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오늘 (겔33:10-20/히3:13)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744회 작성일 2001-11-24 21:29
*** 오늘 / 에스겔33:10-20, 히3:13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노인이 나환자촌에 찾아와서 ‘나도 예수 믿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막내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막내아들은 어려서 문둥병에 걸렸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을 죽이려고 강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물에 던져 죽이려고 할 때 아들이, “나만 죽이고 아버지는 살려고 하시오?”라고 하면서 울기에 죽이지 못하고 나환자촌에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남은 자녀 둘이 다 독립했고, 부인도 사별했습니다. 자식들 집을 이리저리 돌면서 푸대접을 받다가 ‘차라리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40년 전에 버린 문둥이 아들이 생각나서 찾아갔더니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아들은 며느리, 손자들을 다 인사시키고는 “내가 예수님을 믿고는 아버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40년 동안 부모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우리가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노인은 예수 믿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 노인은 원수를 은혜로 갚는 아들의 마음에 감동해서 예수님을 믿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처음 예수님을 믿고자 할 때에는 어떤 이유나 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자라가면서 숨겨진 믿음의 보석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믿는 이유가 바뀌게 됩니다. 오늘은 성례식을 앞두고 우리 믿음의 이유가 되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혜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1. 하나님의 가장 깊은 관심은 무엇일까요

구약 본문 11절을 봅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신 가장 깊은 관심은 《생명》입니다. 즉 죄로 인하여 영이 죽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은 사람이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그들이 죄를 떠나 회개하여,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던 죄의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증거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30세에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외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4:17절을 보십시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역의 중간에서도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와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의 첫 증거도 그러합니다. 역시 마태복음3:1-2절에서,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외침은, ‘사람의 본래 고향이 가까이 왔으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본문의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는 말씀과 그 의미하는 바가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향하신 가장 깊은 관심은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하여 그의 백성 된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도 역시 나 자신의 생명과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고자 다짐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수도사가 되기 위하여 수련 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밤마다 예비 수도사들의 숙소에서 도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예비 수도사들은 도둑을 색출하여 쫓아내고자 결의했습니다. 그들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예상했던 대로 자신들 중의 하나인 범인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예비 수도사들은 수도원장에게로 우루루 몰려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원장님, 그 자의 도적질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그 자를 쫓아내 주십시오.” 수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라고 선선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둑질도 역시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도둑질이 일어날 때마다 수도원장에게 도둑을 추방해 달라고 진정했지만, “그러마.”라는 답변뿐,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참다못한 예비 수도사들이 수도원장을 찾아가서, “원장님, 끝내 그 자를 몰아내지 않으시겠다면, 저희들이 이곳을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원장은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음, 그대들의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모두 나가도록 하게나.” 예비 수도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도둑을 내어 쫓을 줄로 여겼는데, 도리어 자신들이 나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놀라는 그들에게 원장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도둑질은 미워하시지만, 그의 영혼은 무척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기에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네. 자네들은 이미 스스로 의로우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지 않겠나? 그만 하산하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예비 수도사들은 어떤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수도원장은 한 생명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생명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음을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2.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의 관심의 시점은 언제일까요?

구약본문12절을 읽어 봅시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그리고 신약 본문도 다시 읽어봅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두 구절의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지금, 현재”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나간 어제도, 아직 오지 않은 내일도 아니고 오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언제나 오늘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13:8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성도가 과거에는 경건하고 의로운 신앙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형식적인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과거에는 허랑방탕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었으나, 지금의 삶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로운 삶이라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본문13-16절).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과거의 경력은 자랑거리가 될 수도 없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효력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경건했지만, 현재의 삶도 계속 경건하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경건하고 열심 있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순간 신앙을 잃고 있을 바로 그 때 종말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라고 신앙의 때를 늦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종말이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 된 오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사람의 응답과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관심의 시점이 ‘오늘’이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발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이러합니다. 평소에 의를 행하던 사람이 그 의를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고 그 죄악 중에서 죽을 것이며, 아무리 흉악한 악인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스스로 돌아온다면, 죽지 않고 살 것이라는 판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러한 조치에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조치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지금 잠시 잘못한 것으로 악인 취급하고, 지금까지 악을 행하다가 이제 선을 행한다고 의인 취급한다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이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이 길을 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길도 자신이 선택하고 의의 길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20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택한 길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를 입고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택하심과 응답으로 이룬 생명을 얻고 또는 감사하는 예식을 행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큰 사랑과 은혜인 ‘생명’에 대한 예식입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관심인 ‘생명’을 얻었음을 나타내는 예식이며, 성찬은 생명을 얻은 성도들이 생명을 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시 생각하며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에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더불어 주어집니다.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병졸들 중에, 「알렉산더」라는 왕과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는 대단히 게으르고 난폭하여 동료들 간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대왕이 어느 날 그 병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그래서 그 이름의 오욕을 씻어라."

우리는 오늘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순간순간,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을 책임성 있게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매일 매일이 하나님이 부으시는 새로운 은혜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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