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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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4-27 22:02
♡♥♡ 담대한 삶 / 히10:32-37
*** 들어가는 말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어느 전도사의 간증입니다. 이 전도사는 어느 날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에 전도지를 향하여 가다가 커다란 비단 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 거대한 비단 뱀은 그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나 동물들을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고 합니다. 전도사는 순식간에 그 거대하고 징그러운 뱀에게 휘감겨버렸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몸을 조여 올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이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조정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평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그 비단뱀은 조였던 힘을 천천히 풀면서 스르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가 만약 감긴 뱀을 풀어내려고 발버둥쳤었다면, 오히려 그 강한 힘에 온 몸이 어스러져 생명을 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나, 힘이 들고 어려울 때에 용기를 주시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결코 나약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격려하실 때 잘 사용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수아1:6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요한복음16:33절에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으며, 사도행전23:11절에서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공통점은 ‘내가 너와 함께 하므로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구원자이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생명을 만지지도 못합니다. 또한 흥하고 망하는 것이나 성장하고 쇠락하는 것이나 모두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요한일서5:18절에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도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당시의 많은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이처럼 이들에게는 큰 고난이 있었으며, 사회로부터 비방과 환난을 받으며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일들을 그들은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견뎌냈습니다. 이러한 형편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더욱 담대함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 무엇이 담대함입니까?
본문35절에서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성도들을 격려하십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런 말씀이 성경에 365회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즉 매일 한 번씩 이 말씀을 기억하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어떻든 큰 상을 얻게 하는 담대함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의 “담대함”이란 말은 ‘확신’, ‘담대함’, ‘드러내 놓다’ 등의 의미입니다. 즉 담대함이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는 담대하지만, 확신이 없을 때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담대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라는 격려이자 명령입니다.
본문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고난과 비방과 환난을 당하며, 구경거리가 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쁘게 견디어 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나라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2. 어떤 일에 담대해야 합니까?
성도는 아무것에나 담대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기에 담대하다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받았던 고난을 다음 장인 11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38절에서,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고난에 비한다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고난은 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해서 야단입니다. 잠깐 참고 기다리는 것조차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없는 영광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통과한 사람에게 영광의 길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48:10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하셨으며,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사람과 사귀고, 갇힌 자를 동정했다.’고 했습니다. 즉 초대 교인들이 신앙으로 인하여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것을 개의치 않았으며, 그런 형편에 있는 성도들을 사귀고 돌아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신앙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무엇이라고 하든, 또는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뜻을 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신앙에 대한 소신을 담대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생활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담대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세상의 물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산업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평생 모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재물도 직업도 산업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가치를 위하여 버리고 선택할 줄 아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에는 상급이 따릅니다. 이제 우리 좀 더 높이 올라서 더 넓은 것을 바라봅시다. 신앙이 올라가면 세상의 것은 더욱 넓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이 부족한 시절에는 보리쌀누룽지 가지고도 서로 먹으려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풍족한 지금에는 쌀밥을 내놓아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을 때에는 더 좋은 것, 더 많이 가지려고 바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소유를 위하여 마음을 쓰지는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가장 좋은 것, 영원한 것을 믿음으로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확신 있는 성도가 세상의 부귀영화, 권력, 명예에 초연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원한을 품거나, 불평과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는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룰 때까지 담대한 믿음의 나아갑시다.
*** 들어가는 말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어느 전도사의 간증입니다. 이 전도사는 어느 날 어둠이 깔리는 저녁 무렵에 전도지를 향하여 가다가 커다란 비단 뱀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 거대한 비단 뱀은 그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인데, 사람이나 동물들을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고 합니다. 전도사는 순식간에 그 거대하고 징그러운 뱀에게 휘감겨버렸습니다. 강력한 힘으로 몸을 조여 올 때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이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조정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평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그 비단뱀은 조였던 힘을 천천히 풀면서 스르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가 만약 감긴 뱀을 풀어내려고 발버둥쳤었다면, 오히려 그 강한 힘에 온 몸이 어스러져 생명을 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나, 힘이 들고 어려울 때에 용기를 주시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결코 나약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격려하실 때 잘 사용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수아1:6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요한복음16:33절에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으며, 사도행전23:11절에서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공통점은 ‘내가 너와 함께 하므로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구원자이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생명을 만지지도 못합니다. 또한 흥하고 망하는 것이나 성장하고 쇠락하는 것이나 모두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요한일서5:18절에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도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당시의 많은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이처럼 이들에게는 큰 고난이 있었으며, 사회로부터 비방과 환난을 받으며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일들을 그들은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견뎌냈습니다. 이러한 형편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더욱 담대함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1. 무엇이 담대함입니까?
본문35절에서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성도들을 격려하십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런 말씀이 성경에 365회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즉 매일 한 번씩 이 말씀을 기억하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어떻든 큰 상을 얻게 하는 담대함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의 “담대함”이란 말은 ‘확신’, ‘담대함’, ‘드러내 놓다’ 등의 의미입니다. 즉 담대함이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입니다. 사람들은 환경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는 담대하지만, 확신이 없을 때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담대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라는 격려이자 명령입니다.
본문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고난과 비방과 환난을 당하며, 구경거리가 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쁘게 견디어 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나라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2. 어떤 일에 담대해야 합니까?
성도는 아무것에나 담대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기에 담대하다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받았던 고난을 다음 장인 11장에서 더욱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38절에서,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고난에 비한다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고난은 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해서 야단입니다. 잠깐 참고 기다리는 것조차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없는 영광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통과한 사람에게 영광의 길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48:10절에서는,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고 하셨으며,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사람과 사귀고, 갇힌 자를 동정했다.’고 했습니다. 즉 초대 교인들이 신앙으로 인하여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것을 개의치 않았으며, 그런 형편에 있는 성도들을 사귀고 돌아보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신앙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무엇이라고 하든, 또는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뜻을 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신앙에 대한 소신을 담대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생활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담대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세상의 물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산업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평생 모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재물도 직업도 산업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가치를 위하여 버리고 선택할 줄 아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에는 상급이 따릅니다. 이제 우리 좀 더 높이 올라서 더 넓은 것을 바라봅시다. 신앙이 올라가면 세상의 것은 더욱 넓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이 부족한 시절에는 보리쌀누룽지 가지고도 서로 먹으려고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풍족한 지금에는 쌀밥을 내놓아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을 때에는 더 좋은 것, 더 많이 가지려고 바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소유를 위하여 마음을 쓰지는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가장 좋은 것, 영원한 것을 믿음으로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확신 있는 성도가 세상의 부귀영화, 권력, 명예에 초연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원한을 품거나, 불평과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는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룰 때까지 담대한 믿음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