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행함 / 빌4:8-9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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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2-09 22:34
♡♥♡ 생각과 행함 / 빌4:8-9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요?! 사람과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은 영이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생각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조건 반응이라든지 육신의 방어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동작도 있지만 이는 단순한 육신의 본능이지요.
미국의 수필가인 ‘렐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은 하루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습니다. ‘노만 빈센트 피일’은 “생각을 바꾸면서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악한 사람과는 식탁을 함께 하지 말라.’고 하면서 ‘비록 진수성찬을 베풀었다 할지라도 함께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23:7절에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악한 사람은 사람 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서반아 왕 가운데 ‘페르난디 5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어떤 점쟁이에게서,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마드리갈에서 장차 왕은 죽게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드리갈’에는 왕의 별궁이 있었는데 왕은 자기의 좋은 별궁을 지어놓고도 죽음이 두려워 21년 동안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습니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던 신하가 “이 곳은 ‘마드갈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드리갈’과 이름이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라고 탄식하더니 며칠이 안 되어 정말로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기 암시’라고 합니다. ‘죽겠다. 죽겠다.’하면 결국 죽을 일만 쌓이게 됩니다. ‘안 된다. 안 된다.’하면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생애를 맡기고 감사하면 평안과 감사의 일들이 이루어지고 결국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상태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나의 믿음이며 인격입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는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 헤아리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종말을 사는 성도의 마땅한 생각과 그에 따르는 행동이 어떠해야 함을 상고해봅시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평강의 은혜로 함께하시는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생각하는 단계와 행동하는 단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이 편지를 끝맺기 전에 한 가지 더 일러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옳은 일에 단단히 매어 두십시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하십시오.”
뜻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지요? 그런데 왜 이런 생각들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명기31:21절 하반절입니다.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6: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땅이여 들으라.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는 곧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음란한 생각이 곧 ‘간음’이라 하셨고, 형제를 미워하는 생각이 곧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만큼 중요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생각을 관리하는 것이 행동을 관리하는 것보다 우선하며 더욱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생각이 행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2:35절에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본문의 말씀처럼,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옳은 일을 생각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며, 하나님께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열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뿌리로 하여 그 위에 여러분들의 삶을 설계하십시오. 꿈이 있고 소망이 있다면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 다음에 두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꿈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꿈을 이루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일화입니다. 그가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링컨은 시골에서 읍내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좋은 마차를 타고 가는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신사 어른, 죄송합니다만 저의 외투를 읍내까지 갖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신사가 대답합니다. “외투를 갖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읍내에서 당신을 어떻게 만나 이 외투를 전하지요?”링컨은, “그것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항상 그 외투 안에 있을 테니까요.” 결국 자기를 읍내까지 실어달라는 말을 그렇게 애교 있게 말한 것입니다. 노신사는 그 위트와 애교에 감탄하여 링컨을 태워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생각하고 아뢰는 것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소망을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소망을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 다음에 두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지금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생각을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시며, 그 생각의 열매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다음으로, 선한 생각을 뿌리로 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본문9절을 읽어봅시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입니다. “내게서 배운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을 본받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생각이 많고 그것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고 해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은 실천되어져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랑을 파는 세 명의 일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삽에 기대어서 말하기를, “언젠가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말거야.” 또 한 사람은 “하루 일당이 이게 뭐야?”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도랑을 팠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계속,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 하며 삽에 기대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도 계속 “하루 일당이 아직까지 이게 뭐야!” 하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던 사람은 지게차를 하나 사서 그 지게차로 열심히 물건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머리가 희어져도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고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은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이 크고 위대할수록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게 마련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모세, 아브라함, 요셉, 다윗, 바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위하여 수많은 시련의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 시련의 기간을 성실하게 일하고 실천했습니다.
몇 해 전에 인도에서 교육자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인도의 교육자 ‘케리’ 여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세 가지 정신적 죄악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할 수 있으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서4: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기초로 하여 여러분의 꿈을 설계하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이루기 위하여 실천하고 있습니까? 만일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면 올바른 생활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 한 부분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누가복음6:43-46절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처럼 유혹이 많고 어지러운 환경에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함으로 가야할 길입니다. 이 시간에 주신 말씀대로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뿌리 내리며, 생각하는 것을 믿음으로 실천함으로서 삶의 선한 열매를 맺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요?! 사람과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은 영이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생각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조건 반응이라든지 육신의 방어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동작도 있지만 이는 단순한 육신의 본능이지요.
미국의 수필가인 ‘렐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은 하루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습니다. ‘노만 빈센트 피일’은 “생각을 바꾸면서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악한 사람과는 식탁을 함께 하지 말라.’고 하면서 ‘비록 진수성찬을 베풀었다 할지라도 함께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23:7절에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악한 사람은 사람 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서반아 왕 가운데 ‘페르난디 5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어떤 점쟁이에게서,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마드리갈에서 장차 왕은 죽게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드리갈’에는 왕의 별궁이 있었는데 왕은 자기의 좋은 별궁을 지어놓고도 죽음이 두려워 21년 동안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습니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던 신하가 “이 곳은 ‘마드갈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드리갈’과 이름이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라고 탄식하더니 며칠이 안 되어 정말로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기 암시’라고 합니다. ‘죽겠다. 죽겠다.’하면 결국 죽을 일만 쌓이게 됩니다. ‘안 된다. 안 된다.’하면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생애를 맡기고 감사하면 평안과 감사의 일들이 이루어지고 결국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 상태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나의 믿음이며 인격입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는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 헤아리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종말을 사는 성도의 마땅한 생각과 그에 따르는 행동이 어떠해야 함을 상고해봅시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평강의 은혜로 함께하시는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생각하는 단계와 행동하는 단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 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이 편지를 끝맺기 전에 한 가지 더 일러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옳은 일에 단단히 매어 두십시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하십시오.”
뜻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지요? 그런데 왜 이런 생각들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명기31:21절 하반절입니다.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6: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땅이여 들으라.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는 곧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음란한 생각이 곧 ‘간음’이라 하셨고, 형제를 미워하는 생각이 곧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만큼 중요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생각을 관리하는 것이 행동을 관리하는 것보다 우선하며 더욱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생각이 행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2:35절에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본문의 말씀처럼,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옳은 일을 생각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며, 하나님께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열매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뿌리로 하여 그 위에 여러분들의 삶을 설계하십시오. 꿈이 있고 소망이 있다면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 다음에 두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꿈들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꿈을 이루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일화입니다. 그가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링컨은 시골에서 읍내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좋은 마차를 타고 가는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신사 어른, 죄송합니다만 저의 외투를 읍내까지 갖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신사가 대답합니다. “외투를 갖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읍내에서 당신을 어떻게 만나 이 외투를 전하지요?”링컨은, “그것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항상 그 외투 안에 있을 테니까요.” 결국 자기를 읍내까지 실어달라는 말을 그렇게 애교 있게 말한 것입니다. 노신사는 그 위트와 애교에 감탄하여 링컨을 태워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생각하고 아뢰는 것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소망을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소망을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 다음에 두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지금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생각을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시며, 그 생각의 열매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다음으로, 선한 생각을 뿌리로 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본문9절을 읽어봅시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입니다. “내게서 배운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을 본받아 실천에 옮기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생각이 많고 그것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고 해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은 실천되어져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랑을 파는 세 명의 일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삽에 기대어서 말하기를, “언젠가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고 말거야.” 또 한 사람은 “하루 일당이 이게 뭐야?”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도랑을 팠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계속,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 하며 삽에 기대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도 계속 “하루 일당이 아직까지 이게 뭐야!” 하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던 사람은 지게차를 하나 사서 그 지게차로 열심히 물건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머리가 희어져도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몰라준다고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당이 적다고 불평하던 사람은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이 크고 위대할수록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게 마련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모세, 아브라함, 요셉, 다윗, 바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위하여 수많은 시련의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 시련의 기간을 성실하게 일하고 실천했습니다.
몇 해 전에 인도에서 교육자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인도의 교육자 ‘케리’ 여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세 가지 정신적 죄악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할 수 있으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서4: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기초로 하여 여러분의 꿈을 설계하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이루기 위하여 실천하고 있습니까? 만일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면 올바른 생활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 한 부분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누가복음6:43-46절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처럼 유혹이 많고 어지러운 환경에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함으로 가야할 길입니다. 이 시간에 주신 말씀대로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뿌리 내리며, 생각하는 것을 믿음으로 실천함으로서 삶의 선한 열매를 맺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