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시68:1-6)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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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3-18 21:08
*들어가는 말
로마에 크리스천 군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뚜르 지방>에서 온“마틴”이라고 하는 이 군인은 참으로 충성스러웠고, 열심히 군복무 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황량한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면서,
“군인 아저씨. 나 돈 한 푼만 주세요.”라고 구걸했습니다.
<마틴>은 주머니를 뒤지다가 돈이 한 푼도 없음을 알았지만, 벌벌 떨고 있는 거지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낡고 해진 군인 외투를 벗어 그것을 반쪽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반쪽을 떨고 있는 거지에게 감아 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돈이 없어 이렇게 옷을 찢어 줄 수밖에 없겠소.”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 중에 둘러싸여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로마 군복 반쪽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천사 하나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그 거지같은 로마 군복을 입고 계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이것은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25:40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두 가지 사실이 역력히 비교되고 있습니다. 악인과 의인, 순종자와 거역자, 이 두 가지 삶에 대한 다윗의 간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오전의 말씀과 함께 짝을 이루는 본문의 의미를 통하여 우리가 이 시대에 가져야 할 관심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1. 악인과 의인에 대한 관심
본문1-4절을 봅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그 어느 때고 있었던 악인에 대한 탄원과 하나님을 바라는 의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을 노래합니다.
1)악한 세력의 파멸에 대한 자세
1-2절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대적들의 세력을 꺾으시고, 그들을 패주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는 악한 세력으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한 성도가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사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배경은 이스라엘의 대적은 곧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확신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성도의 편이라는 강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성도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ꁾ시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대적자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성도들에게는 보복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신32:35, 롬12:19). 만일 성도가 스스로 보복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결과가 됩니다.
한편, 악한 세력의 파멸을 “밀의 녹음같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밀”은 꿀 찌꺼기를 짜낸 기름으로서, 등불을 켜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셔서 파멸시키실 때는 철저하고 완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의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신뢰
3-4절은 의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신뢰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전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핍박과 고난의 삶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15:10-11, 사61:1-3). 성도의 기쁨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생활의 질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생활이 그러했습니다.
만일 성도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진다면, 영의 침체뿐만 아니라, 삶의 고통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영의 기쁨과 즐거움은 육신의 삶에 있어서도 양약이 됩니다.
ꁾ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성도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ꁾ신30: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ꌀ” / 느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요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2. 순종자와 거역 자에 대한 관심
본문5-6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앞서 밝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선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소외된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외의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4:18-19를 찾아봅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는 주님께서 사역하시는 중심 목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곳, 마태복음25:34-36을 찾아봅시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말씀은 심판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심사에서 합격할 수 있는 성도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 순종은 말과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라는,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어떻게 살았는가?’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ꁾ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눅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런 일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사회의 외면을 당하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는 일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훈련장으로 <가정>을 주셨습니다. 곧, 가정을 통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셨습니다(잠17:1, 엡6:1-4).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나라도 민족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이처럼 흉악하게 변하는 이유도 사랑과 순종의 훈련장인 가정이 파괴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는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곳으로 돌이켜서 성도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듯이,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순종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관심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에 크리스천 군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뚜르 지방>에서 온“마틴”이라고 하는 이 군인은 참으로 충성스러웠고, 열심히 군복무 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황량한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거지가 손을 내밀면서,
“군인 아저씨. 나 돈 한 푼만 주세요.”라고 구걸했습니다.
<마틴>은 주머니를 뒤지다가 돈이 한 푼도 없음을 알았지만, 벌벌 떨고 있는 거지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낡고 해진 군인 외투를 벗어 그것을 반쪽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반쪽을 떨고 있는 거지에게 감아 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오. 내가 돈이 없어 이렇게 옷을 찢어 줄 수밖에 없겠소.”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 중에 둘러싸여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로마 군복 반쪽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천사 하나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그 거지같은 로마 군복을 입고 계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이것은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25:40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두 가지 사실이 역력히 비교되고 있습니다. 악인과 의인, 순종자와 거역자, 이 두 가지 삶에 대한 다윗의 간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오전의 말씀과 함께 짝을 이루는 본문의 의미를 통하여 우리가 이 시대에 가져야 할 관심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1. 악인과 의인에 대한 관심
본문1-4절을 봅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그 어느 때고 있었던 악인에 대한 탄원과 하나님을 바라는 의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을 노래합니다.
1)악한 세력의 파멸에 대한 자세
1-2절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대적들의 세력을 꺾으시고, 그들을 패주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는 악한 세력으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한 성도가 하나님의 적극적인 역사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배경은 이스라엘의 대적은 곧 하나님의 대적이라는 확신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성도의 편이라는 강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성도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ꁾ시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대적자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성도들에게는 보복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신32:35, 롬12:19). 만일 성도가 스스로 보복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결과가 됩니다.
한편, 악한 세력의 파멸을 “밀의 녹음같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밀”은 꿀 찌꺼기를 짜낸 기름으로서, 등불을 켜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완전한 소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셔서 파멸시키실 때는 철저하고 완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의 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의인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신뢰
3-4절은 의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신뢰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전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핍박과 고난의 삶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15:10-11, 사61:1-3). 성도의 기쁨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생활의 질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생활이 그러했습니다.
만일 성도의 삶에서 기쁨이 사라진다면, 영의 침체뿐만 아니라, 삶의 고통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영의 기쁨과 즐거움은 육신의 삶에 있어서도 양약이 됩니다.
ꁾ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성도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ꁾ신30: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ꌀ” / 느8: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요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시오.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2. 순종자와 거역 자에 대한 관심
본문5-6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앞서 밝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선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소외된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외의 일이나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4:18-19를 찾아봅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는 주님께서 사역하시는 중심 목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곳, 마태복음25:34-36을 찾아봅시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말씀은 심판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심사에서 합격할 수 있는 성도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 순종은 말과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라는,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으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어떻게 살았는가?’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ꁾ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눅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런 일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사회의 외면을 당하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는 일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훈련장으로 <가정>을 주셨습니다. 곧, 가정을 통하여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셨습니다(잠17:1, 엡6:1-4).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나라도 민족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사회가 이처럼 흉악하게 변하는 이유도 사랑과 순종의 훈련장인 가정이 파괴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는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곳으로 돌이켜서 성도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듯이,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순종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관심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