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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862회 작성일 2023-05-22 17:19

***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 요한복음 16:17-24

 

요한복음 16:17-24,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들어가는 말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과 휴대용 컴퓨터의 발달로 매일 접하는 정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세계 곳곳의 소식과 사건 사고, 정치, 경제, 문화, 살림살이 등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의학 정보도 있어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절반은 의사가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건강염려 증후군’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 중에 등장하는 예화가 있었는데 이렇습니다.

 

당시 41세의 회사원 김○○씨는 매스컴에서 질병에 대한 보도만 나오면 왠지 자신도 그런 병이 있는 것 같아 늘 염려가 되었습니다. 배가 몹시 아프기도 하고, 목 아래쪽에 혹이 만져지는 것 같기도 해서 혹시 종양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때로는 소변이 시원하지가 않아서 신장 결석이나 방광염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라며 ‘잘 쉬라.’고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쪽저쪽 아픈 부분이 많은 걸로 미뤄보아 분명 병이 있는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 다른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별 탈이 없다고 말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를 두고 '건강염려 증후군'이라 합니다.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도 여기저기 아픈 느낌이 들고 병들었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통틀어 표현하는 병명입니다. 자신이 위중한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일종의 정신장애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가 많고 건강에 자신감을 잃어 가는 30-40대 남성들이나 집안일에서 정신적 압박을 받는 주부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어느 의사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 중 7% 정도는 건강염려증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의사나 약사들이 유튜버를 통하여 전하는 의학 지식과 정보가 이런 염려증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조금 아픈 느낌만 있어도 인터넷을 검색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어느 정신과 의사는 “아프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책임과 어려움으로부터 피하고, 주위로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많아서 기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바라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 걱정이 많아져서 기쁨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절 이하에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로 시작하여 말세를 사는 사람의 19가지 특징을 말했습니다. 이 19가지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기쁨’이라는 것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표징이므로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이 중요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요한복음 16:1절에서 시작되는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3일간의 무덤에 갇힌 모습, 그리고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지만, 어떻든 주님께서 떠나신다는 생각에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나라를 회복하고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리송한 말씀을 제자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자신들에게 어둠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처형당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생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염려로 가득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본문 22-24절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제자들의 근심과 두려움은 잠시일 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에는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할, 영원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기쁨은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기쁨은 무엇입니까?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독교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처럼,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삶에 지쳐서 기쁨을 잊고 삽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고 했는데, “뼈를 마르게 한다.”라는 말은 ‘자신이 시들어버린다.’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의 생명이 시들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지금 내게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내 영이 시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기쁨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기쁨의 근원을 본문 22절에서 보여주십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는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을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 기쁨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며, 우리는 그 뒤를 이어서 부활을 보증받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기쁨은 부활의 소망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요한복음 5:24-25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는 영의 생명을 얻었고,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어 부활의 소망을 가졌고, 영원한 생명을 보증받았음을 믿는다면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소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유는 삶의 걱정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걱정’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나누다.’라는 단어와 ‘마음’이라는 단어가 합성된 말입니다. 즉 걱정이란 ‘마음이 나누이는 것’ ‘두 마음으로 갈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걱정은 사람의 마음을 둘로 나누어지게 해서 평화를 깨뜨리며, 감정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여 잠들지 못하게 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현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물 없는 강이 많습니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물 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를 많이 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의 신앙이 아니라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기쁨’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으면 감사도, 찬송도, 어떤 신앙생활도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세계에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날마다 한숨 쉬고, 짜증내고, 걱정하고, 피곤해하는 그리스도인을 닮고 싶어 하겠습니까? 예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비추는 빛 중에는 기쁨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4:4절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하십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느혜미야 8:10절에서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했으며, 시편 37:4절에서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행복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그동안 지키지 않았던 유월절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 예배를 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 예배를 회복했을 때, 백성들이 너무나 기뻤으므로 다시 칠일을 더 지켰습니다(대하 30:23, “온 회중이 다시 칠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일을 즐겁게 지켰더라.”). 이렇게 예배를 회복했을 때, 기쁨이 충만했으며,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역대하 30:26-27절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 소리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예배를 회복했을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기도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본문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손해를 보며, 때로는 고난도 당하고, 비난도 받고, 억울한 일도 당하겠지만,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 22절에서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의미는 ‘예수님께 물을 필요도 없이 알고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뻐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밝게 나타내면 하나님께서 모든 근심을 녹이시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를 더욱 기뻐하게 하십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지만 근심과 염려들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염려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해도 근심거리들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여인이 아이를 해산할 때가 되면 그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근심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그 고통은 잊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 앞에 당면한 걱정거리들은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오면 녹아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걱정은 마치 태양을 가리는 구름과도 같습니다. 구름이 짙으면 짙을수록 전달되는 태양의 빛은 더욱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구름이 짙다고 태양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요. 태양은 여전히 구름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 걱정의 구름을 거두어 내는 유일한 능력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 속에 있습니다. 이 기쁨은 내가 애써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3-24절입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기쁨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와 함께 이 기쁨을 주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으로부터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이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이제 주님이 이루신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여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 충만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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