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로 이루는 기쁨과 평화
*** 화해로 이루는 기쁨과 평화 ***
*** 마태복음 6:14-15 ***
옛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사람이 일할 때는 일머리를 알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일의 순서를 알아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 해야 할 것을 잘 분별하여 순서대로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일의 순서가 바뀌면 힘들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리고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4절도 봅시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2:14절에서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찌든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의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보다는 세상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준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들은 세상의 것으로 찌들지 않은, 아직은 마음이 순수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중에 평화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옛말에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恨)’이라고 하는 것, 즉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먼저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나아가서 주위의 사람들을 함께 파멸시키는 무서운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담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14,15절에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인간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곧 용서로 비롯되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고 의지한다면, 나를 용서하신 주님을 닮아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삶에 기쁨과 평화 그리고 이로 말미암는 행복을 누리게 하는 길입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