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
*** 빌립보서 2:3-4 ***
우리 인생길에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될 수 있으니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행을 다녀보신 분을 알겠지만, 긴 여행에서 마음 맞는 동행이 있으면 기쁨이 배가 됩니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가 없고, 맛있는 음식도 혼자는 맛이 없고, 멋진 영화도 혼자는 재미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옷도 보아 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함께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결코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3-4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라고 하십니다. 자기 욕심은 자기만의 삶의 방향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함께하는 것은 한 방향을 같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행은 목표가 같고, 목적지가 같을 때 가능합니다. 두 사람이나 혹 여러 사람이 함께할 때, 서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결코 같은 방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39-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씀은 아마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대단히 부담스러워할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이렇게 산다는 것은 바보 취급당하기 딱 알맞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느 시대에도 이렇게 사는 것이 쉬울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요구하신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생이 교수님에게 다소 어이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까?”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고 했듯이, 교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시늉(motion)이라도 내보면, 하고 싶은 마음(emotion)이 생길 걸세.”
아직은 하나님의 일을 잘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익숙하지 못할지라도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흉내를 내는 것, 즉 모방신앙을 통하여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처음으로 신앙을 가졌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말을 듣고,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자신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주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의 삶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최후 승리의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도 영원한 소망을 얻기 위하여 이를 감내하며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같이하여 함께 할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