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삽니까?
*** 나는 무엇을 위해 삽니까? ***
*** 미가서 6:6-8 ***
미가서 6:6-8절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리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당시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상의 것을 드리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최상의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나를 구원하시고, 일마다 때마다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세례요한도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라는 말은 ‘영적인 감각을 새롭게 하라.’라는 말입니다. 즉 ‘세상에 묻혀 살면서 무뎌진 영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하신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는 선한 요소와 악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이러한 내면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21-24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3권을 썼으며, 주님과 동행하며 능력을 행한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존경받는 성도의 모습이지만, 영의 삶은 말라버려 말씀도 기도도 찬양도 잃어버린 성도가 많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지조차 생각하지도 못한 채 무감각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외형적으로는 주변의 어느 도시보다 부요했으며 화려했습니다. 부요한 도시의 교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의 ‘부자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같았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살만하다고 육신을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무조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임을 생각해보라.’라고 하십니다. 즉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삽니까?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