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요한복음7:37-44)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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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0-12-04 21:14
♣ 들어가는 말
노방전도를 다니다보면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 중에는 진지한 물음도 있지만, 대부분이 조롱하거나 비꼬는 투의 질문들입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조롱 섞인 요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요구는 '하나님을 보여달라. 그러면 믿겠다.'는 것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엉뚱한 요구나 조롱들이 이 시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모여들었던 군중들이나,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이러한 요구를 했습니다.
- 요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인간의 이러한 요구는 육신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물질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시기는 신앙의 초보 단계이거나, 믿지 않을 때입니다. 물질적인 증거를 요구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만나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우리나라 초기의 부흥사였던 「이성봉」목사님은 6.25동란 무렵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원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심한 고문과 조롱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공산당원이 잔인한 고문 끝에 조롱하며, "어이 영감 천국 좀 보여주지?"하며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목사님이 "예 천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공산당원이 "아니 죽어서 말고, 지금 보여달란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예, 지금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목사님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여보라는 공산당원에게 목사님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천국 본점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까 보여드릴 수 없고, 천국 지점은 내가 보여 드릴 수 있는데, 내 마음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를 요청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이, 속사람의 강건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內住)하심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엡3:16-17,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본점은 성도들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그곳이며, 우리가 장차 들어갈 곳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점을 인정하셨습니다.
- 눅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대표되는 구약(舊約, Old Testament/ 옛 약속)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제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의 육신적인 부분, 즉 외적인 삶에 역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대표되는 신약(新約, New Testament/ 새 약속)은 '메시아의 오심'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약속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 새 약속은 사람들의 내적인 부분, 즉 영적인 삶에 역사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통제를 받던 시대에는 율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지켜야만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새 약속은 결코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루실 새 약속에 대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약속은 사람이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약속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자연스럽게 행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하여 쓸모 없는 가지를 제거하시고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요15:2-3,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가지를 깨끗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정화작용을 하며, 성장하게 하는 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즉 나무가 토양의 수액을 빨아들인 만큼 자라듯이,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만큼 자라도록 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은 적으면서 많은 것을 실천하려고 해도 결코 열매를 많이 맺을 수도, 영혼이 자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새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신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2. 내 자신이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획기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 행사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간의 본문 말씀 중에서 37, 3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39절에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령의 임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우리들에게는 이미 성령께서 마음 속에 자리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서는 생명의 물이 계속적으로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구약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곳이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에 대한 표현으로 빛이나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불이나 빛이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신약에서는 오순절 성령의 임재하심을 나타내시면서 사람의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성전을 하나님을 모신 사람 그 자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 실재로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성전이며,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두 세 사람은 주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각자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란, 곧 모든 지체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주권도 역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가정에는 교회가 다섯이나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한 곳에 있지 않고 걸어다닙니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뿌려져 보이듯이, 교회는 영적으로 캄캄한 세상에 흩어져 반짝이는 움직이는 촛불입니다. 촛불은 가만히 있어도 빛을 발합니다. 불만 꺼지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이처럼 내가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내가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십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3.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께서 일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요6:35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 속에 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우리가 지식적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생활 속에서는 늘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세상에서 만족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던지 주님도 거기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에 거하시면서 친히 일하시는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담대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활용하십시오. 재능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용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지금은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대강절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방전도를 다니다보면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 중에는 진지한 물음도 있지만, 대부분이 조롱하거나 비꼬는 투의 질문들입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조롱 섞인 요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요구는 '하나님을 보여달라. 그러면 믿겠다.'는 것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엉뚱한 요구나 조롱들이 이 시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모여들었던 군중들이나,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이러한 요구를 했습니다.
- 요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인간의 이러한 요구는 육신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질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물질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시기는 신앙의 초보 단계이거나, 믿지 않을 때입니다. 물질적인 증거를 요구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만나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우리나라 초기의 부흥사였던 「이성봉」목사님은 6.25동란 무렵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원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심한 고문과 조롱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공산당원이 잔인한 고문 끝에 조롱하며, "어이 영감 천국 좀 보여주지?"하며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목사님이 "예 천국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공산당원이 "아니 죽어서 말고, 지금 보여달란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예, 지금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목사님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여보라는 공산당원에게 목사님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천국 본점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까 보여드릴 수 없고, 천국 지점은 내가 보여 드릴 수 있는데, 내 마음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를 요청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이, 속사람의 강건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內住)하심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엡3:16-17,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지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본점은 성도들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그곳이며, 우리가 장차 들어갈 곳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점을 인정하셨습니다.
- 눅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대표되는 구약(舊約, Old Testament/ 옛 약속)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제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의 육신적인 부분, 즉 외적인 삶에 역사 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대표되는 신약(新約, New Testament/ 새 약속)은 '메시아의 오심'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약속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 새 약속은 사람들의 내적인 부분, 즉 영적인 삶에 역사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통제를 받던 시대에는 율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지켜야만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새 약속은 결코 율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루실 새 약속에 대하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겔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약속은 사람이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약속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자연스럽게 행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하여 쓸모 없는 가지를 제거하시고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 마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요15:2-3,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가지를 깨끗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정화작용을 하며, 성장하게 하는 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즉 나무가 토양의 수액을 빨아들인 만큼 자라듯이, 성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만큼 자라도록 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은 적으면서 많은 것을 실천하려고 해도 결코 열매를 많이 맺을 수도, 영혼이 자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새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신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2. 내 자신이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에 획기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절기 행사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간의 본문 말씀 중에서 37, 3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39절에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령의 임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우리들에게는 이미 성령께서 마음 속에 자리잡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서는 생명의 물이 계속적으로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구약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곳이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에 대한 표현으로 빛이나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불이나 빛이 성전에 머물렀습니다. 신약에서는 오순절 성령의 임재하심을 나타내시면서 사람의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성전을 하나님을 모신 사람 그 자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 실재로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성전이며,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두 세 사람은 주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각자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란, 곧 모든 지체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주권도 역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가정에는 교회가 다섯이나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한 곳에 있지 않고 걸어다닙니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뿌려져 보이듯이, 교회는 영적으로 캄캄한 세상에 흩어져 반짝이는 움직이는 촛불입니다. 촛불은 가만히 있어도 빛을 발합니다. 불만 꺼지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이처럼 내가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내가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십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3.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께서 일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요6:35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 속에 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사시기 때문입니다.
-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우리가 지식적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생활 속에서는 늘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세상에서 만족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던지 주님도 거기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에 거하시면서 친히 일하시는 주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담대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활용하십시오. 재능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용하십시오. 이 모든 것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지금은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대강절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