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을 예비합시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789회
작성일
2002-05-05 21:05
♡♥♡ 상급을 예비합시다. / 고전3:10-15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얼마나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히브리서9:27절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죽음과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애가 끝나는 순간과 생애를 결산하는 심판의 자리에서 징벌이 아닌 상급을 예비하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화 한 토막입니다.
옛날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가 특별히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아주 잘 달리는 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개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쫓아갔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대 망신이었습니다. 다른 개들이 마구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자네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뛰었고, 나는 그냥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다는 점일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달리는 것은 잠시 있을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의식주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경주는 생명을 얻고 또한 상급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9:24-25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제가 인용을 많이 하는 부분에 속합니다. 이 말씀에는 장차 성도가 받을 심판은 무엇이며,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건축가로 비유하십니다. 즉 성도는 자신을 위하여 장래의 영원한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성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원한 삶을 위하여 자신의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불신자와 성도가 짓는 집이 다른 것은 먼저 기초의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기초로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재료도 세상의 없어질 부귀영화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집은 이 세상에서 뿐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된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은 어떠합니까?
1.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초를 마련해야 합니다.
1994년 1월17일 오전4:31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리히터 규모 6.6의 대 지진이 발생하여 20세기 사상 최대의 지진 피해가 났습니다. 34명의 인명피해와 곳곳의 고속도로가 파괴되고 도시가스가 폭발하며, 수도관이 터지는 등 7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났으며,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접한 일본은 미국의 부실한 건축기술에 대하여 조소했습니다. 자신들은 지진을 견디는 내진 설계와 탁월한 건축기술을 자부하면서 지진에 대하여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꼭 일년 뒤인 1995년 1월 17일 오전5:46분 일본의 효고현 고베시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단 20초 동안의 지진으로 고베시는 쑥밭이 되었습니다. 5500명이 사망하고 4만 명의 부상자와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7만4000여 채의 건물, 그토록 자랑하던 고베시 고속도로가 파괴되는 등 9조6000억엔 대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기초가 되어 있다던 일본 건설기술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교만한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의 기술과 지혜를 기초로 삼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합니다.
가장 안전하고 영원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는 든든하고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고린도전서10: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11절에서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집을 지을 기초가 되는 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기초로 삼을 때, 세상의 풍파와 우환과 질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순간 있다가 없어지는 모래성인 세상의 것으로 기초를 삼아 집을 짓습니다. 이러한 집은 일시적으로는 세상에서 인정받고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권력과 힘을 의지하여 부를 쌓으려던 많은 사람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허무한 것을 기초로 삼고 집을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애써 모아놓은 재산, 가꾸어 온 가정, 심혈을 기울인 건강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입니다. 디모데전서6:7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셨고, 요한일서2:17절에서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은 영원한 생명과 집을 위하여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고, 디모데전서6:18-19절에서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보다 가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터를 마련하고 기초를 닦았으면 이제는 설계도에 따라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물론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집을 짓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집을 지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까?
본문12절에서 성도가 영원한 집을 짓는 재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재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첫 번째 종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써, 구하기 어렵고 고귀하고 불에 잘 견디는 재료입니다. 두 번째 종류는 나무와 풀과 짚으로써, 구하기도 쉽고, 가치가 없으며 불에 쉽게 타버리는 재료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재료들이 의미하는 것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이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 마침 본문의 부분이 나와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적당하고 쉽게 신앙을 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즉 광신자처럼 죽자 살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적당히 즐기기도 하고 세상 속에 파묻히기도 하면서 요령껏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부류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땀과 눈물과 정성을 드려서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류는 많은 희생도 따를 것이고, 세상에서의 손해와 아픔과 비웃음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두 부류 중의 한 쪽을 따라갈 것이고, 그 생활에 따라서 건축 재료가 하나님의 나라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살면서 올린 재료로 지은 집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공력으로 나타나고 그에 따라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한 분이 이의가 있다고 발언을 했습니다. 즉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급의 차이가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불공평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집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집을 주시는 불공평한 대우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런 생각이십니까? 만일 모든 성도에게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그것이 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시간과 재물과 재능을 다 바치고, 순교자의 길을 걷기까지 한 성도와 적당하게 놀면서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것을 드리며, 핍박도 희생도 없이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까? 사도바울의 고백인 디모데후서4:7-8절을 봅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 앞에 서셔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광경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모습을 다 보시고서, 과부의 동전 두 닢을 그 날의 최고의 예물로 인정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린 금전과 은전들, 이들은 동전 두 닢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왜 가장 적은 가치가 최고의 예물로 꼽혔겠습니까? 이는 그 과부가 최선을 다하여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누가복음21:3-4절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우리 교회가 헌금함에, 무명 헌금으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하고 최선의 모습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헌신과 예물이 어떠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드림과 헌신을 낱낱이 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나 우리가 가진 가치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힘에서 최선을 다하는지 적당히 하는지를 구별하시고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최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생명을 다하는 최선의 헌신을 할 때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 재료가 하나님의 나라에 예비 될 것입니다.
3. 지은 집을 심판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본문13절에서,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공력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심판을 면제받은 성도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상급을 좌우하는 심판입니다. 심판의 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방법은 ‘불’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집을 짓는 재료의 특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야말로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력을 밝히는 시험의 불을 통과하면 세상에서 살면서 행했던 결과가 나타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불을 견딜 수 없어서 다 타버릴 것이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더욱 광택이 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쉽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결과는 터만 남아서 겨우 구원은 받겠지만, 영원을 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무주택자로 전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 나라에 터를 마련하고 기초는 예비했지만,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없어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시고 대속해 주신 너무나 고귀한 삶의 시간들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육신을 위하여 다 써버리고 나면, 무주택자, 부끄러운 구원만이 남을 뿐입니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려움이나 고통, 고난은 감내해야 할 과정입니다. 베드로전서4:13절에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으며, 5:10절에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으로 인한 고난은 공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구원으로만 만족하지 마시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좋은 집, 아름다운 상급을 준비합시다. 조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최선을 다합시다. 내 육신을 위하여 주님의 일을 멀리하다보면 결국은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실하고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생활로 좋은 상급을 예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얼마나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히브리서9:27절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죽음과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애가 끝나는 순간과 생애를 결산하는 심판의 자리에서 징벌이 아닌 상급을 예비하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화 한 토막입니다.
옛날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가 특별히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아주 잘 달리는 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개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쫓아갔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대 망신이었습니다. 다른 개들이 마구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개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자네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뛰었고, 나는 그냥 저녁 식사거리를 위해서 뛰었다는 점일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달리는 것은 잠시 있을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의식주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경주는 생명을 얻고 또한 상급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9:24-25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제가 인용을 많이 하는 부분에 속합니다. 이 말씀에는 장차 성도가 받을 심판은 무엇이며,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건축가로 비유하십니다. 즉 성도는 자신을 위하여 장래의 영원한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성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원한 삶을 위하여 자신의 집을 짓는 건축가입니다. 불신자와 성도가 짓는 집이 다른 것은 먼저 기초의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기초로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재료도 세상의 없어질 부귀영화에 불과합니다. 이들의 집은 이 세상에서 뿐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된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은 어떠합니까?
1.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초를 마련해야 합니다.
1994년 1월17일 오전4:31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리히터 규모 6.6의 대 지진이 발생하여 20세기 사상 최대의 지진 피해가 났습니다. 34명의 인명피해와 곳곳의 고속도로가 파괴되고 도시가스가 폭발하며, 수도관이 터지는 등 7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났으며,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접한 일본은 미국의 부실한 건축기술에 대하여 조소했습니다. 자신들은 지진을 견디는 내진 설계와 탁월한 건축기술을 자부하면서 지진에 대하여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꼭 일년 뒤인 1995년 1월 17일 오전5:46분 일본의 효고현 고베시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단 20초 동안의 지진으로 고베시는 쑥밭이 되었습니다. 5500명이 사망하고 4만 명의 부상자와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7만4000여 채의 건물, 그토록 자랑하던 고베시 고속도로가 파괴되는 등 9조6000억엔 대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기초가 되어 있다던 일본 건설기술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교만한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의 기술과 지혜를 기초로 삼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합니다.
가장 안전하고 영원한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는 든든하고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고린도전서10: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11절에서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집을 지을 기초가 되는 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기초로 삼을 때, 세상의 풍파와 우환과 질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순간 있다가 없어지는 모래성인 세상의 것으로 기초를 삼아 집을 짓습니다. 이러한 집은 일시적으로는 세상에서 인정받고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권력과 힘을 의지하여 부를 쌓으려던 많은 사람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허무한 것을 기초로 삼고 집을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이 애써 모아놓은 재산, 가꾸어 온 가정, 심혈을 기울인 건강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입니다. 디모데전서6:7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하셨고, 요한일서2:17절에서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은 영원한 생명과 집을 위하여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고, 디모데전서6:18-19절에서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보다 가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터를 마련하고 기초를 닦았으면 이제는 설계도에 따라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물론 설계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집을 짓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집을 지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까?
본문12절에서 성도가 영원한 집을 짓는 재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재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입니다. 첫 번째 종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써, 구하기 어렵고 고귀하고 불에 잘 견디는 재료입니다. 두 번째 종류는 나무와 풀과 짚으로써, 구하기도 쉽고, 가치가 없으며 불에 쉽게 타버리는 재료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재료들이 의미하는 것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이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에 마침 본문의 부분이 나와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적당하고 쉽게 신앙을 지켜가겠다는 것입니다. 즉 광신자처럼 죽자 살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적당히 즐기기도 하고 세상 속에 파묻히기도 하면서 요령껏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부류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땀과 눈물과 정성을 드려서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류는 많은 희생도 따를 것이고, 세상에서의 손해와 아픔과 비웃음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두 부류 중의 한 쪽을 따라갈 것이고, 그 생활에 따라서 건축 재료가 하나님의 나라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살면서 올린 재료로 지은 집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공력으로 나타나고 그에 따라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더니, 한 분이 이의가 있다고 발언을 했습니다. 즉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도 상급의 차이가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불공평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집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집을 주시는 불공평한 대우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런 생각이십니까? 만일 모든 성도에게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그것이 더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시간과 재물과 재능을 다 바치고, 순교자의 길을 걷기까지 한 성도와 적당하게 놀면서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것을 드리며, 핍박도 희생도 없이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까? 사도바울의 고백인 디모데후서4:7-8절을 봅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 앞에 서셔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광경을 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모습을 다 보시고서, 과부의 동전 두 닢을 그 날의 최고의 예물로 인정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린 금전과 은전들, 이들은 동전 두 닢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왜 가장 적은 가치가 최고의 예물로 꼽혔겠습니까? 이는 그 과부가 최선을 다하여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누가복음21:3-4절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우리 교회가 헌금함에, 무명 헌금으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하고 최선의 모습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헌신과 예물이 어떠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드림과 헌신을 낱낱이 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나 우리가 가진 가치관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힘에서 최선을 다하는지 적당히 하는지를 구별하시고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최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생명을 다하는 최선의 헌신을 할 때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 재료가 하나님의 나라에 예비 될 것입니다.
3. 지은 집을 심판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본문13절에서,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공력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심판을 면제받은 성도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상급을 좌우하는 심판입니다. 심판의 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며, 심판의 방법은 ‘불’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집을 짓는 재료의 특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야말로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모든 집들이 나름대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력을 밝히는 시험의 불을 통과하면 세상에서 살면서 행했던 결과가 나타납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은 불을 견딜 수 없어서 다 타버릴 것이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더욱 광택이 날 것입니다.
세상에서 쉽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결과는 터만 남아서 겨우 구원은 받겠지만, 영원을 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무주택자로 전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 나라에 터를 마련하고 기초는 예비했지만,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비한 것이 없어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시고 대속해 주신 너무나 고귀한 삶의 시간들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육신을 위하여 다 써버리고 나면, 무주택자, 부끄러운 구원만이 남을 뿐입니다.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어려움이나 고통, 고난은 감내해야 할 과정입니다. 베드로전서4:13절에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으며, 5:10절에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으로 인한 고난은 공짜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의 구원으로만 만족하지 마시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좋은 집, 아름다운 상급을 준비합시다. 조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최선을 다합시다. 내 육신을 위하여 주님의 일을 멀리하다보면 결국은 후회만 남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실하고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생활로 좋은 상급을 예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