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땅을 기경하라(호10:12-15)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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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7-14 12:55
Title 묵은 땅을 기경하라/ Scripture 호10:12-15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자기 결단을 의미합니다.
1872년 10월 8일 시카고의 어느 교회당에서 무디(Dwight L.Moody) 목사님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가 거의 끝날 즈음에 목사님은 수많은 청중들에게 “집으로 가서 이 중요한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보고, 다음 시간에 와서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결심을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온 도시가 소방차의 요란한 소리로 온통 소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카고’는 온통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대화재로 인하여 전날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일이 일평생 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께 오늘 결심도록 초청하고 강권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다른 설교를 듣기 전에 재림 하실지, 아니면 주님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 한 순간의 일들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심한 것은 미루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개혁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결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을 보십시오. 스스로의 결단이 없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단이란 이처럼 중요합니다. 겸손하면서도 확고부동했던 다니엘의 결심은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내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숫자와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본문13절). 만일 이들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묵은 땅을 기경하는 새로운 자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결단을 위하여 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묵은 땅”이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땅입니다. 묵은 땅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잡초들이 무성해서 좋은 씨앗이 떨어져도 싹을 낼 수가 없습니다. 설령 싹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ꡔ씨 뿌리는 비유ꡕ에서의 돌짝밭이나 가시밭과 같아서 결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전에는 결코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묵은 땅의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판단이 올바른 처방을 내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사가 오진을 했다면, 처방 또한 잘못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봅시다. 본문 앞 쪽의 호세아10:1-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경고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그들은 오히려 분을 품고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에 임박한 파멸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얼마나 큰 번영을 누렸었는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물질적인 번영은 단지 그들의 영적인 타락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풍요와 번영을 우상의 제단을 꾸미고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어리석은 부자처럼 세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핑계 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현실의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기경한다.”는 말은, 땅을 깊이 갈아엎고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부패한 사상과 악한 행실을 뒤집어엎어서 좋은 씨앗이 뿌려질 수 있도록 마음의 옥토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두 마음을 품었으며, 자신의 계획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갈아엎어야 할 묵은 행실들입니다.
1) 마음의 땅을 기경합시다.
호세아10:2절을 봅시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온갖 잡초들로 무성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겼다가, 바알 신도 섬겼다가 하는 마음의 정함이 없었습니다.
신명기6:5절이나 마태복음22:37절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전인적(全人的)인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얼마나 더 세상이 복잡해졌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세상사들로 마음이 얽혀 있어서, 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불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묵은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야고보서4:4절에서,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 삶의 땅을 기경합시다.
하나님을 모르던 옛 된 삶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적인 삶의 특성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즉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물질을 모으고 힘을 과시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인 <다윗> 왕도 이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로 자리를 잡아가자, 은근히 힘을 과시하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력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심히 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너무 타산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삼고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세상의 환경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과 자기중심적인 의지를 기준으로 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사람으로서 옛 사람의 묵은 삶의 방식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 벧후3:13-14,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라.”
3. 기경된 땅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기경한 땅에는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만일,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 놓고 비워 둔다면, 잡초는 더욱 무성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마태복음6:3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심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할 때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만일 기경한 땅을 비워둔다면 처음보다 더 악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 눅11:24-26, 벧후2:20 이 두 곳을 꼭 찾아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씨를 뿌릴 때는 적절한 시기를 따라야 합니다. 씨앗은 아무 때나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작물마다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파종 시기가 지나가면, 아무리 옥토라 할지라도 경작이 되지를 않습니다.
신앙도 기회가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비유를 아시지요? 그 부자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영의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기회를 간청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에서’도 역시 장자의 권한을 한 그릇 음식과 바꾸었고, 아버지의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후, 뒤늦게 장자의 축복을 구했으나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5:6절의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는 말씀처럼 믿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며, 믿음의 성장을 나타내야 할 때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기경이 되면, 하나님께서 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적절한 때의 적절한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묵은 땅의 기경은 은혜를 누리기 위한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묵은 마음과 삶을 기경하고 좋은 씨를 뿌립시다. 그리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듯, 때를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자기 결단을 의미합니다.
1872년 10월 8일 시카고의 어느 교회당에서 무디(Dwight L.Moody) 목사님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가 거의 끝날 즈음에 목사님은 수많은 청중들에게 “집으로 가서 이 중요한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보고, 다음 시간에 와서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결심을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온 도시가 소방차의 요란한 소리로 온통 소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카고’는 온통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대화재로 인하여 전날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일이 일평생 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께 오늘 결심도록 초청하고 강권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다른 설교를 듣기 전에 재림 하실지, 아니면 주님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 한 순간의 일들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심한 것은 미루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개혁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결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을 보십시오. 스스로의 결단이 없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단이란 이처럼 중요합니다. 겸손하면서도 확고부동했던 다니엘의 결심은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내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숫자와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본문13절). 만일 이들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묵은 땅을 기경하는 새로운 자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결단을 위하여 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묵은 땅”이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땅입니다. 묵은 땅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잡초들이 무성해서 좋은 씨앗이 떨어져도 싹을 낼 수가 없습니다. 설령 싹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ꡔ씨 뿌리는 비유ꡕ에서의 돌짝밭이나 가시밭과 같아서 결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전에는 결코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묵은 땅의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판단이 올바른 처방을 내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사가 오진을 했다면, 처방 또한 잘못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봅시다. 본문 앞 쪽의 호세아10:1-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경고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그들은 오히려 분을 품고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에 임박한 파멸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얼마나 큰 번영을 누렸었는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물질적인 번영은 단지 그들의 영적인 타락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풍요와 번영을 우상의 제단을 꾸미고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어리석은 부자처럼 세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핑계 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현실의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기경한다.”는 말은, 땅을 깊이 갈아엎고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부패한 사상과 악한 행실을 뒤집어엎어서 좋은 씨앗이 뿌려질 수 있도록 마음의 옥토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두 마음을 품었으며, 자신의 계획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갈아엎어야 할 묵은 행실들입니다.
1) 마음의 땅을 기경합시다.
호세아10:2절을 봅시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온갖 잡초들로 무성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겼다가, 바알 신도 섬겼다가 하는 마음의 정함이 없었습니다.
신명기6:5절이나 마태복음22:37절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전인적(全人的)인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얼마나 더 세상이 복잡해졌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세상사들로 마음이 얽혀 있어서, 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불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묵은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야고보서4:4절에서,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 삶의 땅을 기경합시다.
하나님을 모르던 옛 된 삶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적인 삶의 특성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즉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물질을 모으고 힘을 과시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인 <다윗> 왕도 이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로 자리를 잡아가자, 은근히 힘을 과시하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력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심히 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너무 타산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삼고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세상의 환경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과 자기중심적인 의지를 기준으로 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사람으로서 옛 사람의 묵은 삶의 방식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 벧후3:13-14,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라.”
3. 기경된 땅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기경한 땅에는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만일,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 놓고 비워 둔다면, 잡초는 더욱 무성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마태복음6:3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심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할 때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만일 기경한 땅을 비워둔다면 처음보다 더 악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 눅11:24-26, 벧후2:20 이 두 곳을 꼭 찾아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씨를 뿌릴 때는 적절한 시기를 따라야 합니다. 씨앗은 아무 때나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작물마다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파종 시기가 지나가면, 아무리 옥토라 할지라도 경작이 되지를 않습니다.
신앙도 기회가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비유를 아시지요? 그 부자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영의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기회를 간청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에서’도 역시 장자의 권한을 한 그릇 음식과 바꾸었고, 아버지의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후, 뒤늦게 장자의 축복을 구했으나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5:6절의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는 말씀처럼 믿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며, 믿음의 성장을 나타내야 할 때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기경이 되면, 하나님께서 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적절한 때의 적절한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묵은 땅의 기경은 은혜를 누리기 위한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묵은 마음과 삶을 기경하고 좋은 씨를 뿌립시다. 그리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듯, 때를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