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는 기쁨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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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4-06 18:13
♡♡♡ 누리는 기쁨 / 전2:18-26
*** 들어가는 말
‘흥부전’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박정한 놀부와 선한 흥부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시절부터 교훈처럼 들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흥부는 무능하고 놀부가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시간이 흐르니 사고가 변해서 일까요?
또한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쉬지도 못하면서 여름 내내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노래하며 즐기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배짱이의 이야기도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불성실한 곤충인 반면에 개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준비할 줄 아는 지혜로운 곤충입니다. 만일 이야기대로라면 베짱이는 굶주리고 얼어서 모두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올해도 내년도 계속해서 베짱이는 울어 댈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언제나 개미도 존재하고 베짱이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판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같이 일만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베짱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예술로 삶에 지친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인생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서도 지혜자 솔로몬의 이와 같은 탄식이 나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본문23절에서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일평생 수고하여 얻는 것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수고로이 일하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생 동안 죽도록 일하면서,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하여 쉬지도 못하며 한밤중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칩니다. 그러면 죽도록 일하면서 쌓아놓은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더욱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기만 하던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면, 이 얼마나 헛된 일이며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보면 솔로몬이 염세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인생살이의 확실한 지혜자(知慧者)입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으로서 사람이 가장 값지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강조하는 전도서의 결론은 12:13-14절에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값진 인생이었다.’라고 평가를 받겠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누리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너무 세속적이고 쾌락적이라고 여겨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사실을 살펴봅시다.
1. 인생이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18-23절에서 솔로몬은 인생이 일평생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왜 헛됩니까?
1) 내가 공들여 쌓아놓은 일들을 뒤를 이을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18절 말씀에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고 했습니다. 대를 이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선대가 벌여놓은 일을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일을 시작할 때의 계획했던 뜻을, 후대가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물거품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있습니다. 만일 후대가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일의 원래 취지를 잃어버린다면,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2) 일평생 밤낮 수고한 열매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21절에서, 평생토록 온갖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 동원해서 밤낮 수고하여 터를 닦아두어도, 결국 그 열매는 수고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업”이라는 말은 ‘분복’ 즉 ‘자신에게 누리도록 주어진 복’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다 누리지는 못합니다. 또한 세상의 문명 발달이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은, 모두 선대가 닦아둔 터 위에 후대가 더욱 발전시켜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관심은 세상적인 발전이나 물질적인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참된 본분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인생의 수고로움의 代價가 수고와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본문22-23절에서 솔로몬은 탄식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한평생을 살다 갑니다.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 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주어진 한 평생을 살다가 죽음 앞에 섭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설 때는 똑같은 자격, 똑같은 모습으로 서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대기업의 회장이나 말단 사원이나 똑같이 빈손으로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모든 인생의 수고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말입니다. 평생토록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빈손의 죽음’이니 헛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베푸신 분복은 무엇입니까?
본문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인생이 수고하면서 영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낙을 누리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누리게 하셨을까요?
전도서5:18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라고 했습니다. 9:7-10절을 찾아봅시다. 음식을 나누는 기쁨이 있으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며 옷을 말쑥하게 입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고, 기쁘고 열심 있게 일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사용하여 기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일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즉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0: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고, 14:27절에서는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6:24절에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심은 이것으로 힘써 일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평과 원망과 근심 걱정과 우울함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며, 그 결과는 비참한 것입니다.
3.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헛된 수고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서 돌이켜 참된 기쁨을 찾습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즉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4:11-1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족하는 삶에서 기쁨이 시작되고, 감사가 시작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만족이나 삶의 기쁨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3:13절에서,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고, 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일평생 죽도록 수고해서 쌓아놓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시지만, 죄인에게는 노고만 주시고, 그 쌓은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이며, 그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쌓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누리시는 지혜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흥부전’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박정한 놀부와 선한 흥부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시절부터 교훈처럼 들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흥부는 무능하고 놀부가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시간이 흐르니 사고가 변해서 일까요?
또한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쉬지도 못하면서 여름 내내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와 노래하며 즐기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배짱이의 이야기도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베짱이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불성실한 곤충인 반면에 개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준비할 줄 아는 지혜로운 곤충입니다. 만일 이야기대로라면 베짱이는 굶주리고 얼어서 모두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올해도 내년도 계속해서 베짱이는 울어 댈 것입니다. 땅이 있는 한 언제나 개미도 존재하고 베짱이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판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같이 일만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베짱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예술로 삶에 지친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인생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서도 지혜자 솔로몬의 이와 같은 탄식이 나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본문23절에서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일평생 수고하여 얻는 것이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수고로이 일하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생 동안 죽도록 일하면서,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하여 쉬지도 못하며 한밤중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칩니다. 그러면 죽도록 일하면서 쌓아놓은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더욱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기만 하던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면, 이 얼마나 헛된 일이며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보면 솔로몬이 염세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인생살이의 확실한 지혜자(知慧者)입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으로서 사람이 가장 값지게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자신의 삶을 통하여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강조하는 전도서의 결론은 12:13-14절에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값진 인생이었다.’라고 평가를 받겠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누리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너무 세속적이고 쾌락적이라고 여겨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사실을 살펴봅시다.
1. 인생이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본문18-23절에서 솔로몬은 인생이 일평생 수고로이 일한 결과가 ‘헛되다.’고 했습니다. 왜 헛됩니까?
1) 내가 공들여 쌓아놓은 일들을 뒤를 이을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18절 말씀에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고 했습니다. 대를 이을 자가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선대가 벌여놓은 일을 관리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일을 시작할 때의 계획했던 뜻을, 후대가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물거품을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어있습니다. 만일 후대가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일의 원래 취지를 잃어버린다면,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2) 일평생 밤낮 수고한 열매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21절에서, 평생토록 온갖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 동원해서 밤낮 수고하여 터를 닦아두어도, 결국 그 열매는 수고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업”이라는 말은 ‘분복’ 즉 ‘자신에게 누리도록 주어진 복’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다 누리지는 못합니다. 또한 세상의 문명 발달이나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은, 모두 선대가 닦아둔 터 위에 후대가 더욱 발전시켜 이룩된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자의 관심은 세상적인 발전이나 물질적인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참된 본분이 무엇이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인생의 수고로움의 代價가 수고와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본문22-23절에서 솔로몬은 탄식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한평생을 살다 갑니다.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 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주어진 한 평생을 살다가 죽음 앞에 섭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설 때는 똑같은 자격, 똑같은 모습으로 서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대기업의 회장이나 말단 사원이나 똑같이 빈손으로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모든 인생의 수고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말입니다. 평생토록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빈손의 죽음’이니 헛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베푸신 분복은 무엇입니까?
본문24절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인생이 수고하면서 영의 기쁨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낙을 누리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누리게 하셨을까요?
전도서5:18절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라고 했습니다. 9:7-10절을 찾아봅시다. 음식을 나누는 기쁨이 있으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며 옷을 말쑥하게 입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고, 기쁘고 열심 있게 일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사용하여 기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일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즉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0: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고, 14:27절에서는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고,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16:24절에서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심은 이것으로 힘써 일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평과 원망과 근심 걱정과 우울함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며, 그 결과는 비참한 것입니다.
3.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헛된 수고에 대한 회의와 절망에서 돌이켜 참된 기쁨을 찾습니다. 인생의 참된 기쁨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즉 인생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4:11-1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만족하는 삶에서 기쁨이 시작되고, 감사가 시작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만족이나 삶의 기쁨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3:13절에서,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했고, 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일평생 죽도록 수고해서 쌓아놓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주시지만, 죄인에게는 노고만 주시고, 그 쌓은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이며, 그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쌓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누리시는 지혜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