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
*** 요한계시록 3:20-21 ***
주님은 우리 육신의 생활뿐만 아니라, 영의 생명과 영의 삶을 보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나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내 삶이 주님 보시기에 이렇게 무의미한 삶이 되지 않으려면, 보이지는 않지만, 영의 생명과 영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후회 없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의미가 있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영의 감각이 깨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주님을 사모하게 되며, 항상 기뻐하게 되며, 모든 것이 감사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계 3:20-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즉,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실제로 나를 통하여 움직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는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호소는 개인적인 호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너에게 들어가리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 즉 오랫동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이 땅에서 우리가 육신으로 살 때,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는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하여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적인 감각이 깨어납니까?
디모데전서 4:7-8절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운동선수들이나, 음악가, 기술자, 기능공들의 숙련된 솜씨는 숱한 연습의 결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영적인 감각을 깨우려면,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하고 연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깨어 있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6:15절입니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 옷을 지켜’라고 하십니다. 어떤 옷입니까? 계 19:8절입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하는 옷은 ‘옳은 행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의로운 삶이 옳은 행실입니다. 이 의로움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은혜입니다. 성도는 이 은혜를 입입고 사는 옳은 행실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내 영이 깨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버림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