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풍성함
*** 그리스도인의 풍성함 ***
*** 디모데전서 6:17 ***
우리의 풍성한 삶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풍성함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인 풍성함입니다. 이러한 풍성함은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풍성하기 위하여 불법적이거나 범죄에 발을 들이기도 합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에서 이러한 상황을 미리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풍성함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기도 하시며 누리게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몸이 아플 때 약을 먹을 텐데, 왜 약을 먹습니까?” ‘별걸 다 물어본다.’라고 생각되시지요? 아마 ‘몸이 아프니까 먹지.’라고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나으려고 먹지.’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안경을 쓰시는 분들에게 “왜 안경을 쓰십니까?”라고 물으면, 사람 대부분은 “잘 안 보여서 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간혹 “더 잘 보려고 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약을 먹어도 ‘아파서 먹는 사람’도 있고, ‘낫기 위하여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안경을 ‘잘 안 보여서 쓴 사람’과 ‘더 잘 보려고 쓴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대답은 같은 것 같지만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말의 표현은 그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간단한 생각의 차이가 인생이나 삶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예레미야 6:19절에서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당한 재난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진 생각과 말로 대항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17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이 말씀에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근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즉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누리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누리지 못하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누리게 하십니다. 누리지 못하는 풍성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풍성함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한 삶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많아야 풍족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풍족함은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