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롬12: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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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8-11 21:23
Title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 / Scripture 롬12:1-8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십니까?
‘자유!’얼마나 좋고 또 소유하고 싶은 것입니까?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자유를 말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얻고 누릴 수 있는 길은 또 무엇입니까?
영적 혹은 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 매여 있는 노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8:34절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한 길뿐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할 수 있으며, 주의 영이 있는 곳에만 자유 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8:3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처럼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복종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자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면적 자유가 없는 외부적 자유란 무가치한 것입니다. 비록 내가 외부적 압력에 의한 굴복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무지, 죄악, 이기주의, 공포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만을 자유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그 속에 교만, 분노, 태만이 활동하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 집힘이 없이,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용의가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참자유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외부적인 억압이나 간섭이 없으면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매이는 것이 너무도 많은 가련한 종의 상태임을 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에 자의든지 타의든지 매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돈에 매이고, 권력에 매이고, 정에 매이고, 사랑에 매이고, 원한에 매이고, 자존심에 매이고, 명예에 매이고, 욕망에 매입니다. 사람이 무엇에 매인다는 것은 그것에 의하여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유」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데도르》라고 하는데, ‘자연스러움’, ‘깨끗한’, ‘순수한’등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즉, 주어진 환경 속에서의 자유입니다. 기차의 자유란 궤도 위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식물에게 있어서의 자유란, 태양과 물과 공기와 토양조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지구와 천체는 그 궤도 안에서 돌아야 합니다. 만일 「지구」가 항상 도는 궤도가 지겹다고 해서 그 궤도를 이탈하여 제멋대로 우주를 떠돈다면, 그 결과가 파멸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법도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온 것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자유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범죄 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데, 그 유혹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 하나님처럼 자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의 결과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도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파멸만 있었습니다. 마치 기차가 궤도를 벗어나서 달려보겠다고 탈선한 것이나 물고기가 땅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유와 평안을 누려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고집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유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들에 매이고, 스스로 파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은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갈라디아서5:1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종의 멍에》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8:3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고, 로마서6:16절에서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종’이란, ‘죄의 종’을 의미하고, 죄의 종이 멘 멍에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죄」와 죄로 말미암는 「죽음」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며, 자녀에게는 당연히 자유가 주어집니다.
-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22-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에서는 ‘자유’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이 자유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2.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본문3절을 봅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성도들이 누릴 자유를 말씀합니다. 이 말씀 중에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생활의 궤도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한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이 어울려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개개인은 생김새, 재능, 수명, 건강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독특한 생활 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대신 살아달라고 위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속 질문하시고 장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왜 나만 가지고 그러십니까?!’라는 의미로 예수님 곁에 있는 요한에 대하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궤도를 성실하게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자신의 삶의 궤도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꾸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란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한 복종입니다. 이처럼 피조물들이 자신의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피조물에게 정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한 복종의 요구는 인간을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안전하고 완전한 자유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 인간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월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월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자족》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에 만족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물질이나 욕망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자유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도 ‘만족’할 줄 아는 삶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족’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원리가 본문 앞부분의 ‘영적인 예배’와 뒷부분의 ‘실천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고, 또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대하여 복종하는 마음도 없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섬김과 봉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만이 영적인 예배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섬김과 봉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로서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곧 ‘사랑’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사랑과 순종의 마음이 없으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할 수 있다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하는 것은 나의 신앙적인 지식이나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사랑을 위함이며, 자유를 누리며,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과 성실로 순종하노라면, 우리의 구원과 상급을 주님께서 합당하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이 오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또 전파하는 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십니까?
‘자유!’얼마나 좋고 또 소유하고 싶은 것입니까?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자유를 말하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얻고 누릴 수 있는 길은 또 무엇입니까?
영적 혹은 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아래 매여 있는 노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8:34절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한 길뿐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할 수 있으며, 주의 영이 있는 곳에만 자유 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8:3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처럼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복종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자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면적 자유가 없는 외부적 자유란 무가치한 것입니다. 비록 내가 외부적 압력에 의한 굴복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무지, 죄악, 이기주의, 공포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만을 자유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그 속에 교만, 분노, 태만이 활동하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 집힘이 없이,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용의가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참자유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외부적인 억압이나 간섭이 없으면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매이는 것이 너무도 많은 가련한 종의 상태임을 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에 자의든지 타의든지 매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돈에 매이고, 권력에 매이고, 정에 매이고, 사랑에 매이고, 원한에 매이고, 자존심에 매이고, 명예에 매이고, 욕망에 매입니다. 사람이 무엇에 매인다는 것은 그것에 의하여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유」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데도르》라고 하는데, ‘자연스러움’, ‘깨끗한’, ‘순수한’등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즉, 주어진 환경 속에서의 자유입니다. 기차의 자유란 궤도 위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식물에게 있어서의 자유란, 태양과 물과 공기와 토양조건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지구와 천체는 그 궤도 안에서 돌아야 합니다. 만일 「지구」가 항상 도는 궤도가 지겹다고 해서 그 궤도를 이탈하여 제멋대로 우주를 떠돈다면, 그 결과가 파멸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법도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온 것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자유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범죄 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데, 그 유혹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 하나님처럼 자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의 결과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도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파멸만 있었습니다. 마치 기차가 궤도를 벗어나서 달려보겠다고 탈선한 것이나 물고기가 땅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유와 평안을 누려보겠다고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고집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유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들에 매이고, 스스로 파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1. 주님은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갈라디아서5:1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종의 멍에》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8:3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고, 로마서6:16절에서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종’이란, ‘죄의 종’을 의미하고, 죄의 종이 멘 멍에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죄」와 죄로 말미암는 「죽음」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며, 자녀에게는 당연히 자유가 주어집니다.
-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22-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에서는 ‘자유’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이 자유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2.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본문3절을 봅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성도들이 누릴 자유를 말씀합니다. 이 말씀 중에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생활의 궤도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한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이 어울려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개개인은 생김새, 재능, 수명, 건강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독특한 생활 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대신 살아달라고 위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속 질문하시고 장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왜 나만 가지고 그러십니까?!’라는 의미로 예수님 곁에 있는 요한에 대하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궤도를 성실하게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자신의 삶의 궤도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꾸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란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한 복종입니다. 이처럼 피조물들이 자신의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피조물에게 정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한 복종의 요구는 인간을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안전하고 완전한 자유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 인간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월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초월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자족》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일에 만족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물질이나 욕망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된 자유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도 ‘만족’할 줄 아는 삶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족’은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대한 복종’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원리가 본문 앞부분의 ‘영적인 예배’와 뒷부분의 ‘실천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고, 또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에 대하여 복종하는 마음도 없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섬김과 봉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만이 영적인 예배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섬김과 봉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로서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곧 ‘사랑’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사랑과 순종의 마음이 없으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할 수 있다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하는 것은 나의 신앙적인 지식이나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사랑을 위함이며, 자유를 누리며,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과 성실로 순종하노라면, 우리의 구원과 상급을 주님께서 합당하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이 오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또 전파하는 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