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빛을 밝게 하는 어두움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90회 작성일 2002-02-16 21:15
♡♥♡ 빛을 밝게 하는 어두움 / 눅12:35-40

*** 들어가는 말

어느 도시의 큰 교회의 목사님이 주일 낮 설교를 마친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주 설교는 ‘거짓말’에 대해서 하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7장을 읽어오세요.”
다음주.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7장 읽으신 분들 손드세요.”대부분이 손들었습니다. 좌석을 쭉 둘러보신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가복음은 16장까지 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거짓말에 대한 설교를 시작 하겠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에 성도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여, 나의 어두운 맘속에 들어오셔서 나의 어두운 맘 밝혀주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여…”(복음성가)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 ”(복음성가)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찬송 370장)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 ”(찬송 259장)

‘빛과 어두움’, 이는 성경 말씀에서나 찬송이나 복음성가에서 많이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영적인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 편에 속한 깨끗하고 맑은 영적인 밝음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어두움’은 사단이며, 사단이 주도하는 세상의 죄악이며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편에 있으면서 결코 둘이 합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디언의 우화 중 아주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캄캄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두움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해에게 어두움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화가 말하는 것은 ‘어두움을 해결하는 길은 어두워진 원인을 분석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길은 빛이 있게 하는 것뿐입니다. 어두움은 결코 빛에 항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빛과 의좋게 연합할 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이 썩을 대로 썩었고, 정직하고 의롭게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들은 정의롭게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도 ‘법을 지키거나 의롭게 살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남들과 같이 요령껏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상을 한탄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그 빛이 더욱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밤이 깊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400여년은 그야말로 어두움이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요한이 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어두움이 깊었을 때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4:4절에서는 “때가 차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어두워 있을 때 오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실 때에는 미리 예고도 하셨고, 세례요한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은 예고가 없습니다. 다만 오실 때를 가늠할 수 있는 징조만 보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징조와 함께 징조가 보이는 때에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1. 주님의 재림을 보이는 징조가 있습니다.

본문38절입니다.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경”이나 “삼경”이라고 했는데, 이는 주인이 올 가능성이 높은 시간입니다. ‘이경’과 ‘삼경’은 밤9시부터 이튿날 새벽3시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간대는 밤이 가장 깊은 때이며, 사람들이 깨어있기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일을 맡기고 출타한 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종은 주인이 어느 때에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즉시 열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주인이 돌아온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 본래의 의미로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날은 온 세상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도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종말입니다. 즉 성도 자신의 죽음입니다. 이 두 종말은 그 성격이 다르고 그 징조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부르기 위하여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세만은 하나입니다. ‘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요소는 주인이 돌아올 징조입니다. 이 징조에 대하여는 마가복음13:28,29절을 봅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무화과나무가 줄기에 물이 오르고 새잎을 피우는 것은 여름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즉 여름이 다가오는 징조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다시오실 징조로 마가복음13:5-22절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며, 세상에 불법이 횡행하며,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이 무성하며, 민족들의 분규가 일어나고,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기근 등의 자연재난이 일어나며, 성도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며, 가족 구성원 간의 싸움으로 가정의 파괴가 많아지며,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성도를 유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지금까지의 어느 시대보다 이와 같은 징조가 짙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주인이 돌아오시는 징조들이라고 했습니다.

2. 징조가 나타날 때에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 ‘홀맨 헌터’가 그린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성화는, 굳게 닫힌 문밖에서 예수님이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이 절정에 달한 때에 빛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두움에 갇힌 사람들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이었지만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심으로서 우리는 빛을 발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본문37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주인이 오실 때에 어두움인 채로 있거나 잠들어 있다면 영원한 생명의 나라는 멀리 떠나가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무엇을 말합니까? ‘깨어 있음’은 신앙생활의 영적각성을 의미합니다. 즉 불법이 성하고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 믿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더욱 심지를 돋우고 불빛을 높이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경’이나 ‘삼경’에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밤이 가장 깊은 때에, 사람들이 깨어있기가 고통스럽고 힘들 때에 주인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등불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 세상이 모두 미혹되고 불법에 빠지고 있을 때에 성도는 공의롭고 진실하고 성실한 삶으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에베소서5:8-11절을 봅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이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영국의 화학자이며 ‘안전등’을 발명한 데이비(Davy, Sir Humphry 1778-1829)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너무나 연구에만 열중하던 나머지 자기의 결혼식 날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신부가 화가 난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는 결혼식 날도 변함없이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람이 찾아와서 “저, 무엇 잊은 것 없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데이비는 “아뇨, 아무것도…”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어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말에 그는 비로소 화닥닥 정신이 들어 “앗! 이 일을 어떻게 해!”라며 당황해 했다는 것입니다. 신부될 사람은 “결혼식을 잊어먹는 사람이면 필요 없다.”고 결혼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일에 몰두 하다가 결혼식을 망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일에 빠져 영의 깊은 잠을 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부르시거나, 재림 하신다면 영원한 생명이 걸린 천국의 혼인 잔치에 참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가’라고 깨어 있음을 연기하거나, 세상일에 몰두하면서 깨어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거나, 세상의 불법을 탄식하면서도 깨어 있기를 잊는다면, 그 날이 도적처럼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두움은 빛을 더 밝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의 죄악 된 어두움은 성도가 잠들도록 유도하지만 성도는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산과 재능을 다하여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갑자기 주인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때때로 아무런 소득이 없는 듯이 보일지라도 결코 멈추어 서면 안 됩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처럼 성실하게 깨어 있는 결과는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한 종을 위하여 천국은 마련되어 있으며 자신이 한 만큼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룰 때까지 인내하면서 나아갑시다. 주님 앞에서 우리 모두 기쁨으로 만나서 즐거움을 누리도록 어두운 이 시대의 빛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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