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망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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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4-06 18:15
♤♠♤ 하나님의 소망 / 호5:15-6:6
*** 들어가는 말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무엇이 되고자 한다든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의 힘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기적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스코트 피크(Scott Peack)라는 의사가 쓴 ‘길 없는 여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자신이 정신 병원에 근무했던 경험들이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부류가 있습니다. 아무런 흥미도 없고, 기쁨도 없고, 욕망도 없고, 신비한 세계에 대한 도전이 없는 사람은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려는 의욕을 가진 사람은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의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소망은 우리 몸의 생명력까지 다스립니다. 그래서 확실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눈이 빛나고 몸이 긴장되어 있습니다. 비록 몸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할지라도 확실한 소망은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소망이 있듯이 하나님께도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의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에게 가지는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말씀을 몇 군데 볼까요? 먼저 신명기5:29절을 봅시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셨고, 본문6절에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디모데전서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고, 베드로후서3:9절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두 곳 모두에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 얻는 것을 소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에 우리의 소망이 일치가 될 때에는 그 위력이 대단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 일치가 되는 이 상태가 ‘그리스도 안에’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7절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서8장에서는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셨고, 히브리서11장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이며, 그 소망에 우리 자신을 맞출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즉,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본문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선지자가 애타게 권면하고 있으며, 6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안다”라는 말이 두 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3절에서의 “알자(עꕊꖷ/yada/ to know)”라는 말로써, ‘관찰과 반성에 의해서 아는 것’, ‘경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의 “아는 것(תꘞꕒ/daath/knowledge)”라는 말로써, ‘지식’, ‘아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종합하면, 먼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지식적인 앎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는다든지, 설교를 듣는 것으로 채울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경험과 깊은 묵상을 통해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감성적인 앎입니다. 즉, 오랜 부부 생활 속에서 경험으로 체득하여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이론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과 묵상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성숙한 지혜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어느 여 성도의 간증 중 일부입니다.
이 여 성도는 성공적인 사업가의 아내로서, 세 딸을 키웠고 지금까지 사랑스런 가정을 유지해왔습니다. 여 성도는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난 후, 여 성도는 삶이 공허했으며, 고독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인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 역시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 돈을 쓰기보다는 주님의 일에 헌금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적인 삶에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항상 교회에 나가 예배드렸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여 성도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언니의 고독감과 좌절감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언니의 영적인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권면 했습니다.
동생의 충고에 따라 이 성도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발전시켜 나갔고, 점점 그녀의 태도는 변화되었습니다. 여 성도는 대학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교회학교 교사를 지원했고,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성도는 문득 자신이 최근 몇 달 동안 고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간증처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과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제의 삶을 통하여 성도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일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는 성도는 그 마음이 항상 일정해야 합니다.
본문4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표현하시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일정하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해가 떠오르면 사라지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마음이 쉽게 변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일정치 못하고, 변덕이 심한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조차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비록 변심한 것 때문에 매를 맞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니까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말입니다(본문5:15-6:1).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8:14-18절입니다.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늦었다고 생각할 그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아시지요?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성공할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비록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있다하더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는 것이 삶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속히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2-3절은 조속한 회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누구에게 주어져 있습니까? 이는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을 모델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로 행실이 나쁜 ‘고멜’을 주셨습니다. 고멜은 남편을 떠나 이방 사내를 따라 갔습니다. 호세아는 보리를 싣고 가서 값을 치르고 고멜을 다시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멜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고멜이 육신의 만족을 찾아 호세아를 떠나 이방 사람을 따라 가듯이, 이스라엘도 육신의 만족을 찾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를 떠나는 고멜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성도의 변명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호2:5)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찾아 떠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는 않으십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자녀의 앞길을 막으시며 징계하십니다. 호세아2: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삶으로 회복할 수 길은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마음을 하나님께로 정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29:1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평안한 삶과 장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망에 우리의 소망을 맞출 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의 일로 불안하거나 흔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힘씁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불안과 흔들림을 잡으시며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킵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지는 평안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무엇이 되고자 한다든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의 힘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내는 기적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스코트 피크(Scott Peack)라는 의사가 쓴 ‘길 없는 여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자신이 정신 병원에 근무했던 경험들이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부류가 있습니다. 아무런 흥미도 없고, 기쁨도 없고, 욕망도 없고, 신비한 세계에 대한 도전이 없는 사람은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려는 의욕을 가진 사람은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의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소망은 우리 몸의 생명력까지 다스립니다. 그래서 확실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눈이 빛나고 몸이 긴장되어 있습니다. 비록 몸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할지라도 확실한 소망은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소망이 있듯이 하나님께도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소망’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의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에게 가지는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말씀을 몇 군데 볼까요? 먼저 신명기5:29절을 봅시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셨고, 본문6절에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디모데전서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고, 베드로후서3:9절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두 곳 모두에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 얻는 것을 소망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에 우리의 소망이 일치가 될 때에는 그 위력이 대단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 일치가 되는 이 상태가 ‘그리스도 안에’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7절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서8장에서는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셨고, 히브리서11장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이며, 그 소망에 우리 자신을 맞출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즉,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본문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선지자가 애타게 권면하고 있으며, 6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안다”라는 말이 두 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3절에서의 “알자(עꕊꖷ/yada/ to know)”라는 말로써, ‘관찰과 반성에 의해서 아는 것’, ‘경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의 “아는 것(תꘞꕒ/daath/knowledge)”라는 말로써, ‘지식’, ‘아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종합하면, 먼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지식적인 앎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는다든지, 설교를 듣는 것으로 채울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경험과 깊은 묵상을 통해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감성적인 앎입니다. 즉, 오랜 부부 생활 속에서 경험으로 체득하여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이론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과 묵상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성숙한 지혜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어느 여 성도의 간증 중 일부입니다.
이 여 성도는 성공적인 사업가의 아내로서, 세 딸을 키웠고 지금까지 사랑스런 가정을 유지해왔습니다. 여 성도는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적인 여성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난 후, 여 성도는 삶이 공허했으며, 고독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인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 역시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일에 돈을 쓰기보다는 주님의 일에 헌금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영적인 삶에는 깊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항상 교회에 나가 예배드렸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여 성도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언니의 고독감과 좌절감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언니의 영적인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권면 했습니다.
동생의 충고에 따라 이 성도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발전시켜 나갔고, 점점 그녀의 태도는 변화되었습니다. 여 성도는 대학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교회학교 교사를 지원했고, 자기가 맡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성도는 문득 자신이 최근 몇 달 동안 고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간증처럼,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과 깨달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제의 삶을 통하여 성도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일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인격적인 교제를 맺고 있는 성도는 그 마음이 항상 일정해야 합니다.
본문4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표현하시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일정하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해가 떠오르면 사라지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마음이 쉽게 변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일정치 못하고, 변덕이 심한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조차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비록 변심한 것 때문에 매를 맞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니까 이제라도 돌아오라.’고 말입니다(본문5:15-6:1).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8:14-18절입니다. “내게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늦었다고 생각할 그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아시지요?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성공할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비록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있다하더라도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는 것이 삶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속히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2-3절은 조속한 회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누구에게 주어져 있습니까? 이는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호세아 선지자의 가정을 모델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로 행실이 나쁜 ‘고멜’을 주셨습니다. 고멜은 남편을 떠나 이방 사내를 따라 갔습니다. 호세아는 보리를 싣고 가서 값을 치르고 고멜을 다시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멜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고멜이 육신의 만족을 찾아 호세아를 떠나 이방 사람을 따라 가듯이, 이스라엘도 육신의 만족을 찾아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를 떠나는 고멜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성도의 변명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호2:5)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찾아 떠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는 않으십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자녀의 앞길을 막으시며 징계하십니다. 호세아2: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삶으로 회복할 수 길은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마음을 하나님께로 정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29:1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평안한 삶과 장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망에 우리의 소망을 맞출 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의 일로 불안하거나 흔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힘씁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불안과 흔들림을 잡으시며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마음을 하나님께로 고정시킵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지는 평안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