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돌아보며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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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1-22 21:55
*** 나의 삶을 돌아보며 ***
*** 디모데후서 4:7-8 ***
불행 덩어리로 태어났던 ‘헬렌켈러’여사는 소경에, 벙어리요, 귀머거리였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살았던 ‘헬렌켈러’ 여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헬렌켈러 여사의 간증을 들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장님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헬렌켈러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습니다.
“눈이 있어 보기는 보아도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비참한 육신을 가지고 살았던 ‘헬렌켈러’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생애는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그녀에게는 소망이요,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경보다는 비전이 없는 사람이 더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던 대답처럼 헬렌켈러에게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표를 세웠으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영적 대 각성운동을 일으켰던 ‘조나단 에드워즈’목사의 좌우명은 이러합니다.
“목숨이 살아있는 한 전력을 다하여 주님의 뜻을 위하여 살겠노라.”
‘헬렌켈러’ 여사나, ‘에드워즈’ 목사님처럼, 확실한 꿈을 가지고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이 인생이 힘들다고 주저앉겠습니까? 이들이 인생 여행을 마칠 때에는 ‘아름답고 행복했다.’고 ,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숱한 고난과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잘 달려서 생을 마칠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비전을 가진 최선의 삶’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꿈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삶이 최선의 삶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