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순종(갈5:1-15)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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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7-11 21:42
Title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순종 / Scripture 갈5:1-15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4: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죄에 얽매인 인간들에게 참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도 자유에 대한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배경이 되는 이유를 보면, 바울이 세운 갈라디아 교회에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그 이단은 가짜 교사들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준수해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필수적인 것으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서 할례를 받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행위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이로 인하여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는 등,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갈라디아 교회가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할례로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라 예수께서 오신 것도, 그의 대속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면, 율법 전체를 다 지킬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무엇인가?
1. 이론적인 자유 개념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자 행복이다. 예로부터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권력이나 재물이 아니라 자유라고 했으며,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자유》라고 했습니다.
1) 세상이 말하는 자유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란? 우리말 사전에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철학 사전에는 (1) 정치상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2) 심리학 상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고, (3) 형이상학 상의 자유는 초시간적, 초인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는 자체가 자유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자유의 범주는 광범위하여, 양심의 자유, 도덕상 자유, 법률상 자유, 정치적인 자유 등, 여러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밀턴』은 “나에게 다른 일체의 자유보다, 아는 자유, 생각하는 자유, 믿는 자유 그리고 양심을 좇아서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자유는 인간답게 살고,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2)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자유
사도 Paul은 두 가지 자유를 언급했는데 (1) 육체적인 자유와 (2) 영적인 신앙의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자유에 대하여 본문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영적인 자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유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 다음 당신 좋을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경적인 자유를 사랑의 윤리에 입각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그 자체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어떤 엄격한 요구도 우리에게 부여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근거가 되는 말씀이 마태복음22:37-40절입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율법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랑을 믿고, 율법주의가 나쁜 것인데 반하여 자유는 좋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어떤 일을 의무감에서 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의무감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좋을 대로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도 때때로 교회에 가기 싫을 때가 있고,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전도하거나, 헌금할 기분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면, 분명히 자유하지 못한 것이 되며, 율법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말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식은 만용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잘못된 개념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의 실상을 느껴봅시다.
2.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자유
본문13-15절을 봅시다.
사도 바울은 13절 하반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자유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의 행위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요14:15절에서 사랑에는 의무가 따른다고 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에 의하여 구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구속은 억압이 아니라, 즐거운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즐거워할 일을 하는 특별한 선택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순종과 희생을 포함하는 실제적이고도 의지적인 요소입니다.
-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롬15:1-3,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말할 수 없는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17장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요17:21-23,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처럼 자신의 자유까지 희생해가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①기도가 응답 된다는 것이며(요15:7),
②삶의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며(요15:11)
③주님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요15:15)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육신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자 한다면, 생명을 잃을 것이며, 주님이 명하신 사랑을 위하여 희생한다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누가복음17:33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사도 바울도 자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7:22,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육신의 자유는 영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참된 자유는 영이 자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자유합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입니다.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4: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죄에 얽매인 인간들에게 참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도 자유에 대한 내용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배경이 되는 이유를 보면, 바울이 세운 갈라디아 교회에 이단이 들어왔습니다. 그 이단은 가짜 교사들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준수해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필수적인 것으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서 할례를 받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행위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이로 인하여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는 등,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갈라디아 교회가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즉, 할례로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따라 예수께서 오신 것도, 그의 대속도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면, 율법 전체를 다 지킬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무엇인가?
1. 이론적인 자유 개념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자 행복이다. 예로부터 인생의 최고의 행복은 권력이나 재물이 아니라 자유라고 했으며,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자유》라고 했습니다.
1) 세상이 말하는 자유
세상에서 말하는 자유란? 우리말 사전에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철학 사전에는 (1) 정치상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2) 심리학 상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고, (3) 형이상학 상의 자유는 초시간적, 초인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는 자체가 자유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자유의 범주는 광범위하여, 양심의 자유, 도덕상 자유, 법률상 자유, 정치적인 자유 등, 여러 종류의 자유가 있습니다.
『밀턴』은 “나에게 다른 일체의 자유보다, 아는 자유, 생각하는 자유, 믿는 자유 그리고 양심을 좇아서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자유는 인간답게 살고,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2)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자유
사도 Paul은 두 가지 자유를 언급했는데 (1) 육체적인 자유와 (2) 영적인 신앙의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자유에 대하여 본문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영적인 자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유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 다음 당신 좋을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경적인 자유를 사랑의 윤리에 입각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그 자체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어떤 엄격한 요구도 우리에게 부여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근거가 되는 말씀이 마태복음22:37-40절입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율법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랑을 믿고, 율법주의가 나쁜 것인데 반하여 자유는 좋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어떤 일을 의무감에서 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는 어떤 의무감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좋을 대로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도 때때로 교회에 가기 싫을 때가 있고,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전도하거나, 헌금할 기분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면, 분명히 자유하지 못한 것이 되며, 율법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말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식은 만용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이 잘못된 개념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의 실상을 느껴봅시다.
2.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자유
본문13-15절을 봅시다.
사도 바울은 13절 하반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자유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의 행위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요14:15절에서 사랑에는 의무가 따른다고 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에 의하여 구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구속은 억압이 아니라, 즐거운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즐거워할 일을 하는 특별한 선택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순종과 희생을 포함하는 실제적이고도 의지적인 요소입니다.
-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롬15:1-3,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말할 수 없는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17장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 요17:21-23,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처럼 자신의 자유까지 희생해가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①기도가 응답 된다는 것이며(요15:7),
②삶의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며(요15:11)
③주님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요15:15)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육신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자 한다면, 생명을 잃을 것이며, 주님이 명하신 사랑을 위하여 희생한다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누가복음17:33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사도 바울도 자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7:22,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육신의 자유는 영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참된 자유는 영이 자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자유합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