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로워지는 삶
***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 ***
*** 고린도후서 5:17 ***
‘에드워드 모트(E. Mote)’라는 37세 된 목수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원망어린 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고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 말씀으로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들여서 교회를 짓고 신학(神學)을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께 대한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찬송가 488장입니다(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똑같은 일이었지만, 그의 삶이 변화되기 전과 변화된 후의 관점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즉 그의 생각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창조적 신앙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없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는 수많은 유혹과 미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의 거듭남입니다. 영의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이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의 삶이 이전과 전혀 달라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겪었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현대어성경)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거듭난 사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이전의 세상적인 삶에 젖어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영적인 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침체의 시기가 길어지면 영이 질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운 창조적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즉 나의 영이 주님을 닮아가는 ‘새롭게 됨’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육신의 삶의 변화’가 매일의 생활에서 새롭게 일어나야 합니다. 말씨가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생활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