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
*** 요한복음 4:23 ***
폭풍우가 불어오던 날 밤, 주일 저녁 예배를 위해서 교회에 들어서던 목사님은 텅 비어 있는 교회당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대여섯 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이없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밀실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목사님이 교회에 가 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신이 나서 ‘우리 모두 찬송합시다.’라고 하면서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한참 열심히 부르는데, 문득 피아노 반주 소리도, 찬송 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오직 어린 한 소녀의 찬송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목사님은 잠을 깨었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과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배하는 사람의 숫자에 있어서는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한복음 4:23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어떤 것임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가? 나의 생활 전체로 볼 때 예수님은 아주 작은 존재가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직장의 일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세상 일 보다 비중이 낮은 것입니다.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아니면 ‘몇 십만 원을 벌 것인가?’ 그런 선택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혹시 몇 만 원을 벌기 위하여 예수님을 멀리 젖혀 놓는 우리는 아닙니까?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듯이, 우리의 세상 사람에 대한 관심과 주님에 대한 관심을 매일의 삶에서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예배가 있는 성전의 입구에서 사람들이 헌금을 넣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부자는 금화를 넣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헌금을 함에 넣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과부가 드린 엽전 두 닢도 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날 가장 많은 헌금을 넣은 사람으로 엽전 두 닢을 넣은 가난한 과부로 꼽았습니다. 금화와 엽전 두 닢이 비교가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 경영을 저울질하십니다. 숫자와 양이 아니라 전적인 헌신을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