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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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1-12 22:28
♡♥♡♥♡ 때 (opportunity) / 롬13 : 11-14
*** 들어가는 말
“영웅이 따로 없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모든 일은 “때”를 잘 만나야 성사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서3: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셨으며,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무작정 일한다면 힘을 낭비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시기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면 무시당하거나 미련하게 취급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경우에 합당하다.’는 것은 ‘시기적절하다.’는 의미입니다. 겨울에는 겨울옷을 입어야 하고, 잔칫집에서는 즐거움을, 초상집에서는 슬픔을 표하는 것이 경우에 합당한 것이며, 시기적절한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의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멈추어 서서 기도해야 할 때가 있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연단과 훈련 속에서 인내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땀 흘리며 수고할 때, 희생이 필요한 때 등. 성도의 삶에는 때를 분별하며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때로는 지혜롭지 못함을 봅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며 행동하자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레미야8:7절입니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한 수도사가 감람나무 묘목을 심고 나무가 잘 자라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주여, 비를 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 즉시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어떤 때에는 햇빛을, 어떤 때에는 서리와 바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할 때마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묘목은 자라지 않고 계속 시들시들하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수도사는 감람나무를 잘 키우는 선배 수도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묘목을 심고 시기적절하게 비와 햇빛과 서리와 바람을 구했으며 모두 그대로 되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무가 자라기는커녕 오히려 말라가고 있어서 이렇게 상담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선배 수도사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나무가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네. 나는 이렇게 기도하지. ‘주여,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맞은 때에 알맞게 주십시오.’라고 말이네.”
성도가 때를 분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40년을 광야를 방황한 것이 곧 때를 분별하며 순종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행진을 멈추고 진을 치고 머물러야 했으며, 어떤 때에는 며칠이든 몇 주든 계속 행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무작정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의 기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민수기9:17-23절을 봅시다.
(17)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도 모든 행동의 때를 분별하고 결정하는 중심이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던 깡패인 김익두가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저기서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날도 부흥회에 참석하려고 산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웃옷을 벗어 놓고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 취한 사람이 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온 거야 응?”하면서 김 목사님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매를 맞았습니다.
한참을 맞은 후에 술 취한 사람에게, “형님, 다 때렸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이 “그래, 다 때렸다.”라고 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술 취한 사람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이어서 김 목사님이 “내가 김익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술꾼은 얼굴색이 변하면서 “살려 주십시오.”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데리고 부흥회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예수를 진실하게 믿게 되었고 훗날 장로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라는 말은 깡패 김익두가 목사 김익두로 변하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즉 주먹을 믿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던 것을 벗어버리고, 지금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된 이 시기’는 ‘예수님의 재림이 한층 가까워진 우리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자다가 깰 때’라는 말은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던 때’를 ‘잠자던 시기’로,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삶’을 ‘깨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성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이 타락했던 젊은 시절, 그에게 회심의 전기를 만들어 주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의 풍조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자인 사단은 세상의 부정축재와 타락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마음을 불평과 원망 또는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한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놓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제 과거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주변의 모든 부정적인 틀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있는 현상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종말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라고 미리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마24장, 단12:4, 10절).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당면한 모든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루시는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2-14절을 봅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력질주 해야 할 때임을 말씀합니다. 전력질주(全力疾走, All one's power scamper)란? 직역하면, ‘있는 힘을 다하여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전력 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육체미가 드러나는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것은 보기 좋아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또는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신앙을 운동경기에 비유했습니다. 고린도전서9:25절에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했으며, 이어서 ‘성도는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들인 우리도 걸림이 되는 옷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도의 옷은 ‘세마포 흰 옷’인데, 그 옷이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계시록19: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리고 본문에서는 빛의 갑옷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이란? 역시 세상에서의 성도의 아름다운 행실입니다. 본문13-14절, 데살로니가전서5:11절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우리의 주님께서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며, ‘지금이 낮이므로 일할 때’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영의 생명을 위하여 매일 얼마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십니까? 그리고 모든 일을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활동하십니까?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듯이, 시간은 우리가 쉬고 있을 때에도 쉬지 않고 흐릅니다.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2002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에는 함께 힘을 모아 달려봅시다. 남의 도움이나 요행을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힘써 일합시다.
이제, 두 가지를 제안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성경읽기와 기도하는 일에 하루 1시간을 투자합시다.
둘째, 전도를 위하여 태신자를 정하고 기도하며 봉사하며 실천합시다.
우리 마음에 소원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음을 정하고 충성스럽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회를 조성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의 생명과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육신의 삶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의지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신앙과 삶의 길을 달려갑시다.
*** 들어가는 말
“영웅이 따로 없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모든 일은 “때”를 잘 만나야 성사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서3: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셨으며, 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무작정 일한다면 힘을 낭비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시기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면 무시당하거나 미련하게 취급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경우에 합당하다.’는 것은 ‘시기적절하다.’는 의미입니다. 겨울에는 겨울옷을 입어야 하고, 잔칫집에서는 즐거움을, 초상집에서는 슬픔을 표하는 것이 경우에 합당한 것이며, 시기적절한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의 ‘때’는 더욱 중요합니다. 멈추어 서서 기도해야 할 때가 있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연단과 훈련 속에서 인내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땀 흘리며 수고할 때, 희생이 필요한 때 등. 성도의 삶에는 때를 분별하며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때로는 지혜롭지 못함을 봅니다. 때를 분별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며 행동하자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예레미야8:7절입니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한 수도사가 감람나무 묘목을 심고 나무가 잘 자라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주여, 비를 내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 즉시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어떤 때에는 햇빛을, 어떤 때에는 서리와 바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할 때마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묘목은 자라지 않고 계속 시들시들하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수도사는 감람나무를 잘 키우는 선배 수도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묘목을 심고 시기적절하게 비와 햇빛과 서리와 바람을 구했으며 모두 그대로 되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무가 자라기는커녕 오히려 말라가고 있어서 이렇게 상담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선배 수도사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나무가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네. 나는 이렇게 기도하지. ‘주여,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맞은 때에 알맞게 주십시오.’라고 말이네.”
성도가 때를 분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40년을 광야를 방황한 것이 곧 때를 분별하며 순종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행진을 멈추고 진을 치고 머물러야 했으며, 어떤 때에는 며칠이든 몇 주든 계속 행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무작정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의 기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민수기9:17-23절을 봅시다.
(17)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들도 모든 행동의 때를 분별하고 결정하는 중심이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이름을 떨치던 깡패인 김익두가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여기저기서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날도 부흥회에 참석하려고 산길을 걷다가 너무 더워서 웃옷을 벗어 놓고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 취한 사람이 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온 거야 응?”하면서 김 목사님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매를 맞았습니다.
한참을 맞은 후에 술 취한 사람에게, “형님, 다 때렸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이 “그래, 다 때렸다.”라고 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술 취한 사람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이어서 김 목사님이 “내가 김익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술꾼은 얼굴색이 변하면서 “살려 주십시오.”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데리고 부흥회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예수를 진실하게 믿게 되었고 훗날 장로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라는 말은 깡패 김익두가 목사 김익두로 변하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즉 주먹을 믿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던 것을 벗어버리고, 지금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된 이 시기’는 ‘예수님의 재림이 한층 가까워진 우리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자다가 깰 때’라는 말은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던 때’를 ‘잠자던 시기’로,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삶’을 ‘깨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성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이 타락했던 젊은 시절, 그에게 회심의 전기를 만들어 주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의 풍조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자인 사단은 세상의 부정축재와 타락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마음을 불평과 원망 또는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을 한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놓친다면 우리도 세상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제 과거의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주변의 모든 부정적인 틀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있는 현상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종말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라고 미리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마24장, 단12:4, 10절).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당면한 모든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루시는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2-14절을 봅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력질주 해야 할 때임을 말씀합니다. 전력질주(全力疾走, All one's power scamper)란? 직역하면, ‘있는 힘을 다하여 빨리 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전력 질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육체미가 드러나는 간편한 복장을 하는 것은 보기 좋아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또는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신앙을 운동경기에 비유했습니다. 고린도전서9:25절에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했으며, 이어서 ‘성도는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들인 우리도 걸림이 되는 옷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도의 옷은 ‘세마포 흰 옷’인데, 그 옷이 곧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계시록19: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리고 본문에서는 빛의 갑옷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이란? 역시 세상에서의 성도의 아름다운 행실입니다. 본문13-14절, 데살로니가전서5:11절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우리의 주님께서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며, ‘지금이 낮이므로 일할 때’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영의 생명을 위하여 매일 얼마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십니까? 그리고 모든 일을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활동하십니까?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듯이, 시간은 우리가 쉬고 있을 때에도 쉬지 않고 흐릅니다.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2002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에는 함께 힘을 모아 달려봅시다. 남의 도움이나 요행을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하면서 우리가 힘써 일합시다.
이제, 두 가지를 제안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성경읽기와 기도하는 일에 하루 1시간을 투자합시다.
둘째, 전도를 위하여 태신자를 정하고 기도하며 봉사하며 실천합시다.
우리 마음에 소원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음을 정하고 충성스럽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회를 조성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의 생명과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육신의 삶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의지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신앙과 삶의 길을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