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
*** 고린도후서 4:18 ***
한자 격언 중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라는 의미인데, 누군가에게 여러 번 말로 설명 듣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즉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24에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라고 하십니다. 고후 4:18에서는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라고 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세상의 일들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서 우리 인생들이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적다.’라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 가운데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일들, 볼 수 없고 인지할 수 없는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욥이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불평하며 똑똑한 척할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2-4)
라고 하시면서, 38장에서 41장에 이르도록 온 우주를 만드신 이치에 대하여 욥에게 말씀하시며 묻습니다. 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지금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깨닫지도 못하는 은밀한 삶의 영역을 살피시며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밀하게 행하시고 은밀한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을 진실한 신앙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 세상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생명과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주님께 인정받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