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 주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
*** 에스겔 37:1-3 ***
에스겔 37: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뼈들을 보이시면서 물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물음은 오늘 예수님의 물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에스겔의 믿음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물음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사람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의 지식으로 볼 때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뼈들이 다시 살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 때 에스겔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 머리에 세상적인 논리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충분히 이해가 되어야 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논리적입니까? 아니면 이해가 되는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세상적인 지식으로 알 수 없고, 사람의 경험으로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안드레는 한 수 더 뜹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안드레의 불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게 하시고는 작은 도시락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맡겨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떡과 고기를 나누면서 주님의 능력을 철저히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할 수 있겠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는 “주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신뢰함이 우리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