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열매를 얻으리라(호세아14:1-9)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726회
작성일
2001-06-10 20:34
배의신 목사 / 설교원고 : 네가 열매를 얻으리라
2001년 6 월 10 일/ Title 네가 열매를 얻으리라/ Scripture 호14:1-9
Object 주일저녁예배(일반공통)/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사랑의 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선지자 호세아를 모델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이스라엘의 당면한 현실과 현실에 대한 경고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을 모델로 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 현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세상으로 나간 백성의 죄악 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게 기다리고 있는 형벌, 즉 나라의 멸망을 경고하시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과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죄악임을 깨닫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웨슬리>가 어느 날, 말 안 듣고 고집 센 딸을 교육하기 위해 딸에게 불이 꺼진 숯을 한 아름 주면서 안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딸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숯을 안아도 뜨겁지 않으니까 안아 보렴!”하고 말하자,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라고 딸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네 말이 옳다. 손이 델 염려는 없지만, 숯이 손을 더럽히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사과는 아무리 작아도 사과입니다. 불의(不義)란 커도 불의이고 작아도 불의입니다. 죄도 역시 커도 죄이며 작아도 죄입니다.
맨 처음 이스라엘의 죄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등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예배를 한 번 두 번 빠지다가, 한 주일 두 주일 빠지게 되고, 죄의 행위가 하나씩 늘어나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미미한 죄악 하나가 결국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악에 대하여는 단호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8:8-9절을 보십시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은 실제로 손발을 끊어버리고 눈을 빼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악에 대하여 그 정도의 단호함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이길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자에게 풍성한 열매를 얻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는 돌아오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생명과 풍성한 삶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6장에도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나와 있으며, 백성들에게 큰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름뿐이었지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본 장에서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라는 말 자체가 단순히 ‘가던 길을 멈추는 것’이나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서 바른 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면 생각과 관심과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달라진 삶에서 나타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회개의 열매입니다(본문2,3절). 그러면 회개의 열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 회개의 열매를 맺는 첫 번째 단계는 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합니다. 그들은 실패의 이유가 불의함 때문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의를 제거해 주실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죄로 인식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고, 오히려 죄가 아니라고 정당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악인임을 증거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달린 강도 둘을 보면 이 말씀을 조금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눅23:39-43). 자신의 정당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한 한 편의 강도는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한 다른 강도는 오히려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봅니다. 성도는 자신의 정당성을 빨리 포기할수록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간이나, 부부간이나, 고부간이나, 이웃 사이에서 자신의 정당성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 정부가 갈팡질팡하며 국민들의 분노를 사는 것도, 일은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자기 정당성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2) 회개의 열매를 맺는 두 번째 단계는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서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는 표현과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라는 표현에서 죄의 고백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표현해 봅시다. 여호와께 돌아오되 빈손이 아닌, 네 죄의 자백의 말씀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짐승의 제사 대신에 그러한 감사 제물로 그들의 입술을, 즉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 없이 드리는 제사는 그것이 최상의 제물을 사용한 최상의 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값진 예물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3) 회개의 열매를 맺는 세 번째 단계는 방향 전환입니다.
본문3절을 봅시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죄를 인식하고, 죄를 고백한 백성들은 이제 실제의 삶에서 방향을 전환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결단입니다. 여기서 방향 전환이라 함은, 자기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으로 대신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으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지만, 자기의 감정이나 양심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이 방향 전환에서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구제물로 내 놓을 것과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방향 전환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모든 것을 청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나타났습니다.
2. 회개의 열매는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났던 백성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놀랍고도 풍성한 열매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본문 4-8절까지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복락입니다.
몇 가지만 보십시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패역을 고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배반했던 배교의 행위를 바르게 교정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ꁾ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선택된 특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이 성도를 향한 성별된 하나님의 사랑이며, 누가복음15장에서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탕자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풍성한 복으로 5-8절까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성도에게 새롭고 소생케 하는 신선한 이슬이 되시며, 그 이슬을 통하여 성도는 꽃이 피고, 뿌리를 잘 내리며, 멀리 가지를 펼치게 됩니다. 이처럼 잘 성장한 나무는 결국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는 감람나무, 백향목, 포도나무 등은 각자의 특성을 지닌 최고의 나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가장 좋은 특징들만 모아서 최상의 나무에서 최상의 열매를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베푸시는 최상의 은혜를 말씀합니다.
이 무한한 복의 약속도 선택의 길로 주어졌습니다. 열매 있는 진정한 회개로 이 큰 복을 누릴 수도 있고, 한순간의 쾌락과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지금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매일 매 순간의 삶에서 맺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과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여 죄악에 대하여 단호하며, 매순간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는 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01년 6 월 10 일/ Title 네가 열매를 얻으리라/ Scripture 호14:1-9
Object 주일저녁예배(일반공통)/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사랑의 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선지자 호세아를 모델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이스라엘의 당면한 현실과 현실에 대한 경고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을 모델로 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 현실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세상으로 나간 백성의 죄악 된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게 기다리고 있는 형벌, 즉 나라의 멸망을 경고하시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심각성에 대하여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과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죄악임을 깨닫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 웨슬리>가 어느 날, 말 안 듣고 고집 센 딸을 교육하기 위해 딸에게 불이 꺼진 숯을 한 아름 주면서 안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딸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숯을 안아도 뜨겁지 않으니까 안아 보렴!”하고 말하자,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라고 딸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네 말이 옳다. 손이 델 염려는 없지만, 숯이 손을 더럽히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은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단다.”라고 했습니다.
사과는 아무리 작아도 사과입니다. 불의(不義)란 커도 불의이고 작아도 불의입니다. 죄도 역시 커도 죄이며 작아도 죄입니다.
맨 처음 이스라엘의 죄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등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예배를 한 번 두 번 빠지다가, 한 주일 두 주일 빠지게 되고, 죄의 행위가 하나씩 늘어나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미미한 죄악 하나가 결국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악에 대하여는 단호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8:8-9절을 보십시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은 실제로 손발을 끊어버리고 눈을 빼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악에 대하여 그 정도의 단호함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이길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자에게 풍성한 열매를 얻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는 돌아오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생명과 풍성한 삶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6장에도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나와 있으며, 백성들에게 큰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름뿐이었지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본 장에서 돌아올 것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라는 말 자체가 단순히 ‘가던 길을 멈추는 것’이나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서 바른 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면 생각과 관심과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달라진 삶에서 나타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회개의 열매입니다(본문2,3절). 그러면 회개의 열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 회개의 열매를 맺는 첫 번째 단계는 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합니다. 그들은 실패의 이유가 불의함 때문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의를 제거해 주실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죄로 인식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고, 오히려 죄가 아니라고 정당화시키는 것은 자신이 악인임을 증거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달린 강도 둘을 보면 이 말씀을 조금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눅23:39-43). 자신의 정당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한 한 편의 강도는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한 다른 강도는 오히려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봅니다. 성도는 자신의 정당성을 빨리 포기할수록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간이나, 부부간이나, 고부간이나, 이웃 사이에서 자신의 정당성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지금 우리 정부가 갈팡질팡하며 국민들의 분노를 사는 것도, 일은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자기 정당성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2) 회개의 열매를 맺는 두 번째 단계는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서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는 표현과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라는 표현에서 죄의 고백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표현해 봅시다. 여호와께 돌아오되 빈손이 아닌, 네 죄의 자백의 말씀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짐승의 제사 대신에 그러한 감사 제물로 그들의 입술을, 즉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죄의 고백 없이 드리는 제사는 그것이 최상의 제물을 사용한 최상의 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값진 예물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3) 회개의 열매를 맺는 세 번째 단계는 방향 전환입니다.
본문3절을 봅시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했습니다.
죄를 인식하고, 죄를 고백한 백성들은 이제 실제의 삶에서 방향을 전환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결단입니다. 여기서 방향 전환이라 함은, 자기 것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으로 대신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으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돌이킴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지만, 자기의 감정이나 양심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이 방향 전환에서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구제물로 내 놓을 것과 토색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방향 전환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모든 것을 청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나타났습니다.
2. 회개의 열매는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났던 백성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놀랍고도 풍성한 열매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본문 4-8절까지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복락입니다.
몇 가지만 보십시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패역을 고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배반했던 배교의 행위를 바르게 교정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ꁾ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선택된 특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이 성도를 향한 성별된 하나님의 사랑이며, 누가복음15장에서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탕자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풍성한 복으로 5-8절까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성도에게 새롭고 소생케 하는 신선한 이슬이 되시며, 그 이슬을 통하여 성도는 꽃이 피고, 뿌리를 잘 내리며, 멀리 가지를 펼치게 됩니다. 이처럼 잘 성장한 나무는 결국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본문에 등장하는 감람나무, 백향목, 포도나무 등은 각자의 특성을 지닌 최고의 나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가장 좋은 특징들만 모아서 최상의 나무에서 최상의 열매를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아오는 자에게 베푸시는 최상의 은혜를 말씀합니다.
이 무한한 복의 약속도 선택의 길로 주어졌습니다. 열매 있는 진정한 회개로 이 큰 복을 누릴 수도 있고, 한순간의 쾌락과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지금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매일 매 순간의 삶에서 맺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과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여 죄악에 대하여 단호하며, 매순간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이 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는 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