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염려하십니까?
***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
*** 누가복음 21:34 ***
미국 ‘위스콘신’ 주의 ‘먼로 병원’ 원장인 ‘신들러’ 박사의 말입니다. “류머티즘의 30%는 신경의 긴장으로 압박을 받는 근육들의 고장으로 생긴다.” 그리고 “피부병의 33%와 쓸개 병의 50%는 내적인 생활의 혼란에서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절반은 신체조직의 고장에서 생긴 것이기보다는 마음의 염려로 말미암는 생활의 혼란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혼란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궁지로 몰아갑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앞과 뒤에 높은 담을 쌓아놓고, 그사이에 갇혀 무능하게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뒤에 있는 담은 어제에 대한 후회이며, 앞에 있는 담은 내일을 위한 염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염려를 두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키 작은 것을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겠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염려와 걱정으로 자신의 평화로움을 스스로 깨뜨립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로마서 7:19-23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지금 마음속으로 자신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생활에 대한 염려가 가장 많을 것이며, 더욱이 지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인간 세상이 존재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공통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의 80억의 세계 인구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걱정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산다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이 걱정거리들은 환경이 좋을 때는 잠시 주춤하다가 상황이 어두워지면 온통 삶을 짓누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누가복음 21:34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음에는 어떤 염려들이 쌓여 있지요? 그 염려를 해결할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까? 이 문제의 답을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생명인 까마귀와 백합화까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돌보지 않겠느냐?“라고 제시하십니다. 즉 염려를 뛰어넘는 해결 방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