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관계정립
*** 하나님과의 관계정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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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청교도 신앙인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간수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감옥을 나가서 얼마쯤 가다가 되돌아 왔습니다. 간수장이 “왜 다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국왕이 돌아간 후 간수장은,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저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께 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결단과 선택을 합니다. 때로는 생명이 달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단하거나 선택할 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므로 우리는 당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따라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6-17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인지 나 자신의 의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19-23절에서 육체의 일과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삶의 열매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 자신의 육신적인 자신의 욕망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마음의 현상을 자세하게 밝히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독일의 자랑인 괴테(J. W. Goethe, 1749-1832)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되는 ‘파우스트’를 집필했습니다. ‘파우스트’에는 시와 역사적, 심리학적, 과학적인 여러 요소가 들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파우스트를 통항 구원의 열망을 담은 신학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최고의 행복이란, 나의 결함을 살펴 바르게 잡는 일이다.” 파우스트를 통하여서도 묘사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느끼는 갈등이 많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갈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때 강하게 나타납니다. 괴테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결함을 바로 잡는 길입니다. 파우스트를 통하여서도 묘사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느끼는 갈등이 많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갈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을 때 강하게 나타납니다. 괴테가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결함을 바로 잡는 길입니다. 고린도후서 12:8-10절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라.”
신앙의 표본이 되는 사도 바울도 육체의 고통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 즉시 자신의 잘못된 의지를 접고 하나님의 뜻으로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약함과 고통을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실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빠르게 바로 잡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십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