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분별력(마16:1-12)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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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7-20 23:45
Title 영적 분별력 / Scripture 마16:1-12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무엇일까?
로마서12:2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 시절(1923-1929) 때의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백악관에 초대를 받아 아침 식사를 할 때, 초대 받은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식사 때의 대통령 행동 때문입니다.
식사 때, 대통령이 커피 잔을 들어 받침 접시에 커피를 붓고, 설탕과 프림을 타는 것입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것을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곧 대통령이 그 접시를 고양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따라한 손님들이 그 커피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양이에게 주겠습니까? 자기가 마시겠습니까? 정말 난감한 지경이지요.
요즈음 세대가 정말 이상합니다. 자신의 개성은 없고 가수, 배우, 연기자들의 액세서리나 옷차림을 모방합니다. 심지어는 말투까지 모방을 합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권익’문제입니다. 여러 나라들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했거나 인정하려는 움직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술 더 떠서 ‘트랜스젠더’즉 ‘성전환자’까지 나서서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인들은 왜 분별도 없이 세상을 따라가는지요! 교회공동체에서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그러합니까?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말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1. 분별력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지상 최대의 사건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었고,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야의 오심’을 자신들의 욕망과 무지(無知)로 인하여 외면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너무 평범하셨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400여년의 영적 암흑기를 지난 백성들 앞에 나타난 세례요한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공생애 기간동안의 갖가지 이적들은 너무 위대한 것이어서 결코 부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만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거짓, 따라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탄식하셨습니다. “너희가 천지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만일 우리도 오늘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처럼 소경된 신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처럼 분별력이란,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것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이 깨달음을 방해하는 사단의 술수를 아는 것입니다. 곧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분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전서2:12-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분별력은 신령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사입니다.
2. 분별력에 대한 주님의 표현은 어떠합니까?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무리에 대한 주님의 책망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1)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한 영적 무지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실수나 무능함을 흠 잡으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하늘의 구름 빛을 보고 날씨를 분별할 줄은 알면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영적인 분별은 하지 못함을 탄식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흠을 잡으려는 생각임을 아셨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표적으로도 믿음을 줄 수 없음을 아시고 그들의 요청을 외면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들은 당시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들로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면서 재물과 명예를 탐닉하는 외식을 범하고 있었고, 사두개인들은 세상 권세와 재물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대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하여 애써 모른척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메시아가 아님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에도 예수님을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욕망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모르고 싶은’ 영적 무지입니다. 이처럼 애써 ‘스스로를 속이고자 하는 것’이 ‘악함’이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함’이 ‘음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주님은 이 악하고 음란한 마음을 외면하십니다.
2) 마음이 둔함으로 인한 영적 분별력의 부족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기를 ‘우리가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음을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고 우이독경(牛耳讀經)입니다. 주님은 답답한 마음을 탄식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그리고는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오병이어의 이적”과 “칠병이어의 이적”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이 ‘누룩’이 ‘교훈’혹은 ‘가르침’을 비유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외식적이고 세상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가르침을 분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의 가르침에 귀가 솔깃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세상적인 관심은 결국 마음의 둔함을 가져옵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22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1:34절에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도 역시 세상적인 관점은 영적인 분별력을 둔하게 만듦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3. 지금은 분별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지금은 분명히 분별이 절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것은 많이 있지만 구체적인 몇 가지의 사례들입니다.
1) 피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핍박과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피하셨으며, 제자들에게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23절에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부딪침은 오히려 복음의 방해가 되며,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기 쉽고 결국 죄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사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관심사인 ‘동성애(Gay, Lesbian)’, ‘성전환(Transgender)’, '포스터모더니즘(postmodernism)' ‘새 세대운동(New age movement) 등의 사상과 행동양식들이 그러합니다.
2) 진리를 절제해야 합니다. 진리를 진리로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미련한 사람들에게는 절제해야 합니다. 잠언9:8절에서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고 하셨고, 마태복음7:6절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3) 진리를 전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억눌린 자 등. 자신들이 약한 자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모두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도 역시 진리를 전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포함합니다.
4) 기도해야 할 대상과 하지 않아야 할 대상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까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사단의 일로 치부하거나 모독하고 훼방하는 죄를 말합니다. ꁾ요일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5) 거절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죄를 부추기는 자들이며, 이단들입니다. 이단에 대하여는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4.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12:10절에서 “영들 분별함”이 은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노력하거나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말씀합니다.
지금은 분명히 영적인 분별력을 필요로 하는 세대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면 영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불든 인도자를 따라가면 역시 한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분별력을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두워 가는 세대에 살지만 올바른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여 생명의 열매들을 예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무엇일까?
로마서12:2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 시절(1923-1929) 때의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백악관에 초대를 받아 아침 식사를 할 때, 초대 받은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식사 때의 대통령 행동 때문입니다.
식사 때, 대통령이 커피 잔을 들어 받침 접시에 커피를 붓고, 설탕과 프림을 타는 것입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것을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곧 대통령이 그 접시를 고양이에게 주는 것입니다. 따라한 손님들이 그 커피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양이에게 주겠습니까? 자기가 마시겠습니까? 정말 난감한 지경이지요.
요즈음 세대가 정말 이상합니다. 자신의 개성은 없고 가수, 배우, 연기자들의 액세서리나 옷차림을 모방합니다. 심지어는 말투까지 모방을 합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권익’문제입니다. 여러 나라들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했거나 인정하려는 움직임들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술 더 떠서 ‘트랜스젠더’즉 ‘성전환자’까지 나서서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인들은 왜 분별도 없이 세상을 따라가는지요! 교회공동체에서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그러합니까?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말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1. 분별력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지상 최대의 사건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었고,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야의 오심’을 자신들의 욕망과 무지(無知)로 인하여 외면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너무 평범하셨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400여년의 영적 암흑기를 지난 백성들 앞에 나타난 세례요한의 사역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공생애 기간동안의 갖가지 이적들은 너무 위대한 것이어서 결코 부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만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거짓, 따라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탄식하셨습니다. “너희가 천지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만일 우리도 오늘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처럼 소경된 신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처럼 분별력이란,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것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이 깨달음을 방해하는 사단의 술수를 아는 것입니다. 곧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분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전서2:12-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분별력은 신령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사입니다.
2. 분별력에 대한 주님의 표현은 어떠합니까?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무리에 대한 주님의 책망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1)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한 영적 무지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실수나 무능함을 흠 잡으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하늘의 구름 빛을 보고 날씨를 분별할 줄은 알면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영적인 분별은 하지 못함을 탄식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흠을 잡으려는 생각임을 아셨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표적으로도 믿음을 줄 수 없음을 아시고 그들의 요청을 외면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들은 당시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들로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면서 재물과 명예를 탐닉하는 외식을 범하고 있었고, 사두개인들은 세상 권세와 재물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대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하여 애써 모른척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메시아가 아님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에도 예수님을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욕망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모르고 싶은’ 영적 무지입니다. 이처럼 애써 ‘스스로를 속이고자 하는 것’이 ‘악함’이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함’이 ‘음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주님은 이 악하고 음란한 마음을 외면하십니다.
2) 마음이 둔함으로 인한 영적 분별력의 부족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기를 ‘우리가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음을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고 우이독경(牛耳讀經)입니다. 주님은 답답한 마음을 탄식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그리고는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오병이어의 이적”과 “칠병이어의 이적”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이 ‘누룩’이 ‘교훈’혹은 ‘가르침’을 비유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외식적이고 세상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가르침을 분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의 가르침에 귀가 솔깃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세상적인 관심은 결국 마음의 둔함을 가져옵니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22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1:34절에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도 역시 세상적인 관점은 영적인 분별력을 둔하게 만듦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3. 지금은 분별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지금은 분명히 분별이 절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것은 많이 있지만 구체적인 몇 가지의 사례들입니다.
1) 피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핍박과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피하셨으며, 제자들에게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23절에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부딪침은 오히려 복음의 방해가 되며, 자신의 감정이 드러나기 쉽고 결국 죄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사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관심사인 ‘동성애(Gay, Lesbian)’, ‘성전환(Transgender)’, '포스터모더니즘(postmodernism)' ‘새 세대운동(New age movement) 등의 사상과 행동양식들이 그러합니다.
2) 진리를 절제해야 합니다. 진리를 진리로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미련한 사람들에게는 절제해야 합니다. 잠언9:8절에서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고 하셨고, 마태복음7:6절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3) 진리를 전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억눌린 자 등. 자신들이 약한 자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모두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도 역시 진리를 전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포함합니다.
4) 기도해야 할 대상과 하지 않아야 할 대상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까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사단의 일로 치부하거나 모독하고 훼방하는 죄를 말합니다. ꁾ요일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5) 거절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죄를 부추기는 자들이며, 이단들입니다. 이단에 대하여는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4.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12:10절에서 “영들 분별함”이 은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노력하거나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말씀합니다.
지금은 분명히 영적인 분별력을 필요로 하는 세대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면 영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이나 부귀영화에 불든 인도자를 따라가면 역시 한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분별력을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어두워 가는 세대에 살지만 올바른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순종하여 생명의 열매들을 예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