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불가능의 가능성(겔37:1-6)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096회 작성일 2001-07-28 12:39
Title 불가능의 가능성 / Scripture 겔37:1-6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여러분! 본문의 내용처럼 뼈만 남은, 그것도 말라버린 뼈가 살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그 불가능의 가능성을 이제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칭찬받은 인물 중에 ‘수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생각으로 조목조목 따져서 믿은 것이 아니라 전폭적인 믿음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이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 말입니다.
이들의 고백은 믿음의 기도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떠난 믿음은 자기 신념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있어서 자기신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바른 것 같지만 자기 신념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믿음’이지 ‘믿음의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하는 믿음’과 ‘믿음의 기도’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마치 ‘금모래’와 ‘모래금/사금(砂金)’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금모래는 금 같은 모래이고, 모래금은 모래 같은 금입니다. 기도하는 믿음은 ‘기도’가 믿음의 대상이지만,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는 불가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으며, 마가복음9:23절에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본문 말씀에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1. 불가능한 현실을 봅시다.

에스겔 선지자의 전반부 사역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심판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원인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기 때문이며, 지금의 고난은 그 징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방탕한 삶을 쫓다가 멸망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그들은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환경을 보며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현실을 바라보며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그 불가능한 현실을 깨뜨리고 회복케 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희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살수가 없다. 희망 없이 사는 것은 살기를 중지한 것과 같다.”고 했고, 『단테』는 그의 소설「신곡」에서 지옥문에는 “여기에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다 버린 자이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생활 중에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으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절망하는 모습은 에스겔이 본 마른 뼈만 가득한 골짜기와 같았습니다. 이 뼈들은 심히 많았지만 모두 말라있는 상태였습니다. 즉 소망의 완전한 상실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현실이 살아있다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소망을 버린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도저히 소생할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이 뼈들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현실적인 환경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치입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앙상한 뼈, 이들이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은, 참으로 황당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보면서 누군가가 “소망이 보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혹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뼈들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시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 이제 불가능의 가능성을 찾아봅시다.

이렇게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이 이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마른 뼈들로 가득한 골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자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제짝을 찾아서 맞추어졌습니다. 그리고 살이 입혀지고 다시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지고 그 죽음의 골짜기에 생명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환상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우신 약속과 당신 자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전적인 은혜임을 말씀합니다(겔36:21-23/ 엡2:8-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비록 이렇게 은혜를 베풀기로 작정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이루어 주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겔36:37절).
이는, 인간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골 골짜기에서 보이신 대로 이스라엘 회복에 대하여 계획하시고 실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 일이 이루는 것이 우연이나 인간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11:25-26절을 봅시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근거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살과 피 입니다. 요한복음 6:53,5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십니다.

불가능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불가능한 사실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그 가능성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3.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가능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본문5-6절을 봅시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또 10절에서는,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서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라고 했습니다.

가능성의 범위는 완전함입니다.
모양만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요, 몇몇만 일어나는 회복도 아닙니다. 살아서 일어나고 활동하는 심히 큰 군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시는 것은 일부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완전함입니다.

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빌립보서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무능하고 나약하게 보임은 어떤 연고입니까? 그것은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처럼, 신앙의 외적인 모습만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믿음의 능력도 열매도 없이 오히려 세상적인 열매만 가득한 사람들을 향하여,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경건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경건이라고 합니까? 디모데전서3:16절을 봅시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곧 세상에 오신 하나님, 곧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믿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믿음이 곧 불가능의 가능성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이 행하신 일들과 말씀, 주님을 증거하는 모든 말씀들에 대한 신뢰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지금도 변함없이 역사하신다는 신뢰를 포함합니다. 이 믿음이 내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더러 들려 저리로 옮기라 해도 그렇게 된다고 하셨는데, 주님을 향한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눈이나 생각에 의하여 불가능하다고 판결내린 일들이 있습니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의 눈으로 다시 보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으로 충만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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