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다스리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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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3-17 21:17
♡♥♡ 자신을 다스리라. / 약1:19-21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돈 버는 것입니까? 자식 키우는 것입니까? 자신의 뜻을 펴는 것입니까? 대인관계입니까? 신앙생활입니까? 이 모든 것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조절하는 일을 힘들어합니다. 지금까지 명멸한 동서양의 많은 성인군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소의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라고 가르칩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적의 실정을 알고 아군의 실정도 안 다음에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라는 의미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행실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고 해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습니다. 학문의 꽃이라고 부르는 ‘철학’도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도 있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정신적인 요소가 미움과 분노’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잠언16:32절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월프’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 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대장염의 96%가 분노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 등의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합니다.
‘존 헌터’라는 유명한 생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학회에서 자신의 학설이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분해서 반격을 하려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사망원인은 분노로 인한 심장혈관의 순환장애였습니다.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더욱이 숨겨진 분노는 인간의 뼈를 마르게 합니다. 남을 증오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미움 받는 대상은 차라리 편히 자고 잘 먹을 수 있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이 안 됩니다. 미운 사람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잠자리에도 따라와서 잠을 못 이루게 하고, 식탁에도 따라와서 식욕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이러한 억눌린 미움과 분노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우리 어머니들은 ‘가슴앓이’로 병을 얻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큰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용서해주고, 도리어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로마서12: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셨고, 마태복음5:44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랑과 용서가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잠언18:19절에서는,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출입하는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화목한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출입하는 모든 것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1)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듣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말은 ‘순종한다.’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도들이 듣는 귀는 있어 말씀을 듣기는 잘 하지만 순종하는 것은 더디기 때문에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순종 없음을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질책하셨습니다. 사무엘상15: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순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듣지도 못한 일을 믿을 수는 없을 것이고, 믿음 자체는 들음으로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22절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고, 25절에서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실천하는 순종을 통하여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2)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천천히 해야 하는 것에는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즉 받아들이는 것은 신속히 해야 하는 반면에 자신을 내어 놓는 일에는 신중해야 함을 말합니다.
말한다는 것은,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말하는 것을 신중히 하라는 것은 공동체에서 자기의 어떤 사사로운 감정이나 뜻을 지나치게 주장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내는 것은 시기하고 미워하며 원수 갚으려는 분노를 말합니다. 화를 냄으로써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성내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본문20절에서는 성을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2: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고 통제할 때 우리의 성품도 점점 변화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2. 마음을 다스리려면 버릴 것과 받을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1)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것(흐뤼포스)’이란, ‘더러운 것들’, ‘귀지’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귀에 막혀 있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들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면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도 분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인 사단은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치는 악(카키아스)’이란, ‘위선’, ‘고집불통’, ‘타락’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근본적인 불신과 타락의 욕망으로 충만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2)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친절과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11:29절의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도는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본받음을 베드로전서3:3-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이렇게 자신을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무장하면,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게 믿음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능력입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세상은 성도인 우리를 화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포기하게 하려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바람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로 무장하여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적절하게 잘 다스려서 오히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돈 버는 것입니까? 자식 키우는 것입니까? 자신의 뜻을 펴는 것입니까? 대인관계입니까? 신앙생활입니까? 이 모든 것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조절하는 일을 힘들어합니다. 지금까지 명멸한 동서양의 많은 성인군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소의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라고 가르칩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적의 실정을 알고 아군의 실정도 안 다음에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라는 의미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행실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고 해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습니다. 학문의 꽃이라고 부르는 ‘철학’도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도 있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정신적인 요소가 미움과 분노’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잠언16:32절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월프’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 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합니다. 대장염의 96%가 분노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 등의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합니다.
‘존 헌터’라는 유명한 생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학회에서 자신의 학설이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분해서 반격을 하려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사망원인은 분노로 인한 심장혈관의 순환장애였습니다.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더욱이 숨겨진 분노는 인간의 뼈를 마르게 합니다. 남을 증오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미움 받는 대상은 차라리 편히 자고 잘 먹을 수 있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이 안 됩니다. 미운 사람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잠자리에도 따라와서 잠을 못 이루게 하고, 식탁에도 따라와서 식욕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이러한 억눌린 미움과 분노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우리 어머니들은 ‘가슴앓이’로 병을 얻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큰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용서해주고, 도리어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로마서12: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셨고, 마태복음5:44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랑과 용서가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잠언18:19절에서는,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출입하는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4:23절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화목한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출입하는 모든 것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1)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듣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말은 ‘순종한다.’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성도들이 듣는 귀는 있어 말씀을 듣기는 잘 하지만 순종하는 것은 더디기 때문에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순종 없음을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질책하셨습니다. 사무엘상15:22-23절입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순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듣지도 못한 일을 믿을 수는 없을 것이고, 믿음 자체는 들음으로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22절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고, 25절에서는,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실천하는 순종을 통하여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2)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천천히 해야 하는 것에는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즉 받아들이는 것은 신속히 해야 하는 반면에 자신을 내어 놓는 일에는 신중해야 함을 말합니다.
말한다는 것은,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말하는 것을 신중히 하라는 것은 공동체에서 자기의 어떤 사사로운 감정이나 뜻을 지나치게 주장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내는 것은 시기하고 미워하며 원수 갚으려는 분노를 말합니다. 화를 냄으로써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성내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본문20절에서는 성을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2: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고 통제할 때 우리의 성품도 점점 변화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2. 마음을 다스리려면 버릴 것과 받을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1)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것(흐뤼포스)’이란, ‘더러운 것들’, ‘귀지’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귀에 막혀 있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들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면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도 분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인 사단은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치는 악(카키아스)’이란, ‘위선’, ‘고집불통’, ‘타락’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근본적인 불신과 타락의 욕망으로 충만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2)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친절과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11:29절의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도는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본받음을 베드로전서3:3-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이렇게 자신을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무장하면,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게 믿음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능력입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세상은 성도인 우리를 화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포기하게 하려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바람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로 무장하여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적절하게 잘 다스려서 오히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