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리를 동여 맵시다(벧전1:13-17)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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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2-12 21:27
♣ 들어가는 말
베드로 서신은 여러 지방의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디아스포라들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신의 주된 목적은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박해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서신이 기록된 시점이 ‘네로’황제의 박해가 시작될 즈음인 것으로 보아,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이 세상으로부터 오해받고 불의한 대접을 받으므로 인하여 생활 자체의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 서신은 성도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로 가득합니다.
이 시간의 본문의 주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다. ‘동여맨다.라고 하는 헬라어는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정신적으로든지 육체적으로든지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2:35-40절에서 하신 ‘깨어 있는 종의 비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비유를 시작하는 35절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종이 취해야 할 자세를 이 단어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1.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마음의 각오를 표현합니다.
얼마 전에 IMF 때나, 지금에도 ‘허리띠를 졸라 매야한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을 뜻합니다. 배고픔이나 어려움이나 시련에 직면하여 굴하지 않고 일어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를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믿음을 흔드는 환경에 직면한 성도가 오히려 그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그런 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면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불사하는 그런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성도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안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내세에서 천국도 소유하는 그런 범사의 형통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것을 얻기 위하여 포기하고 버려야 할 것과 고난도 불사하는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소망과 인내를 동반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믿음의 길을 걷는 각오는 ‘소망과 인내’를 동반합니다. 한두 번 그렇게 해 보다가 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내가 소망하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믿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 ꁾ히11:35-37,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고난을 인내했던 것입니다.
3.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제가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할 때입니다. 제 직책이 작전 하사관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비밀문서들을 취급했습니다. 겨울이 시작 된 어느 날, 급한 문서가 있어서 대대본부에서 문서를 수령해 와야 했습니다. 이미 저녁 무렵이었는데, 우리 중대에서 대대본부까지는 산길로 16km정도 거리였습니다. 갈 때는 지나가는 군용 트럭을 탔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지나는 차량을 기대하면서 뛰었는데, 좀처럼 지나는 차량이 없었습니다. 혹 지나는 차량은 방향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계속 도로로 간다면 너무나 먼 길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지름길인 산길을 택했습니다. 전방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두움입니다. 한참이나 걸어서 중간쯤이나 왔을 때, 지난여름의 비로 인하여 계곡 쪽의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가자니 시간이 급했을 뿐 아니라 너무 많이 왔고, 계속 가자니 그 어두움 속에서 길도 없는 계곡을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결국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니,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많이 다쳤지만 시간에 맞추어 부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도피하거나 멈추어 서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모두 막혀 있다할지라도 앞으로 갈 길은 열려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승리는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 ꁾ마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삼하22:29-30,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 곧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면서 허리를 동이라는 말로 위로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동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쉬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나아갑시다. 우리의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내세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유효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마음의 각오로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 서신은 여러 지방의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디아스포라들에게 보내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신의 주된 목적은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박해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서신이 기록된 시점이 ‘네로’황제의 박해가 시작될 즈음인 것으로 보아,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이 세상으로부터 오해받고 불의한 대접을 받으므로 인하여 생활 자체의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 서신은 성도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로 가득합니다.
이 시간의 본문의 주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다. ‘동여맨다.라고 하는 헬라어는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정신적으로든지 육체적으로든지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2:35-40절에서 하신 ‘깨어 있는 종의 비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비유를 시작하는 35절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종이 취해야 할 자세를 이 단어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1.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마음의 각오를 표현합니다.
얼마 전에 IMF 때나, 지금에도 ‘허리띠를 졸라 매야한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을 뜻합니다. 배고픔이나 어려움이나 시련에 직면하여 굴하지 않고 일어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를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믿음을 흔드는 환경에 직면한 성도가 오히려 그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그런 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면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불사하는 그런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성도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안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내세에서 천국도 소유하는 그런 범사의 형통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것을 얻기 위하여 포기하고 버려야 할 것과 고난도 불사하는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소망과 인내를 동반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믿음의 길을 걷는 각오는 ‘소망과 인내’를 동반합니다. 한두 번 그렇게 해 보다가 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내가 소망하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믿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 ꁾ히11:35-37,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고난을 인내했던 것입니다.
3.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제가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할 때입니다. 제 직책이 작전 하사관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비밀문서들을 취급했습니다. 겨울이 시작 된 어느 날, 급한 문서가 있어서 대대본부에서 문서를 수령해 와야 했습니다. 이미 저녁 무렵이었는데, 우리 중대에서 대대본부까지는 산길로 16km정도 거리였습니다. 갈 때는 지나가는 군용 트럭을 탔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지나는 차량을 기대하면서 뛰었는데, 좀처럼 지나는 차량이 없었습니다. 혹 지나는 차량은 방향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계속 도로로 간다면 너무나 먼 길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지름길인 산길을 택했습니다. 전방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두움입니다. 한참이나 걸어서 중간쯤이나 왔을 때, 지난여름의 비로 인하여 계곡 쪽의 길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다시 돌아가자니 시간이 급했을 뿐 아니라 너무 많이 왔고, 계속 가자니 그 어두움 속에서 길도 없는 계곡을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결국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니,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많이 다쳤지만 시간에 맞추어 부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도피하거나 멈추어 서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모두 막혀 있다할지라도 앞으로 갈 길은 열려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승리는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 ꁾ마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삼하22:29-30,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 곧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면서 허리를 동이라는 말로 위로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동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쉬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나아갑시다. 우리의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내세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유효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마음의 각오로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