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인생의 푯대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504회 작성일 2002-03-23 14:16
♡♥♡ 인생의 푯대 / 마가복음 11:12-25

*** 들어가는 말

퍼펙트골드(perfect gold)라는 말을 아시지요? 목표점에 완전하게 명중하는 것을 일컬어 ‘퍼펙트 골드’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 그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든, 명예와 권력을 얻는 것이든, 지식이나 기술, 잘 먹고 잘 사는 것, 자식의 출세, 여유로운 삶, 심지어 육신적인 쾌락까지.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점에 이르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도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목적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각 피조물들이 그 목표점을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도 목표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잠언16:4절에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사순절의 절정을 이루는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점인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고난주간의 월요일과 화요일에 행하신 의미심장한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에 깊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이 있고,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 있고,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1. 이제 사건의 배경부터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수많은 무리의 환영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성전’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숙소가 있는 가까운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입성하신 이튿날입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에 시장하셔서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셨습니다. 혹시 열매가 있을까하여 나뭇잎을 들추시며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장면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바뀝니다. 전 날에 찬찬히 둘러만 보셨던 성전에서 오늘은 대담한 일을 벌이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구를 가지고 성전을 가로질러 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당황하고 분노한 무리들을 향하여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다시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입성하신 셋째 날입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에 전 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것을 제자들이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보십시오.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확신’과 ‘기도’와 ‘용서’를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삶의 지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의 배경은 명확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상실한 성전의 소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주어지는 교회의 목표입니다.

2.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소멸되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말라 죽은 것처럼 목적을 상실한 성전도 소멸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소멸되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마가복음2:21,22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새 시대의 새 사상, 새 가치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시대는 새로운 가치관과 그에 따르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구습에 얽매이는 삶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이 의미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율법에 얽매인 옛 언약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새 언약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대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육신에 속한 옛 삶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셨고, 골3:9-10절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가 쓴 ‘구원록’에 자신의 삶을 반영한 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십계명 하나하나를 범하지 않고 율법대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고자 했습니다.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천국을 차지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탐욕이 없다. 나는 일체 거짓이 없다. 나는 모든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모든 계명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을 그가 그것을 실천하느라고 갖은 노력을 해보았지만 자기의 마음과 행동과 언행을 조심하면 조심할수록 자기는 더욱 찢어지는 인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은 헌 가죽 부대와 같았다. 이것은 낡은 의복 조각과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떨어진 데를 기우면 다른 곳에 구멍이 나고, 저기를 기우면 또 다른 데가 구멍이 나는 낡은 의복 조각 같다고 했습니다. 이리 구멍이 나고, 저리 구멍이 나고, 자꾸만 구멍이 나는 다 썩어빠진 낡은 가죽 부대와 같은 윤리적인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낡았고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도덕적인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바울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 비탄이 많고, 탄식이 많고, 고민이 많다고 하지만, 도덕적인 고민과 도덕적인 비탄의 소리처럼 더 절실하고 더 애절한 것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로다. 나는 거짓된 사람이로다. 나는 죄인이로다. 나는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이로다. 음란한 사람이로다.”
이처럼 자기의 도덕적 존재의 총 파산을 선고한 순간 그의 앞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의 의 이시며,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의는 당신이시고, 나는 당신 때문에 선함을 입었습니다. 공로 없이 주님의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사랑이 깃들고, 기쁨이 있고, 새로운 생명이 용솟음쳤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이 주인이던 시대에는 자신의 노력과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신 이 은혜의 시대에는 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함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2:8-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나를 자랑하고 내 공로를 쌓던 옛 가치관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새 가치관으로의 변화를 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저주를 받아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나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주어진 목표가 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제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통치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속의 죽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예루살렘 입성에 어린 나귀를 타신 것도 그러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과 저주 받은 나무가 말라죽은 것도 그러하고, 성전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신 것도 그러합니다. 베드로가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선생님 보십시오.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라고 깊은 의미도 모른 채, 나무의 죽은 것을 보면서 지나가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본문22-2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여신 새 시대의 새 목표이자 가치관입니다.

그것은 의심치 않는 ‘믿음’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은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또한 믿음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역시 ‘기도’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용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시대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믿음’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생명의 열쇠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을 소유하게 하는 삶의 열쇠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옛 관습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육신적인 관습과 가치관으로는 새 시대에 주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삶의 열매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대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것, 성전이 소멸된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죄악과 함께 소멸되지 않는 길은 옛 관습과 가치관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새 가치관인 믿음을 가지는 길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단순한 믿음이 아닙니다. 용서를 통하여 생활로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기도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의심 없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기초가 되는 새 언약입니다. 이 기초 위에 섬김과 봉사와 헌신과 선행의 아름다운 열매로 영원한 집을 지으십시오. 이 열매는 이 세상에서의 기쁨과 평안과 행복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큰 상급으로 예비함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삶의 가치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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