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최선의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380회 작성일 2002-02-22 23:33
♡♥♡ 최선의 삶 / 벧전4:7-11

*** 들어가는 말

지금 예배하는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의 삶은 더 할 수 없는 최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과자 집을 운영하면서 직접 과자를 굽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 과자 집에는 과자를 사려고 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손의 움직임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과자 굽는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무슨 마술을 보는 듯했습니다. 얼굴에는 항상 평온함이 가득하고, 온 몸짓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던 사람도 그 과자 집에 들르면 금방 마음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일하고 있다기보다는 아름다운 율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으며, ‘기름칠한 듯한 탱탱한 삶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궁금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과자를 구우면서 곧잘 “결코 어제와 같은 과자를 굽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새 모습으로 살아서, 어제보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과자에 새겨 넣고 싶다’는 말입니다.
별 것도 아닌 과자 굽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는 일 년이면 한두 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기도드리고 싶은 과자가 구워졌어요. 이런 과자를 굽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어요. 손님에게 팔기에는 너무 귀한, 그래서 하나님께 고이 바쳐서 제사 드리고 싶은 과자예요.”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삶’의 모습이 아름답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으로 ‘환경’과 ‘재능’과 ‘부족한 물질’, ‘건강’ 등을 내세웁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생명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는 것’이 실제로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이런 변명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만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면 결코 이러한 핑계로 허송세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한 일에 쓸 수 있는 돈이 항상 있다든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일할 수 있는 건강이 항상 있지도 않고 모두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항상 있는 것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본문에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처럼 종말이 가까워 오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내용 중에는 ‘기도’와 ‘사랑’과 ‘대접하는 것’과 ‘봉사’, 이 네 가지가 대표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네 가지는 오늘 성도된 우리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생활의 법입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는 이것을 행하는 방법과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먼저, 네 가지의 생활의 법과 행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이 네 가지의 생활 법을 살펴보면서 공통점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본문 7절의 말씀처럼, 마지막이 다가올 때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깊이 유지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영적인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6:12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영들과 그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뿐입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가 변화 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홉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내려오실 때까지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의 삶이 지배하는 성도들에게는 ‘기도’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기도, 의무적인 기도가 아닌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인 기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하여는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3:18절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본문8절을 보십시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열심으로’라는 말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힘을 다 쓰고 있는 선수의 팽팽한 근육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대접하는 것’입니다.
본문9절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대접한다는 것은 섬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접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게가 아니라, 서로가 대상이 됩니다. 대접함에 있어서는 ‘원망 없이’해야 합니다. 즉 부담과 근심으로 인한 시비 없이 편안하고 친절하고 알맞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3:2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봉사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마25:40)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외 된 사람들과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네 번째는 ‘봉사’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상대를 섬기는 것’이며,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은사’의 사용에 대하여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 서로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서로 비교하거나 자신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 봉사하여 지체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봉사를 함에 있어서의 법칙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는 것’입니다. ‘공급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봉사는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공급해 주시는 것을 염두에 두고 힘껏 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 생활의 법에서 공통점을 찾으셨습니까? 그 공통점은 ‘최선’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재능과 재물과 시간과 능력을 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이라는 교회당의 천정 벽화를 손수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아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한 사람이 말 했습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 내려오게나.”그러자 미켈란젤로가 천정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자기의 삶은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성과 정직성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자신의 삶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하나님이 아시고 자신이 압니다.

2. 우리가 이렇게 행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11절 후반절입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 이것이 종말이 가까워 오는 시대에 사는 우리가 기도하고 사랑하고 대접하고 봉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다하여 주어지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미련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평안을 먼저 생각합니다. 당장 내가 편하고 이익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쯤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주님을 만나겠습니까?

오래 전 ‘신앙계’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복음성가 가수인 김민식 집사의 신앙스케치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시험문제였습니다. 그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이 심부름을 꼭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까요? 알아 맞혀 보세요.’
1)말로 할 때 한다. 2)조금 얻어맞고 한다. 3)많이 얻어맞고 한다. 4)끝내 버티다가 쫓겨난다.

여러분은 몇 번에 동그라미를 치겠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1)번이 가장 지혜롭다는 데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처럼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만약 4)번에 동그라미를 친다면 이건 도무지 소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3)번 형의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동그라미야 1)번에 쳤지만 실제의 생활은 3)번처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성입니다. ‘웬만해선 저들을 막을 수 없다.’라는 영화제목처럼 웬만큼 맞아서는 잘 돌아서지 않는 것이 사람의 죄악성입니다.

지금 ‘사순절’기간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선물로 주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이 일들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여러분의 생명과 모든 삶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에 주님의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함으로서 신실한 청지기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이 땅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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