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성도가 머물러야 할 자리(마가복음2:13-17)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068회 작성일 2001-06-10 20:28
배의신 목사 / 설교원고 : 성도가 머물러야 할 자리
2001년 6 월 10 일/ Title 성도가 머물러야 할 자리 /Scripture 막2:13-17
Object 주일 낮 예배(일반공통)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지금 손가락 깍지를 껴보십시오. 오른손이 위로 올라오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왼손이 위로 올라오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반대로 껴보십시오. 어떻습니까? 뭔가가 어색하지요?

진주 목걸이를 돼지 목에 걸어준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젊은 부인이 할머니의 복장을 한다던지, 중학생이 짙은 화장을 한다던지 성인 양복을 입는다던지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무척 어색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느끼는 가장 어색한 것을 꼽으라면 어떤 것을 꼽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어색함은 제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것들입니다. ‘월트 디즈니’의 ‘왕자와 거지’라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품위 있는 왕자가 거지의 행세를 하는 것이나, 거지가 왕자의 행세를 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추하고 더럽게 여기는 것들도 그것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에는 그리 추하거나 더러운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도 제자리를 벗어나면 추하고 어색하게 보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저마다 서야할 곳, 다녀야 할 길, 앉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주님의 성도로서 각인에게 주어진 자리가 있습니다. 그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면 어색하고 추하게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면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열차가 레일을 이탈하고, 비행기나 배가 항로를 이탈하고, 자동차가 차선을 이탈하면 사고가 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주목하시면서 머물러야 할 자리에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의 본문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성도의 자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1. 먼저,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가버나움의 한 집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며 병자를 고치셨던 예수님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바닷가로 나가셨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였습니다. 엄청난 무리가 예수님께로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으시고 해변을 걸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입항하는 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하여 설치된 세관 앞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세관에서 일하고 있던 세리인 ‘레위’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멈추셔서 ‘레위’를 주목해 보셨고, 곧 그에게 자신을 따르도록 제안하셨습니다. ‘레위’는 즉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아마 사람들의 경멸어린 시선과 멸시만을 받아왔던 세리 ‘레위’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이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회 정황으로는 ‘세리’라는 직업이 ‘죄인’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고, 또한 로마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반역자’로 여겨졌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친일파를 보는 그런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대인으로서 세리 ‘레위’의 삶이 얼마나 소외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예수님의 관심과 부르심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흔쾌히 수락하셨고,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결코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들의 비난이 결코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난을 들으시고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비유를 곁들여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짧은 행로와 가르침 속에서, 레위처럼 부름 받은 성도로서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2.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신 자리를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모여 든 수많은 사람들과 대면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으려는 닫힌 마음의 대적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치유하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본은 성실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상황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즉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중단하거나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셨습니다. 주님은 디모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4:2-5을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직무의 자리에서 어떤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의 결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일을 맡은 우리는 성실함으로 순종하여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두 번째 본은 관심의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택하시면서 소외된 자들, 버림받은 자들,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당신의 오심이 ‘의인을 부르려 함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세리인 ‘마태’를 부르셨고,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마태의 집에는 다른 세리들과 소외된 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과 식탁을 마주하심으로 친근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이러한 관심과 행위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마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회적 신분, 학식과 학력을 구분하며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4:18-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는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며, 어떤 자리에 머물러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를 높여주고 존경하고 도와주며 이해해 주는 사람이 우리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갚음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 ꁾ마6:2-4,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3) 예수님의 세 번째 본은 대상자들에 대한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신 것은 그들의 죄를 옹호하거나 묵과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들의 죄로부터 돌아서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 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해결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기꺼이 고백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책망이나 문책이 아니라, 죄사함과 치료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헤아리는 일들을 합니다. 정죄와 죄사함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의 몫은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통한 화목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죄인들에 대하여 경멸하며, 구별하며,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으셨으며,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버려진 죄인들은 대적자가 아닙니다. 대적자는 그들을 버리고 경멸하고 구별한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버려진 죄인들은 주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자리입니다.

작은 시골에서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했으나 그 가정은 화목하게 지냈으며, 또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져서 그 마을 전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깨끗하고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뭄이 들던 해 이 가정에도 궁핍이 찾아들었습니다. 마침 가까운 시에서 보수가 좋은 일자리가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사 간 곳은 시 외곽에 위치한 몹시 환경이 불경건한 빈민가였습니다.
이사하고 난 얼마 후 그 가정은 경제적으로 얼마간 풍족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풍족함의 대가는 가정의 파괴였습니다. 그 가정이 일에 매어서 신앙의 자리를 떠났으며, 자식들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머물러야 할 자리는 하나님의 뜻 안입니다. 주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르치시고 전하고 봉사하신 것처럼, 우리의 자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산다면, 그 곳이 빈민가이든 화려한 궁궐이든 비천한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자리가 천국으로 화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이 본을 보이신 것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란,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화목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머물러야 할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면한 상황은 예수님께서 일하시던 그 때처럼 대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딤후4:2-5절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쫓으며, 허탄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비록 상황은 어려워지고 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직 앞서 가시는 주님의 본을 따라 성실하게 삶의 자리를 지키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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