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만남의 신앙(삼상9:1-10)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10,714회 작성일 2001-07-28 12:37
Title 만남의 신앙 / Scripture 삼상9:1-10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삶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과정에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든 삶이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삭의 신붓감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서, 나홀의 성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을 만났고, 억울한 감옥 생활 중에 바로의 관리들을 만나서 꿈 해몽한 일로 바로를 만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아람 나라의 문둥병 장군인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어린 계집종을 만나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바울이 유럽 전도를 시작하면서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그의 집이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출장 간 서울 청년이 일주일간 여관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 하다가 맨 늦게까지 남아 기도하던 처녀와 결혼하게 된 만남도 있었습니다.

두메산골 교회에서 착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가난한 집 여자 아이가, ‘서울 가서 신앙 좋은 가정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며 야간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무렵, 서울의 강 권사님은 식모문제로 하도 속을 썩이다 못해, ‘잘 믿는 착한 시골처녀 하나 보내 주시면 딸처럼 사랑해 주겠다.’고 주님께 기도 했습니다.
강 권사님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울 역 대합실로 갔습니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자에 앉아 무릎 위 성경책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도 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권사님이 다가가서 ‘혹시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소녀는 강 권사님 댁에서 야간 성경학교를 다니며 가족처럼 살다가, 독실한 총각 집사님과 결혼하여 성실한 교회봉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사람들의 만남을 통하여 섭리하시며 역사하십니다.
특별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 등. 사람의 평생은 많은 만남들로 이루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바울이 된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으로 사울은 ‘바울’이 되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인생의 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만남들이 있습니다. 말씀 속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입니다. 우리는 그가 인생의 실패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선하시는 만남의 자리로 가 봅시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서 나 자신의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만남의 과정들을 봅시다.

사무엘상 9장과 10장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시간의 본문에는 사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한 가정의 사소한 일로 시작됩니다.
사울이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사환과 함께 자기 집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섰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지,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지파 지역까지 두루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숩’땅에까지 왔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른 성에는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이 여행을 주선하셨습니다. 즉, 나귀를 잃어버린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장래의 큰 계획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일,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 이면에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만남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시다.

1) 사환과의 만남입니다.
본문6-8절을 봅시다. 사환은 사울을 보좌하여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어느 듯 암나귀를 찾아 떠난 지 오래되어, 사울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하여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바로 그 때, 동행하던 사환이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이 성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선뜻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사환은 자신에게 있었던 은 ¼ 세겔을 선뜻 내놓아 선지자를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의 사환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안내자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아람의 장군이면서 문둥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에게도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와서 식모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의 계집아이에게서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영접하지도 않는 엘리사에게 분노하여 돌아설 때에도 수행하던 종의 권유로 결국 병을 고침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도에게 있어서 성실한 동행자는 영적인 삶에 있어서 큰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이 안내자들은 의견을 존중받을 수 없는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선하시는 만남에는 우리가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겸손한 자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5:5절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고, 이사야29:19절에서는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다.”고 하셨으며, 이사야57:15절에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2) 좋은 이웃과의 만남입니다.
삼상9:11-13절을 봅시다. 사울은 사환의 독려를 힘입어 선지자가 사는 성으로 향했습니다. 사울은 성 입구에 있는 우물가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소녀들은 사울에게 선지자의 근황을 상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차 은혜를 입게 합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주변의 애굽 사람들에게 물질을 요구할 때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할 때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을 위하여 은혜를 예비하십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ꁾ레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대하14:14,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3) 선지자와의 만남입니다.
삼상9:14절을 봅시다. 사울은 소녀들 덕분에 머뭇거림도 없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뜻하신 최종적인 목적지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임을 증거하십니다.
삼상9:15-17절을 봅시다. 사울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연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만남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만남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사람의 자세를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자그마한 일을 통하여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일의 배후에 계셔서 섭리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서까지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살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1) 지금의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울은 아버지로부터 집안의 가축을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찾아오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살고 있는 ‘기브아’를 출발하여 주변 지역을 멀리까지 몇몇 일을 힘을 다해 찾아 다녔습니다. 사울이 나귀를 찾아다닌 지역은 직선거리로만 40Km가 넘는 길이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성실하지 못하게 주변을 대강만 훑어보았더라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는 자질을 시험하시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일을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 열려진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동행하는 사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록 신분도 차이가 나고,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견해였지만 들어줄 줄 아는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많은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과 소수의 열려진 마음의 소유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리들이 닫힌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7:57절에서는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무리들이 마음의 찔림을 받고 취한 행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열려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유로 가르치시면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1:15, 13:9)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이 열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환을 통하여 사울이 하나님을 의지하는지의 여부를 보려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기 위하여 선지자 사무엘이 사는 성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나아가는 일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인도하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는 화합과 일치, 성결, 사랑의 일들입니다. 만일 세상적 향락이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거나 거룩함을 방해하며 거룩함과 사랑함을 거스른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인도함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만남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이며, 이 만남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길은 우리의 삶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매 순간마다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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