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대한 소망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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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03-19 16:40
*** 하나님께 대한 소망 ***
*** 베드로후서 3:3-5 ***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는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가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이 사람은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6.21.~1980.4.15)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도 드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자유의 길’이라는 장편소설에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있습니다. 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비 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그토록 자랑스럽고 당당하고 위대했던 사르트르였지만 죽음 이후에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그렇게도 당당하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던 그에게는 돌아갈 영원한 안식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되어 살만할 때는 큰소리치고, 당당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이 다가오고, 죽음의 위기가 닥치면 사르트르처럼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부귀영화, 육신의 건강과 즐거움에 매어달리는 것입니다. 미래의 불안을 잊으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내가 잊어버린다고 엄연한 사실이 바뀌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분명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