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의 성도의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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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4-13 21:16
♡♥♡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 / 잠3:27-35
***들어가는 말
본문 말씀은 오전에 주신 말씀에서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부인 27-30절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 화평할 것을 말씀하고, 후반부인 31-35절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행위를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영적으로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동시에 육신으로는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세상과 동떨어져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섞여 살며 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동시에 육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래 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이동철’의 논픽션 드라마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느 교회의 주변이 사창가였습니다. 이 교회가 주위의 창녀들 때문에 지장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창녀들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교회 때문에 영업을 못하게 된 창녀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교회 철문에 매달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자식들아! 우리가 너희보고 밥을 달라고 했니? 떡을 달라고 했니? 내 몸 팔아 내가 먹고사는데 너희들이 웬 상관이냐? 우리들 다 먹여 살려라.”
교회를 향한 이 창녀의 외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창녀의 말이 타당성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속은 썩어 있으면서 겉으로는 의인인 것처럼 행동한 바리새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까지 얻으셨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고, 그들을 더러운 짐승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며 지혜로운 것입니까?
1.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27,28절을 공동번역으로 봅시다. “도움을 청하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도와줄 힘만 있으면 망설이지 말아라. 있으면서도 ‘내일 줄 테니 다시 오라’ 하며, 이웃을 돌려보내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마땅히 받을 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לעב(바알)이며, ‘주인’, ‘소유자’의 의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마땅히 채무를 받아야 할 ‘채권자’로 보기도 하지만, 별로 타당성이 없습니다. 이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를 일컫는 것입니다. 전체 문맥은 ‘기회와 능력이 있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구제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나 구제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신명기15:10-11절을 봅시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말씀을 다시 봅시다. 디모데전서6:18,19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로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한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구제와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효과적인 일입니다.
2.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29,30절을 공동번역으로 봅시다. “너를 믿고 사는 이웃은 해칠 생각을 아예 말아라. 너를 해치지도 않는 사람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화평을 이루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에서 “모해하다”라는 말은 שׁרח(하라쉬)로, ‘긁다’, ‘쟁기질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가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조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야 할 것은 30절의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율법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레위기24:17-20절을 봅시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이 사상은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예수님에 의하여 재해석되었습니다. 마태복음5:38-45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화목’하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5: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고, 모든 환경 속에서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3. 악한 자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31-35절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봅시다. “사기 치는 자들을 부러워하여 그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말아라. 여호와께서는 그릇된 자를 미워하시고 곧은 사람을 가까이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불의한 자의 집에는 저주를 내리시고 옳은 사람의 보금자리엔 복을 내리신다.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를 업신여기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상속받고, 미련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잠언24:19-20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폭력과 압제를 일삼으며, 이를 통하여 불의한 소득을 얻은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잠시는 행복한 것 같고, 모든 일이 형통한 것 같지만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때에는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32-35절에는 악인과 의인에 대한 대조법을 통하여 27-31절에 언급한 권고들을 지켜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순종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열거함으로써, 성도들의 선행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23-25절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머리 둘이 달린 새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쪽 머리는 저 혼자 좋은 열매를 다 따먹었습니다. 이것을 안 다른 쪽 머리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미운 생각에 독한 열매만 골라서 따먹었습니다. 결국 그 새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들이 서로 돕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만드셨고,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사회에 대한 삶의 자세를 지켜가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좋은 이웃이 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적극적으로 선한 이웃이 됩시다. 이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본문 말씀은 오전에 주신 말씀에서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부인 27-30절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며 서로 화평할 것을 말씀하고, 후반부인 31-35절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행위를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영적으로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동시에 육신으로는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세상과 동떨어져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섞여 살며 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동시에 육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래 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이동철’의 논픽션 드라마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느 교회의 주변이 사창가였습니다. 이 교회가 주위의 창녀들 때문에 지장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창녀들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교회 때문에 영업을 못하게 된 창녀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교회 철문에 매달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자식들아! 우리가 너희보고 밥을 달라고 했니? 떡을 달라고 했니? 내 몸 팔아 내가 먹고사는데 너희들이 웬 상관이냐? 우리들 다 먹여 살려라.”
교회를 향한 이 창녀의 외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론 창녀의 말이 타당성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속은 썩어 있으면서 겉으로는 의인인 것처럼 행동한 바리새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까지 얻으셨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고, 그들을 더러운 짐승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며 지혜로운 것입니까?
1.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27,28절을 공동번역으로 봅시다. “도움을 청하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도와줄 힘만 있으면 망설이지 말아라. 있으면서도 ‘내일 줄 테니 다시 오라’ 하며, 이웃을 돌려보내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마땅히 받을 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לעב(바알)이며, ‘주인’, ‘소유자’의 의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마땅히 채무를 받아야 할 ‘채권자’로 보기도 하지만, 별로 타당성이 없습니다. 이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를 일컫는 것입니다. 전체 문맥은 ‘기회와 능력이 있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구제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나 구제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신명기15:10-11절을 봅시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전에 보았던 말씀을 다시 봅시다. 디모데전서6:18,19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로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한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구제와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효과적인 일입니다.
2.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29,30절을 공동번역으로 봅시다. “너를 믿고 사는 이웃은 해칠 생각을 아예 말아라. 너를 해치지도 않는 사람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화평을 이루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에서 “모해하다”라는 말은 שׁרח(하라쉬)로, ‘긁다’, ‘쟁기질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가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조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야 할 것은 30절의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율법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레위기24:17-20절을 봅시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이 사상은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예수님에 의하여 재해석되었습니다. 마태복음5:38-45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화목’하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5: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처럼 사람 사이에서 화목을 이루고, 모든 환경 속에서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3. 악한 자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31-35절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봅시다. “사기 치는 자들을 부러워하여 그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말아라. 여호와께서는 그릇된 자를 미워하시고 곧은 사람을 가까이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불의한 자의 집에는 저주를 내리시고 옳은 사람의 보금자리엔 복을 내리신다.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를 업신여기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상속받고, 미련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잠언24:19-20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폭력과 압제를 일삼으며, 이를 통하여 불의한 소득을 얻은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잠시는 행복한 것 같고, 모든 일이 형통한 것 같지만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때에는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32-35절에는 악인과 의인에 대한 대조법을 통하여 27-31절에 언급한 권고들을 지켜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순종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열거함으로써, 성도들의 선행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23-25절에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머리 둘이 달린 새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쪽 머리는 저 혼자 좋은 열매를 다 따먹었습니다. 이것을 안 다른 쪽 머리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미운 생각에 독한 열매만 골라서 따먹었습니다. 결국 그 새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들이 서로 돕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만드셨고,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사회에 대한 삶의 자세를 지켜가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좋은 이웃이 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적극적으로 선한 이웃이 됩시다. 이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