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충만(출36:1-7)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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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6-27 12:48
Title 교회의 충만 / Scripture 출36:1-7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건축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출발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2대의 족장을 거치면서 75명의 대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4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나그네와 노예의 삶을 살아 온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이것을 출애굽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75명이 430년 후 출애굽 때에는, 20세 이상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노약자와 여자를 합하면 전체 인구는 적어도 200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한 것은 출애굽 1년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언약을 맺으면서 「광야 교회」가 되었고, 그들이 지켜야 할 법도를 주셨는데, 이것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신다는 표징으로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언약/ 출24:3 ⇒ 율법수여/출24:12 ⇒ 광야교회/ 행7:37-38,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 성막 건축 명령/ 출25:8-9
이 성막은 Tent 로써, 이동식 성전인 셈입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중이었으므로 정착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성막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 왕의 시대에 와서 고정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지내면서 회당으로 바뀌었고, 오늘의 교회로 변천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광야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짓는 광경을 통하여, 오늘 성도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교회관(敎會觀)에 대하여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올바른 교회관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많은 성도들이 교회와 교회당에 대하여 혼돈하고 있습니다. 의미 구별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교회보다 교회당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성전에 대한 지나칠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를 성전 시대라 하고, 신약 시대를 교회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전 시대에 있어서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살펴봅시다.
- ▶ 행7:46-50,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66: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성전이 중요시되던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외형적인 성전보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이 성전에 오는 자들에게 이사야 1:12절에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성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신약에 와서는 아예 하나님을 모신 사람의 육신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외형적인 건물을 중요시한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오늘의 한국 교회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실족시키면서까지 교회당을 지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한국 교회는 영적인 성장보다 외형적인 성장을 더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영혼의 생명이 존중되는 교회이며,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하고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교회 관이며, 이러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어떻게 교회에 역사 합니까?
2. 무엇이 교회의 충만입니까?
구약에서의 성막이나 성전 건축은, 올바른 교회관,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진 후에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효과적인 건축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1)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형편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는 동안에 노예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막을 지을 무슨 재료들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축 기술자와 섬기는 일에 필요한 기구를 만들 일꾼까지도 예비하셨습니다.
-▶ 출31:1-6
하나님 앞에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억지를 부리지도 않으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어렵게 보이는 일들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자 하심입니다.
- ▶ 창22:1-2, 8, 12-14
2)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성막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잠정적으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 출36: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것도, 드리는 물질도,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만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출35: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너희의 소유 중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포함하는 물질의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하지 못한 이익과 불로 소득은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 ▶ 신23:18,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신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남의 득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즐거움으로 자원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3) 교회의 충만함
본문3-7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공급 방식은 옛날 시골 장터의 곡물점을 연상케 합니다. 눅6:38상반절을 봅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마음 좋은 시골 할머니가 쌀을 후하게 되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넘치도록 충만하게 공급하십니다.
- ▶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요10:10절 하반 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항상 충만함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이러한 충만함은 물질의 넉넉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충만함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회 된 표시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이해가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 건축이 무엇인지도 이해가 됩니까?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진 기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생명을 드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켜가야 합니다. 생명을 다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이 결코 교회당(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돌 하나도 돌 하나 위에 남김이 없이 무너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전의 금으로 입혔던 건물도 하나님이 싫어하셨다면, 오늘의 교회당이 아무리 잘 지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교회의 충만은 아닙니다. 또한 숫자적인 많음을 충만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충만은 그리스도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안식은 주 안에서 머무는 자에게 주어짐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의 나라에서 쉬는 날까지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을 건축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출발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아브라함 이후 2대의 족장을 거치면서 75명의 대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4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나그네와 노예의 삶을 살아 온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이것을 출애굽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75명이 430년 후 출애굽 때에는, 20세 이상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노약자와 여자를 합하면 전체 인구는 적어도 200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한 것은 출애굽 1년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언약을 맺으면서 「광야 교회」가 되었고, 그들이 지켜야 할 법도를 주셨는데, 이것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신다는 표징으로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언약/ 출24:3 ⇒ 율법수여/출24:12 ⇒ 광야교회/ 행7:37-38,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 성막 건축 명령/ 출25:8-9
이 성막은 Tent 로써, 이동식 성전인 셈입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중이었으므로 정착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성막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 왕의 시대에 와서 고정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지내면서 회당으로 바뀌었고, 오늘의 교회로 변천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광야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성막을 짓는 광경을 통하여, 오늘 성도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교회관(敎會觀)에 대하여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올바른 교회관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많은 성도들이 교회와 교회당에 대하여 혼돈하고 있습니다. 의미 구별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교회보다 교회당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성전에 대한 지나칠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를 성전 시대라 하고, 신약 시대를 교회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전 시대에 있어서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살펴봅시다.
- ▶ 행7:46-50,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66: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성전이 중요시되던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외형적인 성전보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이 성전에 오는 자들에게 이사야 1:12절에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성전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신약에 와서는 아예 하나님을 모신 사람의 육신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외형적인 건물을 중요시한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오늘의 한국 교회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실족시키면서까지 교회당을 지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한국 교회는 영적인 성장보다 외형적인 성장을 더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영혼의 생명이 존중되는 교회이며,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하고 경외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교회 관이며, 이러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어떻게 교회에 역사 합니까?
2. 무엇이 교회의 충만입니까?
구약에서의 성막이나 성전 건축은, 올바른 교회관,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진 후에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효과적인 건축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1)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형편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는 동안에 노예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막을 지을 무슨 재료들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일을 위하여 그들에게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축 기술자와 섬기는 일에 필요한 기구를 만들 일꾼까지도 예비하셨습니다.
-▶ 출31:1-6
하나님 앞에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억지를 부리지도 않으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어렵게 보이는 일들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자 하심입니다.
- ▶ 창22:1-2, 8, 12-14
2)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성막을 건축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잠정적으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 출36: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것도, 드리는 물질도,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만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출35: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너희의 소유 중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포함하는 물질의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하지 못한 이익과 불로 소득은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 ▶ 신23:18,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신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남의 득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즐거움으로 자원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3) 교회의 충만함
본문3-7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공급 방식은 옛날 시골 장터의 곡물점을 연상케 합니다. 눅6:38상반절을 봅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마음 좋은 시골 할머니가 쌀을 후하게 되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넘치도록 충만하게 공급하십니다.
- ▶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요10:10절 하반 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항상 충만함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이러한 충만함은 물질의 넉넉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충만함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회 된 표시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이해가 됩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 건축이 무엇인지도 이해가 됩니까?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진 기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생명을 드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켜가야 합니다. 생명을 다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이 결코 교회당(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돌 하나도 돌 하나 위에 남김이 없이 무너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전의 금으로 입혔던 건물도 하나님이 싫어하셨다면, 오늘의 교회당이 아무리 잘 지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교회의 충만은 아닙니다. 또한 숫자적인 많음을 충만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충만은 그리스도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안식은 주 안에서 머무는 자에게 주어짐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의 나라에서 쉬는 날까지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