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응답
***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응답 ***
*** 누가복음 11:5-8 ***
누가복음 11:5-8절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유대인들의 당시의 주거지는 하나의 방에 가족들이 모두 기거하며, 심지어 짐승의 우릿간까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안쪽에 눕게 되고 가장은 출입문 가까이에 눕습니다. 그러니 어떤 음식을 꺼내려면 가족들 전체가 일어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처럼 번거로움 때문에 떡 빌려주는 것을 거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리면서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 때문에 그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간청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이처럼 간절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33: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29: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에 관한 말씀에서 공통적인 내용은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그런데 간절한 부르짖음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순종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웰츠(Herbert George Wells)’라는 분이 쓴 단편소설 중에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30년을 한결같이 기도했습니다. 이 30년의 기록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은 대주교의 기도하는 모습을 부러워하였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주교의 기도는 화려한 언어로 매끄러운 내용이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녹일 만큼 간절했습니다. 심지어 그 기도를 듣기 위하여 먼 곳에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대주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 자랑거리던 기도시간에 죽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습관대로 거룩한 복장을 하고 마음을 모아서 늘 하던 대로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라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화려한 언어나 애간장을 녹이는 감각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사람이 듣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말씀에 순복하는 진실한 믿음으로 아뢰는 간구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11:9-13절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내용에서 특징지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으로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응답에 있어서도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구체적으로 아뢰면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루뭉술하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게 대충 기도하면 내 삶에 구체적인 응답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대단히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시편에 기록된 많은 기도들을 보면 구체적인 정도를 넘어서 너무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에 마음이 조급해지면 안 됩니다. 넉넉한 시간과 방해받지 않는 장소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기도하면서 내가 말할 내용만 숨 가쁘게 나열하고는 하나님께서 미처 마음을 표하시기도 전에 기도를 마쳐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기도이든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내 마음에 말씀하시고 감동하시도록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말씀하시면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주신다는 것은 내 마음에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통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감동으로 전달하시고 일깨워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그대로 우리에게도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한다면 내가 행한 삶대로 진실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진실하게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내 삶에 성령님의 감동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에 대하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마라나-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