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틈이 시작입니다.(고전5:6-8, 왕상11: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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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2-12 21:16
♣ 들어가는 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생명체의 탄생이 하나의 작은 세포로부터 시작되며, 사람의 지식도, 일도 모두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누룩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멸망케 하는 죄와 악한 것의 시작도 역시 작은 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도 작은 개미가 구멍을 뚫는 것에서 시작하여 무너져 내린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잘 것 없는 미혹이나 유혹을 방치하다가 결국 깊은 죄악의 구덩이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이 시간의 구약 본문에서 등장하는 솔로몬의 경우입니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말 중에, ‘도루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되다가 어그러져 원래 상태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임금이 국난으로 인하여 궁궐을 떠나 피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식량이 귀하던 차에 마침 한 백성이 ‘묵’이라는 물고기를 임금께 바쳤습니다. 임금이 그 고기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품이었습니다. 그 맛이 하도 기가 막혀서 임금을 그 물고기의 이름을 ‘은어’라 부르도록 명했습니다. 물고기의 맛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얼마 후, 난리는 끝이 났고 임금을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은 피난길에서 먹었던 은어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 요리를 해오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산해진미로 입맛이 길들여진 임금에게 그 물고기가 맛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맛있었던 은어의 맛이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도루 ‘묵’이라고 불러라”고 명했습니다. 여기서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은어’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두 종류의 물고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회귀성을 가진 날씬한 물고기인‘은어’이며, 다른 하나는 ‘도루묵’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문의 솔로몬의 경우와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사실, 은어의 맛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입맛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이라도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의 마음은 달라집니다. 다만 솔로몬의 경우에는 입맛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믿음이 변질 된 것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인 신약과 구약의 말씀은 우리의 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을 한 번 점검해 봅시다.
1. 우리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솔로몬이 왕이 될 때의 믿음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가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의 내용이 그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왕상8:25절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 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와 약속하신 대로 내가 그 말씀을 다 지켰으니 그 약속을 이루어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기도대로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뻐하셨고,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부귀영화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왕상8:61절에서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라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믿음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했던 솔로몬의 마음이 우상을 숭배하는 많은 이방 여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는 정략결혼을 포함하여 무려 일천 명의 부인들을 두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왕의 법규를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 ꁾ신17:16-17,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본문7절.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그토록 훌륭하던 솔로몬의 믿음도 환경을 따라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도 같이 가겠다던 제자들이 상황이 바뀌자 그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위하여 모두 도망가 버렸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아니 저주하면서 모른다고 딱 잡아뗐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처음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져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 때의 믿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더욱 든든해지고 사랑이 더욱 깊어져 있습니까? 혹시 그 때와 달라진 환경과 상황 따라 변하여 있지나 않습니까?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2. 믿음을 좌우하는 환경을 살펴봅시다.
환경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람을 완전히 딴 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1920년 영국의 인류학자들이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 늑대들의 무리 속에서 두 아이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인도로 가서 늑대 무리 속에 있는 아이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습니다. 두 아이는 여자였고, 늑대처럼 네 발로 뛰어다녔으며,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날고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일반 사람들보다 귀가 훨씬 밝았습니다. 또한 야행성 동물과 마찬가지로 밝은 낮에는 잘 보지 못했지만, 어둠 속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떤 경위로 늑대 무리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환경이 그들을 늑대의 습성을 갖도록 했으며, 그들 또한 그 환경에 잘 적응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향한 든든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한 것도 환경이었습니다. 열왕기상 3:1절에, “솔로몬이 애굽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 성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모압 여자들과 에돔, 시돈, 헷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 ꁾ본문2절/ 출34: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는 유혹의 작은 틈이 든든한 믿음의 둑을 능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전쟁을 보면, 대부분 하나님께서 점령지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예 죄를 부르는 모든 싹을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손이나 발이나 눈이 범죄 하면 찍어버리며 빼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죄의 싹을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ꁾ막9:43-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의 환경을 지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고,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은 곧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우리 성도들도 역시 세상의 환경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물론 환경을 지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의 유혹에 약한 육신의 의지를 부인하고, 그로인하여 다가오는 어려움과 핍박과 곤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3. 작은 것이 큰 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시간의 힘이 있습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마음이나 육신의 아픔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치유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시간의 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은 개미 한 마리조차 죽이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에 시간이라는 힘이 더해지면 바위도 뚫어지는 위력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생애가 다해가는 말년에 우상을 위한 신당을 세우고, 우상 숭배까지 했습니다(본문 4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징계를 결정하셨습니다. 그 위대하던 지혜와 믿음은 어디로 가고, 우상 숭배를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로도 작은 틈 하나가 자신을 무너뜨릴 줄 몰랐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작다고 방치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 작은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좋을 때는 천 명의 아내라 할지라도 그들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되는 아내들의 유혹에 끝내는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큰 핍박이나 환난이 아닙니다. 핍박이나 환난은 오히려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깊은 책망을 들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습니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켰으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고 핍박도 이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믿음이 식어가고 사랑을 잃어갔던 것입니다.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기 전에 잘라 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옛 습관들인 묵은 누룩을 내어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하는 진정한 사랑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의 입맛이 변하듯이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또한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방치하고 있는 작은 습관과 유혹이 나를 무너뜨린다는 것도 기억합시다. 역시 작은 생활의 염려가 진리의 말씀을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걱정과 근심 모든 염려는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감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더욱 깊어지는 믿음으로 주어진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생명체의 탄생이 하나의 작은 세포로부터 시작되며, 사람의 지식도, 일도 모두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누룩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멸망케 하는 죄와 악한 것의 시작도 역시 작은 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도 작은 개미가 구멍을 뚫는 것에서 시작하여 무너져 내린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하잘 것 없는 미혹이나 유혹을 방치하다가 결국 깊은 죄악의 구덩이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이 시간의 구약 본문에서 등장하는 솔로몬의 경우입니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말 중에, ‘도루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되다가 어그러져 원래 상태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임금이 국난으로 인하여 궁궐을 떠나 피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식량이 귀하던 차에 마침 한 백성이 ‘묵’이라는 물고기를 임금께 바쳤습니다. 임금이 그 고기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품이었습니다. 그 맛이 하도 기가 막혀서 임금을 그 물고기의 이름을 ‘은어’라 부르도록 명했습니다. 물고기의 맛과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얼마 후, 난리는 끝이 났고 임금을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은 피난길에서 먹었던 은어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 요리를 해오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산해진미로 입맛이 길들여진 임금에게 그 물고기가 맛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맛있었던 은어의 맛이 영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도루 ‘묵’이라고 불러라”고 명했습니다. 여기서 ‘도루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은어’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두 종류의 물고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회귀성을 가진 날씬한 물고기인‘은어’이며, 다른 하나는 ‘도루묵’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문의 솔로몬의 경우와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사실, 은어의 맛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입맛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상황이라도 배부를 때와 배고플 때의 마음은 달라집니다. 다만 솔로몬의 경우에는 입맛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믿음이 변질 된 것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인 신약과 구약의 말씀은 우리의 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을 한 번 점검해 봅시다.
1. 우리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솔로몬이 왕이 될 때의 믿음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가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의 내용이 그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왕상8:25절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 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와 약속하신 대로 내가 그 말씀을 다 지켰으니 그 약속을 이루어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기도대로 통치 초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뻐하셨고,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부귀영화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왕상8:61절에서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라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믿음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했던 솔로몬의 마음이 우상을 숭배하는 많은 이방 여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는 정략결혼을 포함하여 무려 일천 명의 부인들을 두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왕의 법규를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 ꁾ신17:16-17,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본문7절.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그토록 훌륭하던 솔로몬의 믿음도 환경을 따라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자리까지도 같이 가겠다던 제자들이 상황이 바뀌자 그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위하여 모두 도망가 버렸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아니 저주하면서 모른다고 딱 잡아뗐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처음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져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 때의 믿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더욱 든든해지고 사랑이 더욱 깊어져 있습니까? 혹시 그 때와 달라진 환경과 상황 따라 변하여 있지나 않습니까?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2. 믿음을 좌우하는 환경을 살펴봅시다.
환경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람을 완전히 딴 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1920년 영국의 인류학자들이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 늑대들의 무리 속에서 두 아이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인도로 가서 늑대 무리 속에 있는 아이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했습니다. 두 아이는 여자였고, 늑대처럼 네 발로 뛰어다녔으며,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날고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일반 사람들보다 귀가 훨씬 밝았습니다. 또한 야행성 동물과 마찬가지로 밝은 낮에는 잘 보지 못했지만, 어둠 속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떤 경위로 늑대 무리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환경이 그들을 늑대의 습성을 갖도록 했으며, 그들 또한 그 환경에 잘 적응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향한 든든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한 것도 환경이었습니다. 열왕기상 3:1절에, “솔로몬이 애굽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 성에 두고…”라고 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모압 여자들과 에돔, 시돈, 헷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법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 ꁾ본문2절/ 출34: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16,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는 유혹의 작은 틈이 든든한 믿음의 둑을 능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전쟁을 보면, 대부분 하나님께서 점령지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예 죄를 부르는 모든 싹을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손이나 발이나 눈이 범죄 하면 찍어버리며 빼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죄의 싹을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ꁾ막9:43-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의 환경을 지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고,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은 곧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우리 성도들도 역시 세상의 환경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물론 환경을 지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의 유혹에 약한 육신의 의지를 부인하고, 그로인하여 다가오는 어려움과 핍박과 곤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3. 작은 것이 큰 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시간의 힘이 있습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마음이나 육신의 아픔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치유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시간의 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은 개미 한 마리조차 죽이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에 시간이라는 힘이 더해지면 바위도 뚫어지는 위력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생애가 다해가는 말년에 우상을 위한 신당을 세우고, 우상 숭배까지 했습니다(본문 4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징계를 결정하셨습니다. 그 위대하던 지혜와 믿음은 어디로 가고, 우상 숭배를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로도 작은 틈 하나가 자신을 무너뜨릴 줄 몰랐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작다고 방치했을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 작은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좋을 때는 천 명의 아내라 할지라도 그들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되는 아내들의 유혹에 끝내는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큰 핍박이나 환난이 아닙니다. 핍박이나 환난은 오히려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반작용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깊은 책망을 들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습니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켰으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고 핍박도 이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믿음이 식어가고 사랑을 잃어갔던 것입니다.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기 전에 잘라 내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옛 습관들인 묵은 누룩을 내어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하는 진정한 사랑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의 입맛이 변하듯이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또한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방치하고 있는 작은 습관과 유혹이 나를 무너뜨린다는 것도 기억합시다. 역시 작은 생활의 염려가 진리의 말씀을 자라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걱정과 근심 모든 염려는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감사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더욱 깊어지는 믿음으로 주어진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