른 어떤 것도 사 달라고 때 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눈물에 젖은 아들의 얼굴을 보고서 측은히 여기고 근처 가게에서 맛있는 것을 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꼭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성도의 기쁨과 위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없는 세상은 그저 불안과 어두움일 뿐입니다. 아이에게 부모처럼,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보호자이며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