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경영(신2:16-25)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983회 작성일 2001-11-17 20:29
***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경영 / 신명기2:16-25 ***

*** 들어가는 말

기독교의 대표적인 정신을 꼽으라면 아마 주저 없이 ‘박애(博愛)’즉 ‘사랑’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닮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이 중심이 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으뜸 되는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제리 포엘」이라는 유명한 보수주의 정치운동을 하는 목사가 「멘하임 베긴」 전 이스라엘 수상과 나눈 이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었는데, 한 번은 사석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포엘」 목사가 베긴 수상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중동전에서 기막힌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긴 「베긴」 수상은, “그것은 우리 이스라엘 군대의 용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지휘관들은 전선에 나갈 때 부하들에게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전진!》이라는 명령입니다. 그 대신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우리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만든 비결입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며,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 되는 자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본이 되는’자세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고, 요한복음10:3,4절에서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에도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앞서서 나아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그리스도인은 대장 되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전진!”이라고 명령하실 때는 지체 없이 따라 나서야 하며, “대기!”라는 명령에는 언제까지라도 준비된 자세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본이 되는 정신은 구약에서도 동일합니다. 민수기9:17-20절을 봅시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앞서 가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현실에 좌우되는 나약한 것이어서도 안 되며, 자신의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는 담대하게, 기다릴 때는 인내함으로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기다림의 순종

본문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행동 강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땅을 지척에 두고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40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원인이었기는 하지만, 본문에서는 해를 끼치지 않고 그냥 지나쳐야 할 민족과 진멸해야 할 민족을 구분해 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하나님의 작정(뜻과 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작정을 떠나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며 실망과 낭패가 따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과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속을 흐르는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시면, ‘기다림의 역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언약을 주시고 즉시 이루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짧게는 며칠을, 길게는 몇 백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서 탄원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찾아볼까요. 요한계시록6:9-11절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왜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은 전도서 3장에서 하신 말씀처럼, 모든 일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전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이는,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작정,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제 아무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조금 지나서 37절을 봅시다. 그리고 잠언16:9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어떤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2:9절에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또는 영을 울리는 생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도들에게 알리십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막막한 어두움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며 죄를 틀어내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신호를 신속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나 모든 일에 세 가지의 신호를 보내십니다. ‘나아가라.’는 청색 신호, ‘기다리라’는 황색 신호, ‘안된다.’라는 적색 신호가 그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는 영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도들에게 신호를 보내십니다. 이러한 신호를 분별하기 위하여 깨어 있으십시오.

2.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행동하는 순종

성도는 하나님의 작정을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는 담대하게 행동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14:13-16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보며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이 있은 후에도 계속 막연히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홍해 해변에서 계속 부르짖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히려 책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거의 8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한 40년간의 징계 기간도 지났습니다. 지금은 그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그곳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최종적인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처럼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기로 허락하셨음을 “비로소”, “오늘부터”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본문24-25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믿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여 차지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두려워하고 힘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하는 근본적인 의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1:22절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고, 야고보서1:6절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이며, ‘행동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의 일인자인 ‘루터’는 곧잘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때면 그의 아내가 충고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내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어느 날, 많은 고민으로 우울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아내의 위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루터는 기운을 잃은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이 전혀 가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온 루터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매우 슬픈 얼굴로 눈물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루터가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여보, 우리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슬퍼하고 있답니다.”루터는 어이없다는 듯, “하나님이 어떻게 죽는단 말이요.”그러자 아내는, “나는 당신이 하도 걱정하고 우울해 하기에 하나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렇게 고민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루터는 그 순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음을 깨닫고 새롭게 힘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루터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도 시인하고 마음으로도 믿습니다. 그런데 행동으로는 불신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고백과 삶이 다른 신앙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마음의 고백과 행동하는 삶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때늦은 순종’도 불신앙의 일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2년 여 만에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인간적인 보고를 한 다수의 정탐꾼 말만 믿고 불순종하다가 38년이란 세월을 낭비했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뒤늦게 순종하고자 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선 후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음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며 또 어떻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매일 말씀과 기도와 감사로 깨어 있으십시오. 만일 깨어 있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한다면 철저하게 차단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5: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으로 강행하게 되면 극심한 손해와 함께 생명의 위험까지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합당한 경영으로 기쁨과 만족이 있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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